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그래요. 저는 강하니까요." -중략-
물론 자신의 힘 만으로 이루진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가 궁지에 몰렸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g 340)
얼마 전 읽었던 가키야 미우의 소설이 마음에 들어서 다음 책을 접하고 싶어 집어든 책이다.
'70세 사망법안, 가결'과 같은 참신한 재미를 기대하고 책을 들었다.
스토리 라인은 앞 표지가 다 말해주고 있다.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라는 부제 아래에 한 여성이 농업인 복장을 하고 채소가 담긴 바구니를 든 채 이런 대사를 외치고 있다.
"직장도, 집도, 남자친구도 모두 잃어버렸지만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을 거야!"
30대 중반에 접어든 구미코라는 여성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고용 만료 통보를 받은 날, 동거를 하던 남자친구에게도 이별 통보를 받는다.
멍하게 TV를 보던 중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인터뷰를 보고서는 자신도 농업의 길을 걷기로 하는 스토리이다.
평소 서평을 길게 남기는 편이지만 이 책은 딱히 길게 남길 포인트가 많지 않았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에서는 읽는 내가 중년도, 여성도 아니었지만 주인공의 심정에 상당부분 감정이입도 되고 가슴에 와닿는 구절도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이 적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가 없었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은데, 스토리가 말끔하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부족했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나는 책 표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표지에서 줄거리를 다 이야기 해줘버리니 책장을 넘기면서 큰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구미코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이렇게 농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겠구만' 하는 정도의 생각 뿐이지,
이를 어떻게 극복해 갈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겉표지부터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버리고 있으니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성과의 만남들은 결과가
뻔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구미코의 문제 해결이 대체로 주변 사람들의 선심성 도움을 통해 해결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구미코도 노력은 한다.
농업을 배우고, 직접 농가를 찾아 다니면서 농지를 찾고, 이런 저런 사람들과 인맥을 쌓는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노력은 그녀의 경제적 자립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진짜 중요한 도움들은 갑자기 뚝 떨어진 주변 사람들의 선심성 도움들 덕분이다.
심지어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던 선배까지 나서서 농작물 판매 홍보를 도와주는 기가막힌 상황도 발생한다.
결국 혼자 살만하다고는 하지만 굉장히 의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귀농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농촌 사람들이 보여주는 말도 안되는 텃세와 통행세, 마을 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들이 매스컴을 타면서, 농촌 사람들이 구미코처럼 혈혈단신으로 시골을 찾은 이방인에게 따뜻하게
자신의 것을 내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개인주의가 우리나라보다 심하다고 알려진 일본에서 이런 스토리가 나온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이 책은 여성이 남성의 경제적 도움 같은건 받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다른 여성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 결론으로 흐르게 된다.
애초에 남성의 도움은 여성의 종속을 가져다주지만 여성의 도움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모든 경제적 의존은 일정부분의 종속을 필연적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전에 접한 '70세 사망법안, 가결' 같은 경우에는 등장인물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면서 젠더 불평등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어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면, 이번에는 그 정도가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으로 전개되어 개인적으로는 작가에게 조금 실망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누군가가 '가키야 미우'의 책을 권해달라고 하면 망설임없이 '70세 사망법안, 가결'을 권해주겠지만,
이 책 이후로 작가의 책을 정주행하려고 했던 내 자신의 계획은 약간 망설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