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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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나 SF, 판타지 쪽 장르 소설들은 그래도 좀 읽어본 편인데 '호러'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이미 단편집만 세 권이나 낸 작가인데다(후미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본인의 사주이기도 하고) 책 소개도 흥미로워서 읽어보게 되었다.

총 여덟 작품이 실려있으며 표제작이 가장 마지막에 실려있다.

표지부터 어딘가 음산한 느낌을 주며 호러라는 장르를 명확하게 표방하고 있는 만큼 수록 작품 전체에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사실 전쟁 영화와 더불어 호러 영화를 가장 싫어할 만큼 잔인한 콘텐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도 전반적으로 잔인함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결말도 굉장히 찜찜한 느낌인지라 읽으면서 심리적인 저항감이 굉장히 심했다.

그럼 읽지 않으면 될 텐데, 희한하게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이 도착한 날 그 자리에서 여섯 작품을 내리읽었고, 다음 날 오전에 완독했으니 흡인력이 상당했다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서움을 즐기듯 보기 싫은데 계속 보고 싶은(?) 묘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 '읽는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의 재미는 탁월한 편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첫 시작은 의식이 남은 채로 몸이 좀비화되는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 비용을 아끼려는 자식에게 버림받는 노년의 감염자가 등장하는 '반짝이는 것'이다.

이 작품의 공포감은 생사의 기로를 앞둔 상황에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데, 수록작 중 '목소리'라는 작품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진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족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주는 긴장감이 상당했다.

표제작인 '부디 너희 세상에도'에서도 좀비 바이러스가 주제이긴 하나, 첫 작품과는 결이 매우 다르고 제4의 벽이라는 참신한 방법으로 익숙한 주제의 식상함을 많이 덜어낸 느낌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얼굴보다 더 자주 보게 되는 '화면'을 주제로 한 '화면 공포증'이라는 작품도 우리 주변에 너무도 익숙하게 존재하는 사물이 새로운 공포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참신함이 돋보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화면 속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그곳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타자로 존재하며, 스스로를 주인공 자리에서 내몰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니까.

(pg 111, '화면 공포증' 中)

개인적으로 수록작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에이의 숟가락'이라는 작품이었다.

숟가락이라는 특이한 도구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한 소녀(!)의 이야기인데 짧은 분량 안에서 인간의 뒤틀린 소유욕이 어떻게 정신을 파괴해 가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현신이건 살인의 신이건, 숟가락은 에이의 하나뿐인 친구였다.

에이는 자신과 숟가락이 서로를 완벽하게 소유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pg 65)

그 밖에도 이름을 부르면 잡아먹는 괴물이라든가 기시감이라는 느낌으로 미래를 경험하는 남자,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는 뇌의 나무 등 판타지적인 요소를 차용하지만 그 요소들을 우리의 현실과 절묘하게 조합함으로써 판타지와 현실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기묘한 공포감을 잘 묘사한 작품들이 실려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호러뿐 아니라 SF, 로맨스, 심지어는 동화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폭이 굉장히 넓은 모양이다.

선택할 수 있는 책들도 많아서 조만간 호러가 아닌 작품도 접해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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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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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기 쉽지 않은데, 간단히 정리하면 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비만으로 고민하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마트 직원에게 살찌는 음식을 산다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러다 우리 사회가 비만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구조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이것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무인도에 혼자 산다면 당연히 수치심을 느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술에 취해 이웃에게 실수를 했다면 다음 날 수치심을 느끼고 반성하게 되는 것처럼 비교적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시기에는 수치심이 공동체가 정한 규칙들을 지키게 하는 일종의 자정작용 같은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SNS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수치심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수치심이 과거와는 다른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이끄는 디지털 업계는

온라인에서 조롱으로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이런 행동을 이용하고 퍼뜨린다.

대형 연구실에서 수학자는 심리학자 및 인류학자와 긴밀히 협업해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 기계를 학습시킨다.

이들의 목적은 이용자를 온라인에 끌어들여 광고라는 금광을 캐는 것이다.

이용자를 단단히 붙잡는 수단으로 조롱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pg 136)

디지털 거물 기업이 갈등에서 얻는 횡재는 그저 운 좋게 얻은 게 아니다.

이들은 돈이 되는 논쟁을 부채질하도록 자사 플랫폼을 설계한다.

또 이용자의 견해를 극단으로 몰아가곤 하는데,

그렇게 해야 논쟁이 과열되어 이용자가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

(pg 142-143)

저자는 자신의 사례로부터 출발한 비만 외에도 마약중독, 빈곤 등의 문제가 마치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초래된 결과라는 사회적 인식이 당사자들에게 부당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가령 복지제도를 신청하는 과정에 자신의 가난을 상세하게 증명해야 한다면 이는 당사자에게 부당한 수치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이어트 산업, 재활 산업 등이 거대한 비즈니스를 형성하고 있어서 당사자들에게 지속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당연히 이렇게 지속적인 수치심에 노출될 경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고,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수치심 렌즈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즉 모든 관계와 만남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무심코

흘린 말과 농담조차 남에게 수치심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 여러 형태의 수치심을 주고받으며 이 감정과 엮인다.

(pg 179)

물론 이러한 수치심 체계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존재한다.

미투 운동이나 흑인 인권운동 등 사회 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준 운동들이 대부분 가해자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저자는 이러한 수치심의 긍정적인 효과를 물론 인정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개인에게 그러한 언행의 선택지가 있었는지, 현실을 개선할 영향력이 있는 개인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수치심이 그 실수를 만회할 기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낙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일베 용어를 썼다가 논란이 되면 그 이미지를 벗겨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고 비난받을 만한 일이지만 사과와 반성이 뒤따른 다음에도 계속해서 조롱할 정도의 일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수치심 체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람들 스스로가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속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잘못 때문에 영원히 수치심의 늪에 갇혀야 하는가에 대해선 재고할 필요가 있다.

(pg 299)

현대 사회에서 수치심이 작용했던 여러 사례들을 잘 정리해 주고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떻게 변화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물론 그래서 읽기에 어려운 느낌이 없다는 부분은 좋았다.

저자가 미국인이니 미국 사례가 많이 등장하지만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인들이 '조리돌림' 당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라 그런지 그리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인터넷 문화가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이 적지 않은데 이를 수치심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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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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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작가의 책을 몇 권이나 읽게 될까 개인적으로도 궁금해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생일 기념으로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읽어보라며 건네받은 책인데 책의 발매일이 내 생일이라는 게 놀랍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이런 우연들이 쌓여가는 것이 삶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 역시 우연한 만남이 쌓여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클럽의 호스티스인 엄마가 누군지도 모를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태어나게 된 주인공 레이토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인생을 허비하다 절도죄를 저지르고 만다.

징역도 살게 되는구나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 자신에게 상당한 재력을 가진 이복 이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이모 덕분에 범죄 이력이 남지는 않게 된다.

그 대가로 한 사당에 있는 녹나무의 파수꾼 자리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 나무가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는 설정이다.

물론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소원을 직접적으로 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이 나무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것이 작품의 기본 뼈대라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감상을 어떻게 남기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는데 '인연'과 '기억'이라는 단어로 정리하면 어떨까 싶다.

가정을 꾸리며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깨달은 거지만 인생의 큰 줄기는 살면서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의 만남은 전적으로 우연한 일이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레이토 역시 녹나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사연과 고민을 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주며 그 스스로도 내면적으로 성장해간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면면도 제법 흥미롭다.

부친의 외도를 의심해 뒷조사에 나서는 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자신에게 쏟아진 과도한 기대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포기해버린 한 천재 음악가와 그의 음악을 되살려보려는 동생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자신의 핏줄이 아님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친자식처럼 키운 아버지와 그의 유지를 성실히 잇고자 하는 아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것은 세대를 넘나드는 '기억'이다.

누구나 자식을 키우게 된다면 자신의 좋은 점만을 전수해 주고 싶어 할 것이다.

자신의 약점과 단점들은 되도록이면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자식의 기억 속 나와 내 기억 속 나는 다르다.

이 작품에서의 기억 역시 이런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한 사람의 기억을 온전히 전수할 수 있지만, 원하는 부분만 똑 떼어 전수할 수가 없다.

결국 나의 약점과 단점도 모조리 전수되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부모님의 모습도 그렇다.

그땐 그렇게 싫었던 모습이 나이가 들면 이해가 될 때도 있고, 어릴 땐 좋았던 부분이 크고 나면 부담스럽거나 귀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을 알게 모르게 모두 전수받아 우리는 또 살아가고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것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에둘러 쓰긴 했지만 550페이지에 이르는 짧지 않은 작품임에도 역시 흡입력도 있고 재미도 충분했다.

오랜만에 작가의 작품 중 누구도 살해되지 않은 작품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현실과 소소한 판타지가 만나 있으면서 재미와 감동 포인트가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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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감정
김용태 지음 / 미류책방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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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보다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면 인간관계가 달라진다'라고 적힌 부제가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분노나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을 때 참으라고 한다거나 그저 울지 말라고 다그치는 등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동을 하기가 쉽다.

그러다 책 부제를 읽고 문뜩 '내가 너무 아이의 감정을 억압하며 키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자신부터가 감정 표현에 그리 익숙하지도 않기도 하고 말이다.

저자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삶에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묵혀둔 감정은 우리의 정신건강은 물론이고 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감정은 느끼고 표현되지 않으면 절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쌓여 호시탐탐 밖으로 나올 기회를 엿보거나,

제발 자기를 알아 달라고 떼를 쓴다.

(pg 5)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슬픔, 분노, 두려움,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표면 감정이며 그 이면에는 수치심이라는 근원적인 감정이 숨어있다고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나오게 마련인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촉발한 이유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근원적인 이유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의 무의식 속에 있는 근원적인 어떤 것이 타인의 언행으로 인해 건드려지면 부정적인 감정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똑같은 언행이라 하더라도 내 기분 상태에 따라 화가 날 때도 있고, 그냥 넘어가질 때도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감정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 나고 분노한 감정은 결국 내 것이다.

상대방의 자극에 의해서 화가 난 것이긴 하지만

상대는 자극을 했을 뿐 화가 난 것은 나 때문이다.

내 안의 분노, 열등감, 외로움 등이 건드려지면서 화가 난다.

(pg 63)

상대방이 자극한 강도가 세면 셀수록 그것은 나의 중심에 가까운 것이 건드려진 것이다.

그래서 나를 열받게 한 그 상대방에게 "당신 덕분에 내가 어떤 감정에

짓눌리고 있는지 알게 됐다"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pg 67)

부정적인 감정이 대체로 인간관계에서 나온다고 해서 타인과 교류하지 않으면서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진짜 고립되어 생활한다 해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다. (히키코모리들이 마냥 행복할 것이라 생각되지 않듯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올바르게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담을 하며 개발한 7단계의 감정 조절 훈련을 제안한다.

물론 그 모든 단계를 개인이 혼자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첫 번째 단계인 '느낌 알아차리기'와 2단계인 '느낌 표현하기'까지만 연습해도 자신의 감정을 보다 수월하게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짜증이 난다', '화가 난다' 등 단순하게 생각하는 감정이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진짜 무엇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행위 만으로도 그 감정에 휘둘리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모두 단독자들이다.

서로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두 단독자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pg 102-103)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내가 지금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다 보니 아이에게 앞으로 부정적인 감정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하되 감정에 지배되지 않도록 잘 들어주고 감싸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워낙 화가 많은 사람인지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느끼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지만 사람이 살면서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현명한 길인 것 같다.

어떤 감정을 느끼든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부정적 감정이든 긍정적 감정이든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감정에 얽매여 왜곡된 삶을 살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어떤 감정이든 환영해 주고 돌봐 줘야 한다.

(pg 241)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사는 한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감정을 경험하는 것과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감정들이 주는

메시지들을 잘 읽어야 한다.

(pg 266)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금기시되는 사회다 보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의 수도 점점 늘어나는 게 아닐까.

나 자신부터도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직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보일 때에도 책을 읽기 전보다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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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자본주의 세대 - 88만원 세대는 어쩌다 영끌 세대가 되었는가?
고재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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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책 내용을 너무나 잘 요약하고 있는 책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저자가 쓴 책이어서 공감대가 클 것 같았다.

현 정권을 탄생하게 한 배경이자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제1관심사는 역시나 부동산이다.

주거비가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는 소식은 언론에서도 지겹게 듣을 정도로 집값이 개인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따라서 '집 혹은 집값의 상당 부분을 부모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가'는 이제 신분을 가르는 질문이 되었다.

어지간히 이름이 알려진 직장을 가졌다고 해도, 전문직에 종사한다 치더라도 노동소득만으로 집을 장만해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부동산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자료도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를 예로 들면 82년생을 기점으로 '자가'에 사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집값은 워낙 고액이라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러니 주거 사다리를 자산 증식의 사다리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 중략 -

지금은 다단계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일을 하는 서른도 사다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이다.

노동으로 모은 종잣돈만으로는 계층 이동에 성공할 수 없다.

바야흐로 세습 자본주의의 막이 올랐다.

(pg 28)

제목에 '세습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있어서 경제 이론들이 난무하는 책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 책은 사실 86년생 저자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세대 담론을 나열한 에세이집에 가깝다.

그 핵심에는 언론에서 MZ세대라며 80년 이후 출생자들을 손쉽게 묶어 통칭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가만히 나눠보면 그 특징과 성장 배경, 처한 환경이 꽤 이질적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같은 MZ세대 안에서도 무겁게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규모로 나눌 수도, 가볍게는 슬램덩크를 만화로 먼저 본 세대와 애니를 먼저 본 세대로 나눌 수도 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 응원이 가능했던 세대와 그렇지 못했던 세대로 나눌 수도 있겠다.

물론 세대를 세세하게 나누는 행위 자체가 사회학적으로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세대가 가진 어려움과 고통을 이해하려면 우선 세대를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저자는 나와 같은 80년대생으로서 80년대생이 어떤 삶을 살아와야 했는지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입시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 그 대학을 나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는 삶.

누구는 영끌이라도 강남권에 입성이 가능하고 누구는 끌어모을 영혼조차 없는 삶.

국가는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 중략 -

구조와 환경, 정책이 제공하는 경제적 사다리 따위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수저가 아닌 사람이 기댈 언덕은 없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일그러진다.

우리는 뉴밀레니엄의 삶에서 그걸 배웠다.

(pg 87)

언론인이 쓴 에세이 같은 느낌의 책인지라 인터뷰도 많이 담겨 있다.

비중이 컸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전 직장을 졸업한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윤석열의 지지자로 변화된 후 가진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조희연의 제자, 윤석열의 지지자'라는 제목이 붙은 이 인터뷰는 현 민주당의 씁쓸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정치 성향상 이해가 가는 행보는 아니다.)

이쯤에서 책을 읽을 사람들 중 혹시 오해할까 하는 말이지만 딱히 특정 정당을 옹호하기 위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해도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는 않을 내가 읽기에도 그리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혹 정치 성향이 다르더라도 걱정 말길 바란다.

게다가 저자가 대학 시절 읽었던 책들이 소개되는데 이 책들의 면모만 보더라도 저자가 현 진보 세력에 대해 상당한 애증의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래저래 지금 80년대생들이 꽤나 힘들게 산다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징징대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진보와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보수로는 설명하기 힘든 지금 30대의 복합적인 정치 성향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도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현재 30대가 보이는 진보적 무당파 성향의 기원이

2000년대 대학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비운동권을 지지했던 망탈리테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본다.

이들은 대학 시절부터 북한 문제에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보수적이었으나,

비정규직 등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 성향이 강했으며,

복지에 관해선 양대 정당의 노선보다도 전향적인 인식을 가졌다.

또 민주화의 성취를 높게 평가했던 세대였다.

(pg 185)

노동시장에서 우리 처지가 비참해졌다고 소리내어 외치면서도

그 노동시장의 한편에 자리한 현실은 외면했다.

세상이 '88만원 세대'의 삶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지금 88만 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는 눈을 감았다.

(pg 299)

사실 대한민국에서 불평등을 논한다는 것은 이젠 식상할 정도로 너무 당연한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대론 역시 그리 신선한 주제는 아닌지라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었지만 확실히 같은 80년대생이어서 그런지 저자의 개인적인 삶의 궤적이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고 책 내용 중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다.

세대와 세대 간에는 또렷한 경계선이 있다.

'부장 세대'는 아랫세대를 칭찬할 때 이렇게 말한다.

"그 친구, 참 괜찮더라. 요즘 애들 같지 않아."

요즘 애들 같지 않아야 인사고과를 잘 받는다.

(pg 167)

공감은 공감이고 지금 젊은 세대가 증여 없이 자신의 삶을 일구는 것이 어려운 것은 기정사실이다.

뾰족한 대책이 있을법한 주제도 아닌지라 읽고 나서 방향성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 젊은 세대에 다시금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짜 이대로는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가 될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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