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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빈곤의 인류학
조문영 엮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각기 다른 위치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연대란 완전한 일치와 공감이라기보다는 타인과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차이를 함께 마주하며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g 174)
간만에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을 가진 책을 만났다.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가난'이라는 단어는 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부족한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는 '정상적인' 삶의 노선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돌이킬 수 없는 가난의 굴레로 떨어지게 된다는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건국이래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지금의 젊은 세대.
그들이 보는 대한민국의 가난은 어떤 모습일까?
부모 세대가 습관처럼 강조해온 안정된 정규직과 성공 신화를 버릴 수도,
현실화시킬 수도 없는 21세기 저성장 한국 사회에서 제 처지의 비참함을 호소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학교든 가족이든 경쟁은 이제부터라고 다그친다. -중략-
정체불명의 불안은 미세먼지를 타고 각자의 몸 깊숙이 파고든다.
일상에선 모임을 최소화하고, 얼굴을 맞대지 않는 사이버공간에선 극단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조롱하고 압살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고, 억울하다. (pg 9)
이 책은 한 대학교수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빈곤 관련 활동가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낸 책이다.
'빈곤 관련'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경제 규모 11위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빈곤'이라는 키워드로만은 활동을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노숙자, 여성 등 다양한 키워드를 가지고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
최근에 고시원 화재 사건이 있었기 때문인지, 주거복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창문이 없는 방에 묶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월 몇 만원에 지나지 않는 '창문비'는 그들의 생과 사를 갈라놓을 정도로 큰 차이였다는 점과
실제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아닌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도심 한복판에도 곳곳에 빈곤층이 숨어 있으며 우리가 그들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지도 벌써 10년. 그 때의 충격은 이미 잊혀졌지만 우리 사회의 주거복지는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용산참사는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이익을 위해 기획된 '재개발 사업'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배제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든 누릴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믿어왔던 공간이 실질적으로는 '부자'에게만 허용되고,
'빈자'에게는 일체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 결과가 바로 용산참사이기 때문이다. (pg 49)
과연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라 말할 수 있는가?
직관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부자에게 허용되는 자유와 빈자에게 허용되는 자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양 극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므로 지금도 유효하다 하겠지만,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복지 제도와 정책들이 시행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개선 효과를 낸 부분도 분명 많을 것이다 .
이러한 성과들이 모두 정부에서 알아서 해준 것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정부에게 목소리를 내고, 싸우고, 부딪히고, 설득해서 얻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이 책에서 만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빈곤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다.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장애인이 아니면서 장애인 운동을 하는 활동가, 노숙자가 아니면서 노숙자 운동을 하는 활동가 등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 활동가 자신도 빈곤과 아주 동떨어진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는 활동가들도 많았다.
왜 그들은 더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김윤영 활동가는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의 70퍼센트는 분노라고 말했다.
'이놈의 세상 너무 나쁘기 때문에 가만두면 안 돼!"라든지 "너무 화가 나고, 너무 말이 안 된다!"는 식의 분노가
스스로를 계속 활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동력은 활동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고 헀다.
함께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pg 72)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모든 사람들은 불합리한 뉴스를 보며 분노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쉽게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저마다의 일상으로 나아간다.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빈곤 없는 세상'도 비슷해요. 빈곤이 철폐된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긍정형으로 문장을 만들어 이야기하기는 너무 어렵고,
"그것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고 이야기하면서 과정을 통해 다가가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최소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죽음을 결심하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건강 관련 설문조사에서 암이 발생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걱정되냐고 물어보면,
'죽을까 봐 걱정된다.'는 대답보다 '가족들이 가난에 빠질까 봐 걱정된다.'는 대답이 더 높게 나온다고 해요.
적어도 그런 상황은 잘못되었다고 봐요. (pg 74)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도 분명 세월이 지남에 따라 좋아지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혹은 우리 자식 세대에서 그 복지제도 덕분에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성과는 모두 이 책에서 찾아본 사람들과 같은 활동가들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책 자체는 적당한 두께에 인터뷰 녹취록이 포함되어 있어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도 젊은 세대가 현재 빈곤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각기 다른 위치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연대란 완전한 일치와 공감이라기보다는 타인과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차이를 함께 마주하며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g 174)
책 초입 부분에 대다수의 글을 학생들이 쓰고 교수가 검수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위 문장은 학생이 쓴 것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멋진 문장이었다.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본 활동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타인의 고통에 같이 아파했던 사람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었지만, 학생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이어서 빈곤에 대한 해결책, 정책적인 제안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학생들이 가슴으로 느끼며 적어준 멋진 문장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던 문장들 몇 개를 인용하며 책 소감을 마치고자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는 빈곤은 학생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매번 마주치는 홈리스들에게 관심을 갖기를,
강제 철거나 부양의무제에 따른 수급 정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기를,
더 나아가 집요한 항의와 집회로 이들의 '몫'소리를 전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기를 요구하는 게 정말 무리한 것은 아닌지
소심한 우려가 들기도 한다.
'개천에서 난 용'의 시대가 저물면서 빈곤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일찌감치 좌초되는 현실이
주변의 빈곤을 바라볼 기회를 더욱 닫아버렸다. (pg 9)
약자성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 사람이 가진 개인적인 특질을 집단 전체로 덮어씌울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자체가 약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에요.
예를 들어 서울역에 다양한 노숙인들이 있지만 그중 한 명만 술에 취해 있어도 "역시 노숙인들은 다 술을 먹는다."라고 하거나,
한 명만 싸워도 "저 사람들 저래서 안 돼."라고 이야가하죠. (pg 68)
꼭 마을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 동네에 정부나 기업, 종교 단체 등이 와서 주민들한테 뭔가를 계속 나눠줘요.
그러다 보니 여기 있는 분들이 받는 것에 길들여져요.
그래서 진짜 비인간화, 대상화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죠.
주는 사람도 그냥 별 마음 없이 주고, 받는 사람도 감사한 마음이 딱히 안 생겨요.
오히려 그런 게 당연한 권리처럼, 안 주면 화가 나고 이렇게 되는 거에요. (pg 193)
우리는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남들보다 우월하게, 남들보다 더 빠르게 노력해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그러한 삶에 익숙해져왔다.
불안한 세대인 우리에게는 우울이 지배적인 감정이 되어버렸고 자기 삶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아
타인의 비참에 눈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세대 안에서 각 개인의 빈곤이란 물질적인 빈곤보다 실존의 빈곤, 관계의 빈곤, 소통의 빈곤이 되었다.
그리고 빈곤은 단절을 낳기에 이르렀다. (pg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