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친친 할아버지께 ㅣ 라임 어린이 문학 1
강정연 지음, 오정택 그림 / 라임 / 2014년 3월
평점 :
노란 바탕에 인자해보이는 할아버지와 귀여운 손자의 모습이 그려진 책 표지가 왠지 가슴 따뜻하고 재밌는 내용이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는 책이다.
책 표지 그림이 화창한 봄날인 요즘 활짝 핀 개나리꽃 속을 날아다니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다정한 모습처럼 느껴진다.
'나의 친친 할아버지께'
친친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첫번째 '친'은 친하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 같은데, 두번째 '친'의 의미는 떠오르질 않는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재미난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이 느껴졌다.
'친친 할아버지'의 의미는 '친한 친구 같은 사랑하는 나의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손자인 박장군이 할아버지에게 붙여준 애칭이다.
열두 살 초등학생인 박장군의 삶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다.
작가는 운이 나쁜 아이라고 말한다.
학교에는 집에는 엄마가 없고, 사기를 당해서 돈을 몽땅 잃고 집에서 술 마시고 신세한탄을 하며 살고 있는 아빠가 있고, 학교에는 뚱보 울보의 줄임말인 뚱볼보라 부르며 사사건건 핀잔을 주고 괴롭히는 창식이가 있다.
엄마는 장군이가 어렸을 적에 집을 나갔다.
장군이는 분명 운이 나쁜 아이이다.
장군이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군이에게 속초에 사시는 좋은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과 학교에는 장군이를 좋아하는 수진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속초에 사시던 할아버지는 장군이네 집으로 와서 장군이와 함께 살게 된다.
장군이는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와 속초에서 살았었다.
할아버지가 오시자 장군이의 아빠는 집을 나갔다.
이제 장군이와 할아버지 둘이서 살게 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조금 이상하다.
국어 선생님이셨고, 책을 좋아하며 많은 책을 읽으셨고, 작가가 꿈이셨던 할아버지가 글씨를 잘 쓰지 못하고, 기억력도 희미해졌다.
할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초기 상태 즉 치매 초기 상태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뇌에서 언어를 인식하는 기능이 말썽이어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딱 멈춰버린 상태였다.
언어기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뇌 기능은 괜찮다.
치매 초기인 할아버지에게 장군이가 이제 보호자 역할을 한다.
생활에 있어서는 할아버지가 장군이의 보호자이고, 언어부분과 병원 진료에 있어서는 장군이가 할아버지의 보호자가 된다.
의사 선생님이 할아버지에게 운동과 취미를 가질 것을 권유하자 할아버지는 운동으로 수영을 선택하고, 취미로 장군이가 써 준 편지를 베껴 쓰는 것을 선택한다.
장군이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편지는 항상 '나의 친친 할아버지께'로 시작한다.
장군이는 열두 살 초등학생으로서는 정말 편지를 잘 쓰는 아이였다.
장군이가 할아버지에게 써주는 편지를 읽으면 장군이가 얼마나 심성이 바르고 착한 아이인지 느껴졌다.
때로는 학교 생활에서 오는 고민도 있었고,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부분도 있었다.
장군이의 편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한 성장 일기같은 편지였다.
부모와 헤어져서 살고 있는 장군이에게 이처럼 순수하고 착한 심성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질 않는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사랑 덕분이다.
장군이가 여섯 살 때 할아버지는 장군이에게 훌륭한 한글 선생님이셨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시는 '온몸으로 배우는 자음과 모음', '보물 단어 찾기', '시장 학교' 놀이를 통해서 한글을 배웠다.
재밌는 학습 놀이들이다.
몸동작으로 자음과 모음을 알려주고, 두꺼운 책을 한 권씩 들고 서로에게 정해 준 보물 글자를 찾고, 시장에 가서 가게에 붙어 있는 간판을 큰 소리로 읽는 것이다.
장군이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시장 학교' 놀이를 한다.
이번에는 장군이가 먼저 읽고, 할아버지가 나중에 읽는다.
장군이의 학교 생활에는 고통을 주는 창식이가 있고, 행복을 주는 수진이가 있다.
할아버지는 장군이에게 딱 한 번만 창식이와 부딪혀 보라고 조언한다.
첫번째 벽만 깨면 그다음은 믿을 수 없이 쉽게 무너진다고 말한다.
장군이는 자신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창식이와 부딪히고 창식이를 무너뜨린다.
장군이가 창식이와 부딪히면서 얻은 교훈은 '창식이가 두려웠던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다.
우리도 살면서 무엇인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겨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 동화책에는 읽으면서 어른들이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이 항상 있다.
장군이와 수진이의 첫사랑같은 우정 이야기는 작은 웃음을 준다.
장군이는 방학 숙제로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제출하고, 개학 후 방학 과제 발표에서 할아버지와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과 할아버지가 장군이의 편지를 옮겨 쓰게 된 까닭을 이야기한다.
얼마 후 장군이게 엄청난 소식이 들려온다.
장군이의 선생님께서 장군이가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이것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멈춰버린 언어 기능이 가끔씩 다시 동작하기 시작했다.
불우한 환경속에서 잘못 자라는 아이들을 언론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장군이를 보면서 반드시 환경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의 말처럼 부모 대신 다른 누군가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보살펴 준다면 아이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동화이다.
하지만, 실화 같은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작가는 분명 장군이와 같은 이야기를 경험하고 이 동화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장군이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장군이의 순수하고 해맑은 표정과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운 나쁜 아이가 한 명이라도 더 줄도록 좋은 어른들이 자꾸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참 좋은 어린이 동화이다.
어른과 어린이들이 꼭 읽어볼만 한 좋은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