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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오후 지음 / 웨일북 / 2019년 7월
평점 :
올해 유독 과학을 쉽게 이야기해주는 책들을 부쩍 읽고 있는 것 같다.
왜 꽃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읽은 책 5권 중 3권이 과학 관련 서적이다.
평생을 문돌이로만 살아온 자신에 대한 성찰(?)일수도 있고 그냥 SF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결국은 책까지 찾아보게 된 것일수도 있다.
여하간 지금 소개할 책도 과학 관련 서적이다.
위트 있는 제목에 다소 귀여운 표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과학 지식을 정말 쉽게,
나같은 평생 문돌이도 이해할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저자 자신도 문돌이라 죄송하다는 표현으로 끝을 맺고 있다.)
총 7개의 주제를 알려주는데, 1장에서는 질소 비료에 관한 인류의 발전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의 인구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과학적 성과가 바로 질소 비료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기계화니 전산이니 통신이니 발전할 여유가 생기지 않겠는가.
저자는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답답해서 책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질소 비료의 순서가 끝나면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단위'에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길이, 부피부터 시작해서 시간과 언어까지 등장하는 매우 폭넓은 주제이다.
특히 시간에 대한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다.
긴 내용을 정리하면, 어쨌든 핵심은 '시간이 지금처럼 정해진 데에는 특별한 과학적 이유가 없다'이다.
(전략) 날짜를 정한 율리우스는 새 달력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이 포함된 7월(July)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는다.
또한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취임하기 위해 기존 달력의 11월을 1월로 선포하고 새해를 바로 시작했다. (중략)
그래서 기존의 새해의 시작인 March는 3월이 되었고, 8이라는 뜻을 가진 October는 10월이 되었다. (pg 95)
현재도 별자리 점을 볼 때 사용하는 12개의 별자리가 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지어 처음 별자리를 측정한 이후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 현재 하늘과는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점을 보는 사람은 이런 과학적인 사실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조금 더 과학적으로 별자리 점을 보고 싶다면, 자신이 해당하는 별자리의 앞 별자리를 보면 된다. (중략)
물론 그렇게 본다고 해서 별자리 점이 과학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pg 93)
3장은 플라스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상당 부분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위트있는 문장들 덕분에 즐겁게 읽었다.
4장에서는 성전환 기술을 통해 성소수자 이야기를 한다.
저자가 문돌이인 것이 이 장에서는 정말 훌륭하게 잘 드러난다. (물론 공학도도 인권의식이 있겠지만 상대적인 표현이다.)
저자의 인권 의식이 개인적으로 나와 잘 맞는 것 같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인권 운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논리 속에 산다.
그들에게 소수자는 실재하지 않는다.
만약 가까운 사람 중에 소수자가 있거나, 그들의 존재를 '진짜' 인식하면 절대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폐지 수거를 하는 노인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지 '진짜' 알게 되면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누구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pg 212)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성소수자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타고나기를 성소수자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혐오하는 사람들 말대로 성장 환경 때문에 성소수자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모두 인위적인 존재다.
아파트 지어놓고 침대 위에서 자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밤에 전등을 켜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당신이 오럴섹스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산다.
문화 자체가 인위에서 시작한 것이다. (pg 214)
위 까지는 책 전체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또 저자의 멋진 표현들을 기억하기 위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바로 빅데이터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현재 가장 핫한 키워드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치지만 실상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몰랐던 부분이라 관심을 끌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데이터가 많이 모이면 빅데이터가 될텐데 문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이전에는 정해진 목적을 위해 데이터를 모았다. 하지만 빅데이터는 일단 데이터를 모은다.
그 데이터가 이후 어떻게 사용될지 저장되는 당시에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뽑혀 올라와 정보가 된다. (pg 279)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보단 강국이다.)
하지만 빅데이터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앞서가고 있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우리나라는 단순히 데이터를 빨리 주고 받는 데에만 신경을 썼지 그 데이터들을 축적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뭔가 이유도 상당히 우리나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
물론 이미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으니 이제부터는 축적하는 데이터들을 활용하여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재미난 실제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허리케인과 딸기맛 과자의 상관관계였다.
미국의 한 마트 업체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해보니 허리케인이 돌면 특정 브랜드의 딸기맛 과자가 유독 잘 팔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빅데이터 전문가들은 왜 허리케인이 돌면 유독 그 딸기맛 과자가 잘 팔리는지 원인을 분석할 수는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팩트가 그러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 마트에서는 허리케인 경보가 있을 때 해당 지역에 그 딸기 과자를 잔뜩 들여놓았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사례가 빅데이터가 신격화되는 시작점이라고 보고 있다.
사람들은 데이터가 주는 객관성이라는 가면에 매료된다.
하지만 데이터에는 가치가 들어 있지 않다.
계속해서 마트를 예로 들면, 평소에 마트를 자주 가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구매 실적은 당연히 마트 빅데이터에 적게 수집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빅데이터 전문가는 저소득층이 자주 사는 물품들의 실적이 낮으므로 더 이상 팔지 않을 것을 권하게 될 것이다.
이때, 과연 이 조치가 합당한지를 저자는 묻는다.
초기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로그인하면 사용자가 '보고 싶다'고 체크해놓은 영상을 추천 영상에 띄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이 보겠다고 한 영상을 보지 않았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훌륭한 다큐멘터리나 작품성이 높은 해외 영화를 언젠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보고 싶다' 버튼을 누르지만,
실제로는 늘 보던 가벼운 드라마와 비슷한 작품만을 계속 시청하는 것이다. (pg 290)
허리케인과 딸기맛 과자의 상관관계와 넷플릭스처럼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빅데이터.
우리는 빅데이터가 주는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철학의 발전이 함께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모양이다.
인간의 방식을 습득한 기계는 인간의 편견까지 그대로 물려받는다.
이전에 존재하던 소수자 배척은 빅데이터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배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공정함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pg 318)
마지막 챕터에서는 기후와 일기예보 관련 내용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위트있는 문장, 풍성한 정보로 지루할 틈이 없는 책이었다.
다소 특이한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다음 책들이 기대되는 작가도 한 명 더 알게된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