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가와카미 가즈토 지음, 김해용 옮김 / 박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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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만약 사회에 좀비가 만연한다면 우선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지 환경 보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굶고 있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설령 멸종 위기종의 마지막 한 마리라 해도 잡아먹음으로써 주린 배를 채울 것이다.

환경 보전은 경제나 치안 모두 안정된 사회에서나 안심하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pg 171)

 

 

나름 책 읽는 것이 취미라고 하다보니 책을 읽다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최근에 본 책 중에서 누가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어떤 책을 추천할까?'


보통은 책을 다 읽고서 '와, 이 책이라면 정말 누구한테 추천해줘도 욕먹지는 않겠다' 싶은 느낌이 들게 마련인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읽는 내내 너무 재밌어서 당장이라도 추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이 '자연과학'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특별하다.

뼛속부터 문과충인 나는 책을 볼 때에도 '자연과학'쪽은 좀처럼 손대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서평을 남긴 책 중에서도 자연과학 서적은 처음일 것 같다.


(책의 뒷표지)


보통 자연과학 책이라 하면 갖는 선입견이 있다.

딱딱한 이론적 배경 설명과 수식, 그리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난무할 것 같다는 편견이다.

하지만 이 책은 뒷표지에 장식된 화려한 말들이 민망하지 않게 정말 '재미'가 있었다.

'조류학자'라고 하는 다소 희귀한(?) 직업을 가진 저자가 자신이 연구를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재치있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의 말로는 지인 중에 조류학자가 있을 확률이 연예인을 알고 있을 확률보다 낮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챕터마다 하나의 새를 주제로 놓고 썰을 풀기 시작하는데, 그 썰의 전개 방식이나 문장들에 유머가 넘친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보통 차에 묻어 있는 하얀 새의 배설물을 우리는 '새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저자는 하얀 배설물은 오줌이라는 설명을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한다.


(pg112)


'아, 그렇구나' 하면서 읽다보면 무심코 나도 모르게 빵터지게 만드는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제목과는 달리 저자가 새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이 모든 챕터에서 드러난다.

심지어는 새의 뼈까지 좋아해서 골격 표본을 최대한 모으고 있다며 오타쿠스럽게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새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들도 최대한 쉬운 서술로 풀어놓았다.

심지어는 현존하는 새가 아닌, 한 식품광고에 등장하는 마스코트 새의 외모를 분석하여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지를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유추하는 챕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밌었던 챕터였다.)


희귀한 연구 분야에 종사하다보니 생기는 어려움들도 생동감있게 전달하고 있다.

주로 무인도에서 연구를 많이 하는데 그러다보니 물자나 인프라가 없어 고생한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깊었다.

밤에 연구를 하다 귀에 벌레가 들어가서 죽을 뻔한 이야기나 선착장이 없어 수십미터를 헤엄쳐 가야하는 이야기 등

마치 '정글의 법칙'을 보는 듯한 사례들도 많았다.


(pg 75)


최근들어 경기가 좀 침체되었다고는 하나 일본은 그래도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곳에서도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생생한 오지를 경험할 수 있다니 새로운 느낌도 들었다.

화산 활동으로 인해 연구지가 통째로 용암에 잠기는가 하면, 화산 활동으로 인해 새로운 연구지가 생겨나기도 한다.

간척사업 말고는 일평생 지도가 바뀌는 일이 없는 나라에서 살다보니 그런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환경 문제에 대한 시각도 몇몇 챕터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그 중 멸종위기에 처했던 '빨간위기흑비둘기'의 개체수를 다시 증가시킨 사례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한 종이 멸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며 이를 다시 복원하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든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만약 사회에 좀비가 만연한다면 우선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지 환경 보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굶고 있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설령 멸종 위기종의 마지막 한 마리라 해도 잡아먹음으로써 주린 배를 채울 것이다.

환경 보전은 경제나 치안 모두 안정된 사회에서나 안심하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pg 171)


앞서도 말했지만 조류학은 독으로도 약으로도 쓸 수 없는, 고상한 연구 분야이다.

새가 무엇을 먹든 어디를 날든, 사회나 경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덕분에 일반 영리 기업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분야이기 때문에 연구에는 세금이 투입된다. 국민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성과를 논문으로 만들어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환원하는 것은 연구자에게 주어진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학술 잡지는 과학의 발전에는 기여하지만 일반인의 눈에 띄는 일은 거의 없다.

실질적인 스폰서인 국민이 성과물을 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pg 182)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류학'이라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부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위에 저자가 밝힌 것처럼 학술 잡지에 실릴 논문도 물론 필요하지만 이 책처럼 일반 대중들이 쉽게 연구성과를 접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도 국민의 혈세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어릴 적 새와 물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도감 속 새와 물고기 종류를 달달 외우고 다녔지만,

막상 그것을 먹고 사는 직업으로 연결시킬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이제는 다 까먹어버린 이름들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뼛속까지 문과충인 내가 조류학 전공자가 될수는 없었겠지만 조금이나마 조류학자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쯤이면 응당 평점을 다섯 개 줘야 마땅할 것 같으나, 하나는 편집상의 문제로 제하였다.

요즘 책 답지않게 자잘한 오타들이 너무 많아서 책의 빛을 좀 가리는 것 같다.

(위에 예시로 든 75페이지 캡쳐에서도 '발휘하다는'이라는 오타가 들어 있다.)

책의 2쇄, 3쇄가 나온다면 꼭 오탈자 검수는 다시 해주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재미있어서 주말에 놀아달라는 애도 무시하고 만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일본 문화(특히 일본 만화나 드라마)를 잘 안다면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더 많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이 있나 검색해봤는데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는 뜨지 않았다.

이 책이 인기를 끌어 다른 저서들도 번역되어 나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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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왕 공룡 대백과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8
히라야마 렌 감수 / 글송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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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육아 관련 책에서 어릴 때 도감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해 성장하면서도 지적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감을 전집으로 사서 아이가 보기도 전에 질리게 만들지 말고,

아이가 관심있어 하는 주제들이 생기면 같이 서점에 들러 하나씩 사주는 것이 좋다는 팁도 있었다.


요즘 아이가 '아빠'와 '맘마'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하는 단어가 '티아'이다. (우리 딸은 왜 '엄마' 소리를 안하는지 의문이다.)

핑크퐁에 나오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부르는 단어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핑크퐁 영상에 나오는 귀여운 공룡 이미지가 좋은가보다 했는데 언제부턴가 쥬라기월드 퍼즐에 있는 티라노도

좋아하더니 장난감 가게에 가면 실물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공룡 피규어를 봐도 '티아?' 하면서 좋아한다. (물론 무서워서 만지진 못한다.)

이 책을 보자마자 '티아?'를 외치는 아이가 생각나서 접하게 된 책이다.




 

일단 표지부터가 매우 정신없다.

아이들은 이런 정신없음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가 어릴 때 보던 도감들은 대체로 밋밋한 표지였던걸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아이들로 하여금 한번이라도 더 들춰보게 하려면 디자인부터 아이들 취향에 맞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표지는 확실히 이목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안에 내용도 굉장히 정신없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공룡들을 무질서하게 나열하지 않고 시간의 순서대로 배치한 점과 공룡의 서식지 및 먹이(초식, 육식) 등으로 분류하여

원하는 공룡들을 찾아보면서 즐겁게 독서할 수 있도록 신경쓴 부분들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제목에 '최강왕'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처럼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어느 공룡과 어느 공룡이 붙으면 누가 이길지를

마치 카드게임처럼 스탯을 부여하여 설명하는 것이 재밌었다.

책을 훑어보면서 한 4-5세쯤 된 아이들이 '야 무슨무슨 공룡이 젤 쎄!' '아냐, OOO사우루스가 더 쎄거든!' 하며 논쟁할 때

한 꼬마가 이 책을 들고 홀연히 나타나 논쟁을 종식시키는 재미난 상상도 해 보았다.


(pg 74)


또 한편으로는 공룡을 분류하는 기준, 서식지에 따라 어떤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는지, 공룡의 이름은 왜 그렇게 부여되었는지,

사람이랑 비교했을 때 크기가 어떤지도 설명하고 있어서 표지가 주는 이미지처럼 너무 흥미 위주로만 되어 있지 않고

'대백과'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정보도 포함하고 있어서 부모된 입장에서도 매우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특히 최근에 발견된 공룡 화석들에서 깃털이 같이 발견되면서 일부 공룡들에 깃털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설들이 많아졌다고 들었는데,

그림에도 그런 것들을 반영하여 일부 공룡들에는 깃털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2014년에 발견된 화석에 의해 깃털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여두는 세심함도 돋보였다.


지금은 아이가 그림을 보면서 '우오' 거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오래 가까이에 두고 나중에 글을 깨치게 되면 아이 스스로

원하는 공룡들을 찾아보면서 학습하기에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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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엥겔스 공산당 선언 원전 강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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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잊지 않는 것이 있다면,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소유 문제'라는 점입니다.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기초로 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라는 사실을 공산주의자들은 잊지 않습니다. (pg 307)



마르크스 관련 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학 시절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다.

(물론 이제 서른 중반인 주제에 대학 시절이 '추억'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것인가 싶지만)

대학 시절에 대한 기억 전체를 100이라 한다면 학회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이 그 중 60-70%는 차지할 것 같다.

"해방의 신새벽, 그 날까지 전진하는 성균인의 모임." 그 학회의 모토였다.

'해방'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모임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공과는 무관했던 학회지만 전공 공부 못지않게 많은 자료를 읽었고

선, 후배, 동기들과 열띤 세미나를 한 뒤 이어지는 술자리에서의 난상토론들이 내 대학 생활의 큰 부분이었다.

그 때 읽었던 마르크스 관련 자료들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완성된 책자로 된 자료보다는 선배들로부터 알음알음 내려온 복사물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일까,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은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공산당 선언 원문 자체는 매우 짧은 글이다.

조금만 검색해보면 인터넷에 원문과 해석문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한국어판 링크: https://www.marxists.org/korean/marx/communist-manifesto/index.htm)


하지만 짧은 글이니만큼 마르크스의 사상이 매우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이해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더 큰 의미를 갖지 않나 싶다.

책의 편집부터가 원문을 읽어가면서 바로바로 해설을 접하여 이해를 돕는데 최적화 되어 있다.

좌측 페이지에는 원문이, 우측 페이지에는 좌측에서 본 원문의 해설이 붙어있는 방식이다.


(책 소개 중 이 책의 구성 안내 페이지)


독특한 편집 덕분에 원문의 길이에 비해 책이 월등히 두꺼워졌다. (약 350페이지 정도)

하지만 설명이 매우 친절하고 쉬우며 중간중간 편집의 묘미로 사진이나 삽화 자료들도 들어 있어서 읽기에 지루함이 없었다.


이 책은 임승수 작가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시리즈 중 세 번째인데, 자본론, 철학 다음 책이다.

발행 순서는 젤 마지막이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이 책이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마르크스 사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으로 훑고 있는 텍스트가 공산당 선언이기 때문이다.

공산당 선언에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게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타 사상들에 대한 반박,

그래서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사회의 모습과 그 실현 방안들이 짧은 글 안에 모두 담겨져 있다.


자본론에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사상을 과학적으로 심도있게 분석해나가기 때문에

이 책을 본 후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읽는 것이 순서상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철학'은 아직 접해보지 않았지만, 마르크스의 유물론 철학을 다룬 책이라 한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읽으면

그 이해가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마르크스 관련 책을 읽는다는 것은 특히나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촛불로 밝혀진 정의가 실현되고 언론에서 매일 떠들듯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얼마 전 치뤄진 지방선거에서도 진보정당이 압승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는 내 고향 구미의 시장이 민주당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진보적으로 바뀌고 있는지는 아직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내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까지 진보적이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슬슬 경제 파탄이니 북한 퍼주기니 하며

여론을 몰아가는 시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댓글들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주 보이던 무조건적인 문 대통령 찬양에서 벗어나 

증세나 경제 침체, 최저임금 인상, 실업율 등을 근거로 소위 '까는' 댓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직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물론 그가 주장한 것이 100% 옳으니 이대로 하자고 주장하는 이는 현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을 던져주는데, 그 문제의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메시지를 두 페이지 정도만 골라본 것이다. 


지금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이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만원은 사실상 불가능함을 선언했고(임기 내 노력하겠다고는 했으나)

인터넷을 보면 대체로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것 같다.


물론 임금 노동자의 다수는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없을 수 있고,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영세규모의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으므로 그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것은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왜 '노동하지 않는 이들'이 가져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지 않는가?

영세규모의 자영업자들이 힘든 진짜 이유가 최저임금을 받아가는 알바들 때문인지,

매출의 큰 포션을 가져가는 건물주와 프랜차이즈 본사에 있는지는 왜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는가?

(뉴스에 댓글 다는 한가한 사람들은 모두 건물주들이기 때문인가?)


이처럼 공산당 선언이 갖는 의미는 현재 한국 사회에도 아직 유효하다.

이런 시점에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다시금 리마인드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열정과 앎을 나눌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던 대학 생활이 생각나 잠시 즐거운 기억에 잠기는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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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자 아빠의 기막힌 넛지 육아 - 어린 뇌를 열어주는 부드러운 개입
다키 야스유키 지음, 박선영 옮김 / 레드스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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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 늦은 때는 없다.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당장 오늘 저녁부터 시작해 보자. (pg 64)



결혼 후 3년이 지날 무렵.

이제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낳아 잘 키워 보자고 작정하고 낳은 아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너무나 어렵다.


내 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쯤이면 슬슬 어린이집을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럴 생각은 없다.

일단 아내가 복직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요즘 어린이집 사고가 많다보니 다소 불안하기도 해서 그렇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린이집에서 학습해야 하는 것들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늘 고민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를 보며 때론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음으로는 뭐든 다 해주고 싶지만 막상 뭘 하려고 보면 뭘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고민은 머릿속에만 있을 뿐 일상은 늘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하다보면 어느 새 나도 잘 시간이 된다.

침대에 누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듯이 보내는게 맞나? 아이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제목처럼 꼭 아빠가 하면 좋을 육아법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쉬운 책이었다.


뇌과학자가 쓴 책이니 당연히 아이가 뇌를 충분히 활용하여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로 자라게 돕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호기심'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의 호기심이 폭발하는 5세 미만의 시기에 부모가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호기심 수준이 달라지며,

호기심이 잘 발달한 아이는 평생 스스로 학습하게 하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 우리 아이는 5세가 넘었으니 벌써 늦어버린걸까?' 싶은 부모들이 있을 수 있다.


적정 연령을 넘겼다고 해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

뇌는 몇 살이 되어도 새로운 정보에 접촉하면 그대로 반응하고 성장한다. (pg 121)


물론 어려서 하면 더 빠를 수는 있겠지만, 늦었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 일단 실천해보라는 메시지가 좋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이의 호기심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극하고 지속시킬 수 있을까?

그 첫 걸음으로 저자는 '도감'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다.

아이의 관심사가 세상으로 넓어지기 시작할 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동식물, 사물에 대한 도감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가까이에 도감을 마련해두고 쉽게 접하게 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어릴 적 집에 전집이 있었는데 정말 자주 봤었다.

얼마나 봤는지 이름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요, 어떤 페이지에 어떤 동물과 물고기가 나오는지도 외웠었다. (물론 지금은 기억 안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런 경험이 살아가면서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집을 구비해두라는 의미는 아니고, 저자는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늘어갈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늘려가라는 충고도 덧붙이고 있다.


이렇게 도감으로 시작된 학습이 재밌어지면 점차 스스로 선택해서 읽는 책의 폭이 넓어지고,

궁금한 것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면(즉, 스스로 공부하는 요령을 알게 되면) 

학교에 들어가서도 교과 공부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럼 도감만 사주면 끝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저자는 도감과 현실을 연결해주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도감에서 물고기를 보며 아이가 좋아했다면 아쿠아리움에 데려가 그 물고기를 실제로 볼 수 있게 해준다던가,

꽃을 보며 좋아했다면 꽃집에 가서 마음에 드는 꽃을 직접 골라 키워보게 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언젠가 TV에서 본 항공 영재가 생각났다.

비행기를 너무 좋아해서 비행기 기체의 재원은 물론 파일럿이 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도 다 꿰고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도 대단했지만 진짜 대단한 건 아이의 부모님이었다.

아이가 비행기를 좋아하니, 휴일에는 그냥 공항 근처로 가서 아이가 하루종일 비행기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관련 방송 내용을 소개한 기사: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801170100123360008789&servicedate=20180116)


직장인이라면 주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에서 부족한 잠도 자고 싶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을텐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간을 내는 부모.

그런 부모가 있으니 아이가 영재로 자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는 이런 비결 외에도 아이의 뇌가 성장해 감에 따라 어떤 학습이 필수적인지도 소개하고 있다.

책을 늘 곁에 누고 아이가 커감에 따라 한번씩 들춰보면서 어떤 경험을 하게 해주면 좋을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후 학원을 보내는 것으로 아이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 늦은 때는 없다.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당장 오늘 저녁부터 시작해 보자. (pg 64)


지금은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친해진 건 내가 중학교 들어간 이후였다.

(오죽하면 내 아버지는 아들만 둘인 양반인데 난 아버지와 목욕탕을 같이 가 본 경험도 없다.)

어릴 때 추억이 많지 않지만 지금은 친근하게 지내고 있으니 육아에 '늦음'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육아는 긴 프로세스다.

지금 뭘 하면 좋을지 막막하긴 하지만 지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결국 아이의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이 걸 시켜봐야겠어!', '당장 이런이런 책을 사서 읽혀야겠어!'

이런 조급함 대신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의 호기심에도 좋은 영향을 줄까?'라는 고민을

보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었다.


책 자체는 얇고 글씨도 얼마 안되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쉽게 쓴 책인데다가 중간중간 그림으로 이해를 돕고 있어서 술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초보 부모들에게는 참고할만한 좋은 충고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오히려 내용이 좀 짧아서 아쉬울 정도였다.

저자가 관련 내용으로 추가적인 책을 낸다면 바로 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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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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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밤은 매일 생명을 다해. 알아?"

손창환의 말에 엠제이가 모자를 고쳐 쓰며 "무슨 말이에요?"하고 묻는다.

"글쎄다. 택시를 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밤은 밤대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래서 새벽이 올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버티다 생명을 다하는 거다. 뭐 그런..."

"오호 멋진데요. 밤은 밤대로 죽을힘을 다해 버틴다니."

"내가 그랬으니까." (pg 166-177)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접했다.

자극적이지만 명료한 제목에 이끌렸다.

책 소개에 있던 줄거리도 꽤나 단순했지만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소설은 손창환과 박상준이라는 두 인물의 악연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진실을 말했던 손창환은 거짓을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되어 왕따를 당했고,

열 명의 인생을 구렁텅이에 쳐박은 박상준은 억울한 모함을 당한 선량한 은행원으로 승승장구했다. (pg 68)


박상준이라는 인물은 스토리의 '악역'을 맡은 자로, 소시오패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필요가 없어지면 아무런 미련과 가책없이 제거한다.

뇌물과 술수에도 능해 직장에는 인정받으며 성공한다.


반면 손창환은 박상준과 입사 동기였지만 고졸과 대졸이라는 차이와 박상준같은 악랄함이 없어 승승장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동료를 괴롭히던 박상준을 내부고발했지만 오히려 누명을 쓰고 왕따를 당하다 박상준의 마수에 걸려들어 징역까지 살게 된다.

출소 후 택시 운전을 하던 손창환의 차에 박상준이 타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자신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놈이 인사불성으로 취해 자신의 택시에 탄 상황.

손창환은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스토리의 핵심인 원수를 만나는 장면이 꽤나 초반에 나온다.

그러면서 과거 은행원이었던 시절 손창환과 박상준의 에피소드들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또한 사건의 한 축을 이루는 킬러들과 계약을 맺는 장면들도 비교적 초반부터 제시되어 궁금증을 더해준다.


복수를 위해 박상준을 감시하던 손창환에게 뜻밖에 박상준의 딸로 알고 있던 여자가 그의 택시에 타게 되면서 전개는 급물살을 탄다.

박상준의 사기행각을 미리 알고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자신을 납치하라는 딸.

살인을 계획한 손창환은 그렇게 납치범이 되고 스토리는 점점 몰입감을 더해간다.


작가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주로 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작가의 소설 중 영화화가 계획된 것이 여러편 있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이 작품도 그대로 영화화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읽으면서 머릿속에 계속 영화 속 이미지들이 떠올려지게 된다.

특히 배경이 서울 서초구 주변이어서 해당 지역을 잘 안다면 더욱 실감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작품이 정말 괜찮은 소설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물론 재미있었다. 몰입도도 좋아서 금새 다 읽었다. 분량도 300페이지 안팎으로 적절한 분량이다.

단지 내가 한국영화를 잘 보지 않는 이유가 이 책에도 그대로 살아 있어서 거부감이 좀 있었다.


영화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하게 이거다 라고 서술하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한국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간혹 너무 터무니없을 때가 있다.

차라리 공포영화나 SF처럼 확 허구던지 실사를 기반으로 한 사건을 다루어 현실에 가까울 때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데,

이런 범죄나 스릴러물 같이 현실과 허구가 섞여있는 경우에는 다소 황당한 전개나 결말이 그 작품에 온전히 빠져들기 어렵게 만든다.

(아래부터는 작품의 결말이 포함되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흐리게 처리하였다.)


소시오패스라면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소시오패스가 20년을 치밀하게 준비한 범죄가 은행강도와 납치이다.

둘 다 한국에서 성공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범죄들이다.

차라리 고도로 정밀한 사기극을 계획했다면 훨씬 개연성이 있었을 것이다. (극적인 재미는 덜했겠지만)

게다가 그 범죄를 한번도 듣도보도 못했던 외국의 킬러 여성과 함께 한다. 심지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과 동시에 진행한다.

그 세계에서는 나름 이름 좀 날린다는 킬러 두 명이 동시에 서울에서 위장하고 있는데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둘 중 한 명은 3년 동안 딸 행세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은행 직원으로 위장취업 해 1년을 일한다.

업무강도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은행원으로 1년을 위장취업한다?

그것도 금융지식이 전무할 킬러가 결과가 보장되지도 않은 범죄를 위해서 말이다.

(물론 위장을 위해 공부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금융기관에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라.)

게다가 그 은행에는 손창환의 고등학교 동기가 근무하고 있다.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세상이 생각보다 좁다 한들 저런 일이 벌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개인적으로는 저 외국-여성-킬러라는 설정 자체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배역을 주기 위해 억지로 넣은 느낌이랄까?

차라리 박상준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된 자신과 비슷한 소시오패스들이 모여 작당모의를 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전개에 다소 실망감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아깝다거나 재미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왠지 영화로 만들어지면 더 재밌을 것 같은 스토리이기도 하다.

재미삼아 박상준 역에 조진웅 같은 배우가, 손창환 역에 송강호 같은 배우가 출연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송강호가 실제로 나이가 더 많아 둘 사이의 관계가 잘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과거 스토리에 부패한 공무원과 은행원이 대거 등장하는데 여기에 이경영 같은 배우가 나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깔끔한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선입견일 수 있겠지만 결말 역시도 전형적인 영화 같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까지 모두 읽고 다시 프롤로그를 보면 '오호라' 싶은 부분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심심풀이로 읽기에 매우 좋은 소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꽤 있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밤은 매일 생명을 다해. 알아?"
손창환의 말에 엠제이가 모자를 고쳐 쓰며 "무슨 말이에요?"하고 묻는다.
"글쎄다. 택시를 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밤은 밤대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래서 새벽이 올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버티다 생명을 다하는 거다. 뭐 그런..."
"오호 멋진데요. 밤은 밤대로 죽을힘을 다해 버틴다니."
"내가 그랬으니까." (pg 16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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