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는 철학자 - 운전이 어떻게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매슈 크로퍼드 지음, 성원 옮김 / 시공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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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고, 회사에서 외근 업무가 많은 일을 하니 자동차와 거의 한 몸처럼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 중에 운전하는 시간이 많으니 자동차와 운전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책이 있는데, 자동차와 운전에 대한 책이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자동차와 운전에 특별한 이력이 있으면서 정치철학 박사 학위가 쓴 특별한 책을 만났다.

 

'운전하는 철학자 - 운전이 어떻게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저자는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정치철학 박사이고, 모터사이클 정비사이고, 버지니아대학교 선임연구원이고, 강사이고, 모터사이클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책 제목의 '운전하는 철학자'는 저자 자신을 말한다.

이 책에는 자동차와 운전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담겨져 있다.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내용은 매우 철학적이면서 심오하다.

자동차와 운전을 철학적인 시각으로 보면서 해석한 책이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이 담겨진 책 표지 사진이 참 멋있다.

왜 운전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생계를 위해서'이고,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싶어서'이다.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분류하여 구성한 것일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구성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골라서 읽어도 될 것 같고,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도 될 것 같다.

미국에서 사는 저자가 쓴 자동차와 운전은 이국적이기 때문에 큰 공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점이 있었다. 

 

자동차와 운전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바라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운전은 뭐가 그렇게 특별할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이 질문은 이 책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운전은 풍성하고 다채로운 실천이다. 운전이라는 행위를 충실하게 고찰하면 인간다움의 의미에 특수한 색조의 빛을 집중시킬 수 있다. 무기력을 확산시키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권위를 주장하는 테크놀로지에 맞서 '인간으로 남기'라는 과제를 밝게 조명할 수 있다. 무인 자동차의 지지자들은 즐거움이라는 이상에 별 감흥이 없으며 개인의 판단력을 의심한다.(p.16)"

 

저자는 자율주행 등의 첨단 신기술이 적용되는 디지털 중심의 자동차보다 기존의 기계 중심의 아날로그적 자동차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의 본질적인 특징과 운전의 본래 모습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직접 움직이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자동차광들의 다양한 모습을 늘어놓고 나를 사로잡은 사고의 렌즈로 해석한다. 이 책 전반에서 독자들은 교통 규칙과 집행에 대한 끈질긴 불만과 일부 안전 수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 나의 주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기존 교통 체제의 왜곡된 효과를 지적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을 읽는 법 중에서, p.53)"

 

책 속으로 들어가면 마치 해외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해외의 자동차들과 해외의 도로 속에 있는 것 같다.

 

재밌는 내용이 있었다.

자동차가 주는 장점이면서,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전에 교통수단이었던 말이 주는 폐해이다.

 

"1890년 런던에서 상류층 주택의 샹들리에는 죽은 파리들이 두꺼운 층을 이루었고, 늦여름에는 미친 듯이 춤추는 구름떼 같은 파리에 뒤덮였다. 말의 분뇨 때문에 도로에는 완두콩 스프가 넘쳐났고, 이 스프는 때로 도로경계석 밖으로 넘칠 정도로 고이곤 했다. 도로에는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소음이 있었다. 쇠로 된 말발굽이 자갈과 충돌할 때는 나는 소리, 자갈 위에서 바퀴들이 내는 소리를 참아내야 했다.(p.58)"

 

자동차의 폭발적 증가가 야기한 문제점도 많겠지만, 그래도 자동차 엔진이 더 깨끗하고 조용하고 빠르다.

말과 마차가 돌아다니는 도로를 상상만해봐도 그 모습이 얼마나 난리였을지 상상이 된다. 

 

운전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은 공감이 되는 내용들이 보인다. 

 

"우리는 운전대에 앉으면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듯 하다. 통근이 순조로울 경우 운전은 의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마음껏 백일몽에 빠지거나 여러 쓸데없는 몽상을 할 수 있다.(p.63)"

 

"우리는 자동차를 인간다워지는 공간, 쉼의 공가으로 경험할 수 있다.(p.64)"

 

출퇴근과 외근을 할 때 내가 느끼는 운전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운전을 할 때 자동차 안에서는 나는 나만의 세계에 혼자 남겨져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느 연구결과에서 사람들에게 운전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귀찮아하는지를 물었더니 운전자의 69%가 좋아한다고 답했고, 28%가 귀찮은 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통행과 관련된 귀찮은 일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많은 운전자들이 자신의 자동차에 대해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다.

 

책 중간에 교통단속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특히 공감이 되었다. 

요즘 대폭 늘어난 무인단속카메라가 나의 운전을 힘들게 한다. 

 

무인단속카메라가 교통 안전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세수 확보라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 그 내용이 등장한다. 

 

"회계연도로 2016년, 워싱턴DC는 속도위반 카메라로 1억 7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신호위반 카메라와 주차위반 범칙금까지 포함하면 총 1억 9300만 달러로 이는 이 도시에서 징수한 모든 벌금과 요금의 97%를 차지한다. 카메라가 설치된 교차로는 우범 장소이기보다는 통행량이 제일 많고 노란불이 가장 짧은 곳이라서 선정된 곳으로 보인다. 카메라를 설친한 회사는 시를 설득할 때 딱지를 끊게 될 운전자 대다수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 사는 통근자일 거라고, 그러니까 워싱턴DC 유권자가 아닐거라고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공짜 돈이었고, 정치적 역풍에서 단절된 세수입이었던 것이다.(p.288)"

 

본질이 흐려지고 주객이 전도되는 이런 일이 미국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이 놀랍다.

안전보다는 단속을 위한 단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운전을 할 때 무인단속카메라가 많이 신경이 쓰인다.

속도 위반이야 내가 속도를 준수하면 상관 없지만, 차량이 많은 교차로에서 신호위반단속카메라를 보면 상당한 긴장감이 들게 된다. 

 

초록불이 언제 노란불로 바뀔 지 알기가 어렵고, 차량이 정체되거나 앞차가 이상한 운전을 할 때 신호위반단속카메라가 있는 교차로를 지나는 것은 마치 심판대를 지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다.

 

"노란불이 짧을수록 딜레마존이 짧아지고, 앞에 있는 운전자가 노란색의 등장에 반응하는 방식의 변동성이 커진다. 앞에 있는 운전자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노란불의 지속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경우 교차로 충돌사고를 줄이는데 큰 효과가 있고, 게다가 그건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하지만 공짜 안전은 관계당국에 공짜 돈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6년 시카고 신호위반카메라는 약 6억 달러를 벌어들였다.(p.290)"

 

이 책에는 운전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생각들이 여러가지로 나와 있다.

운전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자만큼의 심오한 생각은 아니더라도 저자가 던지는 이슈나 키워드만큼은 충분히 공감할 것 같다. 

 

운전을 이렇게 철학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참 독특하다. 

책이 참 두껍고 양이 많다. 

 

솔직히 이 책을 천천히 정독하면서 읽지는 못했고, 자동차와 철학을 어떻게 묶어서 말하는지를 느끼는 수준으로 읽었다.

저자의 시각과 해석은 독특하면서도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을 준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색다른 흥미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자동차 매니아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자동차를 좀 더 철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서 그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를 그냥 이동수단으로 보아왔었는데, 이 책은 자동차 안과 밖의 세계에도 철학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바쁘다는 이유로 정독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천천히 정독을 해보고 싶은 책이다. 

내가 살면서 만나고 이용하는 사물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좀 더 사색한다는 생각으로 내면을 바라본다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와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아마도 자동차와 운전을 더 특별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운전을 하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작은 철학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한 마지막 문장을 적어본다.

운전하는 철학자의 운전에 대한 정의이다.

 

"운전을 하는 것은 자유로움의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고 운전대를 잡았을 때 이런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역시 운전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술인 듯하다.(p.408)"

 

※ 운전하는 철학자 독서후기 포스트는 책과콩나무카페 그리고 시공사에서 책만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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