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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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한 분이 떠올랐다.

그 분은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있으면 이를 영상 하나로 압축해서 알려주는 유튜브를 시청한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게 원작을 본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나? 그렇게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러한 영상 시청 습관이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는 영상 콘텐츠를 볼 때 위에서 소개한 압축 유튜브 영상 뿐 아니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나 회차를 스킵 하는 것, 1.5배속이나 2배속 등 빠른 속도로 재생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같은 목적을 가진 행위라고 보고 있다.

시간을 활용함에 있어서도 가성비를 찾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가속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OTT 서비스의 확대 보급이다.

어느 OTT 서비스든 여가 대부분을 콘텐츠 시청에 쏟아부어도 보고 싶은 영상을 다 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볼 것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내가 본 콘텐츠의 개수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많이 보면 볼수록 콘텐츠당 단가가 싸지는 '구독' 형태의 상품은 사람들에게 온전한 속도로 콘텐츠에 집중할수록 손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는 동시에 상품을 받으면서,

대가를 치르고 무언가 얻은 기분을 실감한다.

그만큼 상품을 가치있게 여기고 낭비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월정액 자동이체로 한 달 이용권을 구입할 때는 돈을 지불한다는 감각이 떨어진다. 그러니 영상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pg 62)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콘텐츠를 접하는 태도가 우리가 과거에 말하던 '감상'의 형태와는 다른, '소비'와 가까운 형태라는 점을 지적한다.

감상은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반면, 소비는 무언가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부가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작품 자체를 즐기기 위해 시청한다기보다는 지금 유행하는 작품을 몰라서 대화에 낄 수 없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부하듯이, 숙제하듯이 보는 행동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술 - 감상 - 감상 모드

오락 - 소비 - 정보 수집 모드

(pg 58)

물론 이러한 소비 행태를 통해 자신이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발견하게 되면 다시 보거나 반복해서 보면 그만이다.

실제로 콘텐츠를 빠르게 보는 사람들의 경우 좋아하는 콘텐츠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경향도 함께 관찰된다고 한다. (이 역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봐도 비용이 증가하지 않는 OTT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 패턴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통해 해당 콘텐츠 제작자가 의도한 바를 온전히 느끼는 것에는 당연히 무리가 있다.

대사가 없는 부분을 스킵하면 대사가 없는 와중에 표현되었던 표정 연기나 감정 연기는 모두 건너뛰는 셈이다.

때로는 말보다 표정이, 행동 하나가,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 사물 하나가 가지는 의미가 있을텐데 이런 것들을 모두 건너뛰고 결말과 줄거리만 알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아래 구절의 '완'은 '완급 조절'의 '완'이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완(緩)'을 시청자가 마음대로 바꿔 보는 것이

바로 빨리 감기, 건너뛰기다.

여기서 각본가의 의도는 무시당한다.

(pg 69)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쉬운' 컨텐츠만 찾게 되는 경향도 함께 증가한다.

대사를 통해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 속 대사가 최근 30년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업 작품이라면 다양한 이해력을 가진 관객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누구의 기분도 해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제작자의 배려가 필수라는 의미에서 '소수에 대한 존중',

'다양성에 대한 관용'을 포함하는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예의나 규범으로 여겨진다.

정보 이해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베리어 프리,

즉 '모두에게 친절한 작품'이야말로 '좋은 작품'이다.

(pg 98-99)

SNS의 발달로 작품 속 불편함을 콘텐츠 제작자에게 다이렉트로 피드백 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 제작자들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우면서도 깊게 빠져들고 싶은 사람들은 충분히 파고 들며 즐길 수 있는 깊이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놀랍게도 시대의 변화는 막을 수 없으니 앞으로 콘텐츠 제작자들이 자신의 콘텐츠가 스킵되거나 빨리 재생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본이 이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작품의 공급자 측(영화 제작사 등)이 주도해서 진행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중략 -영화관에서 상영할 뿐 아니라 텔레비전 방영권, 영상 배급권 등을 판매하는 편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영상 배급사 뿐만 아니라 제작사이기도 한 넷플릭스나 아마존 혹은 TV 방송국이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 기능을 자사 서비스에 추가한 것도

역시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에 대한 적극적인 제안이다. 왜 그랬을까?

상당한 수의 관객이 이를 원하기 때문이다.

(pg 220)

저자의 표현을 빌면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고 공급자가 이를 수익의 원천으로 인지하고 있다면 콘텐츠 제작자들 역시 따라가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처음 카세트 테이프가 나왔을 때 라이브 음악이 아닌 음악은 통조림 음악이라며 무시당했던 것이나, 처음 TV가 나왔을 때 극장의 큰 화면과 비교할 수 없는 저열한 화질과 음질로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하겠냐는 비아냥을 들었다는 것을 그 예시로 들고 있다.

실로 놀라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4장까지는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하게 부각하고 있어서 저자가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5장인 결말에서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고 이 형태가 우리의 콘텐츠 이용 습관의 미래 모습이라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결말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이러한 행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안 좋게 생각했던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어찌 됐든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콘텐츠를 접하는데 이를 '감상'하든 '소비'하든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요즘 긴 글을 소화하지 못하는 문해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영상의 이해도도 점차 낮아지는 것이 과연 인류에게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꼰대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책 자체는 2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며 설문이나 인터뷰 인용이 많아 금세 읽을 수 있다.

(K-콘텐츠의 인기 덕분에 일본 저자의 책이지만 국내 드라마 사례도 엄청 많이 등장해 반가운 느낌도 들었다.)

이 책 역시 저자가 제시한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을 한다면 사실 마지막 5장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저자가 여기까지도 이해해 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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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기와 반창고 - 어린이를 위한 의학 지식 사전
메이커 보르더만 지음, 벤저민 르로이 그림, 정신재 옮김, 김지은 감수 / 산수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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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병원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어릴 때에는 딱히 아프지 않더라도 예방주사 때문에 자주 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병원을 무서워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플 때 병원을 찾아야 덜 아플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이 병원이라는 곳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증상들에 대한 소개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를 어린이 눈 높이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이들이 흔히 경험하는 감기나 타박상 같은 신체적인 질환들 외에도 우울증이나 불면증 같은 정신적인 질환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어린이들도 정신질환에 꽤 많이 노출된다고 하니 단순히 몸이 아프지 않은 것뿐 아니라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질병'이라고 보긴 좀 어렵지만 알레르기나 코피, 야뇨, 잦은 방귀 등 병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설명해두고 있어서 단순한 질병의 나열이 아닌 아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신체적인 불편함을 종합적으로 잘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식구들 전체가 봄이면 늘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이 책에서 알레르기에 대해 쉽게 소개해 주고 있어서 아이와 함께 읽으며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었다.

6살인 우리 딸에게는 다소 글이 많아 보이긴 하나, 그림이 많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부분만 읽어주기가 좋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면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 보면 되겠다.

(그림과 글 양은 아래의 샘플을 참조하면 될 것 같다.)



(pg 148-149)

각 질환마다 대체로 1-2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삽화가 그려져 있기 때문에 어떤 질환을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보는 재미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인 혈우병 관련 그림이 재미있었다.

양쪽 귀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끔찍하지 않고 익살스럽게 그림으로 잘 표현해 두었다.

전반적으로 흡족한 책이었다.

글자가 어린이용 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다 싶지만 담긴 정보가 알차고 많아서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병원을 무서워하거나 주사 맞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아이라면 함께 읽어보면서 병원에 가지 않을 경우 내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면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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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의 불꽃 - 청년 전태일의 꿈 근현대사 100년 동화
윤자명 지음, 김규택 그림 / 풀빛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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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하종강 교수의 강의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의 의무교육 제도 속에는 노동 교육이 전무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나도 학창 시절에는 노동이니 인권이니 하는 얘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나마 대학에서 관련 학회 생활을 하느라 관심을 가졌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노동문제에 대한 별다른 의식 없이 노동자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어린이를 위한 노동 동화가, 그것도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가 나왔다는 말에 얼른 읽어보고 싶었다.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쳤던 날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책 발매일도 이 날짜에 맞춘 모양이다.

작품의 화자는 김순옥이라는 가상의 13세 여자 어린이다.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이름이 '순옥'이라 한다.)

그 시절 그리 잘 살지 못하는 시골집의 여자아이가 다 그랬듯, 최소한의 의무교육이 끝난 뒤 부모에 떠밀려 동네 언니를 따라 평화시장의 '시다'로 일하기 위해 상경하게 된다.

거기서 바보회를 만들어 노동 운동을 시작하던 전태일 오빠를 만난다는 이야기다.

작품은 남아선호사상이 아직 위세를 떨치던 시대, 오빠는 학업을 이어가는데 자신은 여성으로 태어난 죄로 어린 나이부터 생업에 시달려야 하는 부조리함에서 출발한다.

13세의 어린 몸으로 닭장 같은 공장에서 겪어내는 그 시절 노동자의 비인간적인 처우도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잘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전태일 열사가 겪어야만 했던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무수한 장애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 동료 노동자들의 응원과 협력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어린이용 책이니 분신이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장면까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의 시각에서 본 당시의 끔찍한 상황은 충분하게 전해진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 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전태일 열사.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노동 조건은 상당히 개선되었고 지금은 주 4일 근무 제도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젊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이미 만들어진 주 52시간 근무제를 폐지한다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다른 사회문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노동 문제 역시 한 걸음 진보하기는 어렵지만 두 걸음 후퇴하기는 쉽다.

자본의 힘은 언제나 노동 인권에 반하는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대부분을 노동자 신분으로 살게 될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 인권 문제에 대한 시각을 갖추고 자본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발간이 개인적으로도 너무 반갑게 느껴지고, 많은 학생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보통 다 읽은 책은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폐기하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잘 소장하고 있다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해줄 생각이다.

물론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성인이라면 읽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테지만 다 읽고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전태일 평전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대신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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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1Q84 1~3 세트 - 전3권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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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점만 가면 이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벌써 십여 년 전이다.

지금도 독서 편식이 심하지만 그때는 더했기에 관심도 없던 책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어느새 우리 집에도 꽂혀있게 되었고 마침 읽을 책이 딱 떨어져서 드디어 펴들게 되었다. (사실 꽂혀있은지도 꽤 되었지만;;)

워낙 전설적인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고 국내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사실만으로 책의 재미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소개가 가능할 것 같다.

만만하지 않은 두께에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꽤 긴 이야기지만 읽은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책을 읽을 사람이라면 주의하기 바란다.)

2권까지는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덴고와 아오마메의 시각이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분량은 길지만 스토리라인 자체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아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수학학원 강사 겸 소설가 지망생'과 '스포츠센터 트레이너 겸 냉혹한 암살자'가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며 진행되는 사랑 이야기인데, 이들이 사실은 어릴 적 단 한순간,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설정이다.

이렇게 쓰니 참 매력 없어 보이는 줄거리인데 이게 한동안 베스트셀러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나 작가가 가진 문장력과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독특한 세계관 덕분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러브 스토리니 둘이 이어지든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가겠지만, 그 안에 벌어지는 일들이 꽤나 많고 엮여있는 인물들도 많아서 아래 구절처럼 전개가 쉽게 예상되는 작품은 아니다.

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그 당시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1권, pg 10)

1984년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명시해 둔 굉장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시작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의 내용이 그들의 현실 세계와 겹치면서 판타지스러운 느낌으로 이어진다.

작품의 제목인 1Q84는 아오마메가 갑자기 자신이 살던 세계와 다른 세계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 현실이 무슨 현실인지를 알아보겠다는 뜻에서 Question의 Q를 따 1Q84년이라 부르자고 정한 것이다.

지금은 마블 영화 덕에 그리 어색하지 않은 개념인 '멀티버스'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전환(현실과 비현실이 부자연스럽게 공존하는)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충분한 페이지에 걸쳐 한 겹씩 상세히 묘사를 해 나가기 때문에 읽다 보니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블루투스 임신에 이르자 '이거 선넘네'라는 생각이 좀 들기는 했다.)

작가의 명성답게(?) 섹슈얼한 묘사도 꽤나 많이 등장하는데 정작 주인공 둘의 주요 서사는 10살 때 손 한번 잡은 것이 전부라는 점이 신선한 대비로 다가온다.

작품 내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역시 20년 전에 아오마메가 교실에서 덴고의 손을 잡았던 그 짧은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사에서 선택이 갖는 중요성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작품 역시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리고 그 선택들이 어디로 인도하느냐가 스토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 두 가지 기억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지.

그리고 역사라는 건 집단의 기억을 말하는 거야.

그것을 빼앗으면, 혹은 고쳐 쓰면 우리는 정당한 인격을 유지할 수 없어."

"당신도 고쳐 썼어."

(1권, pg 544)

3권부터 우시카와라는 자의 시각이 추가된다.

덴고에게 후원금을 주겠다며 접근했던 그는 아오마메를 쫓기 위해 다시 그들의 주변을 맴돈다.

여기서 작가는 일부러 우시카와의 시각을 한 발짝 늦게 알려준다.

쫓는 자의 시각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쫓기는 자의 시각이 먼저 등장하는 것이다.

반대로 되어야 할 것 같지만 묘하게 의도된 시점 차이 때문에 3권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전개 자체는 꽤나 느리다고 할 수 있는지라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미끄럼틀에서 달 한번 쳐다보는 데 50페이지가 걸리니 솔직히 나도 3권 중반부터는 살짝 짜증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갈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결말이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구절들이 나와주기 때문이다.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빗살 빠지듯이 하나하나 당신 손에서 새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대신 손에 들어오는 건 하잘것없는 모조품뿐이지요.

육체적인 능력, 희망이며 꿈이며 이상, 확신이며 의미,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이 하나 또 하나, 한 사람 또 한 사람, 당신에게서 떠나갑니다. - 중략 -

그것이, 예, 말하자면 나이를 먹는다는 겁니다."

(2권, pg 160)

"아버님은 정말로 그 일을 좋아하셨나봐. NHK 수신료를 수금하러 다니는 걸."

"좋다든가 싫다든가,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을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럼 어떤 종류의 문제였는데?"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야."

"그럴까?" 아다치 구미는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이 어떤 의미에서는 정답인지도 몰라."

"그럴지도."

(3권, pg 555)

"멀리까지 간다고 했지." 다마루는 말한다. "얼마나 멀어질까."

"그건 숫자로는 잴 수 없는 거리예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 사이의 거리처럼."

(3권, pg 653)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불행했던 과거와 그냥저냥 별 불만은 없었던 현재를 지나 두 사람이 '행복'이라는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미래가 보이며 끝이 난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고독한 한 소년과 고독한 한 소녀다. 초겨울의 방과후 교실.

상대에게 무엇을 내밀어야 할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해야 할지,

두 사람은 힘을 갖지 못했고 지식도 갖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은 적도 없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다. - 중략 -

그때의 두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그곳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완결된 장소였다.

한없이 고립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고독에 물들지 않는 장소.

(3권, pg 675-676)

3권까지 다 읽고서 인상적인 구절을 정리하다 보니 1권 초반부에 이미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 구절이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는 구절이었다는 걸 읽을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두 사람은 나비와도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나비는 그 무엇보다도 허망하고 우아한 생물이랍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태어나 한정된 아주 조금의 것만을 조용히 원하고,

이윽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살그머니 사라져요. 아마도 이곳과는 다른 세계로."

(1권, pg 178)

다 읽은 후 재미있었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 광풍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했는지를 물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텍스트를 이미지로 떠올리며 그 작품이 전해주는 감상을 온전히 느끼는 것에 익숙한 독자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전개가 너무 느려서 때로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소개된 판타지스러운 요소들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웠다.

독자는 리틀 피플이 어떤 존재인지, 공기 번데기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심지어 왜 만드는 건지도 이 긴 분량 안에서 명확히 읽어낼 수 없다. 그저 막연하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읽고나서 찜찜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좀 남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니만큼 읽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는 결코 아니므로 책을 읽어볼 생각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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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폭식 사회 :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2023년도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선정 우수과학도서
이광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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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무슨 뜻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라는 부제를 보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미래의 '대안'이자 '희망'이라고 믿는 기술이 지금처럼 아무 제한 없이 폭주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지하자원이 부족한 땅에서 '기술이 곧 경쟁력'이라 믿고 자란 사람들에게 저자의 외침이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 책을 집어 들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가상의 공간이 실제 세계에 영향을 주는 현상도 가속화됐다.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한 가상화폐부터 NFT와 크립토 아트 등 실제로 우리가 만져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들이 실물 자산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디지털 공유와 개방의 역사에 견줘봐도, NFT와 크립토아트의 출현은 크게 미심쩍다.

이는 무한 복제, 비경쟁성, 한계비용 제로, 익명성 등 아이디어와 지식 공유의 오래된

디지털 전통과도 크게 배치된다.

영원히 "자유롭고자 하는" 정보의 본성은 인류의 잠재적 창작 원천이 되고

복제와 공유를 독려하면서 디지털 '자유 문화'를 확장해오지 않았던가?

(pg 43)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결실이 일부 계층에 독식되며 그를 떠받치는 수많은 디지털 잡일(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하류노동)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AI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순 코딩 노동부터 디지털 영상 편집 등의 콘텐츠 생산 노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비정규 직업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확대된 플랫폼 기술의 적용은 수많은 긱 워커를 양산해왔다.

'언택트' 경제는 자동화된 소비에 비례해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인간 노동을 동원해야

가능한 플랫폼 체계에 의지하고 있다. - 중략 -

플랫폼 노동의 증가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이 많이 늘어난 듯 보이기도 한다. - 중략 -

플랫폼 기술로 형성된 자원 유통 방식의 급격한 기술혁명과 맞물려 코로나19 재난 시대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노동을 값싼 심부름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pg 81-82)

정보통신업계 지원 정책과 비교하면

고용과 노동의 질적인 개선과 안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박했다.

더 안정되고 '양호한 일자리'와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을

함께 고민했어야 했지만, 청년 수탈의 임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pg 143)

이처럼 기술의 폭주는 사회의 취약 계층에 더 가혹한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게다가 이들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지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에 있었던 카카오톡 마비 사태다.

저자는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방관 혹은 부채질한 정부를 통렬한 시각으로 비판하고 있다.

'닷컴 시장 교란종'이던 카카오를 현재 국가 기간 통신망처럼 보이도록 부채질했던 과오는 어찌 보면 각종 공적 서비스를 카카오톡 알림 등에 쉽게 연동해왔던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무신경증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 중략 -

규제의 공백 지대에서 마구 헤엄치던 시장 포식자를 그저 방관해왔던 시절에다

카카오 플랫폼에 각종 공적 서비스를 얹혀 연동해오던 관행이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대한 플랫폼 공룡을 국가가 나서서 키운 꼴이 되었다.

(pg 126)

또한 이렇게 기술 개발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담긴 정책 기조가 정권에 관계없이 늘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 뉴딜'이나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상은 그 단어의 차이만 존재할 뿐 기본 기조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환경과 노동에 대한 고려는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정책은 모두 기술의 무한한 개발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와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 노동 문제의 해결이 기술 개발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국가 주도적인 기술 개발 러시에서 시민 정보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우려도 꽤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사기업이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취합하는 정보들을 사업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데이터 3법의 제정이 그러한 현상의 주요한 분수령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기술의 개발과 이를 통한 경제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온 것의 폐해는 적지 않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저자는 지금부터라도 환경 문제에 대한 '생태 감각'을 되살리고 인간의 노동 문제를 직시하는 '연대 감각'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와서 문명의 이기를 완전히 폐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생산의 규모를 줄이고, 성장주의적 광란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경로 수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 중략 -

폭주하는 기관차를 완전히 멈춰 세우고, 자본주의적 속도 욕망을 무력화할

다른 삶과 생명 공존의 기획이 필요하다.

(pg 180)

우선은 청정의 비물질인 양 가장하는 첨단기술이 환경에 미치는 독성 효과를

풀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기술의 반생태적 속성을 밝히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환경과 기술의 통합적 논의 없이 기후 위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어렵다.

동시에 플랫폼 알고리즘 등 디지털 기술이 노동자와 시민의 심신에 미치는 '독성'의

제거 방법 또한 찾아야 한다.

이는 공생과 호혜의 생태주의적 기술을 모색하는 일과 다름없다.

(pg 246)

전체적으로 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많이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저자가 여기저기에 쓴 글을 모아둔 것 같은 형식의 책이어서 목차나 글의 순서가 논리정연하다는 느낌은 다소 부족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앞에서 봤던 주장의 연속이어서 다소 집중력을 흐리게 하기도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 자체는 꽤 신선하고 의미 있었다.

바로 지난달에 있었던 카카오톡 먹통 사태 등 국내의 최신 사례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 점도 좋았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할 것이라는 막연한 청사진은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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