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담하게 물어보았다. 베토벤은 미소를 짓더니 고 개를 끄덕였다. 나는 C장조 협주곡의 첫 악장을 연주했다. 연주 를 마치자 베토벤은 나를 두 손으로 붙잡더니 이마에 키스하고부드럽게 말했다. "가보거라! 너는 운이 좋은 아이야!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줄 테니 말이다! 그보다 더 좋고훌륭한 건 없단다!" 이 사건은 평생 나의 가장 큰 자랑이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었다.181면
베토벤이 각자 아주 다른 작곡가 세 명의 방문을 받은 것은 이무렵이었다. 그들은 로시니, 베버, 그리고 11살 난 프란츠 리스트였다. 베버는 자신이 받은 따뜻한 환영에 상당히 놀랐고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179면
항상 그랬을까? 조울증 환자도 중간 상태가 있는 법이다.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위대함의 정수는 극단적인 인간적 경험과 관련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위대함의 정수는 사실 그런 경험도 포함해인간적 경험의 모든 뉘앙스를 성찰하고 관련짓고 화해시켜, 셰익스피어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포괄적인 종합을 이루어내는 능력에 있었다. 175면
그의 음악도 그랬지만, 그의 삶은 수시로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위대한 창조적 예술가의 삶을 연구할수록 그 천재성의 일부는 상반되는 요소의 충돌, 아니면 적어도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알게 된다. 작품의 공연과 출판에 대한 베토벤의 태도는 아주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타협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아주 원칙적인 작곡가, 예술가였다. 170면
수많은 아동 학대자들 본인이 어렸을 때 학대받은 아이였던 것처럼, 베토벤도 아주 쉽게 카를의 선생들에게 복종을 위해서라면 그를 때려도 좋다고 허락하거나, 때로는 권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카를에게 가해진 체벌은 그가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베토벤이 카를과 그 어머니가 몰래 만나온것을 알아낸 뒤 그토록 분개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저 불복종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을 갈라놓으려던 노력이 실패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1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