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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은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을까? - 대중문화 속 과학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ㅣ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3
박재용 지음 / 애플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만약 아주 우연히 외계 지성체의 신호를 포착하고 아주 운 좋게 그 의미까지 알아낸다 하더라도
그저 '아, 우주에 우리 말고 누군가가 또 있구나'라고 아는 정도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외로움은 역으로 지구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로운 우주에서 우리 지구상의 존재들만이라도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pg 298)
최근 들어 과학이라는 주제에 쉽게 접근하고자 하는 책을 몇 권 읽고 있다.
여태껏 문돌이로만 살아온 내가 과학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 계기는 역시나 영화, 소설 등 SF 관련 문화 컨텐츠들일 것이다.
특히 마블과 DC 등 현재 컨텐츠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유명 프렌차이즈는 물론이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들이나 은하영웅전설 등 우주를 다룬 작품들도 워낙 좋아해서 그 속에 담긴 과학적 사실들도 알고 싶어졌다.
이 책 역시도 대중문화 속 익숙한 주제들로 과학적 지식들을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엑스맨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고 울버린의 실루엣이 눈길을 사로 잡지만,
마블 덕후들에게는 아쉽게도(?) 엑스맨과 MCU 관련 내용은 책 전체 중 두 챕터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MCU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책은 그 점이 진입장벽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국내외 유명 영화, 만화, 소설 등 주제가 다양해서 특정 챕터에서 다루는 주제는 잘 모른다 할지라도
다른 부분에서는 충분하게 자신이 아는 주제를 즐겁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러한 책들은 각 챕터별로 독립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중간중간 흥미가 가는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이 책은 나름 저자가 순서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는 것이 읽다보면 느껴진다.
책 전체를 훑어 보자면, 1장에서는 공룡을 시작으로 동물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생물의 멸종을 다루고, 식물의 진화 이야기인 GMO 농산물로 2장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2장에서는 기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하고 있는데,
신체적 장애, 암, 뇌질환 등 각종 질병에 대처하는 기술력의 발전과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치료 방법, 연구 성과 등을 알려준 뒤
마지막으로 냉동인간이라는 주제로 넘어가 그 질환들의 해결 방법이 과연 냉동인간일 수 있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이어 3장에서는 그렇다면 과연 기술력이 인체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AI와 로봇으로 넘어가고,
마지막 4장에서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디까지 도달 가능한지를 다루고 있다.
굉장히 방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흐름이 꽤나 자연스럽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처음부터 쭉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거기에 각 주제에 맞는 대중문화 속 코드와도 연결하고 있어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독자에 따라서는 300페이지 정도로 일반적인 책 두께에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 깊이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문돌이인 내 입장에서는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거나 너무 쉬워서 싱겁다는 느낌 없이
딱 적당히 호기심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껏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블랙홀의 존재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실제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여러 추측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린 전파망원경을 통해 블랙홀과 그 주변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중략-
그 관측을 통해 우리는 또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우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늘려주지만 새로운 지식은 또 다른 의문으로 다가온다. (pg 318)
과학의 발전은 다양한 제품들로 실현되어 우리 삶의 물질적인 측면도 높여 준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호기심과 새로운 시각도 갖게 해줌으로써 삶의 정신적인 측면도 높여주는 것 같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일반적인 대중들도 마블 영화에 나오는 양자역학이 무슨 주제를 이야기하는지 정도는 떠들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중 문화도 더 다양한 호기심으로 더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될까?
난 앞으로도 계속 SF 관련 문화 컨텐츠들을 좋아하게 될 모양이다.
기억에 남았던 인상깊은 구절들:
야생밀은 아직도 메소포타미아나 터키 등의 지역에서 발견된다.
애초에 야생 상태였으니 지금껏 다른 종과의 싸움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벼농사나 밀농사를 짓는 농촌으로 가보자.
논이나 밭 바로 옆의 들이나 산에서 과연 밀이나 벼를 볼 수 있을까?
좀처럼 볼 수 없다. 인간의 손을 벗어난 지역에서 이들은 어떤 경쟁력도 가지지 못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pg 101)
우리나라 농가는 외국 농가와 달리 뭔가 특별한 방법으로 사육을 하기 때문에 돼지의 품질이 더 좋은 걸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우리나라 돼지, 즉 한돈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이전부터 먹어와서 익숙한 품종이라는 점,
같은 나라 사람이 기른 것이라는 점 외에는 없다. (pg 108)
한마디로 머리를 써야 하는 노동은 인공지능이, 몸을 쓰거나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은 로봇이,
힘들고 위험하며 보상도 적은 일자리는 노인층과 외국인이 메우면서 오늘도 '고용 없는 성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pg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