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진 않았어도 수능을 준비한 세대라면 기억할 법한 '라쇼몬'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의 단편집이 발간되었다.
'청춘'이라는 키워드 아래 12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앞서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과 비슷하게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은 저자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 쓴 이런저런 삶의 감상들이어서 실제 작품은 11편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까지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해서 같은 기획으로 묶은 모양이다.
스스로 삶을 내던진 사람들을 좋게 봐줄 수 없는 터라 이 작가의 작품들은 어떨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읽어 나갔다.
다행한 점이라면 이 작가의 문장은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이어서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보다는 훨씬 더 읽기가 편했고, 그 때문인지 작품들도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포문을 여는 작품은 영화 속 배우와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을 그린 '짝사랑'이라는 작품이다.
지금도 일부 아이돌 팬들이 보여주는 일방적인 애정과 좌절을 영상이라는 매체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100년 전 세상에서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엿볼 수 있다.
'귤'과 '피아노', '점귀부'는 100여 년 전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일반인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중 '귤'이라는 작품은 기차에서 처음 본 남루한 소녀가 스쳐 지나가는 길에 동생들에게 귤을 던져주기 위해 창문을 열었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는데, 길이가 굉장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꽤 강렬한 느낌으로 남았다.
'게사와 모리토', '신들의 미소', '갓파' 등의 작품은 일본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로 꽤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수록된 작품 중 유일한 중편인 '갓파'라는 작품은 정말 재미있다.
일본 전통 요괴인 갓파들의 나라에 다녀왔다는 정신병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의외로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철학이 있고 사회에 대한 비평이 있다.
인간들의 세계를 기묘하게 뒤튼 굉장히 매력적인 세계라서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 작품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나라이니 영상화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신기루' 이후로는 저자가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쓴 작품들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다소 읽기에 난해한 느낌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잘 와닿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옮긴이의 말을 읽어도 그저 '정신 상태가 불안한 작가들은 이런 글을 쓰는구나' 정도의 감상 외에는 썩 그럴듯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