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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평점 :
언제부턴가 대학 입시가 끝나면 상위권 주요 대학 입학자들의 소득 분위에 대한 기사가 매년 뜨고 있다.
기사의 핵심은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학업 성과와 직결된다는 내용이다.
가장 최근에 뜬 기사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올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3곳 대학 신입생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1%가 고소득 가구의 자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용 출처 : 한겨레 2020-10-12일자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65412.html)
여기에서 말하는 고소득 가구란 국가장학금 지급 시 고려하는 소득분위 중 9-10분위를 의미하는데,
이 표에 따르면 월 소득 약 1천만원 이상인 가구를 의미한다.
맞벌이 부부라면 각각이 연봉 6천만원 이상, 외벌이라면 최소 1억 2천 이상의 연봉을 받아야 달성할 수 있는 소득분위라고 보면 된다.
(즉, 연봉 1억짜리 외벌이 집안이라 하더라도 저 기준에서는 고소득 가구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학생들이 모이는 S.K.Y 3개 대학만 조사해도 위와 같은 수치가 나온다고 한다.
혹자는 이런 결과의 원인으로 학생부 종합전형을 꼽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편협한 시각이다.
실제로 학종은 쪽집게 과외를 통해 수능에서 따라갈 수 없는 격차를 보일 수 있었던 고소득층 자녀와
일반 학생들이 경쟁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능으로만 선발하던 시절에도 부모 소득에 따른 성적 격차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계속 수능을 통한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정답은 바로 '공정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 때문이다.
실제로 수능 역시 사교육에 큰 비용을 투입할 수 있는 집안의 아이일수록 유리하다는 것이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수'라는 객관적인 지표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더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을 잘 지적한 책이 나왔다.
그것도 우리나라가 늘 비교하고 싶어하는 대상인 미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서 소득 불평등 심화,
특히 중산층 해체라는 큰 변화에 직면해 있음을 지적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를 '능력주의'라는 것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과거에 토지 기반, 핏줄 기반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노동과 소득이 분리되어 있었다.
상류층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부유할 수 있었고 수탈의 대상인 노동계층은 생존에 필요한 소득 정도만 지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사회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토지와 핏줄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되기 시작했고,
타인의 노동력을 온전히 수탈하는 존재였던 상류층은 고급 지식과 스킬로 무장한 '노동하는 엘리트'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막대한 소득을 올린 이들은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이 다시 엘리트로서 기능하게 함으로써
과거의 신분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능력주의가 대두되면서 엘리트들의 성과가 온전히 개인의 성취로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획득한 학위나 각종 자격들은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해서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바로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부자들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피해는 누가 보는가?
특이하게도 저자는 전 계층이 모두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최빈층은 소득이 올라갈 기회가 점점 더 없어지는 셈이므로 피해를 보는 것이 당연하게 예상된다.
중산층 역시 마찬가지다.
엘리트의 막대한 교육 투자는 성과를 낳는다.
현재 부유한 학생과 가난한 학생의 학업 격차는 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소송의 판결을 내린 1954년의 흑백 학생 간
격차보다 더 크다. (중략)
교육 불평등은 부유층과 저소득층을 갈라놓을 뿐 아니라 갈수록 부유층과 중산층 사이에도 장벽을 만드는 추세다.
예를 들어 현재 부유층 어린이와 중산층 어린이의 학업 성과 격차는
중산층 어린이와 저소득층 어린이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크다. (pg 82-83)
결국 '능력주의'가 주장했던 능력에 따른 계층 상승의 기회라는 것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평균 소득은 계속해서 오르지만 이것이 상위 1%이하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소득 증가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크다.
당연히 평균소득의 상승으로 인해 중산층도 절대적인 수준에서는 과거보다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절대적인 수준에서의 경제적 환경 변화가 아니라 과거에 비해 계층간 이동이 과연 증가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산층의 상위 계층으로의 유입은 더 어려워지고 빈곤층으로의 전락은 더 쉬워지고 있다.
모든 경제부문을 통틀어 혁신 때문에 중산층 직종이 소수의 폼 나는 직종과 대다수 암울한 직종에 밀려나고 있다. (중략)
1975년 이후 상위 1%의 소득이 3배 증가하는 동안 중위 실질 소득은 고작 10분의 1 정도 늘어났으며
2000년 이후 중위 소득은 사실상 정체된 상태다. (pg 79)
남들이 사는 부유한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기보다 내가 사는 가난한 사회의 중심에 서야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략)
능력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시대에 뒤처질 뿐 아니라 퇴행하는 것이며, 성장보다는 유지에 전력하고
인정사정없이 뒤떨어지는 생활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pg 87-88)
여기에서 말하는 '폼 나는' 직종이란 주로 금융, 의료, 법조, 정보기술 쪽에서 일하는 엘리트들로서 연봉 10억대 정도를 예시로 들고 있다.
문제는 능력주의의 추구로 인해 엘리트간의 세습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엘리트 계층은 온전한 수혜자여야 할텐데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능력주의의 문제점이다.
과거의 지주들과는 달리 현재의 엘리트는 누구보다도 과도한 업무량과 막대한 책임감을 떠안고 있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금전적인 보상은 매우 큰 것이지만 실상은 번 돈을 쓰면서 쉴 여유시간조차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게다가 엘리트들이 사회 혁신의 고도화를 이룩하면 할수록 중산층의 직업은 더욱 더 사라져가므로
엘리트의 자녀들 역시 실패하면 중산층의 직업으로 살아가기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엘리트의 자녀들은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더욱 문제는 그런 삶이 마치 성공한 삶인양 포장되고 그러한 경제적 대가가 따르지 않은 삶은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적 분위기에 있으며 이는 '공정함'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이처럼 부모의 경제력이 우수한 학업 성적과 명문대 입학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과연 '정당한 결과인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것도, 우수한 사교육을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사 외모도 경쟁력이고 실력이라며 성형수술이 권장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문제점은 비교적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지만 역시나 사회문제라는 것은 해결책이 너무도 어렵다.
저자도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주고는 있지만 미국과의 현실 차이 때문일지 나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서 녹을 먹고 있는 입장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입학정원의 상당 부분을 차상위계층에게 할당하는 제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기회균등전형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그 비율이 아주 적은 편인데다, 이 전형을 둘러싼 잡음이 굉장히 많다.
심지어는 이 전형으로 온 학생들을 '기균충'이라고 부르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가난한게 벼슬이냐는 글이 에브리타임에 올라온다. 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검색해보라.)
이 전형의 비중을 늘린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찬성하지만 글쎄...대학들이 엘리트 주의의 선봉장인 언론의 공격을 이겨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길게 쓴 감이 없진 않지만, 책 자체가 500여 페이지로 두꺼운 편이고 내용도 마냥 쉬운 것이 아니어서 정리하기가 다소 까다로웠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이 온전히 일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실 분석 측면에서는 대체로 수긍이 가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은 부모의 노동소득을 교육에 투자하여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이 노동소득 증가폭을 아득히 상회하는 불로소득의 상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드래곤도 훌륭한 대학, 대학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재드래곤과 같은 교육을 받은 일반인이 삼성 회장이 될 수는 없듯이
엘리트들의 교육 세습 역시 자신들의 재산 세습을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같은 것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내 자식이라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뛰어나기 때문에' 물려주는 것이라고 포장하기 위해서라는 의미이다.)
당장에 각 국가별로 자수성가한 부자의 비율을 조사한 인터넷 자료들만 보아도 우리와 미국은 그 격차가 상당한데,
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교육기회 자체가 박탈되고 있다면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까지 고학력자들이 많을 수가 없다.
박사 학위를 들고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사람들도 많은 사회에서 엘리트들의 교육세습이 지금처럼 큰 빈부격차를 만들어내는
주요 요인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저자가 제시한 방안 중 우수 명문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등의 주장도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당장에 의사 수가 모자란다고 정원을 늘리려고 했을 때 의사협회가 했던 반응만 보아도 얼마나 말도 안되는 주장인지 잘 알 수 있다.)
'이 정도 하면 엘리트들도 이 정도는 양보하겠지' 정도의 생각은 엘리트 개개인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엘리트 '집단'으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신들이 획득한 특권을 조금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인식 자체는 매우 의미가 있었다.
능력주의라는 것이 공정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능력주의의 최고 수혜자인 엘리트들 역시
능력주의가 자신의 삶을 끝없는 경쟁 속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려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