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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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정답을 찾아 살아가지만 진짜 삶은 질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pg 301)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지도 벌써 5년차에 접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내가 대학에 갔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직 기억력이 감퇴할 나이는 아니니 분명 별 이유가 없었음에 틀림없다.

웃기지만 현재 월급을 받고 있는 곳도 대학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대학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최근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하는데 방송을 보지 못한 터라 흥미롭게 읽어갔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사회인이 보기에도 지금 대학은 내가 다니던 시절의 대학과 느낌이 다르다.

우리때도 분명 1학년부터 도서관에 쳐박혀 토익을 공부하던 이들이 있었고

3, 4학년이 되면 너도나도 CPA 준비를 한다며 고시생 코스프레를 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우리 때는 혼밥(혼자 먹는 밥)과 독강(혼자 듣는 강의)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1학년부터 OT조를 중심으로 같이 수강신청을 하고 비교과 활동이었던 학회 활동도 나름 열심히 했었다.

지금은 학생들 사이에서 혼밥과 독강이 뚜렷한 추세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끔 학생회나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날이 갈수록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학생들이 학점이나 스펙에 관계 없는 비교과 활동에는 점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 활동이 대학 생활의 전부였던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 관계까지 포기해 가며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에서 시작한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는 대인 관계에 이상이 있어서 혼자 지내는 사람이 아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스로 한시적으로 혼자이기를 택한 사람들이다. (pg 52)


이미 많은 대학생들에게 대학은 그저 사회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더 좋은 간판을 따기 위해 편입 준비를 하고 반수를 하는 학생들도 늘어가는 추세다.

하지만 스스로 소외된 삶을 지속하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기에 이른다.

이는 분명 취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고립을 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느 소속 집단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하고,

교감이나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생활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혼자 있는 편안함이 습관이 되어 불편함을 못 느끼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pg 52)



시간은 없고 취업은 해야겠고...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의 2장에서는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연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대학교수, 기업 인사담당자, 헤드헌터 등의 전문가들을 붙여 멘토링을 진행한다.


다양한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대학생들은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재'란 무엇이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매우 편협했다.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재란 자기 삶의 국면에서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pg 177)


위와 같은 문구는 얼핏 그럴듯 해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상당히 공허한 말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성장해 간다고 한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사회'라고 말하는 기업에서 인정해주거나 창업으로 고객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말짱 헛짓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어떤 사람이 인재인가 아닌가는 타인의 평가에 기초한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참한 일이다.

어떤 사람의 노력이라는 것도 결국 타인의 인정이 없이는 아무 가치도 지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진행한 멘토링이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지 진지하게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라는 것도 결국에는 프로그램에서 인정한 '전문가'들의 시각에서나 그런 것이다.

오히려 어떤 인사담당자들에게는 변화 전의 모습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겉모습과 내면을 일치시키기 위한 연습 같은 건 없다.

아기가 배고프면 울고, 기분 좋으면 웃듯이 사람은 본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다.

오히려 내면과 다른 겉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까지 연습해 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필요한 건 자신의 본래 모습에 충실하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 것이다. (pg 127)


인재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인재로 타고났다는 것이다.

단지 그 인재의 모습에 무엇을 담아낼지는 각자의 몫이다. (pg 193)


본래 자신의 모습에 충실하고자 했는데 사회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작 각자의 몫에 맡기고자 한다는 결론이 못내 아쉬웠다.



마지막 3장에서는 질문을 빼앗긴 우리들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사실 나도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질문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나마도 내가 질문이라는 것을 해볼 수 있었던 것은 학회 생활을 했었기 때문이다.

동아리조차 하지 않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질문은 매우 낯선 것이기 마련일 것이다.


그도 당연한 것이 학교륻 들어가면 점차 선생님이라는 어른이 말씀하시는 데 딴 소리를 하는 행동 자체가 제지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중략-

오히려 생각이 많을수록 틀릴 수 있다는 걸 배운다. (pg 217)


이런 상황에 어찌 질문을 하는 학생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일방적인 강의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수업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게 되는데 거기에 누군가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그 지루한 수업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질문한 학생은 자연히 다른 아이들에게 찍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조용한 독서실에 쳐박히는 것보다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쌍방으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공부법이라 말한다.

실제로 그런 공부법을 장려하는 대학의 사례도 등장한다.


이러한 공부법을 통해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메타 인지이다.


메타 인지는 바로 나의 사고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자 내가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구분하고 파악하는 능력이다.

(pg 259)



여기에서 교육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도출된다.

제공하는 교육으로 학생들의 메타 인지를 신장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배움이란 본연의 가치가 중심에 서고, 여기에 시대의 특성과 현실적 필요성이 균형있게 맞물릴 때

대학은 지식 사회의 심장으로서 세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pg 229)


얼핏 보면 굉장히 일반적이고 당연한 말 같지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배움이라는 가치가 교실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다가 시대적 특성과 현실적 필요성까지 만족시키려면

어지간한 물적, 인적 자원으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교육기관이라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물론 책 자체가  TV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지만 책을 구성하고 있는 3개 챕터의 연관성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마치 세 개의 책을 한 권으로 묶어둔 느낌이랄까.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있었으면 했지만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룬 대한 비중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게다가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학생들에게 질문을 되찾아주는 일은 대학 보다는 중, 고등학교에서 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면 이미 사회화가 너무 충분히 진행되어 이들을 변화시키려면 상당히 큰 언러닝 과정이 수반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이러한 공부법을 접하게 해주는 것이 효과면에서 더 탁월할 것이다.


아쉬운 부분을 다소 길게 쓴 느낌이지만, 그만큼 고민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박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서술도 알아보기 쉬우면서도 문체가 깔끔해 언제 읽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교육기관 종사자나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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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이룸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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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지식은 보편적이며 인간이 고대부터 쌓아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보물이다.

이 세상을 살며 인류의 반짝이는 보석을 향유하는 것이 독학이다. (pg 199) 




벌써 마지막 포스팅을 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두 개의 큰 카테고리로 블로그를 운영 중인데 둘 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접하게 된 책이다.

제목으로 딱 두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 두 글자가 마음에 확 꽃혔다.

뭔가 심오한 가르침을 기대한 바도 없지는 않지만 일단 200페이지 정도로 두께가 얇고 글씨가 커서 부담없이 넘겨보게 되었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독학.

사실 학창 시절에도 수업이나 학원에 의존해본 기억이 없던 터라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공부도 사실은 '학습'에 지나지 않음을 이 책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외부에서 정해진 기준에 맞추어 일정 수준 이상을 도달하기 위한 공부는 '학습'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학습인 이유는 그 목적이 교과서나 선생님을 잘 흉내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역사 공부를 교과서와 문제집에 나오는 바 대로 암기를 해서 어떤 시험 문제를 잘 맞출 수 있으면 이는 좋은 학습이 된다.

반대로 내가 고려시대를 공부했는데 이번 시험 범위가 조선시대라면 그 공부는 좋은 학습은 되지 못한다. 

이런 학습은 단순한 정보 습득에 유용하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지혜가 쌓이는 공부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지식이 아니다. 단지 사항일 뿐이다. 자신이 정말 궁금해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다. (pg 37) 


하지만 스스로가 정말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공부, 이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공부는 독학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그 '궁금증'이라는 것을 갖는 게 중요하다.

특히 나도 많이 느끼는 바지만 궁금한게 없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뭐든지 멍하니 바라보며 세상에 있는 것 일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 의문은 생기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에 '왜'라는 의문을 갖지 않으면 지식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어른들이 이 신선한 정신을 잃어버렸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라는 일종의 체념과 나태 속에 푹 잠겨 상습적인 음주와 하찮은 취미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pg 38-39) 


뜨끔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저 문구를 보는 순간 다음 페이지로 잘 넘어가 지지 않았다.

난 언제부터 그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된걸까.


생각해보면 '왜 이 세상은 이렇게 불평등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생활 중 학회 활동을 시작했었고 지금까지도 관련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나 나 나름대로의 생각은 많이 정리된 듯 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특히나 일을 시작하고서부터는 새로운 의문 자체를 갖지 않게 된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쯤이었는지조차도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특별히 엄청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봐야 월급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내가 버는 돈은 딴 사람 주머니로 들어가는데

왜 그리도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란 인생 경험을 쌓고 사물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곧 보통의 어른은 그저 나이를 먹은 인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어른은 멋있어 보이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의문을 구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pg 33)


난 그저 나이를 먹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런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난건 어찌보면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다시금 스스로 공부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책과의 인연에서도 우연은 없는 것 같다.)


굳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이 있고 이를 알고 싶다는 노력 그 자체가 공부고 수련이다.


이 책에서는 지식은 늘 유효하다고 말한다.

물론 지식 그 자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일상 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 지식을 얻게 된 과정 자체가 수련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책을 읽을 때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독학의 핵심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용을 모두 알거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책은 나의 지적 능력 향상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견해가 어떤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런 견해에 이르렀는가가 문제다.

이를 확인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 중략 -

그리고 이는 본인 의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손을 잡고 가르쳐줄 수 없는 독학의 영역에서만 일어난다. (pg 175)


이 부분도 곱씹어 볼 문제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 내가 진심으로 이 저자의 논리 전개 과정을 보고 싶은 것인지,

단순히 유명인이 어떤 책에서 어떤 말을 했었는지를 아는척하고 싶을 뿐인지에 따라 독서의 수준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후자의 목적으로 책을 읽었던 경험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은 나의 지적 허세를 위해 읽어왔을 뿐이다.

그러니 그 책의 내용이 나를 성장시킬 지혜로 작용할 수 없었음이 당연하다.


이 책에서는 독학을 할 때의 방법론적인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특히 책을 볼 때 어학사전과 백과사전, 지도를 옆에 두고 독서를 시작할 것을 권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에 나오는 모든 사항을 내가 알고 있을리 없다.

물론 대체로는 전후 문맥을 통해 대충 어떤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는 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 단어나 개념을 한번만 더 찾아본다면 그 내용이 훨씬 더 머리 속에 잘 남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내용을 상상할 수 없다.

상상에 의한 영상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것으로 멍하니 스쳐지나갈 뿐이다. (pg 67)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한산도대첩을 공부하는 중인데 한산도가 어디쯤인지도 모른다면 당연히 상상에 의한 영상도 생겨날 수 없는 것과 같다.

특히 역사나 과학 관련 공부를 할 때에는 전후 문맥만으로는 알기 힘든 것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공부법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분량은 짧지만, 저자가 오랜 기간 스스로 독서를 함에 있어서 갖고 있던 팁들까지 잘 제시해주고 있어서 정리할 내용이 많았다.

특히 아래와 같은 팁들은 이후에 독서 생활을 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1.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일부러 마련하기 보다는 시간이 남는다 싶으면 책을 읽을 것

2. 해설서에 의존하지 말고 원문을 그대로 읽는 습관을 들일 것

3. 꼼꼼히 공부하면서 볼 책들은 반드시 사서 볼 것

4. 책에 밑줄을 일관성있게 쳐 둘 것, 관련 내용을 메모할 것



이런 저런 핑계로 책을 잡기가 영 힘들었던 요즘 적절한 채찍이 되어주는 책을 만난 기분이다.

특히 가르치려는 자세나 현학적인 태도로 기술되어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다르다.

매일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하다 못해 오늘 본 드라마의 내용은 어제는 몰랐던 것이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신을 어떻게 바꿀지는 온전히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관련된 문구 하나를 인용함으로써 글을 마치고자 한다.

 

독서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면 세계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세계관이 바뀐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자신이라는 변모로 이어진다. ​(pg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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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인간 -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제대로 모르는 존재
황상민 지음 / 푸른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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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고민이나 안타까움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느끼는 문제거든요. -중략-

과거는 과거만큼 영향을 미칠 뿐 현재 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은 아니에요. (pg 57)

 

 

한참 혈액형을 통한 성격 구분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도 믿지 않지만 모임 자리에서 '넌 O형이라 그래', '넌 A형 같아' 따위의 말들을 우스개소리로라도 이따금 하고는 한다.

이러한 성격 분류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전 직장에서의 직업 때문에 다양한 ​심리 분류 툴들을 접할 수 있었다.

가장 흔한 MBTI부터 이전 회사가 가지고 있던 소셜스타일, 이와 유사한 DISC, 애니어그램 등등 다양한 툴들을 접했는데,

모두가 나름의 신빙성과 현업적용성들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툴들이 나름의 장단점들을 지니고 있어서 오히려 혼란스러운 면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WPI라고 하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툴을 활용해 인간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황상민 교수는 기존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MBTI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조사 방법임을 지적하며.

WPI가 한국인에게 적합하게 개발된 툴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WPI 분류법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리얼리스트, 로멘티스트, 휴머니스트, 아이디얼리스트, 에이전트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물론 사람들은 대부분 다섯가지의 성격 모두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정 성향이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성격이 된다.

각각의 성향들은 관계, 믿음, 규범, 자아, 향유라는 다섯 개의 중시하는 가치가 있고 각 성향에 따라 이 가치들도 다르게 느끼게 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WPI 진단을 하려면 유료로 진행해야 하고, 책만 가지고는 약식의 검사라도 받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성향 별 특징들을 읽다가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성향을 유추해 내야 한다.

책에 의하면 나는 아이디얼리스트와 에이전트 성향이 높게 나올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인간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기본 생각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모든 툴들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경향'이 있을 뿐"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경향'은 모든 인간들이 다들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그때끄때 선호하는, 혹은 보여지는 경향이 다를 뿐이다.

내가 아무리 어떤 검사에서 특정 스타일이 강하게 나오더라도 매 순간 그 스타일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최근에 읽었던 '이성의 동물'이라는 책이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는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책만 가지고는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고,

책도 본인이 워크샵을 진행했던 흐름 그대로를 옮겨 두어서 보기가 썩 편하지는 않다.

저자의 네임벨류나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 안에 내용이 생각보다 빈약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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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3 2 - 간밤에 변사체가 되지 않았는지 체크해 줄 사람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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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그래도, 앞으로의 길이 평탄할지, 울퉁불퉁할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같이 가 줄 친구를 구해서 다행이고

혹 바싹 마른 사막같이 험난한 길을 가게 되더라도 생각 없이 웃으며 꽃구경도 하며 희망도 좀 가져 보는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pg 343)

 

 

아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만화인지라 나도 덕분에 접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만화를 보고 서평을 남기기는 또 처음이라 신기한 느낌도 든다.

 

 

아내와 나는 취향이 상당히 다른 편이다.

하다못해 만화를 봐도 아내는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면 잘 보지 않는다.

그에 반해 나는 만화 자체를 잘 즐겨보지 않을 뿐더러 보더라도 DC나 마블 히어로들을 좋아하고

'20세기 소년'이나 '기생수'처럼 정말 유명해서 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작품들만 몇 편 보았을 뿐이다.

 

 

이런 우리에게도 공통점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낢이 사는 이야기'이다.

웹툰으로 중간중간 가끔 보기는 했었는데 이렇게 두툼한 책으로 한번에 쭉 보기는 처음이었다.

웹툰이 아무리 대중화가 되었어도 역시 만화는 책으로 들고 침대에서 뒹굴며 보는 게 최고다.

요즘 날씨도 때마침 쌀쌀해져서 이불 푹 덮어쓰고 재미나게 봤다.

'생활툰'의 재미라 하면 역시 공감의 힘일텐데, 이번 편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번 2편에서는 낢이 결혼준비를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나도 결혼한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결혼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공감가는 것이 많았다.

 

 

 

특히 '간밤에 변사체가 되지 않았는지 체크해 줄 사람'이라는 부제도 공감이 갔다.

자취를 하면서 느꼈던 건데, 간밤에 술을 잔뜩먹고 아침에 죽음의 숙취를 맛볼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러다 죽으면 월세 받으러 오는 집주인이 내 시체를 발견하게 되겠지.'

지금은 아내가 있으니 그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결혼이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도 간소하게 한다고 했는데 어른의 시각은 또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우리 부모님은 안그러셔'라고 자신했던 부분도 막상 결혼하고 나면 달라지는 것도 많다.

30년간 혼자 살 때는 기대도 안하시던 양반들이 결혼하고 나면 별걸 다 기대하게 되는 모양이다.

 

 

뭐 아직 부부로 산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상대방 때문에 싸울 일은 극히 없다.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을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서로가 뭘 싫어하는지 잘 알아서 서로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서로의 가족들 때문에는 종종 충돌이 생길 때가 많다.

도무지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도 생긴다.

살아온 환경과 배경이 다르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내 상식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제가 결혼이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났다.

요즘 추세를 생각하면 너무 빨리 결혼했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결혼하기를 잘했구나 싶을 때가 훨씬 많다.

물론 만화라서 각색된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참 재미나게 산다 싶었다.

보고 나서야 이게 시즌3였다는 걸 알았다.

생활툰을 시즌3까지 그리고도 재미있을 수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내가 웹툰작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책 자체도 너무 재밌었지만 아내에게는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작은 선물이 된 것 같아서 마음도 뿌듯했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웹툰을 그리게 되어 저자가 위기 의식을 느끼는 날이 오게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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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저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는 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있다면 거기에 가서 어떻게든 살아갈 생각을 하면 되고, 없다면 무가 되어 소멸되면 그뿐이다.
뭐가 어찌되었든 지금 이렇게 이 세상에 살아 존재하는 한,
당신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지닌 능력을 적극 활용해서 살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졌음은 확실하다. (pg 207)

 

 

마루야마 겐지의 책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이후 두 번째로 접하게 되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서평: http://blog.naver.com/qhrgkrtnsgud/10181610300 / 이하 '인생'으로 표기)

이전에 본 책의 강렬한 인상 덕분에 이번 책도 꽤 기대가 컸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이전 책에서도 그는 일관되게 온전한 '자립'의 삶을 추구할 것을 강렬한 어조로 주장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어떠한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삶.

야생동물들은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긴장을 늦추면 천적에게 잡아 먹히게 마련이다.

저자는 그러한 야생동물의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살아남으려고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진정한 '젊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젊음'이란 단순히 나이가 어림을 뜻하지 않는다.

노인이어도 눈빛에 총기를 담고 자신의 삶을 자립적으로 사는 사람은 '젊음'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리 어려도 가축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자는 '젊음'을 빼앗긴 산송장이라고 말한다.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을만큼 저자는 자립의 삶이 곧 젊음임을 강조한다.

그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부모와 국가 등 이전 책에서도 지적했던 부분을 이번 책에서는 더욱 실랄하게 비판한다.

자신의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엄마, 아내 등쌀에 자식에게 큰 소리 한번 못치는 아빠를 맹비난한다.

국가라는 것도 결국은 권력을 가진 소수의 것일 뿐이니 놀아나지 말라며 호통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주인의식'을 강조하지만 정작 주인은 따로 있으니 노예 생활따위 당장 집어치우라 말한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신이다.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자신뿐이다. 그것은 철칙이다. (pg 51)

 

사실 '인생'과 논조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인생'을 읽은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은 읽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다만 문장의 어조가 '인생'보다 훨씬 강하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다소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인생'을 보고난 뒤에는 두 번도 생각 안하고 바로 별 다섯개를 찍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다소 망설여졌다.

특히 가족의 역할을 너무 일반화시켜 말하는 듯한 부분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다소 불편함을 느끼게했다.

하긴 저자가 아래와 같이 일반 대중 전체를 염두해두고 쓴 책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기는 했다.

이런 나날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런 생활을 진정 바랐던 것은 아니다, 이런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그런 후회가 가슴을 스칠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들면서 깊은 한숨이 나오고, 기분 전환 정도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아

오늘 저녁의 반주는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내일을 적극적으로 맞이할 힘은 점차 쇠해 가는, 그런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pg 88)

사실 내 자신은 누구보다도 윗 구절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내 자신을 호되게 나무라는 책이 썩 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 사는 삶이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은 여실히 느꼈다.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타인을 위해 죽어라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건 내 인생이다,

어느 누가 되었든 개입할 수 없다, 내 일은 내가 결정하겠다, 그것이야말로 자유의 증거이다, 제 아무리 직장에 충성하고 심혈을 쏟아 분투해 본들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한들 정년이 되면 대형 쓰레기처럼 미련없이 내던져질 뿐이다. (pg73)

어릴 적 꿈이 직장인이었다는 한심한 인간이었으니 지금 한심한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 꿈을 이루고 나서야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분투, 혼란, 내일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능력을 일깨우고,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하게 하며,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인간의 모습으로, 아 내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당신을 변모시킬 것이다. (pg 63)

 

 

난 저렇게 살 자신이 없다.

부럽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나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나의 내일이 확실한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어중간하게 불안한 내일과 어중간하게 안정적인 내일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결국 '안정적임'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부합하려면 확실하게 안정적이지 않으면 안될테니

결국 불안하게 살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다보니 친구들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이며 예전 이야기나 실실 하는게 낙이 되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이제 서른이 예전 이야기랄만한게 어디 있겠는가.

직장에서도 나이 50도 안 된 사람들이 나이 먹었네 하며 옛날 이야기나 실실 해대는게 짜증인데 내 자신도 그러고 있다.

 

중장년층이라면 몰라도, 아직은 폭발적인 젊음을 누려야 하는 청년층까지 하나같이 과거로 눈을 돌리고 나약한 치유에 젖어들려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치유를 위한 치유, 감동을 위한 감동을 밤낮으로 추구하고, 돈을 내면서까지 거짓 치유와 엉터리 감동을

얻으려 애쓰는 자신에게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pg 161)

아직 과거를 회상할 때가 아니다.

아니, 평생 과거를 회상할 때는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살아갈 날이 하루라도 남아 있다면 살아갈 날을 생각해야지 과거따위 회상해서 무엇하겠는가.

국가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직장이 있어 당신이, 가정이 있어 당신이, 친구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이 있어 있는 것이다. (pg 76)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을 보고난 후에는 '에라이 인생 뭐 있나 한번 해보는거지'싶은 뭔가 모를 패기가 생겼었는데

이 책을 보고나니 뭔가 모를 씁쓸함이 올라온다.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맥주 한잔이 너무도 생각난다.

하지만 아래 문구가 자꾸 떠올라서 한잔 하기도 뭣하다.

 

당신은 술을 퍼마시고 이성을 잃어버리고 싶어 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 이성의 소유자인가. (pg 142)

저자의 주장에 100%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분명 있는 것 같다.

특히 사소하다면 사소한 술, 담배 등 정신을 나약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립을 시작하라는 말은 호소력이 있었다.

지금 금연 1년째인데 술은 도무지 끊을수가 없다.

물론 사회생활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술이 너무도 좋다.

없으면 정말 하루하루를 못견딜 것 같다.

담배 없는 삶이 익숙해졌으니 이제 술 없이 사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할텐데 큰일이다.

오늘 밤에는 쉽사리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남긴 인류에 대한 생각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간의 기괴함이 재미있고, 인간이 야생동물의 한 종류치고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거기에서 쉴 새 없이 생명의 불꽃이 피어오른다는 점이다.

인간이 추악한 만큼 그 불꽃은 아름답니다. (pg 233)

 

언젠가는 나에게도 인간 세상이 재밌다고 느낄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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