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자본주의 세대 - 88만원 세대는 어쩌다 영끌 세대가 되었는가?
고재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책 내용을 너무나 잘 요약하고 있는 책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저자가 쓴 책이어서 공감대가 클 것 같았다.

현 정권을 탄생하게 한 배경이자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제1관심사는 역시나 부동산이다.

주거비가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는 소식은 언론에서도 지겹게 듣을 정도로 집값이 개인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따라서 '집 혹은 집값의 상당 부분을 부모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가'는 이제 신분을 가르는 질문이 되었다.

어지간히 이름이 알려진 직장을 가졌다고 해도, 전문직에 종사한다 치더라도 노동소득만으로 집을 장만해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부동산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자료도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를 예로 들면 82년생을 기점으로 '자가'에 사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집값은 워낙 고액이라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러니 주거 사다리를 자산 증식의 사다리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 중략 -

지금은 다단계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일을 하는 서른도 사다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이다.

노동으로 모은 종잣돈만으로는 계층 이동에 성공할 수 없다.

바야흐로 세습 자본주의의 막이 올랐다.

(pg 28)

제목에 '세습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있어서 경제 이론들이 난무하는 책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 책은 사실 86년생 저자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세대 담론을 나열한 에세이집에 가깝다.

그 핵심에는 언론에서 MZ세대라며 80년 이후 출생자들을 손쉽게 묶어 통칭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가만히 나눠보면 그 특징과 성장 배경, 처한 환경이 꽤 이질적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같은 MZ세대 안에서도 무겁게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규모로 나눌 수도, 가볍게는 슬램덩크를 만화로 먼저 본 세대와 애니를 먼저 본 세대로 나눌 수도 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 응원이 가능했던 세대와 그렇지 못했던 세대로 나눌 수도 있겠다.

물론 세대를 세세하게 나누는 행위 자체가 사회학적으로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세대가 가진 어려움과 고통을 이해하려면 우선 세대를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저자는 나와 같은 80년대생으로서 80년대생이 어떤 삶을 살아와야 했는지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입시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 그 대학을 나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는 삶.

누구는 영끌이라도 강남권에 입성이 가능하고 누구는 끌어모을 영혼조차 없는 삶.

국가는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 중략 -

구조와 환경, 정책이 제공하는 경제적 사다리 따위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수저가 아닌 사람이 기댈 언덕은 없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일그러진다.

우리는 뉴밀레니엄의 삶에서 그걸 배웠다.

(pg 87)

언론인이 쓴 에세이 같은 느낌의 책인지라 인터뷰도 많이 담겨 있다.

비중이 컸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전 직장을 졸업한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윤석열의 지지자로 변화된 후 가진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조희연의 제자, 윤석열의 지지자'라는 제목이 붙은 이 인터뷰는 현 민주당의 씁쓸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정치 성향상 이해가 가는 행보는 아니다.)

이쯤에서 책을 읽을 사람들 중 혹시 오해할까 하는 말이지만 딱히 특정 정당을 옹호하기 위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해도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는 않을 내가 읽기에도 그리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혹 정치 성향이 다르더라도 걱정 말길 바란다.

게다가 저자가 대학 시절 읽었던 책들이 소개되는데 이 책들의 면모만 보더라도 저자가 현 진보 세력에 대해 상당한 애증의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래저래 지금 80년대생들이 꽤나 힘들게 산다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징징대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진보와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보수로는 설명하기 힘든 지금 30대의 복합적인 정치 성향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도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현재 30대가 보이는 진보적 무당파 성향의 기원이

2000년대 대학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비운동권을 지지했던 망탈리테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본다.

이들은 대학 시절부터 북한 문제에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보수적이었으나,

비정규직 등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 성향이 강했으며,

복지에 관해선 양대 정당의 노선보다도 전향적인 인식을 가졌다.

또 민주화의 성취를 높게 평가했던 세대였다.

(pg 185)

노동시장에서 우리 처지가 비참해졌다고 소리내어 외치면서도

그 노동시장의 한편에 자리한 현실은 외면했다.

세상이 '88만원 세대'의 삶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지금 88만 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는 눈을 감았다.

(pg 299)

사실 대한민국에서 불평등을 논한다는 것은 이젠 식상할 정도로 너무 당연한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대론 역시 그리 신선한 주제는 아닌지라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었지만 확실히 같은 80년대생이어서 그런지 저자의 개인적인 삶의 궤적이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고 책 내용 중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다.

세대와 세대 간에는 또렷한 경계선이 있다.

'부장 세대'는 아랫세대를 칭찬할 때 이렇게 말한다.

"그 친구, 참 괜찮더라. 요즘 애들 같지 않아."

요즘 애들 같지 않아야 인사고과를 잘 받는다.

(pg 167)

공감은 공감이고 지금 젊은 세대가 증여 없이 자신의 삶을 일구는 것이 어려운 것은 기정사실이다.

뾰족한 대책이 있을법한 주제도 아닌지라 읽고 나서 방향성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 젊은 세대에 다시금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짜 이대로는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가 될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