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비극 - Mystery Best 1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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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는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걸작들을 꽤나 읽고는 했었다.

물론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읽을 당시에는 너무 재밌어서 어른이 되면 범죄를 추적하는 탐정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소개할 이 책 역시 1932년에 지어진 무려 90년 전 추리소설로 어느 매체에서는 세계 3대 추리소설의 하나로 꼽는다고 할 정도로 추리소설계에서는 고전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물론 '전국 n대 짬뽕'처럼 누군가가 주관적으로 선정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인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작품은 한 중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그 시체는 어느 가족의 아버지로 밝혀지고 자살로 일단 결론이 나지만, 그 집에서 독살 기도가 한차례 일어난 뒤 이어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실질적인 탐정 역할을 하는 드루리 레인이 투입되고 한 경감과 검사가 붙어 사건을 함께 해결해나가게 된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사실 이 소설의 느낌이 진짜 추리소설의 느낌일 텐데, 저자들이(저자가 사실 두 명이다.) 독자 스스로 범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단서를 하나하나 나열하듯이 잘 알려준다는 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이런 장르를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지금 작가들은 이런 접근법을 잘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은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와도 범인을 찾기보다는 동기를 찾거나 트릭을 찾는 데 집중하는 반면, 이 작품은 옛날 추리소설답게 범인이 누구인지부터 차근차근 접근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오히려 추리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사실 중반쯤 가면 대충 범인의 윤곽이 보인다.

하지만 약간 답답할 정도로 드루리 레인이 그 정체와 트릭을 늦게서야 알려주는데, 다 읽고 나면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가 있어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난 사실 초반부터 범인의 정체를 직관적으로 때려 맞혔는데, 저자가 독자와의 공정한 게임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 또한 저자의 의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단순히 내가 이런 플롯에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작가들이 이런 접근법으로 작품을 쓰지 않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 알고 있다.)

은퇴 후 소설에 푹 빠지신 아버지 덕분에 옛날 소설들을 꽤나 읽어보게 되고 이 책 역시 그 중 하나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거의 100년 전에 지어진 이야기니 지금처럼 과학적인 수사 방식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탐정이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사건에 다가가는 것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져서 그런 모양이다.

최근 일본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올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품을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한참 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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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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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좋아한다면서 테드 창의 저작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러워 도서관에서 저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읽게 된 책이다.

(한 영화 때문에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배우 오정세가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유쾌하진 않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SF 작가로 추앙받는데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렇게 불리는지 궁금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총 9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으로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상당한 몰입감을 자랑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가 왜 그만한 명성을 누리게 되었는지도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9개의 이야기 모두가 각각 다른 주제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작품마다 느낌도 매우 달랐다.

그 중에서도 하드 SF를 추구하는 작가의 매력이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마지막에 수록된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양자 역학을 활용해 원자 하나를 특정 방향으로 튕겨내면 그 순간부터 우주가 분할되어 다중우주가 형성되고 그 다중우주의 자신과 일정기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마치 오래 전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TV인생극장(개그맨 이휘재의 "그래, 결심했어!"라는 대사로 유명했던)처럼 그 전까지 모든 것이 동일했는데 세상이 분기되고 나면 이후의 선택에 따라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다중우주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세상을 이해하는 게 더 쉬워지니까.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도 해요. 비난받을 누군가가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중에서

표제작인 '숨'도 상상력 측면에서는 위 작품과 비슷한 충격을 안겨줬다.

보통 SF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기계 인간)들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냈다는 설정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근원을 탐색하는 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인간인가 아닌가를 탐구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직 안드로이드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뇌를 직접 관찰해 안드로이드의 뇌 작동 방식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는 과학자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그 안드로이드의 연구 결과 자신들의 문명은 먼 미래에 필연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자신의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에 있을지도 모를 생명체(예를 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탄소 기반의 생명체인 독자들처럼)에게 남기는 기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주에 인간 이외의 지적인 생명체가 있다는 상상력을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각으로 표현한 그야말로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이 밖으로 나온 인간이었다.

확장된 뇌의 한가운데에, 해체된 조그만 몸이 위치해 있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형태로 내 몸을 배치해놓고, 나는 나 자신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숨' 중에서

책의 처음을 여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케 하는 배경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시간 여행 이야기이다.

이 작품만 보면 SF라기보다는 판타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살짝 드는데, 책 후미에 실린 작가의 창작 노트를 보면 여기서 등장하는 타임머신이 상대성 이론에 위배되지 않고 상상할 수 있는 형태의 타임머신이라 한다.

하드 SF를 추구하는 작가답게 분위기는 판타지스럽지만 그 배경에는 철저한 과학적 사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우연도 의도도 태피스트리의 앞뒤 면에 불과합니다.

둘 중 하나를 마음에 들어할 수는 있지만,

한쪽이 진짜이고 반대쪽은 가짜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중에서

그 밖에도 인간의 모든 기억을 동영상 로그로 남겨 재생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상상해 보는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디지털 반려동물로 탄생한 AI를 돌보는 사회를 그려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미래를 예측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기계가 발명된 후 결정론이 지배하는 인류 사회를 그려낸 '우리가 해야 할 일' 등 하나하나 길게 소개해도 부족할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중에서

이 세계에서 이십 년 동안 살며 습득한 상식을 가르치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발견적 논리를 그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조합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작가와 작품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 책.

작가의 전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역시 단편집이라고 하니 부담 없이 읽어봐야겠다.

출판사에서는 최근에 작품을 접했던 '그렉 이건'과 마치 라이벌인 것처럼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데, 두 작가의 작품 모두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테드 창의 작품이 읽기에 더 쉬운 느낌이었다.

SF라는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탁월한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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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닌자 좋은 습관 기르기 2
요시무라 아키코 지음, 고향옥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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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신체 분비물에 대한 관심은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시대를 불문하고 늘 존재하던 현상이기도 하다.

소싯적 김영만 선생님이 아이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코딱지'라는 단어를 선택했던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보면 각종 신체 분비물을 주제로 한 유아용 책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런 책들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이 책은 분비물 중에서도 '코딱지'에 주목하고 있다.

양친이 모두 비염 환자인 탓에 자연스럽게(?) 아이도 비염 환자로 자라고 있어서 코에 손이 자주 가고 코를 세게 풀다 보면 코피도 종종 나게 된다.

그런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동화를 통해 코의 중요성도 배우고 코를 주의해서 다루는 버릇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고른 책이다.

배송이 오자마자 스스로 펴서 훑어보기 시작한다.

역시 '코딱지'라는 단어에 이목이 확 집중되는 모양이다.



제목처럼 코를 파는 아이 앞에 코딱지 닌자가 나타나 아이를 작게 만드는 도술을 부린 뒤 함께 콧속을 탐험하는 이야기다.

코딱지 닌자와 함께 코딱지나 콧물의 생성과정은 물론이고 이들이 우리 몸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재미나게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이 올바른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 끝에 코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평소에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도 유아 수준에 맞게 잘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다.

그림도 굉장히 귀엽고 글씨도 그리 많지 않아서 5-6세 정도의 미취학 아동이라면 몇 번 읽어주면 혼자서도 금방 읽을 수 있을 수준이다.

신체 분비물 관련 동화는 재미와 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잘 잡아야 하는데 이 책 역시 그런 부분에서 균형을 잘 잡은 것 같아 아이도 좋아하고 같이 읽는 부모 입장에서도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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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똥을 알아? 웅진 우리그림책 94
이혜인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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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신체 분비물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반응은 정말 대단하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 주제에 관심이 없는 아이를 난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특정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관심이지만 미취학 아동이라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책이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옛 CF가 생각나는 제목.

제목답게 똥 이야기이긴 한데 특이하게도 똥들이 다 인격화되어 등장하고 있다.

신체에서 똥이 생성되는 과정은 물론이고 어떻게 배출되는지, 배출된 후 어떻게 되는지를 인격화된 수많은 똥들이 등장해 알려주는 책이다.

아이에게 읽어주다 느낀 건데 저자가 우리 세대인 모양이다.

책에 등장하는 유머 코드나 드립들이 약간 우리 세대 느낌이 난다.

그래서인지 보통 유아용 책은 읽어줄 때 어른인 나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나도 피식 웃으면서 읽어줄 수 있었다.

아래 그림에서 보이듯이 이제 똥이 될 음식이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라며 자조적인 미소를 띠는 장면도 그렇고, 책 뒷 표지에 각종 똥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허세샷 같은 모습을 그려놓은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자아냈다.

그 밖에도 다 찍어 올릴 수 없을 만큼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꽤 많다.



(pg 3)



책 뒷표지 중 일부

역시나 아이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보통 새 책을 쥐여주면 누군가가 같이 읽어주기 전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데 이 책은 받자마자 본인이 열심히 넘겨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문은 글자가 그리 많지 않은데 등장하는 똥들이 하는 드립들이 꽤 많아서 소리 내어 읽기에 시간은 제법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드립들이 꽤나 웃기기 때문에 읽어주는 부모는 물론이고 듣는 아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인간의 배설물이라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지만 귀여운 그림체와 재미난 글로 아이들에게 건강한 배설의 중요성을 흥미롭게 일깨워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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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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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400페이지 정도 되는 두께의 책을 평일 저녁 식사 이후부터 읽기 시작해 지금쯤 다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의 글이 쉽게 읽힌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초반에 누군가가 살해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이 작품은 '누가' 죽였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왜' 죽였는지에 집중하는 작품이라 보면 된다.

그간 작가가 자주 시도했던 방식이라 그의 작품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범인이 총 9챕터 중 3챕터에서 이미 밝혀지고 범인을 알아내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동기를 밝혀내는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트릭이 숨어 있고 이를 담당 형사인 '가가 교이치로'라는 인물이 하나하나 들춰내는 것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포를 당하면 재미가 상당히 반감될 수밖에 없는지라 읽은 사람 입장에서도 최대한 스토리 이야기는 지양하려 한다.

이 작품이 '가가 교이치로'라는 형사가 등장하는 총 10개의 작품 중 하나라 하는데, 다른 작품을 접한 경험이 전무한 나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아무 사전지식 없이 읽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의 소설에서는 흔히 보기 힘들었던 시점의 차이였다.

보통 일반적인 현재 시점에서 관찰하듯이 서술되었던 그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범인과 형사가 남긴 기록물 형태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책 후미의 해설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기록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록한 자의 주관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과거'의 시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관찰하고 있는 것도 현실에서는 주의 집중 여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겠지만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현재 관찰하고 있는 바를 의도적으로 속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기록이라면 기록하는 자가 '어떤 부분을 읽히고 싶어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편집이 가능하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기록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트릭을 마련해 두었는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파헤쳐 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라 생각한다.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반전은 극적일 수는 있지만 누군지 예측하는 순간 다소 뻔해진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반전은 극적인 면은 덜해도 예측이 어려워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에서 묘사하는 바에 따라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읽게 될 텐데(착한 놈은 선한 이미지로, 나쁜 놈은 표독스러운 이미지로 등등) 동기가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이미지가 휙휙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제목이 상당히 직설적이라는 점도 작가의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점인 모양이다.

이 책도 제목처럼 인간의 순수한 악의(?)가 어디까지 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별생각 없이 봤던 표지도 다 읽고 나면 키보드 사이로 피어오른 독버섯이 책의 줄거리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이지만 띠지에 있는 옮긴이의 추천사가 작품의 스포를 담고 있다.

물론 다 읽은 다음에야 눈에 들어올법한 문구지만 작품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띠지 같은 건 사자마자 버리고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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