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영화를 보면 흥미롭고 그 영화만의 매력이 있다.
아마도 법과 정의를 다루기에 법 제도 아래에서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느끼는 흥미와 매력일 것이다.
얼마 전에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을 때 거대 로펌의 변호사가 아닌 지극히 보통인 변호사의 법조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재심을 통해서 정의를 세우는 박준영 변호사님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새로 출간된 변호사가 쓴 책을 큰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제목에서 뭔가 놀랍고 대단한 변론과 재판의 모습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를 하면서 첫 페이지를 펼쳤다.
이 책의 저자는 15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한 기자출신의 변호사이다.
현재는 국선전담 변호사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책은 국선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피고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데 자꾸 박준영 변호사님이 생각이 났다.
아마도 국선 변호라는 일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는 국선 변호 사건에 집중하고 있고, 국선 변호 사건의 피고인을 통해서 다양한 세상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만 국가가 아닌 국가의 상대로 서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는 않는 덕분에 당사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특한 구조가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재판에서 더 당당하게 변론을 할 수 있는 변호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선 변호에 비해서 시간, 영역, 증거확보 등에서 한계점이 많았다.
이 책은 국선변호사가 피고인의 삶과 범죄를 통해서 들여다 본 이야기를 쓴 에세이이다.
법을 다루고 있지만 법률적인 내용보다는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법률에세이라기 보다는 직업생활에세이라고 하는게 더 적합할 것 같다.
국선 변호를 맡기는 피고인의 삶은 애처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사례들 몇 개를 모아보면 아래와 같다.
교통사고로 두부 손상을 입어 일곱살 수준의 지능을 가진 피고인이 정신병원에서 과자를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하다가 피해자가 사망하여 폭행치사죄로 법정에 서게 되는 사례도 있었고, 필로폰 투약으로 징역형을 살게된 피고인에게는 알콜중독에 폭력을 일삼는 아내가 있고 그 피고인의 자녀들은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례도 있었고, 성인전화에 빠져 음란 문자를 발송한 60대 할아버지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뻔한 거짓말을 일삼는 사례도 있었고, 어린 시절 집안에서 비극을 접한 남자는 잘 살고자 노력했지만 일순간 살인미수를 저질러 법정에 서게 되는 사례도 있었고, 조폭 말단의 말단인 젊은이가 폭행죄로 피고가 되는데 그 피고인과 피고인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는 사례도 있었고, 종교적 신념 때문에 병역을 기피해서 병역 거부죄로 법정에 서는 사례도 있었고, 탈북인이 남한에 와서 살아가는 중 방화미수와 살인미수로 피고인이 되기도 했다.
저자가 성범죄 및 마약범죄 전담 재판부의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다보니 성과 마약 범죄에 대한 사례가 많았다.
또한, 술과 폭행으로 인한 사례가 많았다.
돈이 없어서 국선변호를 의뢰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유한 사람이 돈이 많지만 돈이 아까워서 국선변호를 의뢰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우한 환경이 비극을 만드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로 인해서 심신 미약인 상태에서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그런 남편도 있고, 그런 아내도 있었다)가 있을 경우 그 배우자와 자녀들은 영향을 받는 경우들이 많았다.
부모가 범죄자가 되어서 1년에 평균 5만명의 아이들이 부모의 수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양심은 무엇일까?
저자가 로스쿨에서 배웠던 양심의 정의는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양심의 정의를 배우게 되었다.
정신지체, 조현병, 치매, 알콜중독과 같은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로 인해서 발생하는 범죄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는 국가적인 과제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심판보다는 치료가 필요했다.
재발의 위험이 낮은 피고인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면 처벌보단느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는게 저자의 생각이고, 나도 그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감을 한다.
책을 읽다가 쓴 웃음을 짓게하는 매우 공감가는 구절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이 안중에도 없는 사장님 덕분에 명절 법정휴일 3일 중 이틀만 쉬고 그마저도 연차에 포함된다.(p.112)"
법정공휴일을 연차에서 제하는 중소기업을 언급한 내용에서 이게 법조인들도 아는 제도라는 것에 쓴웃음이 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와 불평등이 법제도에 존재함을 법조인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국선변호를 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피고인의 배경, 사건 내용, 판결을 주로 다루고 있다.
사실과 현상에는 집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대안과 해결책은 잘 보이지는 않았다.
저자에게 대안과 해결책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문제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대안이 좀 더 명쾌하게 제시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0년 동안 소소한 동일 사기를 벌이던 사기 선수 피고인이 거대 사기범으로 진화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어느날 결국 구속이 되는 처지에 놓이자 그 피고인은 잠적하게 된다.
저자는 그 피고인의 사기가 진화할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 사기범의 이야길를 들어보니 중범죄자는 아니지만 경범죄자 중에서는 선수는 선수였다.
그런 사람도 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마약 중독자 가족 모임에서는 세 가지 '없습니다'를 배운다고 한다.
1. 당신에게 잘못이 없습니다.
2. 당신이 어떻게 해줄 수 없습니다.
3. 당신이 낫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있다.
저자의 지인 중 아이가 PC방 게임에 푹 빠져있는데, 어느날 집에 들어와 "엄마, 배고파. 밥 줘"라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눈물이 나고, 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먹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비록 현실 속에 악몽 같은 날들이 있더라도 그 악몽같은 날들이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남이 든는 데서 남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명예훼손이 된다고 한다.(p.193)
명예훼손 고소도 매우 많은 것 같다.
살면서 항상 조심 또 조심하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법적인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생각중의 하나는 변호사가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나 국선전담변호사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직업 스트레스로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였다.
국선변호사에게 필요한 교육중의 하나가 '절벽에 서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이라고 할 정도이니 직업적 스트레스는 엄청난 수준인 것 같다.
어느날 까칠한 피고인이 국선변호사를 교체해달라는 탄원서를 올려서 국선변호인 취소 결정문을 받던 날에 저자가 직원과 함께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른 날도 있었다고 한다.
1심 형사공판 사건에서 무죄율은 3%라고 한다.
파렴치한 나쁜 놈들과 말 안되는 주장을 고집스럽게 늘어놓는 진상들이 득실득실한 가운데 무죄 판결은 드물게 찾아오는 기쁨의 결정체라고 한다.
무죄 판결을 받는게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비극과 고통속에서 범죄의 길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어쩌다 보니 범죄의 길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고의로 범죄의 길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영화를 통해서 그럴싸한 재판의 모습만을 보다가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보니 내가 모르던 세상을 보게된 기분이다.
나보다 힘든 여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의 내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치료가 중요함을 느꼈다.
세상은 근사하게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근사하게 보이는 모습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모두가 건강하고 근사한 삶을 사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 책은 사람들이 잘 몰랐던 국선변호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국선변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심과 정의가 세상의 기준이 되는 그런 사회가 되는데 생각해 볼 이슈들을 다루고 던져준 의미있는 책이다.
기자 출신인 변호사의 정리력과 분석력이 잘 발휘된 책이다.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독서후기 포스트는 미래의창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