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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마동주 지음 / 닥터지킬 / 2023년 11월
평점 :
-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우리에게는 성실히 피땀 흘려 모은 전세금을 꿀꺽한 사기꾼이나 사람을 치어 죽인 음주운전자 등 법적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범죄자 유형들이 있다.
사람들마다 기준점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성폭행범, 특히 미성년자 성폭행범은 이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자들만을 노려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사법기관이 할 일을 대신해 준다며 환호할까? 아니면 법적으로는 살인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우려하게 될까?
특히나 요즘 강력 범죄에 대한 법의 심판이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는 영 탐탁지 못한 것도 사실이기에 사적 제재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보복도 심정적으로는 공감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그런 상상을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법한 사실적인 이야기로 옮겨두었다.
성폭행 피해로 가정이 파탄 난 한 남자가 성폭행범들을 노리는 연쇄살인범이 된다.
경찰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반 대중의 여론은 심상치 않다.
여느 스릴러물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들이 가질 법한 의문들을 초반에 다 펼쳐 보여줌으로써 사건의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읽으면서 사건 이면에 깔린 질문들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법은 과연 범죄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고 있는가?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처벌에 만족할 수 있는가?
법은 과연 피해자들의 편인가?
물론 사법기관 역시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인지라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고, 비슷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언론의 관심 유무에 따라 사건의 해결이 급물살을 타기도,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정의를 집행하는 사법기관이라면 가해자나 피해자의 재산이나 지위 고하가 판결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대전제를 부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묻는다.
우리 사회에 그런 정의가 과연 숨 쉬고 있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 역시 성범죄자는 다 죽어 마땅하다거나 사적 제재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억지 주장을 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사형과 사적 제재는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머리로는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으면서 속이 후련해지는 듯한 느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일단 범죄 스릴러물에서 범인을 부각하기 위해 경찰을 바보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민한 범인을 명민한 경찰이 추적하고 둘 다 아주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 실수들로 치명상을 입는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스토리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상당히 논란이 되겠지만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작품인 것 같아 언젠가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