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우연하고 경이로운 지적 탐구 서가명강 시리즈 37
천명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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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여러 학문들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서가명강' 시리즈 중 하나로 이 책에서는 '인간동물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이면 인간이고 동물이면 동물이지 인간동물학은 또 뭔가 싶었는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고찰하고 인류와 동물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동물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최근의 식단에서 육류가 포함되지 않은 적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태초부터 동물을 섭취하도록 진화한 우리는 점차 동물의 노동력도 이용하게 되었고, 동물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게 되자 동물을 한 식구처럼 집 안에서 돌보게 되었다.

이처럼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주로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쓰느냐, 즉 동물의 쓰임 위주로 생각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매우 상황적이고 맥락적이다.

그래서 종 차이를 기반으로 인간종과 동물종을 나누어 일반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종의 전체적인 특성 외에 어떤 한 인간과 어떤 동물 개체 간의

개별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pg 48)

즉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를 단순히 주인과 반려동물로만 설정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길고양이의 경우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불쾌한 동물일 수도 있고, 들고양이의 경우 멸종 위기종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는 무자비한 포식자로 비추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인간과 동물을 굳이 종이나 쓰임으로 구별하지 말고 같은 생명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이 동물 복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분절된 관계 안에서 우리는 동물을 존재 그대로 보기보다는

기능과 필요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현대 사회에서 동물의 물건화와 상품화는 가속될 수밖에 없다.

(pg 125)

과거에 비하면 동물 복지에 대한 시각이 꽤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개 패듯 한다'라는 관용구가 있을 정도로 개는 화풀이의 대명사 격이었지만 요즘 함부로 개를 때렸다가는 인터넷 여론을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

마트에만 가도 '동물 복지'라는 단어가 붙은 축산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비용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동물을 괴롭게 하면서 생산되는 축산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점차 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물론 동물 복지라는 것이 인간의 먹고사는 일에 우선하기는 어렵다.

저자 역시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된 국가일수록 동물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는 도시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동물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도시는 동물의 본성과 어긋나는 지점이 너무 많아 동물에게 온전히 행복한 환경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반대한다.)

동물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기에 동물에 대한 폭력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도 공감이 된다.

다만 워낙 개론적인 내용뿐이어서 어떤 방향으로 동물 복지가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생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물론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일독할 가치가 충분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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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이타주의자 -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앞서가는 사람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장혜경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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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뭔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주제의 자기개발서 같은 제목이지만 인류가 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자연과학 책이다.

저자는 생물물리학자로서 인류가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발달시키게 된 이유를 과학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사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신의 생존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의 유전자 역시 우리를 통해 지속되는 불멸의 꿈을 꾸기 때문에 유전자 수준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하도록 우리의 정신과 행동을 통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인류가 보여주는 다양한 이타적 행동들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고, 진화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사회화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진화는 사회의 진화와 더불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의 이타성 또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차근차근 논증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단순한 협동과 이타성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협동은 그저 단일 개체로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다른 개체들과 함께함으로써 이뤄내고 그 결실을 나눠갖는 과정이다.

동물 수준에서도 이러한 협동의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그 결과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체에게 긍정적이라면 그 행동은 강화되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물론 협동의 결과가 정의롭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동물 수준에서는 사냥에 지대한 공을 세운 개체가 먹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다른 개체들이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협동은 얼마든지 진화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타성은 다르다.

인류는 때론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는 수준에서까지 타인을 돕는, 심지어는 인간도 아닌 다른 동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행동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동물들은 먹이를 먹을 때 그 먹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될 동물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타성은 분명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만의 특징임에 틀림없다.

이타주의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학술적 정의에 따르면 타인을 위해 아주 사소한 이익을 포기하기만 해도

이미 이타적인 행동이다.

(pg 28)

저자는 먼저 인류가 보여주는 이타적인 특성이 문화권에 구예받지 않고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이타성이 사회화의 산물이라면 이렇게 보편적으로, 동시대적으로 발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는 어떻게 이타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을까?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은 물론 뇌일 것이다.

우리는 뇌의 발달로 우리의 사고력이나 창조력과 같은 이성적인 측면만 발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성적인 측면도 함께 발달했다.

처음에는 협동으로 시작한 공동체 생활에서 점차 이타성이 발현하기 시작한 데에는 노인과 어린아이, 사냥 중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을 돕기 위한 과정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개체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과 생활하면서 언제든지 치명적으로 다칠 수 있다는 위험을 깨닫게 되면서 그러한 행동들을 장려하는 문화도 생겨났을 것이다.

그렇다는 의미는, 타인의 고통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잘 배려할 줄 아는 개체가 결국 성 선택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 진화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빠르게, 쉽게 타인과 협력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 중략 -

친절과 온순, 봉사정신 같은 성격적 특성들이 탄생한 이유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진화의 경쟁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pg 159)

이 과정에서 인류는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이기적인 개체를 본능적인 수준에서 꺼리는 경향도 함께 발달시키게 되었다.

특히 공동체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기적인 개체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없다면 공동체 자체가 와해되기 쉽다는 실험 결과는 우리의 현대 사회에서 준법정신으로 대표되는 시민의식이 왜 중요한지를 상기시켜 준다. (이기적인 개체가 많은 집단일수록 공동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때문에 집단 간의 갈등에서 도태되기 쉽다는 논리적인 귀결에 이르게 된다.)

타인을 위해 얼마나 헌신할지는 감정이입보다는 타인의 목적과 동기를 해석하는

능력에 달렸다. 이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타인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은 이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항상 자기 이익만 따지는 것은 정서적 편협함을 넘어 정신적 편협함의 한 형태인 것이다.

(pg 121)

몇 년 전부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지능이 낮은 것이다'라는 개념이 인터넷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단순히 지능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진화 자체가 덜 된 것이라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진화된 현 인류는 기술 발전이 거듭되면서 처음 내집단 사이에서만 발현되던 이타심의 경계를 전 세계 범위로 넓혀가고 있다.

비단 마이클 잭슨의 노래 가사에서뿐 아니라 지구 어느 한 곳에서 재앙이 일어나면 전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을 내밀어 기꺼이 자신의 몫을 나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국경을 넘어 서로 나누며 살고 있다.

여러 문화와 대륙이 함께 성장하기에, 먼 거리는 이미 의미를 잃었기에,

지식이 가장 값진 생산재가 될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런 세상에서 제 잇속 차리기에 바쁜 사람은 분명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pg 340)

저자의 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이후로 두 번째 접하게 되었는데, 이번 책 역시 과학적 사실들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면서도 양질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다만 검수의 문제인지 비문이나 오타가 꽤 많이 보이는데, 차기 판본에서는 보다 세심한 검수를 기대해 본다. (인터넷 서점을 보면 나 말고도 이 부분을 지적한 리뷰가 있으므로 꼭 검수를 다시 해서 이 좋은 내용의 책이 단순한 편집 실수 때문에 외면받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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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어드벤처 후르티디노 1 - 상식 탄탄 코믹학습북 호기심 어드벤처 후르티디노 1
김강현 글, 김기수 그림, 정효해 감수 / 서울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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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은 학습만화를 정말 좋아한다.

예전에는 맨날 만화책만 보는 것 같아서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워낙 쉽기 때문에 액정 쳐다보는 것보다야 낫겠지 싶어 요즘은 별 잔소리를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학습만화라면 일반적인 만화책보다는 조각 지식이라도 하나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장려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학습만화가 나와서 아이와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후르티디노'라는 익숙한 듯 생소한 단어가 있는데, 아래에 등장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바로 후르티디노다.

단어 그대로 과일과 공룡을 조합한 것처럼 생겼는데 실제로 과일이 자라나는 것이어서 배고플 때 뜯어서 먹을 수도 있고 곧바로 다시 자라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셋만 등장하는데 말이 통하는 다른 친구들을 찾고 싶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산 넘고 물 건너 모험을 이어가던 그들은 '탄탄'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후르티디노는 인간을 처음 만나는 것이어서 신기해하고 '탄탄'은 후르티디노들이 마을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함께 길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중간 '탄탄의 호기심 탐구 일지'라는 코너가 있어서 조그만 자연과학 지식들을 전달해 준다.

이야기 위주여서 지식을 전달하는 부분의 비중은 적은 편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우정을 강조하는 따뜻한 이야기여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바다를 건너는 중에 배가 고파지자 탄탄이 물고기를 잡아오는데 잡은 물고기가 눈물을 흘리자 몰래 놔주기도 하는 등 아이들 책답게 폭력성이 극히 적어서 마음에 들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서로 힘을 합쳐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극복해가는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한 학습만화라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한 번쯤 호기심을 가져봄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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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장강명 지음 / 아작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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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여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책은 총 10개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소설집인데 이 중 4개의 작품이 보다 최근에 나온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라는 책에도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10개 중 4개면 중복돼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싶을 수 있겠지만 이 네 작품이 다른 작품들보다 길이가 길어서 비중으로는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물론 단어 하나하나 비교한 것은 아니나, 아무래도 최근 판본에 문장이라도 한 번 더 손봐서 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되도록이면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읽는 것이 좋아 보인다.

(중복작품: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당신은 뜨거운 별에, 아스타틴, 데이터 시대의 사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서평: https://blog.naver.com/rssun_books/223202872191)

읽은 순서가 뒤바뀐 탓에 중복되지 않는 다른 작품들을 읽은 소감만 남겨보려 한다.

책의 시작을 여는 '정시에 복용하십시오'는 마지막 작품인 '데이터 시대의 사랑'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두 작품 모두 발달된 과학기술이 남녀 간의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상상해 본 작품이기 때문이다.

후자가 빅데이터를 통한 행동 예측이 주제라면, 전자는 호르몬 분비를 제어하는 약물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둘 다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성선택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흥미롭게 상상하고 있어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표제작은 표제작이기도 하고, 소재 자체도 굉장히 좋아하는 소재라 기대를 했었는데 길이가 10페이지도 안 될 정도로 너무 짧아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지도 못한 채 끝이 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 다소 아쉬웠다.

'여신을 사랑한다는 것',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알골' 등의 작품도 소재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지만 역시나 길이가 짧으니 충분한 서사를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전에 읽은 책과 중복되지 않는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센서스 코무니스'라는 작품이었다.

개인의 뇌파를 측정해 순간적인 호불호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가 개발되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이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이런 소재를 저자 본인의 경험담인 것처럼 풀어내고 있어서 사실성을 더해준다.

실제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클릭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이동하는 모든 정보를 누군가는 악착같이 수집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런 정보를 이용한 광고로 우리의 행동을 조작하고 돈을 벌고 있다.

이 기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의미다.

이전에 읽은 책과 중복되는 작품이 많아 금세 읽은 책이지만 저자의 단편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저자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 저자의 이름이 박힌 책들은 일단 집어 들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실망스러운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어서 빨리 과거의 작품들을 읽어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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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왕 - 정보라 소설집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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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여

저자의 연작소설을 한 편 접하고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던 기억이 나서 도서관에 들른 김에 저자의 다른 책을 들고 왔다.

이번 책은 단편집으로 총 다섯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목차를 보면 8개로 보이지만 처음 세 작품이 하나의 이야기라서 총 다섯 개다.

표제작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시작되는 세 챕터에 담긴 이야기부터 상당히 재미있다.

어릴 때부터 동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숱하게 봐왔던 불 뿜는 용이 지키는 탑, 갇힌 공주, 그리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떠난 기사의 이야기다.

옛날이야기들과 다른 점이라면 등장인물들의 신분을 제외한 전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용은 공주를 강제로 잡아가지 않았으며 공주는 스스로의 의지로 탑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기사는 공주가 아니라 팜므파탈인 왕비에게 반했고 그녀의 뜻에 따라 공주를 구하는 대신 죽이러 탑으로 떠난다.

우리가 알고 있을법한 클리셰들은 모두 비틀어 놓았고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 검과 마법이 공존하는 판타지의 설정은 유지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서사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절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워낙 재밌기 때문에 이 작품만 읽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어지는 '사막의 빛'에서는 옛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이종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융화하는 이야기를 판타지 요소를 섞어 담아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중동은 잔혹한 테러리트스들의 땅이라는 생각이 절대적인데, 저자는 실제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곳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활력 넘치는 곳이라는 것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후반부까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어가다 따뜻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작품이어서 읽고난 감상이 좋았다.

"정말로 기적이라는 게 있을까?" 이야기를 마친 후에 소녀가 물었다.

"너의 신과 나의 신과 저 상인들의 신은 모두 같은 신일까,

아니면 세상에는 나라와 부족의 수만큼 여러 신들이 있는걸까?"

(pg 158, '사막의 빛' 中)

표제작인 '여자들의 왕'과 이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는 권력의 중심에 위치한 여성들의 강인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성들도 육체적, 군사적인 강인함으로 권력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정리하면 또 페미니즘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이 '제목만 봐도 그럴 줄 알았다'라며 폄훼할 것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악역도 여성이고, 굳이 성별을 따지지 않더라도 서사 자체의 재미가 출중하며, 저자의 문장들이 특히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므로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그러하듯이 시간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공정하다.

헛되고 헛되지 않고는 결국,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닌

전해 받는 사람이 결정할 몫이기 때문이다.

(pg 237,'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中)

마지막을 장식하는 '어두운 입맞춤'에서는 영화 박쥐의 '김옥빈'이 생각나는 한국식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이 현대의 한국이어서 그런지 이전까지의 작품이 현실성보다는 판타지성에 치우쳐져 있었다면, 이 작품은 뱀파이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꽤나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작품임에도 마지막 엔딩이 주는 여운까지 상당히 재미나게 읽었다.

이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도 성공적이었던 만큼 계속해서 저자의 작품 세계를 여행할 동기가 충분히 형성된 것 같다.

페미니즘의 정신은 물론이고 계급 간 갈등 같은 사회적 부조리까지 작품에 담아내면서도 소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서사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다.

집필 활동도 왕성히 하고 있어 읽을 책들은 넘쳐나기에 당분간은 계속해서 저자의 책과 함께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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