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민주주의 - 양극화 사회에서 정치의 자리
로버트 B. 탈리스 지음, 조계원 옮김 / 버니온더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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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의도적으로 정치, 사회 분야의 책들을 다소 멀리한 감이 있다.

내 정치적 성향과 맞는 책들은 이제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아서 재미가 없고, 내 정치적 성향과 반대되는 책들은 어차피 개소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테니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과 소개를 보는 순간 읽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았다.

대체 민주주의라는 것이 과할 수 있는 개념인가? 그리고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제목을 보면 직관적으로 '그래서 정치에 관심 끄고 사는 것이 좋다는 의미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텐데 이에 대한 답변부터 하자면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서두에서부터 책이 끝날 때까지 강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저자가 제목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이미 신념의 수준으로 상당 부분 체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최근의 양극화 현상이 더해져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양극화된 민주주의는 우리 편의 승리는 곧 상대의 패배를 의미한다.

성숙한 시민이라면 결과에 승복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배한 자들이 다음 선거까지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그리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우리 진영이 패배했을 때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어야 하고 그 목소리를 상대편에서는 경청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때문에 위협받는 민주주의의 현 상태이며 저자가 우려하고 있는바이다.

즉,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나와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들 역시 나와 동등한 시민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데, 갈수록 우리는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못 배운 사람들, 나라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 가짜 언론에 속아 넘어간 순진한 사람들'로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라는 승부 이후에는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비민주적인 상태만 남게 된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요약하면,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추구하고 있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가 고통받고 있다.

민주주의가 번영하는 데 필요한 다른 선/재화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실행될 때 과잉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사회적 환경 전체가 정치적 프로젝트, 충성심,

분열을 중심으로 구성되면, 우리는 동료 시민을 단순히 정치 행위자,

즉 정치적 목표를 위한 동맹자 또는 장애물로만 바라보게 된다.

(pg 34)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굉장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정치와 전혀 무관하다고 여기는 직장, 학교는 물론이고 사는 지역,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들까지도 정치적 입장에 따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정렬'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를 우리나라에 대입한다면 대구 출신에 '유니클로'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이 어떤 정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을까를 생각해 보면 저자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연구 결과들을 보면 우리는 우리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단순히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만' 해도 정치적 성향이 극단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는데, '메갈'이나 '일베'가 왜 그토록 극단적으로 보이는지도 이 경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포화된 사회 환경은 신념 양극화를 유도하고,

이는 다시 모든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를 낳는다.

이는 포화 상태를 강화해서, 신념 양극화와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이러한 역기능의 자기충족적 순환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격렬하게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을 닮아가고, 그들은 우리가 가진 왜곡된 이미지에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된다.

(pg 122)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좌우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먼저 스스로가 이러한 양극화에 취약하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해결을 위해 정치를 그저 정치의 위치에만 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왜곡하는 힘들에

우리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정치적] 포화도를

줄이려는 조치를 함으로써 양극화 역학을 깨뜨리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출발점이다.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입장의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회복하는 데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긴 후에

비정치적인 활동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중략 -

요컨대, 우리는 '당파적 입장을 넘어'서려는 시도 이상의 것을 해야 한다.

우리는 넘어설 게 없는 협력의 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

(pg 160)

제목도 그렇고 다루는 내용도 무거워서 막연하게 현학적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문장이 명쾌하고 책 전체적으로 저자가 자신의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초석부터 기둥, 지붕을 씌우는 느낌으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어 이해가 쉬운 편이다.

번역 역시 이 분야의 연구자여서 거슬림이 없으면서도 매우 깔끔하다.

본문만 180페이지 정도로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그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 있게 일독을 권할 수 있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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