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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가키야 미우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3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통장을 각자 관리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부부라도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결혼이란 무엇일까?
부모 대리 맞선을 시작한 후, 지카코가 몇 번이나 생각하게 된 문제다.
'둘 다 각자의 개성이나 인생의 목표를 양보하지 않고, 부부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아마 이쯤 되겠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pg 326)
가키야 미우라는 작가의 책을 세 번째 만났다.
처음 접한 작품은 정말 좋았고 두 번째 작품은 적잖이 실망스러웠어서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역시나 소재 자체를 참 잘뽑는다 싶은데, 이번에는 결혼하지 못한 자식들을 위해 결혼 시장에 뛰어드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이전 작품인'70세 사망법안, 가결'에서도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이슈를 던지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도 해당 이슈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의 결혼률 저하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듯 싶다.
28세라는 요즘 기준으로는 아직 한창 때인 딸을 둔 중년의 엄마가 주인공이다.
친구의 자식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축하는 커녕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던 참에 중국에서 결혼 적령기의 자식을 가진
부모들끼리 대신 맞선을 보는 행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검색해 보니 그런 자리가 일본에서도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참가를 결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일단 소재 자체가 주는 궁금증이 컸다.
자식들이 결혼하기 위해 부모가 먼저 서로의 조건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것.
상투 트는 시절도 아닌데 배우자를 부모가 골라준다는 것이 얼핏 매우 황당한 일 같지만,
대학생 수강신청도 부모가 해준다는 요즘 세태를 보고 있자면 일면 수요가 있을 법도 하다.
한국에도 있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내가 찾은 바로는 국내에는 아직 없는 모양이다. (내가 못찾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에는 실제로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069622&plink=ORI&cooper=NAVER)
얼마나 활성화 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뉴스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일정 정도의 수요가 있긴 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자식이 얼마나 못났으면 배우자감도 부모가 골라줘야 하나 싶은 선입견이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나이도 잊고 살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 세대가 미리 선 상대방을 구하러 다니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국의 문화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소재 자체는 동양 문화권이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닌 집안 대 집안이 만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만
이 소재 자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 주체가 당사자이건 부모이건 간에 맞선이라는 형식은 언제나 그렇듯 조건에서 시작한다.
기업에서의 채용 과정처럼 서류로 상대를 먼저 판단한다.
저 사람이 내 자식과 소위 '끕'이 맞는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서로의 서류전형을 통과한 자들에게는 만남의 기회가 부여되지만 그 만남 역시 상대가 나와 맞을지, 부모들은 얼마나 자식에게
관여하는지, 집안의 재력은 어떠한지 등등 계속해서 상대와 나를 저울질해야 하는 복잡하고 첨예한 자리다.
그 치열한 눈치 싸움에서의 패배는 자식은 물론 부모의 자존감에도 상처를 입힌다.
연애는 나이도 돈도 사는 곳도 가족관계도 모두 뛰어넘는다.
이런 세세한 것은 안중에도 없게 만든다.
주변에서 반대하든 콩깍지가 씌었다고 말하든 방해물을 모두 물리치고 두 사람의 세계로 나아간다.
냉철함이 결여된 병적인 상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좀처럼 결혼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pg 188-189)
그 때 문득 구글맵에서 본, 절인가 신사인가 싶게 녹음으로 둘러싸여 있던 저택이 떠올랐다.
그게 몇 번째 맞선이었더라.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사립학교를 다닌 사람이었다.
그 위성사진을 보며 남편은 질투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남자는 누구나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동물인가 생각하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도 같은 사람이었다. (pg 298)
저자는 딸의 결혼 조건을 따지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자식을 둔 한 엄마의 심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 시장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류 전형 통과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에게는 너무도 귀한 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매력적인 결혼 상대자는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며 안심한다.
매력적인 외모에 훌륭한 커리어와 집안을 가진 사람은 그런 사람들끼리 이어지게 된다.
신데렐라 스토리도, 바보온달 스토리도 현실적으로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듯, 친구나 친척들 모두 비슷하게 살아왔다.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른 계층과는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그렇게 격차는 굳어지고 점점 더 벌어지는 게 아닐까. (pg 293)
그러면서 천천히 자신의 딸이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결혼 생활을 하면 좋을지를 찾아가게 된다.
통장을 각자 관리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부부라도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결혼이란 무엇일까?
부모 대리 맞선을 시작한 후, 지카코가 몇 번이나 생각하게 된 문제다.
'둘 다 각자의 개성이나 인생의 목표를 양보하지 않고, 부부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아마 이쯤 되겠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pg 326)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책이 세 번째인데 앞서 읽은 두 작품과는 비슷한 듯 좀 다른 느낌의 작품이었다.
이전에 경험한 책들이 결말 부분에서 다소 힘이 빠지거나 이해가 잘 안되는 마무리를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끝까지 매끄럽게 호흡이 이어지는 느낌이었고 결말도 이해되는 수준에서 잘 마무리된 것 같다.
저자 특유의 가볍지만 인상적인 문장들도 많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는 신속한 내용 전개도 좋았다.
인물명이나 지명을 제외하면 이 작품이 원래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였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번역 상태도 훌륭했다.
이전 작품들처럼 페미니즘에 입각한 표현이 꽤 많이 등장하는 편이지만 일반론적인 내용이고 개연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읽기에도 편안했다.
다만 이 작품은 전에 접한 작품들처럼 작가의 문제의식이 명확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책을 덮으면서 작가가 '이 사회의 이런 부분이 문제다'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구나 하는 것이 확 느껴졌었다.
반면 이 작품은 그래서 조건을 따지는 결혼이 나쁘다는 것인지, 어떤 결혼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인지,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관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일부러 놓아 둔 느낌이다.
자식의 배우자를 골라주는 부모도, 그걸 수용하는 자식도 그렇게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꼽자면 지금도 며느리나 사위감을 볼 때 상당히 구시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정도였다.
남자와 여자, 인생은 그런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평등하다고 헌법에 적혀 있지만,
이성으로부터의 인기에 대해서 만큼은 통하지 않는 말 같다. (pg 339)
이미 결혼한 사람으로서는 남일 같아서 그런지 그저 재미있는 스토리로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미혼인 사람들이 읽으면 속이 답답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짝을 만날 수도 있을테고 이런 저런 상처만 받다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결혼도 선택의 영역이니 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까지 목숨 걸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다만 이솝우화 중 여우의 신 포도 이야기처럼 몇 번의 실패 때문에 '남자는 다 그래', '여자는 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미래의 기회도 스스로 차단하는 짓만 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비문학에 비해 문학 작품을 즐겨보지 않는 편이라 한 작가의 책을 세 권 이상 보는 것도 흔치 않은데,
소재의 발굴이나 줄거리를 풀어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재미가 보장되는 편인지라 계속 접하게 되는 것 같다.
확실히 작가가 중년 여성이어서 그런지 소설 속 화자도 중년 여성일 경우 몰입도가 크게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에는 무슨 소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줄 지 기대가 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