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려 12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인데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은지 계속해서 새로운 판본이 나오고 있다.

도서관에서 숱하게 지나칠 때에는 들춰볼 생각도 안 하던 책인데, 이번 판본에는 고양이 주제에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표지의 고양이가 작품 속 고양이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작품은 허락도 없이 얹혀사는지라 이름도 없는 그냥 '고양이'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문학은 물론 역사와 문화까지 인간 사회에 대한 상당한 지식수준을 자랑한다.

그래서 얹혀사는 집안에 드나드는 자칭 지식인들의 대화를 엿듣고 건방지게 이런저런 평론을 하는 것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600페이지 중반으로 꽤 두꺼운 책인데, 신기하리만큼 큰 사건사고가 없다.

고양이의 주인이 별 볼 일 없는 교사인데다 드나드는 사람들도 그다지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는 할 수 없는,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작품 중반까지 집주인 이웃에 사는 부잣집 딸과 집주인의 제자가 결혼을 하냐 마냐 하는 걸로 입씨름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부잣집 안주인의 유달리 큰 코가 대화의 주된 내용이 될 정도다.

주인도 그렇고 주인 친구들도 그렇고 나름 먹물 좀 들었다 하는 사람들이라서 만날 때마다 자신들만의 인생철학을 논하는데 고양이는 이 내용을 용케 알아듣고 모조리 비웃는다.

모르는 것에는 무시할 수 없는 뭔가가 잠복해 있어서,

측정할 수 없는 부분에는 왠지 고상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거들먹대고,

학자는 아는 것을 알 수 없도록 강의한다.

대학 강의에서 모르는 것을 떠벌리는 자는 평판이 좋고,

아는 것을 설명하는 자는 인기가 없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pg 449)

그런데도 신기할 정도로 읽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집주인이 부잣집 안주인의 큰 코로 시를 지으며 놀리는 부분에서는 현웃이 터져 카페에서 읽다가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로 재미있었다.

고양이가 본 인간 사회의 이상함도 꽤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동물 입장에서는 옷을 입는 문화를 신기하게 생각할 거라 예상했는데, 이 고양이는 고양이인 자신도 항시 털로 뒤덮여 있는데 털도 없이 '미개하게' 태어난 인간들이 대중탕이라는 곳에서 발가벗고 모여있는 모습을 더 신기하게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사유재산과 그로 인해 번뇌하고 갈등하는 인간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하는 등 인간 사회를 꿰뚫어 보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만약 땅을 잘라 한 평당 얼마라는 소유권을 사고판다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약 한 자 세제곱으로 쪼개어 판매해도 좋을 것이다.

공기를 팔 수 없고 하늘에 줄을 치는 것이 부당하다면, 사유지도 불합리하지 않은가.

이러한 견해에서 이런 법을 믿는 나는 어디든 들어간다.

(pg 187)

인간의 성품을 바둑알의 운명으로 점쳐본다면, 인간이란 천공해활의 세계를 스스로 좁혀, 자신이 두 발로 서 있는 자리 밖으로는 절대로 발을 내딛지 못하도록 잔재주를 부려서

자기 영역에 줄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인간이란 고통을 굳이 사서 하는 존재라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

(pg 549)

그 밖에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고양이가 자신의 의견을 덧붙일 때 마냥 웃어넘기기만은 힘든, 생각 속에 날카로운 칼날이 하나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아래의 구절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경험했던 바인데, 이를 120년 전 고양이의 눈을 빌어 표현한 저자의 통찰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이렇게 어이없는 일도 더러 있다.

고집을 부려 이겼다고 생각하는 동안, 본인의 인물 시세는 곤두박질친다.

이상하게도 고집을 부린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체면을 세웠다고 생각하는데,

그 후로 남이 경멸하며 상대해 주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이런 행복을 돼지적 행복이라고 하는 것 같다.

(pg 473)

비록 10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결말을 언급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건방진 소리를 찍찍하던 고양이의 마지막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는 점만 언급한다.

물론 이러한 점이 작품의 해학성을 높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정의를 말하자면 달리 아무것도 없다.

그저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 내어 스스로 고통받는 자라고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g 495)

이 시기부터 종전까지 혼란스러웠던 시대의 일본 문학 작품들 중에는 지금까지 사랑받는 작품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었다.

이 시기 특유의 허무주의가 나와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매우 시니컬하면서도 해학이 살아 있어서 읽는데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쓸데없이 건방지기만 한 고양이는 물론이거니와 보잘것없는 인간들 하나하나마저도 애정이 가는, 그러면서도 재미와 의미를 빠짐없이 추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