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사랑을 배운다
그림에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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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연인에서 부부가 되고 부부에서 부모가 된다.

그렇게 예측 가능한 수순에서도 겪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 중략 -

당연히 부모가 아이를 키우게 될 거란 생각.

실상은 아빠를 아빠로, 엄마를 엄마로 키우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단 걸 알았다.

어쩌면 세 아이가 보호자 없이 함께 자라고 있는 셈이다. (pg 214)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이 집에 도착할 거라고 아내에게 얘기하자 아내가 "자기가 이 책을 본다고? 웬일로?"라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 아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실은 책 소개를 보면서 내가 보고 싶다기 보다는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다.



예쁜 샛노랑 표지에 아이와 엄마가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표지를 보니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이 책 가득 실려있을 것 같아서 육아를 하는 아내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소개를 보니 인스타그램에 그림과 글을 연재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조금 얇다 싶은 두께에 그림이 절반, 나머지 절반도 글이 3분의 1, 여백이 3분의 2이다.

전형적으로 인스타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을 책으로 그대로 옮긴 느낌이 든다.

그냥 그림 보면서 글만 읽겠다 하면 30-40분이면 충분히 볼 수 있는 분량이지만, 

이런 책들이 대체로 그렇듯 한번에 쭉 읽기 보다는 옆에 두고 커피 한잔 하면서 한 두장씩 보는 것이 제 맛일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생각보다 공감되는 것이 많지 않았다.

워낙 감성만 담겨 있는 책이어서 그럴까. 

구체적인 컨텍스트 없이 단편적인 감상들만 주욱 나열해 두고 페이지가 넘어가면 바로 다른 감상이 이어지다보니 

확실히 몰입도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뭐랄까...정말 인스타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최적화 된 컨텐츠를 구태여 종이책의 형태로 묶은 느낌이랄까.

SNS에 올라온 컨텐츠를 책 읽는 것처럼 처음부터 정독하면서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 하나, 사진 하나 보면 바로 다른 사람의 다른 글과 사진들로 넘어가면서 보게 된다. 

그렇게 일정 시간의 간격을 두고 드문 드문 올라오는 감성적인 글과 그림이라면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겠지만 

책이라는 매체는 한번 집어 든 이상 한 장만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진짜로 집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옆에 있는 책 중에 하나를 꺼내 들어 아무데나 펴고 읽는 것이 아니라면

출퇴근 길 지하철 같은 곳에서 펴들고 쭉 읽는 맛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책이 가지는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라는 특성이 이런 컨텐츠에게는 맞지 않는 형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g 78-79)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찍은 페이지처럼 일반적인 부부라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을 울컥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부분들도 많다.

단지 나와는 좀 맞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아직 철이 덜 든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저자보다는 아내나 아이에게 충실한 남편이자 아빠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돈은 저자가 훨씬 더 많이 벌겠지만)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야 누구나 비슷한 아픔과 기쁨을 겪겠지만, 그 구체적인 형태들은 집집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집은 글쎄...집사람 이야기도 들어 봐야겠지만 저자의 상황에 비하면 아내가 전업맘이니 아이가 늦게까지 보육시설에 있지도 않고

나도 평균적인 직장인에 비해 퇴근이 빠른 편이라서 아이가 집에 오고 2시간 뒤면 집에서 아이와 함께 한다.

아내에게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일이어서 집사람 시간을 보장해주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고

아이가 잠드는 순간 우리 부부도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모든 집안일을 9시 이전에 끝내고 있다.

(사람들이 믿지 않지만 나는 평일에도 집안일을 꽤 많이 한다. 날 아는 사람들은 아내에게 물어보아도 좋다.)


뭐, 이건 그저 남편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내가 보면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는 다 봤으니 아내에게 감상의 바톤을 넘겨야겠다. 

아내가 읽고서 재밌었다고 한다면 이 책을 접하게 된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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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 :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 (5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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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기고 나서 아이들 책을 종종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은 사실 아이 핑계로 읽게 된 것은 아니다.

책 소개를 보는데 내가 너무 궁금해서 꼭 보고 싶었다. 

(내 딸이 이 책을 보려면 적어도 8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정재승이라는 익숙한 이름에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진짜 인간은 왜 외모에 집착하는걸까?



(좌측: 동봉된 Brain Map 브로마이드, 우측: 책 표지)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할법한 다소 정신없어 보이는 표지를 하고 있다.

게다가 부록으로 뇌에 관한 정보가 가득 담긴 브로마이드가 딸려온다.

(아이 방에 이런거 하나 붙여 두면 얼마나 있어 보일까!)


아이들을 타겟으로 한 책이니 내용이 전혀 어렵진 않았다. 

성인 기준으로는 20-30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과 내용이었다. 


나의 니즈는 인간이 외모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도 그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말 부제에 충실하게 '인간은 외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자 했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별점이 후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재승 교수의 이름은 알쓸신잡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다.

정재승 교수가 쓴 어린이용 뇌과학 책은 얼마나 쉽고 친절하게 정보를 전달해줄지 궁금했다.

이 책에서 택한 접근법은 인간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외계에서 온 외계인 무리가 지구인을 관찰한다는 스토리이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처럼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아하는 접근법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해 만화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아래의 페이지가 그나마 텍스트가 많은 페이지에 속하며 대부분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pg 70-71)


또한 각 챕터 마지막에 외계인이 쓴 관찰보고서의 형태로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어서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부모에게도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고 등장하는 외계인과 지구인들도 나름 캐릭터 설정이 잘 되어 있어서 지들끼리 티격대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이게 1권이고 계속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니 이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어디까지 알게될지 계속 궁금해진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약간은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정도라면 재밌게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도 빨리 커서 이런 책을 보며 아빠와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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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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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그래요. 저는 강하니까요." -중략-

물론 자신의 힘 만으로 이루진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가 궁지에 몰렸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g 340)


얼마 전 읽었던 가키야 미우의 소설이 마음에 들어서 다음 책을 접하고 싶어 집어든 책이다.

'70세 사망법안, 가결'과 같은 참신한 재미를 기대하고 책을 들었다. 


스토리 라인은 앞 표지가 다 말해주고 있다.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라는 부제 아래에 한 여성이 농업인 복장을 하고 채소가 담긴 바구니를 든 채 이런 대사를 외치고 있다.

"직장도, 집도, 남자친구도 모두 잃어버렸지만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을 거야!"


30대 중반에 접어든 구미코라는 여성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고용 만료 통보를 받은 날, 동거를 하던 남자친구에게도 이별 통보를 받는다.

멍하게 TV를 보던 중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인터뷰를 보고서는 자신도 농업의 길을 걷기로 하는 스토리이다.


평소 서평을 길게 남기는 편이지만 이 책은 딱히 길게 남길 포인트가 많지 않았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에서는 읽는 내가 중년도, 여성도 아니었지만 주인공의 심정에 상당부분 감정이입도 되고 가슴에 와닿는 구절도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이 적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가 없었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은데, 스토리가 말끔하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부족했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나는 책 표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표지에서 줄거리를 다 이야기 해줘버리니 책장을 넘기면서 큰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구미코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이렇게 농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겠구만' 하는 정도의 생각 뿐이지, 

이를 어떻게 극복해 갈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겉표지부터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버리고 있으니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성과의 만남들은 결과가 

뻔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구미코의 문제 해결이 대체로 주변 사람들의 선심성 도움을 통해 해결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구미코도 노력은 한다. 

농업을 배우고, 직접 농가를 찾아 다니면서 농지를 찾고, 이런 저런 사람들과 인맥을 쌓는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노력은 그녀의 경제적 자립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진짜 중요한 도움들은 갑자기 뚝 떨어진 주변 사람들의 선심성 도움들 덕분이다.

심지어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던 선배까지 나서서 농작물 판매 홍보를 도와주는 기가막힌 상황도 발생한다. 


결국 혼자 살만하다고는 하지만 굉장히 의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귀농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농촌 사람들이 보여주는 말도 안되는 텃세와 통행세, 마을 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들이 매스컴을 타면서, 농촌 사람들이 구미코처럼 혈혈단신으로 시골을 찾은 이방인에게 따뜻하게 

자신의 것을 내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개인주의가 우리나라보다 심하다고 알려진 일본에서 이런 스토리가 나온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이 책은 여성이 남성의 경제적 도움 같은건 받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다른 여성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 결론으로 흐르게 된다. 

애초에 남성의 도움은 여성의 종속을 가져다주지만 여성의 도움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모든 경제적 의존은 일정부분의 종속을 필연적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전에 접한 '70세 사망법안, 가결' 같은 경우에는 등장인물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면서 젠더 불평등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어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면, 이번에는 그 정도가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으로 전개되어 개인적으로는 작가에게 조금 실망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누군가가 '가키야 미우'의 책을 권해달라고 하면 망설임없이 '70세 사망법안, 가결'을 권해주겠지만, 

이 책 이후로 작가의 책을 정주행하려고 했던 내 자신의 계획은 약간 망설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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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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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너무 살아 있는 내 딸과 너무 죽어 있는 내 아버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앞에 가는 두 사람을 계속 바라봤다.

내 가족은 저 두 사람, 내가 속한 곳은 여기. 자꾸 확인하고 싶었다. (pg 24~25)



이제 대한민국에서 누군가에게 '우울증이 있다' 라는 사실은 딱히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손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고

뉴스 사회면에서는 매일같이 우울증 환자들의 결말과 살아남은 유족들의 슬픔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그런 뉴스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이번 달 초, 동생이 삶을 마감했다.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였고 대단히 준비를 많이한 흔적이 보였다. 

정말 힘든 것은 동생을 잃었다는 상실감보다는 막내 아들을 잃은 부모님을 보는 것이었다. 

나까지 질질짜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맨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측면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눈물이 나지 않았다.


긴 위로휴가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한 인터넷 서점에서 과거에 쓴 서평으로 적립금을 받게 되었다. 

간만에 책이나 사자 싶어서 들른 사이트에서 이 책 제목을 보게 되었고, 잠깐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자신의 요즘 심경이 딱 책 제목과 같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바로 주문했다.

결재한 날 바로 도착했지만 이래저래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안되서 책을 받은지 1주일이나 지난 뒤 들춰보게 되었다. 

만화인지라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내용의 몰입도도 좋아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었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우울증 환자이며, 아버지가 고독사한 뒤 자신의 우울증 진행 경과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게 된 후부터 작가의 심경 변화가 덤덤하지만 상세하게 묘사되는데, 

작가와 내가 처한 상황이 상당히 비슷해서 공감이 잘 갔다. 


작가에게는 아버지가 늘 속을 썩이는 존재였다. 

나에게 동생도 비슷한 존재였다. 

동생 덕을 보기는 커녕 제발 제 앞가림이라도 잘 해서 내 삶에 방해가 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솔직히 했었다.

그래서 장례식 때 집안 어른들이 내 손을 잡고 '이제 쓸쓸해서 어쩌니, 이제 너 혼자라서 어쩌니' 따위의 위로를 했을 때 

그렇게 와닿는 느낌이 없었다. 

자신이 원해서 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있기까지 부모님이나 나에게 알리지 않았다. 

동생에게 가족이 그렇게까지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내가 그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슬퍼하는 것은 

내 자신이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글쎄. 내 자신의 지금 심정이 이렇다.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정말 기분이 없는 기분이다. 

하지만 작가처럼 뛰어내리고 싶다거나 식욕이 없다거나, 무기력한 정도가 심하지는 않다.

그래도 매일 출근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도 하고 있고, 끼니를 챙겨 먹고 있다. 

아이의 재롱을 보며 집사람과 웃고 떠들 수도 있다. 


장례식 때 직장 동료들이 찾아와 생각보다 덤덤해서 놀랐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들은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나면 뒤늦게 타격이 온다는 말을 했었다.

벌써 보름이 넘게 지났는데 아직은 그 타격이 온 것 같지 않다.


"혜진씨에게는 진정한 애도의 기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애도요?"

"누군가를 보낸다는 건, 그리움, 슬픔만이 아니라 쌓인 분노를 털어낼 시간도 필요한 일이에요." (pg 187)


작가가 상담사와 나눈 이야기의 일부이다.

나도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 지난 보름간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장례식도 치뤄야 했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녀석의 뒷처리도 도맡아야 했고, 부모님의 심경도 살펴야 했다. 

남편이 평소보다는 집안에 신경을 쓸 수가 없어 피곤함이 더해진 집사람의 눈치도 봐야 했고

가끔 삼촌을 찾는 아이에게 태연하게 이제 삼촌이 없다고 알려주기도 해야 했다. 


아마 당분간도 정신이 없을 예정이다. 

아직 동생의 49재도 남아있고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들도 남아있다. 

멀리서 장례식을 찾아준 분들, 부의금을 전해준 분들과 다만 소주라도 한잔씩 기울여야 할테고, 

직장에서도 내가 해주기만을 기다려온 일들이 산적해있다. 

집사람과 아이도 매일같이 내가 언제 들어오는지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모든 정신없음이 해결되고 나면 나는 진정한 애도의 기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나도 작가처럼 우울함을 느끼게 될까.

아니면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마치 원래 외동이었던 것처럼 잘 살 수 있을까. 


서평을 가장한 일기를 쓴 것만 같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상당히 공감되는 책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 장면을 빼면 마치 내 이야기 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다. 

하필 그 타이밍에 적립금을 받게 되고 하필 이 책을 산 것 보면, 그리고 이 책을 부모님 댁에 다녀온 오늘 읽게 된 것을 보면,

역시나 책과의 인연도 필연인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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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빈곤의 인류학
조문영 엮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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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각기 다른 위치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연대란 완전한 일치와 공감이라기보다는 타인과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차이를 함께 마주하며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g 174)



간만에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을 가진 책을 만났다.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가난'이라는 단어는 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부족한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는 '정상적인' 삶의 노선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돌이킬 수 없는 가난의 굴레로 떨어지게 된다는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건국이래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지금의 젊은 세대.

그들이 보는 대한민국의 가난은 어떤 모습일까?


부모 세대가 습관처럼 강조해온 안정된 정규직과 성공 신화를 버릴 수도, 

현실화시킬 수도 없는 21세기 저성장 한국 사회에서 제 처지의 비참함을 호소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학교든 가족이든 경쟁은 이제부터라고 다그친다. -중략-

정체불명의 불안은 미세먼지를 타고 각자의 몸 깊숙이 파고든다. 

일상에선 모임을 최소화하고, 얼굴을 맞대지 않는 사이버공간에선 극단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조롱하고 압살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고, 억울하다. (pg 9)


이 책은 한 대학교수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빈곤 관련 활동가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낸 책이다.

'빈곤 관련'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경제 규모 11위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빈곤'이라는 키워드로만은 활동을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노숙자, 여성 등 다양한 키워드를 가지고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 


최근에 고시원 화재 사건이 있었기 때문인지, 주거복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창문이 없는 방에 묶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월 몇 만원에 지나지 않는 '창문비'는 그들의 생과 사를 갈라놓을 정도로 큰 차이였다는 점과

실제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아닌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도심 한복판에도 곳곳에 빈곤층이 숨어 있으며 우리가 그들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지도 벌써 10년. 그 때의 충격은 이미 잊혀졌지만 우리 사회의 주거복지는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용산참사는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이익을 위해 기획된 '재개발 사업'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배제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든 누릴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믿어왔던 공간이 실질적으로는 '부자'에게만 허용되고,

'빈자'에게는 일체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 결과가 바로 용산참사이기 때문이다. (pg 49)


과연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라 말할 수 있는가?

직관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부자에게 허용되는 자유와 빈자에게 허용되는 자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양 극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므로 지금도 유효하다 하겠지만,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복지 제도와 정책들이 시행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개선 효과를 낸 부분도 분명 많을 것이다 .

이러한 성과들이 모두 정부에서 알아서 해준 것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정부에게 목소리를 내고, 싸우고, 부딪히고, 설득해서 얻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이 책에서 만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빈곤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다.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장애인이 아니면서 장애인 운동을 하는 활동가, 노숙자가 아니면서 노숙자 운동을 하는 활동가 등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 활동가 자신도 빈곤과 아주 동떨어진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는 활동가들도 많았다. 

왜 그들은 더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김윤영 활동가는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의 70퍼센트는 분노라고 말했다.

'이놈의 세상 너무 나쁘기 때문에 가만두면 안 돼!"라든지 "너무 화가 나고, 너무 말이 안 된다!"는 식의 분노가 

스스로를 계속 활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동력은 활동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고 헀다.

함께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pg 72)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모든 사람들은 불합리한 뉴스를 보며 분노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쉽게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저마다의 일상으로 나아간다.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빈곤 없는 세상'도 비슷해요. 빈곤이 철폐된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긍정형으로 문장을 만들어 이야기하기는 너무 어렵고, 

"그것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고 이야기하면서 과정을 통해 다가가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최소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죽음을 결심하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건강 관련 설문조사에서 암이 발생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걱정되냐고 물어보면, 

'죽을까 봐 걱정된다.'는 대답보다 '가족들이 가난에 빠질까 봐 걱정된다.'는 대답이 더 높게 나온다고 해요. 

적어도 그런 상황은 잘못되었다고 봐요. (pg 74)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도 분명 세월이 지남에 따라 좋아지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혹은 우리 자식 세대에서 그 복지제도 덕분에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성과는 모두 이 책에서 찾아본 사람들과 같은 활동가들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책 자체는 적당한 두께에 인터뷰 녹취록이 포함되어 있어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도 젊은 세대가 현재 빈곤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각기 다른 위치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연대란 완전한 일치와 공감이라기보다는 타인과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차이를 함께 마주하며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g 174) 


책 초입 부분에 대다수의 글을 학생들이 쓰고 교수가 검수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위 문장은 학생이 쓴 것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멋진 문장이었다.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본 활동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타인의 고통에 같이 아파했던 사람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었지만, 학생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이어서 빈곤에 대한 해결책, 정책적인 제안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학생들이 가슴으로 느끼며 적어준 멋진 문장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던 문장들 몇 개를 인용하며 책 소감을 마치고자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는 빈곤은 학생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매번 마주치는 홈리스들에게 관심을 갖기를, 

강제 철거나 부양의무제에 따른 수급 정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기를, 

더 나아가 집요한 항의와 집회로 이들의 '몫'소리를 전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기를 요구하는 게 정말 무리한 것은 아닌지 

소심한 우려가 들기도 한다. 

'개천에서 난 용'의 시대가 저물면서 빈곤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일찌감치 좌초되는 현실이 

주변의 빈곤을 바라볼 기회를 더욱 닫아버렸다. (pg 9)


약자성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 사람이 가진 개인적인 특질을 집단 전체로 덮어씌울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자체가 약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에요. 

예를 들어 서울역에 다양한 노숙인들이 있지만 그중 한 명만 술에 취해 있어도 "역시 노숙인들은 다 술을 먹는다."라고 하거나, 

한 명만 싸워도 "저 사람들 저래서 안 돼."라고 이야가하죠. (pg 68)


꼭 마을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 동네에 정부나 기업, 종교 단체 등이 와서 주민들한테 뭔가를 계속 나눠줘요.

그러다 보니 여기 있는 분들이 받는 것에 길들여져요.

그래서 진짜 비인간화, 대상화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죠.

주는 사람도 그냥 별 마음 없이 주고, 받는 사람도 감사한 마음이 딱히 안 생겨요. 

오히려 그런 게 당연한 권리처럼, 안 주면 화가 나고 이렇게 되는 거에요. (pg 193)


우리는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남들보다 우월하게, 남들보다 더 빠르게 노력해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그러한 삶에 익숙해져왔다.

불안한 세대인 우리에게는 우울이 지배적인 감정이 되어버렸고 자기 삶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아 

타인의 비참에 눈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세대 안에서 각 개인의 빈곤이란 물질적인 빈곤보다 실존의 빈곤, 관계의 빈곤, 소통의 빈곤이 되었다.

그리고 빈곤은 단절을 낳기에 이르렀다. (pg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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