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 넘기
황임경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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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추법은 보편적인 규칙과 특수한 경험을 개별적인 사례와 연결시키는 과정을 포함한다. 즉, 사례 중심의 추론case based reasoning은 연역법, 귀납법과 구별되는 가추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연역법은일반적인 규칙을 예외 없이 적용하고, 귀납법은 일반적인 규칙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사례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다. 반면에 가추법은 일반적인 규칙을 바탕으로 사례가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실천적 구조를 취한다는 점에서 사례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례라는 것은 특정한 조건과 맥락 속에 놓여 있고 일정한 시간적 순서를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조건과 맥락, 순서는 특정한 인과관계를갖는 이야기, 즉 서사를 통해서만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 가추법이의사의 진단 과정에 부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사적 추론narrativereasoning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듣는 것으로 진료를 시작한다. 흔히 병력 청취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증상과 징후에 관한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현재력historyof present illness, HPI‘이라는 간단한 서사로 완성한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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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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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분의 통증을 치유할 수 없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통증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밖에요. 대신, 6개월을 다 살아내셨으니, 지옥을 바라보는 대신 당신의 일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환자 분이 겪는 그 통증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환자 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 같은 삶이겠지요. 그냥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살아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해드릴 말은 이런 것들밖에 없습니다. 혹여 너무 외롭고 힘드시면, 입원을시켜드리지요."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그는 급기야 정신을 놓고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자기 연인이 저러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침대가 병원 문턱을 넘어갈 땐 이제 살았다고, 잠에서 깨어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강직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이 모든 것을 선고했다. 재판이라면 항소할 수도 있고, 돈이라면 다시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압제자 앞에서는 항소할 수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죽음을 되돌릴 수도 그 결과를 바꿀 수도 없다. 모든 의사의 발언은 전부 최종심이다. 그는 조금씩 그런 상황을 납득해갔다.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의사가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 해서 외상으로 인한 실혈失血을 따라잡을 수 있는가? 이것은 나를 오랫동안 지독하게 괴롭힌 문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처음부터 성립해서는 안 된다. 있다, 라고 답한다면 그간 죽음을 선고했던 수많은 외상 환자들에 대한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셈이다.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해,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되돌리지 못한 것이므로. 그러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조건 없다, 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없다, 라는 답을 얻기 위해서 나는 일말의 불가항력적인상황도 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예감한 실혈 환자에게 강박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해댄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의 죽음을 선언하고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말을 할 때 의사로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므로. 의사가 되어, 최선을 다하지 못한 이에게 사망선고를 하는 일은 정말 최악이다. 그것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나는 매달 하루, 100여 개의 파일을 연속해서 듣는다. 인간이, 같은 인간의 최악의 순간을 여과 없이 듣는다. 음성일 뿐이지만, 전해오는 것은 그 공간이다.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서 막 잃어버린 절망이 감도는 공간.
나는 일일이 슬퍼하다가, 슬픔에 지쳐 분노하다가, 분노에 지쳐 허탈해하다가, 내겐 감정의 껍데기만 남는다. 머릿속에는 "우리 오빠가…… 지금…… 목을 매달고……"라든지, "어머니, 대답 좀 해보세요. 아악…… 어머니"라든지, "우…… 우리 아이가 엎어져 강물에 떠 있어요." 이런 말들이 떠돈다. 이 일을 마치면 한동안은 불면에 시달린다. 그 공간이 내 침실에 고스란히 옮겨진 것처럼 나는 매일 밤 몸서리친다.
인간이 무슨 권리로 다른 인간의 여과 없는 마지막 순간을 엿듣는가. 아니, 이것을 이 악물고 들어야 하는 일이 같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하지만, 나에게서 모든 게 빠져나가 빈껍데기만 남을지라도 해야 한다. 인간에게 고통이 있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일이라면.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우리 어머니를, 죽여주세요."
"……"
"저희 오남매는 전부 동의했습니다. 서류 같은 건 몇 번이고 쓰겠습니다."
"안 됩니다. 저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입니다. 지금도 경기를 멈추기 위해 약을 투여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선생님이 살린다고요? 최선…… 그래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겠죠. 솔직히 어머니가 살아날 확률이 있습니까?"
"이 정도면 거의 없기는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살아나는 사람은 의사 생활을 통틀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기적이란 것도 있을 수 있고요. 그래서 그렇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적어도, 돌아가실 때까지는 최선의 처치를 할 겁니다"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밤이 깊어 응급실의 불행은 쏟아지고 있었다. 구토하는 사람, 손가락이 잘린 사람들이 내 앞을 에워싸고 나는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만 먹고 자고 깨어 있었고, 다른 환자와 이야기하면서도 줄곧 할머니의 경기를 생각했다. 이제는 내 머릿속의 신호가 엇갈려 손발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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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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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과학자다. 과학자는 정해진 사실과 축적된 자료를 근거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 학문적인 통계와 수없이 쌓인 증거와 사례를 바탕으로 가장 합당한 결과를 도출하여 이를 사람에게 적용한다.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서로 어떤 점도 같을 수 없는 인간에게. 왜냐하면, 의사는 과학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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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 넘기
황임경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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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간은 개별 환자에게 주관적인 의미의 내적 시간으로 새롭게 경험된다. 질병 경험을 타자와 공유하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는바로 이 주관적 시간과 객관적 시간의 소통불가능성이다. 병원에가면 환자는 객관적인 시간 척도에 비추어서 질병 경험을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질병은 내적 시간과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만 환자에게경험된다. 그러므로 내적 시간의 살아 있는 경험을 객관적인 시간 척도에 끼워 맞춰 표현해야 하는 환자는 당연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없다. 반면 의사는 질병의 생물학적 경과를 측정하기 위해 객관적인시간 척도를 사용한다. 환자와 의사는 서로 다른, 공약 불가능한 시간의 차원에 따라 서로 다른 질병의 시간성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질병은 시간적 차원에서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모순적인 과제를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 P260

특히 질병 체험과 연관해서 주목할 점은 자아의 구성적인 측면이다. 자아는 한번 형성되면 영구히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며, 개인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구성해 내는 상징적 기획이기도 하다. 자아는 한 개인이 자신에 대해 가지는 이해, 견해, 축적된 지식, 인식, 감정과의 관련을 통해서 구성되고 재형성되며, 언제나 ‘자기 해석’의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된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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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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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과학자다. 과학자는 정해진 사실과 축적된 자료를 근거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 학문적인 통계와 수없이 쌓인 증거와 사례를 바탕으로 가장 합당한 결과를 도출하여 이를 사람에게 적용한다.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서로 어떤 점도 같을 수 없는 인간에게. 왜냐하면, 의사는 과학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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