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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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자신이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누구나 자신의 분신을 원하는 것 아닐까. 그걸 찾지 못해서 모두들 고독한 것은 아닐까. (pg 568)



책을 다 읽고 두 번 반성했다.

첫 번째는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생각보다 두꺼워 '읽으려면 꽤나 걸리겠는데'라고 생각했던 내 예측이 완전히 틀렸다는 점이다. 

휴일을 맞아 무심코 표지를 열었는데 한 번 책을 손에 잡고나니 도저히 멈출수가 없었다. 

놀아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나는 옆에서 이 책을 읽었을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났다. 

결국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다 읽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이렇게 강력한 몰입감을 주는 작가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는 부끄러움이었다. 

말 그대로 책을 읽으면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터라 텍스트로 스릴을 느낀 것이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이어서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토리라인은 생각보다 심플한데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상당히 스릴있었다.

홋카이도에 자신이 엄마와 아빠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있던 마리코라는 여자가 있었다. 

학창시절 집에 화재가 발생해 엄마가 사망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리코는 마음 한 구석에 엄마가 아빠를 의심하여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살하려는 목적으로 사고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마리코는 분명 자신의 출생에 미심쩍은 면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뿌리를 추적하기로 한다. 


한편 도쿄에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TV에 출연하고 싶은데, 엄마가 극렬히 반대하는 후타바라는 여자가 있었다.

엄마의 반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TV에 출연했지만 곧 이어 그토록 반대했던 엄마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방송출연과 엄마의 사망에 모종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홋카이도에서 한 교수가 찾아와 

엄마의 과거를 들려주겠다며 접근한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지만 후타바의 방송 출연을 시작으로 둘을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로는 스토리에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줄거리는 생략하지만, 사실 책 표지에 '인간의 탐욕과 오만', '신의 영역을 침범' 등의 문구가 있어서 사실 그 둘의 관계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게다가 책 제목 역시 '분신'이다.)


하지만 이 책의 스릴은 그 둘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 둘이 자신의 과거를 하나하나 캐가는 장면들이 굉장히 속도감있게 전개되어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개가 늘어진다거나

답답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빨리빨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서술 방식 역시 마리코의 장이 끝나면 바로 후타바의 장이 시작되며 둘의 서술이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각 장에 별도의 부제가 달려있지 않은데 그 점이 오히려 사건에 대한 흥미를 높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작품 내에 출산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찰이나 기술의 발전과 윤리적 가치의 충돌 등 

사회적인 내용도 적지않게 담아내고 있어 단순한 스토리라인에 풍성함을 더해준 점도 좋았다. 


영화화 하면 상당히 재밌겠다는 생각에 검색해보니 이미 5편짜리 드라마가 일본에서 제작된 적이 있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5편 전부 찾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버스러움이 간혹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책의 이야기 흐름을 충실하게 잘 반영하고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원작을 읽은 직후에 보니 원작과 차이가 나는 점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원작에 등장하는 방대한 양의 등장인물들을 드라마에 적합하게 축소하고, 두 주인공(배우는 한 명이지만)의 조력자들의 관계가 

단순화되어 묘사된 점들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스토리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책의 결말이 다소 모호하게 끝나는 반면, 드라마는 보다 명쾌하게 마무리되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속이 더 시원할 수는 있다. 

다만 책에서 느낀 스릴이 드라마에서는 아주 충분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스토리를 전부 알고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검색하다 보니 이전에 '레몬'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발매된 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레몬이 작품 내에서 중요한 장치로 등장하기 때문에 스포일러성이 다분한 원제보다 오히려 나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책에서는 파랑색 표지에 큼지막하게 노란 레몬을 그려두어 이런 면을 잘 살리고 있기도 하다. 


읽기도 금방 읽었지만 그 감동이 식기 전에 서평도 금방 쓴 느낌이다. 

바로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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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오후 지음 / 웨일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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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독 과학을 쉽게 이야기해주는 책들을 부쩍 읽고 있는 것 같다.

왜 꽃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읽은 책 5권 중 3권이 과학 관련 서적이다.

평생을 문돌이로만 살아온 자신에 대한 성찰(?)일수도 있고 그냥 SF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결국은 책까지 찾아보게 된 것일수도 있다.

여하간 지금 소개할 책도 과학 관련 서적이다.

위트 있는 제목에 다소 귀여운 표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과학 지식을 정말 쉽게, 

나같은 평생 문돌이도 이해할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저자 자신도 문돌이라 죄송하다는 표현으로 끝을 맺고 있다.)


총 7개의 주제를 알려주는데, 1장에서는 질소 비료에 관한 인류의 발전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의 인구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과학적 성과가 바로 질소 비료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기계화니 전산이니 통신이니 발전할 여유가 생기지 않겠는가. 

저자는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답답해서 책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질소 비료의 순서가 끝나면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단위'에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길이, 부피부터 시작해서 시간과 언어까지 등장하는 매우 폭넓은 주제이다. 

특히 시간에 대한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다.

긴 내용을 정리하면, 어쨌든 핵심은 '시간이 지금처럼 정해진 데에는 특별한 과학적 이유가 없다'이다. 


(전략) 날짜를 정한 율리우스는 새 달력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이 포함된 7월(July)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는다. 

또한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취임하기 위해 기존 달력의 11월을 1월로 선포하고 새해를 바로 시작했다. (중략)

그래서 기존의 새해의 시작인 March는 3월이 되었고, 8이라는 뜻을 가진 October는 10월이 되었다. (pg 95)


현재도 별자리 점을 볼 때 사용하는 12개의 별자리가 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지어 처음 별자리를 측정한 이후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 현재 하늘과는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점을 보는 사람은 이런 과학적인 사실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조금 더 과학적으로 별자리 점을 보고 싶다면, 자신이 해당하는 별자리의 앞 별자리를 보면 된다. (중략)

물론 그렇게 본다고 해서 별자리 점이 과학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pg 93)


3장은 플라스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상당 부분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위트있는 문장들 덕분에 즐겁게 읽었다. 


4장에서는 성전환 기술을 통해 성소수자 이야기를 한다. 

저자가 문돌이인 것이 이 장에서는 정말 훌륭하게 잘 드러난다. (물론 공학도도 인권의식이 있겠지만 상대적인 표현이다.)

저자의 인권 의식이 개인적으로 나와 잘 맞는 것 같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인권 운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논리 속에 산다.

그들에게 소수자는 실재하지 않는다. 

만약 가까운 사람 중에 소수자가 있거나, 그들의 존재를 '진짜' 인식하면 절대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폐지 수거를 하는 노인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지 '진짜' 알게 되면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누구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pg 212)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성소수자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타고나기를 성소수자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혐오하는 사람들 말대로 성장 환경 때문에 성소수자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모두 인위적인 존재다.

아파트 지어놓고 침대 위에서 자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밤에 전등을 켜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당신이 오럴섹스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산다. 

문화 자체가 인위에서 시작한 것이다. (pg 214)


위 까지는 책 전체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또 저자의 멋진 표현들을 기억하기 위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바로 빅데이터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현재 가장 핫한 키워드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치지만 실상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몰랐던 부분이라 관심을 끌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데이터가 많이 모이면 빅데이터가 될텐데 문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이전에는 정해진 목적을 위해 데이터를 모았다. 하지만 빅데이터는 일단 데이터를 모은다. 

그 데이터가 이후 어떻게 사용될지 저장되는 당시에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뽑혀 올라와 정보가 된다. (pg 279)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보단 강국이다.)

하지만 빅데이터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앞서가고 있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우리나라는 단순히 데이터를 빨리 주고 받는 데에만 신경을 썼지 그 데이터들을 축적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뭔가 이유도 상당히 우리나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

물론 이미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으니 이제부터는 축적하는 데이터들을 활용하여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재미난 실제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허리케인과 딸기맛 과자의 상관관계였다. 


미국의 한 마트 업체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해보니 허리케인이 돌면 특정 브랜드의 딸기맛 과자가 유독 잘 팔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빅데이터 전문가들은 왜 허리케인이 돌면 유독 그 딸기맛 과자가 잘 팔리는지 원인을 분석할 수는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팩트가 그러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 마트에서는 허리케인 경보가 있을 때 해당 지역에 그 딸기 과자를 잔뜩 들여놓았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사례가 빅데이터가 신격화되는 시작점이라고 보고 있다. 

사람들은 데이터가 주는 객관성이라는 가면에 매료된다. 

하지만 데이터에는 가치가 들어 있지 않다. 

계속해서 마트를 예로 들면, 평소에 마트를 자주 가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구매 실적은 당연히 마트 빅데이터에 적게 수집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빅데이터 전문가는 저소득층이 자주 사는 물품들의 실적이 낮으므로 더 이상 팔지 않을 것을 권하게 될 것이다. 

이때, 과연 이 조치가 합당한지를 저자는 묻는다. 


초기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로그인하면 사용자가 '보고 싶다'고 체크해놓은 영상을 추천 영상에 띄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이 보겠다고 한 영상을 보지 않았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훌륭한 다큐멘터리나 작품성이 높은 해외 영화를 언젠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보고 싶다' 버튼을 누르지만, 

실제로는 늘 보던 가벼운 드라마와 비슷한 작품만을 계속 시청하는 것이다. (pg 290)


허리케인과 딸기맛 과자의 상관관계와 넷플릭스처럼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빅데이터. 

우리는 빅데이터가 주는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철학의 발전이 함께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모양이다. 


인간의 방식을 습득한 기계는 인간의 편견까지 그대로 물려받는다. 

이전에 존재하던 소수자 배척은 빅데이터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배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공정함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pg 318)


마지막 챕터에서는 기후와 일기예보 관련 내용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위트있는 문장, 풍성한 정보로 지루할 틈이 없는 책이었다. 

다소 특이한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다음 책들이 기대되는 작가도 한 명 더 알게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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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염세주의자 - 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마지막 태도
염세철학가 지음, 차혜정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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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어쩌면 장자는 우리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당신은 성형이나 화장을 통해 자신을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우주가 굳이 우리에게 저마다의 육체와 운명을 준 것은 우리 각자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일 것이라고. 

용기를 내어 당신이 가진 그 모습대로 주변 사람들과 다른 인생을 살라고 말이다. (pg 207)



내가 아는 장자의 사상은 사실 고등학교 시절 수능 공부에서 다룬 몇 페이지의 정보가 다였다.

'무위자연'으로 대표되는 노자와 장자가 수립한 사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속에 왠지 노장사상은 유가나 법가의 사상보다는 뭔가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두 사상에 비해 비교적 규율이 적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에 집중하는 사상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교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이유도 이런 저런 규율들을 싫어하는 본성 탓이 가장 클 것이다.)

물론 노장 사상도 도교라는 종교로 발전했었지만 지금 도교를 믿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보면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은 장자의 사상을 저자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비교적 쉬운 문체로 일반 독자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서술한 책이다.

책을 다 보고 나니, 장자는 역시 자신의 사상이 종교로 발전하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본인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장자의 사상은 자신의 대한 인식에서 시작한다. 

이 부분부터가 굉장히 신선한데, 일단 내 자신이 그렇게 특별할 것도, 

모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존재도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사회에 별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세상의 잣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억누를 필요가 없게 된다.

그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나는 도대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서 폐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인생의 선물이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계기가 된다. (pg 35)


진정한 나는 결코 일시적인 정서, 느낌, 사상, 이념이 아니며 심지어 신체의 특정 장기조차도 내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런 식으로 자아를 찾는 방법은 전부 잘못된 것이라고 장자는 주장한다.

장자의 주장대로 나를 규정하는 것을 하나둘씩 제거하고 나면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결국 진정한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집착한다. (pg 44)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를 것이다.

얼핏 '모든 사람이 다 부질없는 존재들이니 그냥 막 살다 가라'라는 메시지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냥 막 살다 가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쉽다면 모두가 서울역 앞에서 죽치고 잠이나 자거나 산 속에 틀어박혀 자연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사회 전체 구성원 중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막상 막 살고자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욕망과 욕구가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거창한 자아실현을 바란다기 보다는, 당장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무언가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려고 어느 정도는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장자는 그 자신의 욕심이 과연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그렇게 살도록 만드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나는 해석했다. 

'나는 꼭 이루고 싶은 성취가 있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장자는 그저 그리 하라고 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진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자연적인 존재'라고 본 것이다.


물론 진짜 자신을 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노장 사상 하면 역시나 호접몽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이야기의 핵심도 그것이다. 

결국 꿈꾸는 주체가 나비인지, 장자인지 장자 자신도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호접몽을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각성이란 어떤 사람이 꿈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각성이 의미하는 것은 세상 일에 대처하는 모종의 태도이며, 비록 꿈속에 있더라도 그 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각성은 꿈속의 모든 것이 결코 현실이 아님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깨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핵심은 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꿈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정하지 않을 때 당신은 결코 휘둘리지 않을 것이며, 그때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pg 111)


이게 가능해지면 인생은 더없이 간단해진다. 

이번 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며 무대에 올라야 할 때 오르고, 퇴장해야 할 때 퇴장할 뿐이다. -중략-

설사 꿈에서 깨어 있더라도 여전히 꿈속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을 한바탕 꿈으로 보는 관점이야말로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g 136)


앞에서 자아란 별 의미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나비가 된 삶이나 장자가 된 삶이나 꿈이기는 매한가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나비의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나비로서 살고, 장자의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장자로서 살면 그만이라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사랑이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곁에서 포용하고 지지하며 바라봐주는 것이다.

나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상대가 원하고 추구하는 삶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pg 195)


이는 단순히 연애 감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부모 자식간 혹은 단순한 친구 사이에서도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무릇 천지간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으니, 그 자체가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한 터럭일지라도 억지로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저 산 위의 밝은 달을 바라보라.

바람 소리는 귀로 얻는 좋은 안주요 밝은 달은 눈으로 보는 향연이니, 바람 소리를 듣는다고 금할 이 없고, 

밝은 달을 아무리 바라봐도 다함이 없다.

이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pg 201)


책의 내용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

저자가 일단 쉽게 설명하고 있고 번역도 너무 깔끔해서 문장 수준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 부분은 거의 없다. 

책의 페이지도 부록을 포함해도 28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고, 본문에 고전의 원문(한자)이 함께 실려 있기 때문에 의외로 금방 읽힌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 사상 자체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특히나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생경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어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간만에 고전의 해석을 통한 신선한 철학 산책을 할 수 있었던 기분좋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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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 양서류 랭킹왕 미스터리 과학 도감 3
가토 히데아키 엮음 / 서울문화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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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를 위한 책도 점점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최근에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동물들 사진이 잔뜩 나오는 백과 형식의 책들을 많이 사주고 있다.
이 책 역시 동물 사진이 매 페이지마다 들어 있어서 아이가 정말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조류나 포유류 등 주변에서도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동물들이 아닌 파충류와 양서류만 수록하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갔다.
서점에 가보면 비슷한 컨셉으로 랭킹을 정해 아이들이 쉽고 친근하게 다양한 동물의 특징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집에도 벌써 공룡 랭킹책 이후로 두 번째 랭킹 서적이다. 

이런 책들만 전문적으로 디자인해주는 업체가 있는 것인지 표지가 다 비슷비슷하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대표 동물들이 가득 담겨 있고 정신없는 이펙트와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표지.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보고 "이게 뭐야?" 하면서 달려드는 것을 보면 
분명 아이들을 끄는 매력이 있는 디자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책 속에는 크기, 독, 사냥에 사용하는 무기, 턱의 힘 등 카테고리별로 나누어 랭킹5 안에 드는 동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그 동물들을 토너먼트식으로 겨루게 한 뒤 집필하진 않았을테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비교한 데이터들이 나와 있어서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파충류나 양서류에는 뱀이나 악어처럼 치명적인 독이나 강력한 이빨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동물들이 많아서 
이런 랭킹으로 비교하기 딱 좋은 생물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왠지 이후에 조류 랭킹왕, 어류 랭킹왕 등도 나올 것 같긴 하다.)
아이가 아직 글을 읽지는 못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읽으면서 알려주는 동물들은 제법 잘 외우는 편이다.
(같이 책을 보고 있으면 신기할 정도이다.)
부모님 말로는 나도 어려서 동물 도감을 거의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하던데 아이들은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이 책도 틈틈히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많은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가끔 동물들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전시관이나 동물원 등을 방문하면 아이가 뱀이나 도마뱀, 개구리 등은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을 통해 파충류와 양서류 동물들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면 좋겠다.(물론 나도 뱀은 무섭다;;;)
시리즈로 계속해서 나올 것 같은데 그때마다 구비해두면 멋진 생물도감이 완성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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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은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을까? - 대중문화 속 과학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3
박재용 지음 / 애플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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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만약 아주 우연히 외계 지성체의 신호를 포착하고 아주 운 좋게 그 의미까지 알아낸다 하더라도

그저 '아, 우주에 우리 말고 누군가가 또 있구나'라고 아는 정도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외로움은 역으로 지구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로운 우주에서 우리 지구상의 존재들만이라도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pg 298)



최근 들어 과학이라는 주제에 쉽게 접근하고자 하는 책을 몇 권 읽고 있다.

여태껏 문돌이로만 살아온 내가 과학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 계기는 역시나 영화, 소설 등 SF 관련 문화 컨텐츠들일 것이다. 

특히 마블과 DC 등 현재 컨텐츠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유명 프렌차이즈는 물론이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들이나 은하영웅전설 등 우주를 다룬 작품들도 워낙 좋아해서 그 속에 담긴 과학적 사실들도 알고 싶어졌다. 

이 책 역시도 대중문화 속 익숙한 주제들로 과학적 지식들을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엑스맨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고 울버린의 실루엣이 눈길을 사로 잡지만, 

마블 덕후들에게는 아쉽게도(?) 엑스맨과 MCU 관련 내용은 책 전체 중 두 챕터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MCU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책은 그 점이 진입장벽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국내외 유명 영화, 만화, 소설 등 주제가 다양해서 특정 챕터에서 다루는 주제는 잘 모른다 할지라도 

다른 부분에서는 충분하게 자신이 아는 주제를 즐겁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러한 책들은 각 챕터별로 독립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중간중간 흥미가 가는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이 책은 나름 저자가 순서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는 것이 읽다보면 느껴진다.


책 전체를 어 보자면, 1장에서는 공룡을 시작으로 동물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생물의 멸종을 다루고, 식물의 진화 이야기인 GMO 농산물로 2장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2장에서는 기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하고 있는데, 

신체적 장애, 암, 뇌질환 등 각종 질병에 대처하는 기술력의 발전과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치료 방법, 연구 성과 등을 알려준 뒤 

마지막으로 냉동인간이라는 주제로 넘어가 그 질환들의 해결 방법이 과연 냉동인간일 수 있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이어 3장에서는 그렇다면 과연 기술력이 인체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AI와 로봇으로 넘어가고, 

마지막 4장에서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디까지 도달 가능한지를 다루고 있다. 

굉장히 방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흐름이 꽤나 자연스럽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처음부터 쭉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거기에 각 주제에 맞는 대중문화 속 코드와도 연결하고 있어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독자에 따라서는 300페이지 정도로 일반적인 책 두께에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 깊이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문돌이인 내 입장에서는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거나 너무 쉬워서 싱겁다는 느낌 없이 

딱 적당히 호기심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껏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홀의 존재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실제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여러 추측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린 전파망원경을 통해 블랙홀과 그 주변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중략-

그 관측을 통해 우리는 또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우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늘려주지만 새로운 지식은 또 다른 의문으로 다가온다. (pg 318)


과학의 발전은 다양한 제품들로 실현되어 우리 삶의 물질적인 측면도 높여 준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호기심과 새로운 시각도 갖게 해줌으로써 삶의 정신적인 측면도 높여주는 것 같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일반적인 대중들도 마블 영화에 나오는 양자역학이 무슨 주제를 이야기하는지 정도는 떠들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중 문화도 더 다양한 호기심으로 더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될까?

난 앞으로도 계속 SF 관련 문화 컨텐츠들을 좋아하게 될 모양이다. 


기억에 남았던 인상깊은 구절들: 

야생밀은 아직도 메소포타미아나 터키 등의 지역에서 발견된다.

애초에 야생 상태였으니 지금껏 다른 종과의 싸움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벼농사나 밀농사를 짓는 농촌으로 가보자.

논이나 밭 바로 옆의 들이나 산에서 과연 밀이나 벼를 볼 수 있을까?

좀처럼 볼 수 없다. 인간의 손을 벗어난 지역에서 이들은 어떤 경쟁력도 가지지 못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pg 101)


우리나라 농가는 외국 농가와 달리 뭔가 특별한 방법으로 사육을 하기 때문에 돼지의 품질이 더 좋은 걸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우리나라 돼지, 즉 한돈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이전부터 먹어와서 익숙한 품종이라는 점,

같은 나라 사람이 기른 것이라는 점 외에는 없다. (pg 108)


한마디로 머리를 써야 하는 노동은 인공지능이, 몸을 쓰거나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은 로봇이,

힘들고 위험하며 보상도 적은 일자리는 노인층과 외국인이 메우면서 오늘도 '고용 없는 성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pg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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