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변호인을 감동 깊게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다.

국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의해서 일어난 시국사건에 연루된 이들을 변호하는 송 변호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평범했던 한 인간이 정의를 지키기 위해 활약하는 모습과 편안하고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 수 있는 변호사가 불편한 길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의 송 변호사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송우석 변호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인권변호사인 송 변호사의 선배, 송 변호사의 친구인 기자, 법정에서 양심선언을 하는 군의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변호인 영화를 보고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지만, 그 분에 대한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고졸 출신의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입지전적의 이력, 정치인 태생의 대통령이 아닌 법을 공부한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점, 기존 정치와는 다른 새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점들이 좋아서 좋아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노무현 자서전이라고 하는 '운명이다'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나긴 자필기록과 구술기록들을 시간과 사건에 따라 재구성, 압축하여 재집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서 노무현 대통령이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살아간 참 인간적인 분이었구나 그리고 평생을 청년과 같은 삶을 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프롤로그에서 자신은 언제나 양심과 직관이 명하는 바에 따라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을 쳤지만, 정치인으로서 실패했다고 말하며 이 회고록은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회고록임을 밝히고 있다.
실패가 주는 뼈아픈 고통이 다른 누구에겐가 약기 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성공담이 주 내용을 이루는 자서전이 아닌 좌절과 실패의 관점에서 기술했다는 점에서 역시 겸손하고 인간적인 분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학창시절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를 않았다.
공부를 잘 했지만 불량한 장난도 많이 치며 다니던 중학교 시절에 이승만 대통령 찬양 글짓기 행사에서 급우들을 선동해 백지를 내게 선동을 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 선생이 운영하던 부일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어서 군사정권에 의해서 바뀐 부일장학재단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려 했는데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가 없었다고 한다.
'군사정권은 남의 재산을 강탈할 권한을 마구 휘둘렀는데, 민주정부는 그 장물을 되돌려 줄 권한이 없었다. 과거사 정리가 안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어 힘이 빠진 것이다.(p.52)'
지금의 시대는 권력만이 민주화되었다는 말에서 공감이 되었다.
 
그 시대에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을 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공부에 대한 몰입은 정말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원래 변호사를 하고 싶었는데, 어머니의 요구로 판사를 잠시 했다고 한다.
판사 발령을 받지 못한다면 장인어른 때문에 연좌제에 걸린 것으로 오해하고 아내가 원망을 들을 것 같아서 선택한 길이었다.
지금도 판사가 대단한 벼슬인데, 그 당시에 판사를 1년도 하지 않고 그만두고 변호사의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에 모두에 대한 배려심이 느껴지는 인간적인 부분이었다.

변호인의 영화에서 나온 등기 전문 변호사, 세금 전문 변호사인 송우석 변호사의 삶 같은 모습이 책에도 나온다.
책에서는 '세속의 변호사'라 칭하고 있다.
변호사를 하면서 본 법조계의 나쁜 관행을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관행에 타협하지 못하고 조금씩 별난 변호사가 되어갔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이 되기 전의 모습이다.
과연 어떻게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며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돈을 벌며 청년기를 보냈는지가 궁금했었다.
청년기까지의 모습은 삶 전체에서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고, 사람이 변할 수 도 있지만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1981년 부림사건을 변호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세속 변호사에서 운동 전문 변호사로 변신하게 된다.
문재인 변호사도 인권변호사를 하던 1982년에 만나게 되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세속 변호사로 활동한 기간은 매우 짧다.
1978년 5월에 변호사 개업을 해서 1981년 10월에 부림사건 변론을 맡았으니까 약 3년 반 정도가 세속 변호사로 활동한 기간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근본은 인권 변호사였고, 세속 변호사는 잠시 동안의 외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변호사가 되어 노동 운동 현장에 몰입하여 살았던 시절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나는 막 학생운동에 뛰어든 청년처럼 민주화 투쟁에 몰입했다. 인권변호사들이 일반적으로 지켜 왔던 행동반경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시민단체에 참여하고, 재정적으로 돕고, 사건이 터지면 변론해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실제 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중에는 부산 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이 되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집회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항의했다. 그런 와중에도 변로할 사건이 오면 어느 것도 거절하지 않았다.(p.85)'

정치권에 본격 진입하여 국회의원이 되고, 야당 정치인으로 지역 분열주의에 맞서고 기회주의에 대항하는 모습들,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뛰었던 모습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무리한 도전을 하여 낙선했던 선거의 결과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후 다시 국회의원이 되고, 해양수산부장관으로 활동했던 모습들이 그려졌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내세웠던 국정운영의 기본 원칙들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 다듬었다고 한다.
'자율과 분권, 투명과 공정, 부단한 학습과 지식의 공유(p.171)'

대통령이 된 후에는 언론과의 갈등, 보수 세력과의 대립 속에서도 공약 실천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말한다.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지켜지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나라, 정경유착·반칙·특혜·특권이 없는 사회(p.205)'

'대한민국의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 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 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p.204)'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대통령 선거 운동과 당선 과정에 있었던 내가 관심 갖지 않았던 그리고 몰랐던 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의 양극화 문제, 부동산 정책, 방패장과 세종시 추진 정책, 이라크 파병, 탄핵소추안과 헌법재판소의 기각, 한미자유무역협정, 남북정상회담, 검찰 개혁의 실패 등을 읽으면서 대통령에 대한 삶과 이슈들에 대한 주변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체질적으로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다. 남보다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하고 불편하다. 나는 말을 위엄 있게 행동을 기품 있게 해야 하는 환경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통령이 되어 행사장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누가 뭐라고 지적하면 노력해서 고쳐야 맞는데 고치지 못한 것을 보면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것인지도 모르겠다. 탄핵을 당한 것도 그런 고집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p.234)'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된 63일 동안 청와대 관저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봉하마을에 돌아간 후에는 고향을 생태마을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과 같은 친환경농법을 직접 실천했다고 한다.
고향인 봉하마을로 간 것은 아내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의 모습은 인간 노무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임 후 고향에서 생태마을을 꿈꾸고 만들고 가던 삶에 검찰 소환조사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나도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는 우리나라의 첫번째 평범하면서 아름다운 퇴임 대통령의 모습이 만들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퇴임 대통령의 비극적인 운명은 다시 재연되었다.
검찰 수사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들이 기술되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원망할 수가 없었다.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다면 애초에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p.332)'
고향에 돌아와 해보고 싶었던 꿈들을 접고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안스러웠다.
그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결과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 치열했던 고난의 삶의 길을 가지 않을 수도 분명히 있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이 짥은 글을 남기고 노무현 대통령은 떠나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분이 정말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분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에필로그에서 유시민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청년 노무현이라 칭했고, 그는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화려한 학력도 없고, 힘있는 친구도 없는 연민과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 반칙을 자행하는 자에 대한 분노,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열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책 속에서 나왔던 역경을 이겨낸 도전적인 삶과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던 그의 삶을 배우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한국 현대 정치의 모습들을 알 수 있었다.
변호인 영화를 감동 깊게 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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