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 불완전한 진화 아래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질서
앤디 돕슨 지음, 정미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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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표지에 마치 철학 책처럼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제목이지만 생각해 보면 폐호흡을 하는 고래가 물 밖에서 숨을 쉬는 것은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 당연한 사실에서 하나의 의문을 찾아낸다.

우리보다 훨씬 더 먼저 지구에 존재했던 고래는 왜 아직도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진화시키지 못했을까?

저자는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자연의 변화에 따라 '최적화되듯이' 진행되는 과정이 아님을 설명하고자 이 책을 썼다.

진화는 그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때마침 이점을 가질 수 있고 그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매우 느리고도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사례를 들어 진화가 일반적으로 보기에 생활에 더 불편한 방향으로, 심지어는 생존에도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선 진화가 필요에 따라 적응 형태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그 대신 자연 선택은 우연히 발생한 유용한 돌연변이만 선호할 수 있다.

어떤 형태에 대한 필요와 긴급성은 돌연변이의 채택과 개체군에 퍼지는 속도를

규정하긴 하겠지만, 애초에 적절한 돌연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돌연변이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생긴다.

(pg 78-79)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진화의 가장 대표적인 관계는 목숨/식사 원리라 부르는 법칙에 따르는 동물들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관계를 떠올리면 되는데, 육식동물의 경우 사냥에 실패하면 그저 한 끼를 굶을 뿐이지만 초식동물은 한 번 도망에 실패하면 그 즉시 목숨을 잃게 된다.

따라서 진화에 대한 압박이 더 강한 쪽은 언제나 초식동물이기에 초식동물의 진화 속도가 더 빠르고, 육식동물은 이 뒤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학 때문에 육식동물의 사냥법이 아무리 발달해도 초식동물들이 멸종하지 않고 공진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 생물들이 훨씬 더 많다.

탁란하는 새들부터 바이러스 같은 기생 생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례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성선택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공작새처럼 누가 봐도 생존에 불리할 것 같은 진화 형태를 보이는 생물들이 있다.

여기에도 재미난 법칙이 적용되는데,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종의 경우 암수 중 육아에 책임을 지지 않는 성별이 몸을 치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공작처럼 이런 경우는 주로 수컷들이지만, 드물게 암컷이 치장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수컷들이 알이나 새끼를 돌본다.

육아에 쓰일 에너지가 몸 치장으로 전환될 수 있어야지만 그런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외부환경의 변화가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를 축적할 시간보다 월등히 빠르다면 당연히 종 전체가 절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빠른 변화 중 상당수가 인간의 활동에 기인한다는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일 것이다.

책에서도 인간의 눈에 띈지 불과 27년 만에 절멸한 '스텔러바다소'의 사례가 등장한다.

모든 종은, 겉으로 봤을 때 번성하는 종이라도 결함을 갖고 있다.

그들은 단지 '그런대로 괜찮을' 뿐이며, 진화적 기벽, 태만, 서투른 솜씨 등

여러 잠재적 결함 중 하나 이상을 갖고 있다.

(pg 313)

게임이나 만화에서 '진화'라는 단어를 너무 극적인 형태로 사용하다 보니 흔히 진화라고 하면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라는, 가치가 포함된 단어라고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의 진화는 그저 축적된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특질이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했을 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을지 몰라도 현시점에서 볼 때엔 '왜 이렇게 불편하게 변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복잡한 적응은 아주 작은 단계들을 통해 서서히 진행되며, 그 각각의 단계는 점진적인

경로를 따라 적응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단계는 자연 선택에 의해 선호될 수 없고,

그에 따라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pg 335)

여러 생물을 통해 진화의 민낯을 보여주는 여정은 인류와 바이러스의 비교를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바이러스 역시 최대한의 증식이 목적이므로 숙주 안에서 계속 증식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너무 지나쳐 숙주가 죽어버리면 더 이상 다른 숙주로 이동할 기회를 잃어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손해인 경우가 있다.

숙주 없이는 바이러스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 충분히 증식하되 죽게 만들어서는 안되는데, 인간 역시 이러한 함정에 걸려들 수 있다고 저자는 엄숙히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바이러스, 지구가 숙주라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전반적으로 꽤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300페이지 후반으로 그리 얇지 않지만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사례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진화에 방향성이 없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았지만 다양한 생물들의 사례로 생생하게 진화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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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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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블로거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과제처럼 느껴지는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아서 세월이 좀 지난 문학 작품들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작품들에 손이 가려면 계기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새로운 판본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내용이 같다 하더라도 철 지난 폰트와 디자인의 책과 깔끔하고 산뜻한 신형 판본의 책은 독서 경험의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져온다.

그런 의미에서 거장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이 예쁜 표지로 재출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단 책을 펼 때 기분이 좋다.

옅은 녹색 계열로 표지는 물론이고 책배 부분까지 통일된 색채여서 눈이 편안하다.

폰트도 크고 간격도 넉넉해 40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은 책임에도 읽는데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부담으로 나가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가 픽션임을 반복하여 주장하긴 했으나, 저자의 개인적 역사가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사실상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조상 중 누군가는 필히 저자와 비슷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은 6.25 전쟁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 미군 PX에서 기념품용 초상화를 그려 판매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화자는 '이경'이라는 젊은 여성으로 미군들을 상대로 그림 의뢰를 받아 화가(책 속 표현으로는 '환쟁이')들에게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옥희도'라는 화가가 새로 들어오게 되고, 그녀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무언가 질적으로 다른, 그만의 고독을 품고 있는 듯한 그에게 끌리게 된다.

좀 전의 충족감이 포말처럼 꺼졌다. 나는 그에게서 소리 없이 밀려나 있었다.

침팬지와 옥희도와 나⋯⋯. 각각 제 나름의 차원이 다른 고독을,

서로 나눌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자기만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pg 87)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 작품이 정말 50여 년 전에 나온 작품이 맞는가, '이경'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50여 년 전의 여성 캐릭터가 맞는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쓰인 단어나 말투는 결코 요즘의 언어가 아니고, 다른 인물들의 생각 역시 구태의연한 옛날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주는 태도나 삶에 대한 자세, 특히나 탁월한 '어장관리' 능력(그녀는 유부남을 포함, 총 세 남성의 마음을 흔든다.) 등 요즘 MZ 세대라 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만큼 독특한 솔직함을 가진 캐릭터였다.

나는 내가 도저히 견제할 수 없는 여러 갈래의 많은 '나'의 제멋대로의

아우성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아우성들을 간추린다거나 억누를 생각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이

그 아우성들에게 나를 조금씩 나누며 빙빙 어지럽게 맴을 돌고 있을 뿐인 것이다.

(pg 201)

그녀가 보여주는 독특한 삶의 태도의 근원적인 이유는 중반 이후에나 드러나게 되지만 초반부터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살상 행위는 그 살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예리한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언제 사망자 대열에 합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살아남은 자 특유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좌절스러운 현실 속의 청춘으로서 그녀는 세상에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며 죽고 싶기도 하고 살고 싶기도 한 양가적인 감정들을 느낀다.

사실 우리 모두 누구나 조금씩은 '이렇게 살아 뭐 하나'라는 자아와 '그래도 열심히 살아 봐야지'라는 자아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살아간다.

전쟁은 그 모든 갈등을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바꿔놓을 뿐이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평화를 바라고 있지만 그렇게는 안 될걸.

전쟁은 누구에게나 재난을 골고루 나누어주고야 끝나리라.

절대로 나만을, 혁이나 욱이 오빠만을 억울하게 하지는 않으리라.

거의 광적이고 앙칼진 이런 열망과 또 문득 덮쳐오는 전쟁에 대한 유별난 공포.

나는 늘 이런 모순에 자신을 찢기고 시달려, 균형을 잃고 피곤했다.

(pg 49)

그러고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곧이어 살고 싶다로 고쳤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두 상반된 바람이 똑같이 치열해서 어느 쪽으로도 나를 처리할 수 없다.

(pg 225)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감정은 절망도, 희망도 아닌 권태의 감정이었다.

생존 이외의 가치는 전부 무의미한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시대,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그 안에 저마다의 권태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땐 맴을 돌고, 커가면 술을 배우고.

사람들은 원래가 똑바로 선 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

권태롭고 답답해 못 견디게 태어났나 봐."

(pg 380)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예상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물론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기억나진 않지만 예전에 줄거리 요약 따위를 읽었던 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강렬한 문장들을 눈으로 서서히 곱씹으면 배어나는 독특한 맛에 이끌려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제는 역사 저편으로 박제된 '옥희도'의 그림처럼 잊혀가는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 안의 인간적인 삶과 고뇌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도 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늦은 만남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작품을 만나게 되어 다행한 마음으로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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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구시키 리우 지음, 곽범신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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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정말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이미 영화화된 작품도 있는 유명 작가라는데 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라 기대가 되었다.

다 읽은 소감부터 말하자면 오늘 오전에 책장을 처음 넘겼는데 미칠듯한 몰입감으로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30년 전, 10살도 채 되지 않은 초등학생 두 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의 범인으로 두 명이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러던 중 범인 한 명이 병으로 사망하고, 30년 전에 신입 경찰이어서 서류 작업만 도왔던 호시노 세이지라는 은퇴한 경찰이 이 사건으로 잡힌 범인들이 실은 누명을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에 과거의 사건을 뒤쫓는 이야기다.

피해자들이 꽤 참혹하게 사망하는데 나 역시도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지라 소설 속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중간중간 진범이 범행 당시를 회상하는 내용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절로 나온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제발 고통과 절망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진범이 너무 나쁜 놈이어서 '이 새끼 언제 잡히나' 싶은 마음으로 계속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은퇴한 형사여서 사건을 조사해 봐야 이미 종료된 사건에 경찰이 다시 관심을 가질 리 없기 때문에 대학생인 손자와 손자 친구에게 부탁해 영상으로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는 전략을 택하는 전개가 참신했다.

스포 방지를 위해 결말을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으나 결말도 상당히 깔끔하다.

독자들이 원하는 대로 정의 구현도 제대로 되는 결말이라 찜찜하게 끝나지 않으니 안심하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 후속작의 범인이 될법한 인물의 떡밥도 마치 쿠키 영상처럼 제공하고 있어서 다음 작품을 기다려지게 만드는 점도 좋았다.

이런 작품들은 읽을 땐 재미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빨리 잊어버리는 편인데 이 작품은 워낙 진범이 쓰레기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뛰어난 미스터리 소설 작가를 또 한 명 알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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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민주주의 - 양극화 사회에서 정치의 자리
로버트 B. 탈리스 지음, 조계원 옮김 / 버니온더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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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의도적으로 정치, 사회 분야의 책들을 다소 멀리한 감이 있다.

내 정치적 성향과 맞는 책들은 이제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아서 재미가 없고, 내 정치적 성향과 반대되는 책들은 어차피 개소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테니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과 소개를 보는 순간 읽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았다.

대체 민주주의라는 것이 과할 수 있는 개념인가? 그리고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제목을 보면 직관적으로 '그래서 정치에 관심 끄고 사는 것이 좋다는 의미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텐데 이에 대한 답변부터 하자면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서두에서부터 책이 끝날 때까지 강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저자가 제목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이미 신념의 수준으로 상당 부분 체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최근의 양극화 현상이 더해져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양극화된 민주주의는 우리 편의 승리는 곧 상대의 패배를 의미한다.

성숙한 시민이라면 결과에 승복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배한 자들이 다음 선거까지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그리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우리 진영이 패배했을 때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어야 하고 그 목소리를 상대편에서는 경청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때문에 위협받는 민주주의의 현 상태이며 저자가 우려하고 있는바이다.

즉,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나와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들 역시 나와 동등한 시민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데, 갈수록 우리는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못 배운 사람들, 나라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 가짜 언론에 속아 넘어간 순진한 사람들'로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라는 승부 이후에는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비민주적인 상태만 남게 된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요약하면,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추구하고 있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가 고통받고 있다.

민주주의가 번영하는 데 필요한 다른 선/재화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실행될 때 과잉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사회적 환경 전체가 정치적 프로젝트, 충성심,

분열을 중심으로 구성되면, 우리는 동료 시민을 단순히 정치 행위자,

즉 정치적 목표를 위한 동맹자 또는 장애물로만 바라보게 된다.

(pg 34)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굉장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정치와 전혀 무관하다고 여기는 직장, 학교는 물론이고 사는 지역,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들까지도 정치적 입장에 따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정렬'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를 우리나라에 대입한다면 대구 출신에 '유니클로'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이 어떤 정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을까를 생각해 보면 저자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연구 결과들을 보면 우리는 우리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단순히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만' 해도 정치적 성향이 극단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는데, '메갈'이나 '일베'가 왜 그토록 극단적으로 보이는지도 이 경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포화된 사회 환경은 신념 양극화를 유도하고,

이는 다시 모든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를 낳는다.

이는 포화 상태를 강화해서, 신념 양극화와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이러한 역기능의 자기충족적 순환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격렬하게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을 닮아가고, 그들은 우리가 가진 왜곡된 이미지에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된다.

(pg 122)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좌우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먼저 스스로가 이러한 양극화에 취약하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해결을 위해 정치를 그저 정치의 위치에만 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왜곡하는 힘들에

우리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정치적] 포화도를

줄이려는 조치를 함으로써 양극화 역학을 깨뜨리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출발점이다.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입장의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회복하는 데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긴 후에

비정치적인 활동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중략 -

요컨대, 우리는 '당파적 입장을 넘어'서려는 시도 이상의 것을 해야 한다.

우리는 넘어설 게 없는 협력의 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

(pg 160)

제목도 그렇고 다루는 내용도 무거워서 막연하게 현학적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문장이 명쾌하고 책 전체적으로 저자가 자신의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초석부터 기둥, 지붕을 씌우는 느낌으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어 이해가 쉬운 편이다.

번역 역시 이 분야의 연구자여서 거슬림이 없으면서도 매우 깔끔하다.

본문만 180페이지 정도로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그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 있게 일독을 권할 수 있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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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야옹 상담소의 마송이 - 2024 문학나눔 선정도서 저학년 책장
정현혜 지음, 심보영 그림 / 오늘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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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를 키우는 아비로서의 유일한 관심사는 만화책만 보는 아이에게 다른 책들의 재미를 찾아주는 것이다.

물론 학습만화들이니 TV나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위로하는 편이기는 하나, 만화책이나 유튜브나 별 차이가 없다는 말도 많아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깊은 요즘이다.

물론 초등학생이 된지도 2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한 것은 아니지만 만화책만 보는 습관이 평생의 독서습관으로 이어질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그림과 소재를 가진 이야기책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간다.



이번에 아이와 함께 읽은 책은 기분이 좋으면 '코야옹'하고 우는 귀여운 고양이를 키우는 송이라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아이의 엄마는 '학교 따위는 갈 필요가 없다'라며 송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한다.

이야기를 듣던 외할아버지가 뜨악해서 송이가 친구들의 고민을 100개 해결할 수만 있다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걸고, 자신도 학교에 가기 싫었던 송이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상담소를 차리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엄마가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에 송이의 할아버지와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학교에서 지식만 배우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사회적 능력을 키우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작품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스포를 조금 하자면 송이에게는 아빠가 없는데 송이의 엄마는 이 사실 때문에 아이들이 놀리거나 따돌리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작품을 읽어본 소감으로는 저자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 잘 느껴진다.

사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적인 측면이야 얼마든지 혼자서도 습득이 가능하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를 새로 사귀거나 친한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과의 갈등과 이를 해결해나가는 경험은 집 안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말투가 날카로워서 마녀 같다는 의미로 본래의 성 대신 마송이로 불리던 송이가 학교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어른스럽게 한 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응! 세상을 바꾸려면 이타심도 좀 배워야지.

학교에서는 애들까리 싸우고 울고 화해도 하고 그러면서 같이 살아가는 걸 배우는 것 같아. 그리고 엄마, 나.. 아빠 없는 거 괜찮아.

난 소설가 엄마도 있고, 건강한 할아버지도 있는걸."

(pg 81)

이렇게 학교생활 중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감동과 교훈이 잘 담겨 있었다.

아직 1학년인 우리 딸이 읽기에는 약간 글씨가 많다는 느낌이지만, 책 읽기에 익숙한 아이라면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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