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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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400페이지 정도 되는 두께의 책을 평일 저녁 식사 이후부터 읽기 시작해 지금쯤 다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의 글이 쉽게 읽힌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초반에 누군가가 살해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이 작품은 '누가' 죽였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왜' 죽였는지에 집중하는 작품이라 보면 된다.

그간 작가가 자주 시도했던 방식이라 그의 작품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범인이 총 9챕터 중 3챕터에서 이미 밝혀지고 범인을 알아내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동기를 밝혀내는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트릭이 숨어 있고 이를 담당 형사인 '가가 교이치로'라는 인물이 하나하나 들춰내는 것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포를 당하면 재미가 상당히 반감될 수밖에 없는지라 읽은 사람 입장에서도 최대한 스토리 이야기는 지양하려 한다.

이 작품이 '가가 교이치로'라는 형사가 등장하는 총 10개의 작품 중 하나라 하는데, 다른 작품을 접한 경험이 전무한 나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아무 사전지식 없이 읽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의 소설에서는 흔히 보기 힘들었던 시점의 차이였다.

보통 일반적인 현재 시점에서 관찰하듯이 서술되었던 그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범인과 형사가 남긴 기록물 형태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책 후미의 해설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기록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록한 자의 주관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과거'의 시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관찰하고 있는 것도 현실에서는 주의 집중 여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겠지만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현재 관찰하고 있는 바를 의도적으로 속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기록이라면 기록하는 자가 '어떤 부분을 읽히고 싶어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편집이 가능하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기록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트릭을 마련해 두었는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파헤쳐 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라 생각한다.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반전은 극적일 수는 있지만 누군지 예측하는 순간 다소 뻔해진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반전은 극적인 면은 덜해도 예측이 어려워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에서 묘사하는 바에 따라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읽게 될 텐데(착한 놈은 선한 이미지로, 나쁜 놈은 표독스러운 이미지로 등등) 동기가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이미지가 휙휙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제목이 상당히 직설적이라는 점도 작가의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점인 모양이다.

이 책도 제목처럼 인간의 순수한 악의(?)가 어디까지 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별생각 없이 봤던 표지도 다 읽고 나면 키보드 사이로 피어오른 독버섯이 책의 줄거리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이지만 띠지에 있는 옮긴이의 추천사가 작품의 스포를 담고 있다.

물론 다 읽은 다음에야 눈에 들어올법한 문구지만 작품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띠지 같은 건 사자마자 버리고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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