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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잉글리시 티처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34
박관희 지음, 이수영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마이 잉글리시 티처...
이 책에 나오는 티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그리고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느끼한 표정과 음흉한 눈빛 그리고 풀어헤친듯 한 넥타이의 선생님과 그 선생님 손 위에 서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책은 요즘 현실을 반영한 사회 고발적인 동화이다.
책 마지막에 쓰여진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동화를 읽은 사람들이 '이런 것도 동화가 될 수 있구나' 혹은 '너무 삐딱한 거아냐? 다음엔 달달한 이야기 좀 쓰지' 라는 말을 한단고 한다.
이 책을 읽어보니 저자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장미빛 세상만을 보여주기 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아이들이 사회에 대해서 경각심을 느끼고 알도록 하는 것도 책의 역할이고 작가의 역할이라는고 생각한다.
마이 잉글리시 티처는 이 책에 나오는 네 편의 동화중의 하나이다.
네 편의 동화는 '마이 잉글리시 티처', '아빠하고 나하고', '여인숙에서 사는 아이', '어디까지 왔니' 이다.

첫번째 동화 '마이 잉글리시 티처'는 어린이 성추행을 일삼는 원어민 영어 교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토마스는 영어학원 원어민 교사이다.
토마스는 실력이 우월한 학생에게는 자신을 토미라는 애칭으로 부르도록 허락해준다.
선생님을 토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자랑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주인공 선희도 토마스 선생님에게 토미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선물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선희에게 선물이 아니었다.
선희 보다 먼저 토미라는 호칭을 부를 수 있는 자격을 받은 수지의 안스럽게 변한 모습이 뭔가 불길해 보이는 결과를 암시해준다.
수지는 선희에게 조심하라고 조언해준다.
선희의 아빠는 말단 공무원이고, 선희의 엄마는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부모이다.
선희 엄마는 교육열이 엄청 강하다.
엄청난 교육열은 지금의 우리 엄마들의 모습을 대표해 주면서 한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선희 아빠의 직속상관이 윗층에 사는데 그 부인이 선희 엄마를 부하처럼 부려먹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괴로운 상황에서 선희 엄마가 선희에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변호사면 그 아내도, 자식도 변호사야. 변호사 밑에서 일하는사람은 그 사람 아내도, 자식도 변호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평생 그런 관계로 살아야 하는 거야. 엄마가 악착같이 공부를 시키는 것도 너희한테만은 그런 대물림을 해 주기 싫어서야. 그러니까 허투루 살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우리처럼 가진 것 없고 힘없고 백 없는 사람들은 공부해서 출세하는 수밖에 없다.(p.15)'
안타까운 현실이고 충분히 공감가는 말이다.
엄마가 만들어 준 쿠키를 가지고 토마스의 오피스텔로 혼자서 찾아간 선희는 놀라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는 토마스, 그리고 지저분한 실내와 벽면을 도배하 듯 붙어있는 여학생들의 사진들...
그리고, 토마스는 자신의 입술을 선희의 볼에 댄다.
어린이 성추행을 일삼는 원어민 교사의 모습이다.
선희는 토마스의 오피스텔에서 빠져나와 하염없이 걸으면 혼란스러워 한다.
세상을 조금은 비약적으로 부정적으로 표현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동화를 통해서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에 얼마나 나쁜 사람이 많은지를 살다보면 알게 되기도 하겠지만 미리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살짝 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런 사회 고발적인 내용이 동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속상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동화 '아빠하고 나하고'는 아빠의 실직과 엄마의 사회 재진출 그리고 그 사이에서 변화에 적응해가는 아이를 다루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민재 아빠가 회사에서 실직을 당한다.
그리고, 민재 아빠는 쉰다는 명분으로 집에서 소파와 텔레비젼을 친구 삼아 생활한다.
전형적인 백수의 모습을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 민재는 혼란스러워 한다.
민재의 친구 치효의 아빠도 실직 상태이다.
치효 아빠의 실직 이유를 말하면서 부산의 어느 조선소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것도 사회를 풍자하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민재 아빠의 수입이 없어서 가계 유지에 곤란을 겪자 민재 엄마가 집에 공부방을 차린다.
공부방으로 인해서 자기만의 공간이 없어진 민재, 계속 실직 상태인 아빠, 민재와 같은 처지인 친구 치효...
이들에게 몇가지 사건들이 생긴다.
마지막에 민재와 아빠가 손을 잡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도 아들에게 '아빠는 역시 아빠다'는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난다.

세번째 동화 '여인숙에서 사는 아이'는 이 책에서 내가 읽었던 동화 중 가장 황당해하며 놀란 동화이다.
사람의 이중성과 사기성을 지적한 동화이다.
여인숙에 살면서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세연에게 어느 한 남학생이 다가온다.
그 남학생은 몸이 아파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며 세연에게 접근하고 세연과 친해진다.
어느날 그 남학생이 세연에게 반지를 주면서 자신의 생일날에 집으로 초대를 한다.
세연이는 너무너무 설레면서 좋아한다.

그러나, 생일날 약속 장소에 나온 사람은 그 남학생이 아니라 그 남학생의 엄마였다.
그 남학생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미국 유학을 준비하느라 학교를 쉬고 있는 것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남학생의 거짓 행동에 화가 났다.
어떻게 저렇게 외로움과 가난에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몸이 아프다면서 거짓 동정을 구하고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희롱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세상에 분명 저런 사람들이 많이 있고, 어설픈 인연에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연이는 이런 사실을 알은 후에도 그 남학생을 미워하지 않고, '그래도... 고마웠어. 그동안 너 때문에 나 참 행복했었는데...' 라며 중얼거린다.
세연이가 너무나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남학생이 너무나 미웠다.
가진 자들의 얄팍한 동정과 거짓 배려에 화가 났다.

네번째 동화 '어디까지 왔니'도 참 슬픈 내용이다.
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아이들이 보호자로서 능력이 부족한 할아버지 밑에서 외롭고 힘겹게 자라는 가슴 아픈 내용을 담은 동화이다.
선우와 선재 아빠는 사업에 실패한 후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갔다.
그리고, 선우와 선재 엄마는 아이들을 할아버지에게 맡긴 후 가버렸다.
선우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 선재는 다섯살이다.
할아버지는 보호자로서의 능력이 거의 없다.
그나마 선우와 선재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선재의 담임 선생님 뿐이다.

선재는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서 어린 나이에 혼자서 먼 길을 걸어서 역에 가곤 한다.
선우가 선재를 역에서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이서 하는 대화가 참 가슴이 아프게 했다.
자신이 나은 자식을 저렇게 방치시키고 과연 부모로서 마음이 어떨까?
부모라는 이름을 과연 저런 사람들에게 붙일 수 있을까?
국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와 복지를 왜 하지 못할까?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키우는 우리 아이들을 더욱 잘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편의 동화를 읽으면서 모든 이야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원어민 교사, 가장의 갑작스러운 실직, 선량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속이는 사람들, 불우한 가정에서 혼자서 자라는 아이들.
국가에 모든 것을 요청하고 바랄 수는 없지만, 이 책에 나오는 동화에서 등장하는 나쁜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처벌과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재기할 수 있는 힘과 도움을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한 번 생각해볼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