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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평점 :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로 갈라져 있던 한반도를 통일한 국가는 신라이다.
'왕경'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옛이름이다.
삼국시대 통일의 대업을 이룬 국가의 존재감은 여행중에 다녀온 그 국가의 수도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의 규모에서 흥한 국가와 망한 국가의 차이가 여실히 느껴졌다.
살아남은 국가의 박물관은 위대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살아남지 못한 국가의 박물관은 소박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왕경'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저자는 경주, 중국 요동, 중국 시안, 실크로드 곳곳을 다녀왔다고 한다.
삼국시대 역사 자료에서 얻은 지식과 현장 체험의 느낌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소설로 형상화한 책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김유신, 원효대사, 계백장군, 관창 등이 주인공인 삼국시대에 대한 책들을 읽었었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조선시대에 관련되 소설책과 역사책들을 읽었을 뿐 삼국시대에 대한 책은 소설 왕경이 처음이다.
소설 왕경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고구려 귀족 출신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모하게 신라에 침략했다가 포로가 된 진수, 신라 진골 출신으로 풍월주가 되는 김유, 백제의 장군의 딸로 왕경에 와 장사를 하는 정이다.
진수는 듀물(활을 잘 쏘는 자)로 알려진 아버지만큼 활을 잘 쏘는 청년이었다.
진수의 아버지는 고구려 다섯 부에서 남부를 다스리는 남부살이였고, 진수 아버지는 진수가 신수두 대제의 사냥대회에서 최고인 선배가 되기를 원했고, 진수도 선배가 되기를 원했다.
수두는 신을 모시는 제단으로 수두를 믿는 부족들은 적이 쳐들어오면 함께 막아냈고 그중 가장 공이 많은 부족을 신수두라 불렀다고 한다.
진수는 늠름한 외모에 용맹함을 겸비한 멋진 청년이었다.
신수두 대제 사냥대회에서 진수의 라이벌인 제우가 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는데, 그 사고의 그 배후로 진수 아버지가 지목되게 되었다.
진수 아버지는 계림과의 전투에 나갔가다가 사망하게 되고 진수는 복수하기 위해 계림으로 갔다가 계림의 군에 잡혀 포로가 되어 왕경으로 오게 되었다.
진수의 아버지를 쓰러드린 계림의 장수는 김유였다.
그래서 진수는 김유에게 강한 복수심을 느끼고 있다.
김유는 계림에서 유명한 화랑으로서 어머니인 영명부인의 힘과 지원을 등에 업고 풍월주(화랑 중 가장 최고인 으뜸 화랑)이 되고자 하며, 계림의 삼국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자 하는 야심이 큰 청년이다.
계림에서 풍월주는 고구려의 선배와 같은 것이다.
김유는 계획대로 풍월주가 되었고, 영명부인의 가게에서 일하는 정과 진수가 각각 백제와 고구려 출신이며 자신에게 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슴깊이 품고 있다.
정은 아름다운 미모로 여러 남성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여성이다.
정의 아버지는 백제의 장군 윤충이었다.
정은 왕경으로 잠입하는 숙부를 따라나섰다가 왕경에 주저앉게 되었고, 김유의 어머니인 영명부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도맡아 일을 하였다.
정은 외모도 출중하였지만, 생활력도 강하고, 자신만의 철학도 있는 강한 여성이었다.
정의 외모는 진수와 김유의 마음에도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정의 이름은 정(井), 우물 정(井)이다.
'우물 정은 끝없이 샘솟는 물이다. 생명의 근원이지. 살고 있는 마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마을의 우물은 옮길 수가 없다고 했다. 우물 속 물은 길어도 길어도 다 없어지지 않지? 우물은 물을 길어내지 않아도 넘치지 않는다. 우물은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란다. 그 덕이 항상하다는 것이지.(p.204)'
정의 아버지는 정에게 이름을 지어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책에서 정은 이름의 의미대로 살아가는 강한 여성이다.
정은 자신이 가보고 싶었던 중국 장안을 거쳐 서역까지도 마침내 다녀온다.
이 책은 세 사람의 삼각 관계를 바탕으로 삼국 시대에 역사에 투영하여 역사와 로맨스를 동시에 보여주는 소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고자 하는 진수는 김유를 살해하고자 하고, 김유는 풍월주가 된 후 숙위로 뽑혀서 장안에 다녀오게 되고, 진수와 정도 김유와 함께 장안에 다녀오면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313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에는 삼국통일 직전부터 삼국통일까지의 여러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와 재미를 함께 주는 소설이며, 읽다보니 진수, 김유, 정 그리고 그 외 인물들이 펼치는 흥미로운 스토리에 빠져들게 되었다.
역사 소설답게 역사에 대한 여러 지식도 전달해준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래가 나온 나라로 고구려를 세운 추모대왕의 왕비인 소서노 여왕이 두 아들 온조와 비류를 데리고 내려와 백제를 세웠다고 말해준다.
단군이 조선의 도읍으로 정한 곳이 아리티(하얼빈)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진수는 평양에 비해 왕경을 자잘하게 느끼고, 계림은 고구려를 모방한 국가라 생각한다.
'평양이 달리는 호쾌한 장군이라면 왕경은 오래된 비단옷을 입은 계집이었다.(p.83)'
'계림의 풍월주란 고구려의 선배와 다를 바 없었다. 삼국 중 가장 후진 소국이었던 계림이 고구려의 선배를 보고 만든 게 틀림없다(p.108)'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지금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에는 선덕대왕, 김춘추, 김유신, 의자왕, 연개소문, 당태종 이세민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어서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삼국시대 인물들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
의자왕은 이 책에서는 의자대왕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의자왕은 오랜 태자 시기를 거쳐 왕위에 올라 해동증자(증자는 효와 우애가 깊었던 공자의 제자)란 말을 들을 정도로 칭송을 받았고, 윤충 장군으로 하여금 계림의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여 승리로 이끌어 자신감이 넘쳤던 왕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자왕은 향락에 빠져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은 무능력한 왕인데, 이 책에서는 의자왕이 그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고, 몰락한 왕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며 몰락 당시의 모습이 과장되어 후세에 전해짐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에서 살면서 가슴에 새겨둘 말들을 발견하였다.
'현명하고 용맹한 군주라도 제대로 보필하는 신하가 없으면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p.120)'
'日中則昃 月盈則食(일중즉측 월영즉식), 해는 중천에 있으면 기울고 달은 차면 먹힌다.(p.256)'
혼자서만 잘나서 사는 세상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인생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말들이었다.
계림은 당나라와 함께 삼국을 통일한다.
외세의 힘을 빌려 통일을 완성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석연치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고구려와 백제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우리 영토와 우리 역사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계림이 삼국을 통일하는 데는 그만한 역사적 배경과 계림이 가진 힘과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건 아마도 진수, 김유, 정이 어떤 배우에 의해서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 하는 기대감과 삼국통일의 과업이 어떻게 표현될 지에 대한 상상때문인 것 같다.
아름다운 청년들인 진수, 김유, 정의 모습이 궁금한 것은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느껴지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소설 왕경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삼국 대표 청년들의 뜨거운 삶의 모습들을 궁금하게 하는 역사 소설이다.
※ 왕경 독서 후기 포스트는 샘터 물방울 서평단 5기로 활동하면서 샘터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