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고 싶어서
이훈길 지음 / 꽃길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보면 세상이 눈에 들어오면서 잊었던 감성이 살아나고, 반복된 걸음으로 다리가 탄탄해져 가는 느낌은 몸과 마음으로 전해지면서 심신이 건강해짐을 느낀다. 

걷는 것을 좋아하니 종종 걷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서울 도심 걷기는 어떨까?

내년이면 나도 이제 서울시민이 되니 서울 도심을 걷는 것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고, 어떤 곳이 걷기에 좋은 지가 궁금했다.

'혼자 걷고 싶어서' 라는 책 제목이 내년에 서울 도심을 혼자서 걷고 있을 나를 연상시킨다.

이 책의 저자는 건축사이면서 도시공학 박사이다. 

"도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을 주지만, 때로는 구속이 되기도 한다. 나는 가볍게 이리저리 거니는 한가로운 '산책'이 아니라, 끊임없이 어슬렁거리고 머뭇거리는 '배회'를 좋아한다. 자유로이 거닐면서 도시와 건축물을 잘 살펴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게 묻고 답하면서 도시와 건축물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프롤로그 중)"

산책이 아니라 배회를 좋아한다는 저자의 말에 '배회'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배회... 좋은 말인 것 같다.

때로는 어슬렁거리면서 머뭇거리는 배회가 걷기의 매력을 더 줄 수도 있다. 

저자는 자칭 '도시의 산책자'이며, '도시의 배회자'이다.

이 책은 10가지의 주제로 서울 도심의 건축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10가지의 주제는 삶을 살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키워드들이다.

재생, 옛것, 소통, 활용, 상징, 조우, 유동, 존재, 지역, 노정...

10가지의 주제에 맞춰서 저자가 선택한 서울 도심 명소를 각 주제별로 3개씩을 소개해주고 있다. 

재생 주제에서는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선유도공원, 서촌 어린이집을 소개한다.

저자가 걸으면서 생각하고 본 것들이 책으로 옮겨졌으며 저자의 시선과 생각으로 본 공간에 대한 해석이 글로 나타나있다.

공간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의미, 지나온 역사, 상징하는 이미지 그리고 건축사의 해석이 기술되어 있다. 

저자는 많은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고자 노력하였고, 공간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해석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저자가 소개하는 혼자 걷기 좋은 서울 명소들에는 익숙한 곳도 있고 낯설은 곳도 있다. 

익숙한 곳을 볼 때는 이 곳이 이런 역사와 의미가 있었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건축이 되었다는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원래 어린이대공원은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을 모신 공간이었다. 1927년 일본강점기에 골프장으로 개발되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1970년대이다. 1968년에 한국 현대 건축가인 나상진에 의해 서울 컨트리클럽 하우스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그 후 내부를 개조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교양관으로 사용하다가 2011년에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선유도공원을 설계한 조성룡 건축가가 꿈마루를 골프장 클럽하우스와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의 기억을 보전한다는 의미 아래 새로운 공간으로 재생시켰다.(p.11)"

첫번째로 다루어진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에 대한 과거와 변화과정이다.

다른 공간들도 이렇게 과거를 설명해주고, 탄생과 변천을 보여준다. 

여행책 같으면서도 역사책 같기도 하고, 역사책 같으면서도 건축교양책 같은 책이다.

제목은 '혼자 걷고 싶어서'이지만, 책 내용에는 걷는 것보다는 공간에 집중했다. 

걷는 것은 독자 본인의 몫이고, 책에서 저자는 걷기 좋은 서울 명소를 알려주고 그 공간의 의미를 보여주어서 독자가 걸을 때 그 의미를 눈과 마음으로 느끼도록 이끌어준다.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선유도공원, 서촌 이상의 집, 덕수궁, 동묘, 순라길, 선농단역사문화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언더스탠드에비뉴, 커먼그라운드, 파이빌99, 종로타워, 은행나무출판사사옥, SK서린빌딩, 웰컴시티, 갤러리미술세계, 재능문화센터, 서교365,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인사동길, 낙원상가, 절두산성당, 태양의 집, 12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부띠크모나코, 강남대로, 피맛길, 한옥지원센터가 소개되어 있다. 

건축사의 시선으로 본 공간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다. 

그 공간에서 일반인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의미를 느끼도록 해준다.

덕수궁에는 '정관헌'이라는 곳이 있다. 

정관이란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 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고종이 연회를 열거나 커피를 마시고 음악 감상을 하며 휴식을 취했던 공간이라고 한다. 

정관헌은 1900년에 러시아 건축기사인 사비틴이 설계했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할 무렵 몇 채의 서양식 건물을 궁내에 지었는데 그 당시 건립된 초기 서양식 건물 중 유일하게 남은 게 정관헌이라고 한다.

"정관헌의 내부 기둥은 인조석으로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두를, 바깥 기둥은 목재로 화려한 코린트 양식 주두를 얹고 있다. 바깥 기둥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을 양각했다. 전통적 문양을 가미한 서양식 테라스를 설치했다. 정관헌은 테라스에서 덕수궁 일대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쉬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p.41)"

사진과 함께 설명되어 있어서 어떤 느낌인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중에 그곳을 걸으면서 잠시 이 책을 읽는다면 그 곳에 대한 해석과 감정은 새롭게 느껴질 것 같다. 

동묘는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시는 묘우라고 한다. 

동묘가 관우의 사당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다.

동묘의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이고, 조선 말기에는 관왕을 관제라고 높여 불러 관제묘라고 했다.

문선완(공자)를 모시는 문묘에 대응해 무안왕인 관우를 모신다고 무묘라고도 했다.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 중 일부는 해외 건축가에 의해서 설계되었다. 

종로타워는 우루과이 출신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했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영국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당선작이라고 한다. 

종로타워의 최상층부는 예전에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지금은 위워크로 바뀌었다고 한다. 

수 년전에 종로타워 최상층 레스토랑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레스토랑으로는 가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서울에 혼자서 걷기 좋은 이런 명소들이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었고,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걷는 과정보다는 걸으면서 만나는 공간에 집중한 책이다. 

"풍경을 본다는 것은 결을 읽는 것이다. 삶에도 결이 있다. 시간 속에 짜인 결이 풍경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수직과 수평으로 가득한 도시에 유려한 곡선의 풍경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흘러가듯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직각과 중력을 거부하는 결로 이루어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이다.(p.230)"

특별한 생각없이 지나쳤던 서울 도심의 장소들을 새롭게 보이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울 도심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나중에 한 곳 한 곳 가볼 생각이다.

이 책을 미리 읽고 간 뒤 그 공간에 가서 잠시 앉아서 쉬면서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간을 바라보면 그냥 걷는 것 이상의 재미를 줄 것 같다. 

강남대로의 보도에는 의자와 화분이 줄지어 촘촘히 서있다.

과거에는 노점상들이 있었던 자리를 깨끗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생긴다.

길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책장 한 곳에 잘 꽂아두고 나중에 서울 도심 걷기때 함께해야 할 책이다.

글과 사진이 좋은 책이다. 

서울에 짧은 여행으로 다녀올 곳이 참 많다.

이 책에 소개된 30곳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큰 여행이 될 것 같다.

미세먼지 없고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진 걷기 좋은 날에 이 책에 소개된 명소들을 혼자서 걷고 싶다.

물론, 함께 걸으면 더 좋을 것이다.

※ 혼자 걷고 싶어서 독서후기 포스트는 책과콩나무카페 그리고 꽃길에서 책만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