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최근에 발간된 저자의 장편소설이다.
이번에도 역시 SF라서 취향에는 잘 맞을 것 같아 읽어보게 되었다.
근래에 나온 책이지만 표지 디자인이 썩 예쁜 편은 아닌데, 읽다 보면 나름 세계관을 충실하게 반영한 표지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작가의 말'에 우주로 떠나는 대신 지구를 좀 더 낯선 곳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집필했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본 작품 속 지구는 지금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외계에서 온 '범람체'라 불리는 포자 생물이 있는데 이 생물은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에 기생할 수 있으며 무기물은 부식시킨다.
이들은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지표를 장악한다.
인간이 범람체에 당하게 되면 서서히 자아를 잃고 범람체에 육체와 정신이 종속된다. (즉 유기체를 좀비로 만드는 곰팡이나 버섯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은 개체에 머무를 때에는 그저 본능이 지배하는 생물이지만 일정 수준 군집을 이루게 되면 그 안에서 지성이 생겨나고, 개별의 정체성을 간직하면서도 집단의 의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를 형성한다.
이 생물에 습격당한 인류는 지상을 포기하고 지하로 들어가 도시를 건설하고 살아간다.
본래 인류의 것이었던 지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인류는 끊임없이 지상을 탈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이를 위해 지상을 탐사하거나 국지적인 전투를 벌이는 '파견자'라는 집단을 육성한다.
작품은 머릿속에서 이상한 환청이 들리는 '태린'이라는 소녀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어릴 적 자신을 거둬준 파견자를 따라 자신도 파견자가 되려 하는데, 머릿속 환청에게 때로는 도움을, 때로는 방해를 받으며 초중반이 이어진다.
중반 이후 범람체 군락과 조우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쓰려고 하겠으나, 하단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저자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소개만 읽고 바로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물론 태린이 인간과 범람체의 조합이라는 사실은 초반부터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재미난 점은 범람체들이 인식하는 자아의 개념이 인간의 인식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