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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사랑을 배운다
그림에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연인에서 부부가 되고 부부에서 부모가 된다.
그렇게 예측 가능한 수순에서도 겪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 중략 -
당연히 부모가 아이를 키우게 될 거란 생각.
실상은 아빠를 아빠로, 엄마를 엄마로 키우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단 걸 알았다.
어쩌면 세 아이가 보호자 없이 함께 자라고 있는 셈이다. (pg 214)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이 집에 도착할 거라고 아내에게 얘기하자 아내가 "자기가 이 책을 본다고? 웬일로?"라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 아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실은 책 소개를 보면서 내가 보고 싶다기 보다는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다.
예쁜 샛노랑 표지에 아이와 엄마가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표지를 보니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이 책 가득 실려있을 것 같아서 육아를 하는 아내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소개를 보니 인스타그램에 그림과 글을 연재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조금 얇다 싶은 두께에 그림이 절반, 나머지 절반도 글이 3분의 1, 여백이 3분의 2이다.
전형적으로 인스타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을 책으로 그대로 옮긴 느낌이 든다.
그냥 그림 보면서 글만 읽겠다 하면 30-40분이면 충분히 볼 수 있는 분량이지만,
이런 책들이 대체로 그렇듯 한번에 쭉 읽기 보다는 옆에 두고 커피 한잔 하면서 한 두장씩 보는 것이 제 맛일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생각보다 공감되는 것이 많지 않았다.
워낙 감성만 담겨 있는 책이어서 그럴까.
구체적인 컨텍스트 없이 단편적인 감상들만 주욱 나열해 두고 페이지가 넘어가면 바로 다른 감상이 이어지다보니
확실히 몰입도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뭐랄까...정말 인스타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최적화 된 컨텐츠를 구태여 종이책의 형태로 묶은 느낌이랄까.
SNS에 올라온 컨텐츠를 책 읽는 것처럼 처음부터 정독하면서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 하나, 사진 하나 보면 바로 다른 사람의 다른 글과 사진들로 넘어가면서 보게 된다.
그렇게 일정 시간의 간격을 두고 드문 드문 올라오는 감성적인 글과 그림이라면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겠지만
책이라는 매체는 한번 집어 든 이상 한 장만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진짜로 집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옆에 있는 책 중에 하나를 꺼내 들어 아무데나 펴고 읽는 것이 아니라면
출퇴근 길 지하철 같은 곳에서 펴들고 쭉 읽는 맛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책이 가지는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라는 특성이 이런 컨텐츠에게는 맞지 않는 형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g 78-79)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찍은 페이지처럼 일반적인 부부라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을 울컥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부분들도 많다.
단지 나와는 좀 맞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아직 철이 덜 든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저자보다는 아내나 아이에게 충실한 남편이자 아빠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돈은 저자가 훨씬 더 많이 벌겠지만)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야 누구나 비슷한 아픔과 기쁨을 겪겠지만, 그 구체적인 형태들은 집집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집은 글쎄...집사람 이야기도 들어 봐야겠지만 저자의 상황에 비하면 아내가 전업맘이니 아이가 늦게까지 보육시설에 있지도 않고
나도 평균적인 직장인에 비해 퇴근이 빠른 편이라서 아이가 집에 오고 2시간 뒤면 집에서 아이와 함께 한다.
아내에게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일이어서 집사람 시간을 보장해주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고
아이가 잠드는 순간 우리 부부도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모든 집안일을 9시 이전에 끝내고 있다.
(사람들이 믿지 않지만 나는 평일에도 집안일을 꽤 많이 한다. 날 아는 사람들은 아내에게 물어보아도 좋다.)
뭐, 이건 그저 남편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내가 보면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는 다 봤으니 아내에게 감상의 바톤을 넘겨야겠다.
아내가 읽고서 재밌었다고 한다면 이 책을 접하게 된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