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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수도원이라는 조용하고 무거운 공간에서 시작하여 수도사와 한 여인의 애틋한 사랑 스토리를 거치면서 이 책에서 전개된 모든 스토리의 깊은 저변에 한국 전쟁의 아픔이 녹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공지영 작가의 필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소설이다.
공지영 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공지영 작가의 소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공고히 다져지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대학 시절 야학교사를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공지영 작가의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는 소설이었다.
그 소설을 읽고서 야학 교사를 했었고, 그 뒤로 공지영 작가의 여러 소설을 읽으며 재미도 느끼고 의심심장한 메세지에 깊은 공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 소설의 주요 주인공은 요한 수사, 미카엘 수사, 안젤로 수사, 소희, 토마스 신부, 아빠스 신부이다.
요한 수사가 '나'라는 관점에서 스토리를 전개한다.
스토리의 중심에는 항상 요한 수사가 있다.
요한 수사, 미카엘 수사, 안젤로 수사는 수도원에서 삼총사 같은 관계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각각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요한 수사는 공부 잘 하는 반장 같은 이미지, 미카엘 수사는 신앙도 중요하지만 현실 사회 참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운동권 이미지, 안젤로 수사는 낙천적이고 마음씨 착한 미소년 이미지로 느껴졌다.
신부가 되기 위해 수도 생활을 하고 있는 요한 수사에게 소희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위기가 찾아온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이 소설이 나는 수도사의 잘못된 사랑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요한 수사와 소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책을 읽는데 재미를 주기도 하였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과 소희의 불분명한 태도, 요한 수사의 지나친 집착이 조금 거슬리게 느껴졌다.
소희의 행동은 수도자의 길을 걷는 요한 수사에게 사랑의 불장난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소희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두 사람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은 것은 요한 수사의 신분과 소희의 애매한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왜 사랑하는지 이유를 댈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먼 훗날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났던 내 동료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A4 용지를 건네던 그녀의 손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건 A4 용지 때문도 그녀의 손 때문도 아니었으리라라. 대답하자면 그건 그냥 사랑 때문이었으리라.(p.82)'라며 요한 수사는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나로서는 요한 수사의 소희에 대한 사랑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어리석다. 그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그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p.122)'
요한 수사의 서툴러 보이는 사랑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고서 운전을 하는데 차에서 조하문 가수의 '이 밤을 다시 한번'이 나오는데, 마치 요한 수사가 부르는 노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카엘 수사의 사회 참여적인 생각과 활동을 보면서 공지영 작가가 항상 강조해 온 사회 참여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역설하면서 가난한 자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왜 젊은 엄마들이 배 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조금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교회,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 아무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 이혼은 죄라고 하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불행하게 사는지 보이는데도 모른 척 하는 교회.(p.68)'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군 지휘관이 승전보를 알릴 때 대량 학살이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p.68)'
'한 조각의 빵이 없어서 우는 사람이 있고 100조각의 빵이 지루해서 우는 사람이 있어. 둘 다 지옥 속에 사는 거지. 어쩌면 빵이 없는 형벌은 빵 한 조각이 주어짐으로써 단순하게 벗어날 수 있지만, 100조각의 빵이 지루해서 우는 사람을 구원할 길은 참으로 없어.(p.119)'
미카엘 수사의 말, 생각 그리고 행동이 나에게는 가장 큰 메세지를 주는 듯 하였고, 미카엘 수사의 모습에서 성직자로서 사회 문제를 직시하여 종교와 사회를 함께 보듬어 안아 참 신앙 생활을 하려는 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미카엘 수사의 생각은 안타깝게도 이 소설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미카엘 수사와 안젤로 수사의 사고와 그 결말은 너무나 허무했다.
어쩌면 이 책에서 나는 요한 수사보다는 미카엘 수사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토마스 신부 중심으로 옮겨지면서 조선의 일제 강점기 해방을 거쳐서 한국전쟁시기로 이동한다.
토마스 신부는 조선인들을 하느님의 사람들이라 말하며 조선의 신앙을 극찬한다..
'선교사들에 의해 포교를 당하기도 전에, 깨어난 지식인들에 의해 천주교를 배우고자 중국에 사신을 파견했던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 조선, 전교를 당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초청했던 나라 조선, 이 나라의 신앙은 평신도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저는 바로 그 평신도들의 위대함을 보았다고나 할까요.(p.216)'
토마스 신부 일행은 북한 공산당에 의해서 북한 자강도에 있는 옥사덕 수용소에서 모진 시절을 보냈다.
참으로 끔찍하고 혹독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처절한 시절이었다.
스토리 맨 마지막에 펼쳐지는 흥남부두에서의 피난민 수송선의 이야기는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 하였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위기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인간의 초인적인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조만간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었다.
수도원과 역사라는 배경에서 신에 대한 사랑, 이성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영화가 만들어질 것 같은 상상을 하였다.
이 소설의 제목 '높고 푸른 사다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흥남부두에서 피난민에게 펼쳐진 사다리가 바로 그 사다리이다.
그리고, 미카엘 수사가 세상에 펼치고자 했던 사다리이다.
처음에 어느 한 수도사의 일탈적인 사랑이야기인 줄로 느꼈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전부가 아니었다.
요한 수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러 이야기들이 큰 의미를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지금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인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는 소설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인상적이었던 글귀를 덧붙인다.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대. 어느 날 밤 문득 그 사람의 손을 꼭 붙들고 도망치고 싶어 한 사람과 그런 생각 같은 거 해보지 않은 사람. 손을 꼭 붙들고 말이야.(p.134)'
'비판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 비판 속에 비판자의 비난이 교모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판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은 그 비판이 나의 행위가 아니라 행위하는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만일 그 비판이라는 것이 비난을 내포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과 염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류는 얼마나 많은 회기해난 사람을 만들어냈을까?(p.68)'
'빛을 아름답다고 보는 것은 바로 밤이다.(p.143)'
'이 세상에 참나무라는 것은 없다. 참나무란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들의 공통 명칭이다.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가 다 참나무이다.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약하고 느린 나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20년을 잘 참아내면 참나무는 수백 년을 살기도 한다. 풍성한 그늘과 열매를 주고 퇴비가 되는 잎을 주고, 숯을 만들게 한다.(p.313∼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