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syeong21/223667975882나의 철학적 사유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이 마음의 힘이 나의 힘이 될 것이라 예상해본다. 사자와 함께 걷는 꿈은 어쩌면 이런 힘을 예고하는 일종의 예지몽이 아닐까. 마음의 힘이 강해진다면, 사자가 나에게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자와 함께 아름다운 공원이나 언덕을 산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문성원 교수의 『타자와 욕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특정한 철학적 사유에 이끌리는 것은 그 사유가 우리가 봉착해 있는 문제들에 답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레비나스를 통해서 존재론을 넘어 나의 윤리학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사랑은 타인을 향한다. 사랑은 타인의 약함 가운데서 타인을 향한다.여기서 약함이란 어떤 속성의 열등한 정도를 나타내지 않으며, 나와타자에 공통된 규정의 상대적 부족함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 P386
부드러움의 표면 아래 감춰진 차원에 존재하는 이 깊이로 말미암아, 부드러움이 상냥함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점을 지나는 길에 언급해 두자. 그렇지만 상냥함은 부드러움과 닮았다. 이 연약함이, 그리고비-의미함non-signifiance의 무게-형태 없는 실재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이 무게가 빚어내는 동시성, 또는 이 둘의 양의성을 우리는여성성이라고 부른다. - P388
에로틱한 사랑을 향유하는 것이 삶의 다른 모든 쾌락과 즐거동요하기 때움 가운데 자리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로틱한 사랑은 또한 모든쾌락 너머에, 모든 능력 너머에, 타자의 자유와 맞서는 모든 투쟁 너머에 자리한다. 왜냐하면 사랑에 빠진 주체성은 이동실체화/초실체화transsubstantiation 자체이기 때문이다. - P413
생성의 철학은 실존함을 안정된 것의 영속성에 고정시키는 대신시간이라고 해명함으로써 초월을 해치는 일자의 범주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미래의 분출이나 기투는 초월한다. 단지 인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실존함 자체에 의해서 초월한다. - P418
윤리는 시각과 확실성 너머에서 외재성자체의 구조를 드러낸다. 도덕은 철학의 한 분과가 아니라 제일 철학이다. - P458
평화는 나의 평화여야 한다. 평화는 자아로부터 출발해 타자로 나아가는 관계 속에, 욕망과 선함 속에있다. 여기서 자아는 자신을 유지하는 동시에 에고이즘 없이 실존한다. - P462
나의 임무는 윤리를 구축하는 데 있지 않다. 나는 윤리의 의미를 탐색하려 할 뿐이다.6)-알라딘 eBook <레비나스와 정치적인 것> (김도형 지음) 중에서 - P4
철학의 가장 위대한 덕목은 철학이 스스로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 자신이 구축했던 것을 해체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말했던 것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현재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은, 생각하고 스스로에 대해 묻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철회할 수 있는 철학의 이 능력이다.7)-알라딘 eBook <레비나스와 정치적인 것> (김도형 지음) 중에서 - P4
윤리는 자아에게 ‘이해 가운데 있음에서 벗어날 것’(desinteressement)을 요구한다.-알라딘 eBook <레비나스와 정치적인 것> (김도형 지음) 중에서 - P27
레비나스가 말하는 책임이란 타자에 대한 책임인 동시에 ‘볼모’에까지 이르는 무한한 책임이며, 이 책임이 주체성의 근본적인 구조를 이룬다.-알라딘 eBook <레비나스와 정치적인 것> (김도형 지음) 중에서 - P28
따라서 우리는 얼굴에서 타인의 에피파니를 전제함과 동시에 초월하는 하나의 지평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이 지평에서 자아는 죽음을 넘어서 자신을 지탱하며, 또한 자기로의 복귀로부터 자기를 회복한다. 이러한 지평이 사랑과 번식성의 지평이다. - P382
의지의 최고의 시련은 죽음이 아니라 고통이다. 인내 속에서, 그포기의 한계에서 의지는 부조리에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지가떠받치는 폭력은 무―이 무는 탄생에서 죽음으로 흘러가는 시간의영역을 순수하게 주관적인 것으로, 내적인 것으로, 헛된 것으로, 무의미한 것으로 환원해 버릴 것인데의 저편에서, 전제정치처럼 타자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그것은 의미 작용에서 뚜렷이 부각되는 부조리로 생산된다. 폭력은 대화를 중단시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냉혹하지는 않다. - P362
변호는 심판을 요구한다. 그 심판이 던져 줄 빛 아래서 창백해지거나일관성 없는 그림자처럼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반대로 정의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심판은 변호의 사건을 그 본연의 원래 운동속에서, 무한의 생산에 불가결한 운동 속에서 확증해 줄 것이다. 죽음에의해 그 자발성과 지배력을 부인당하는 의지, 죽음에 의해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시 말해 역사적 맥락으로 남은 작품들 속에서 질식되는의지는 심판 아래에 놓이고자 하며 심판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증언에 입각한 진리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 P364
자아는 하나의 특권 또는 선출이다. 존재 속에서 법의 직선을 가로지를 가능성, 즉 보편적인 것 너머에서 자리를 발견할 유일한 가능성,그것은 내가 되는 것이다. 이른바 내적이고 주관적인 도덕성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법이 수행할 수는 없는 기능을, 그렇지만 그것이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진리는 주관적인 것 속에 존재할 수 없듯, 전제정치 속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진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한 주체성이 진리를 말하라고 부름받은 경우뿐이다. - P372
생물학적 번식성은 여기서 관건인 아버지됨의 한 형태일뿐이다. 아버지됨은 시간의 근원적 실행으로서, 인간들에게서는 생물학적 삶위에서 지탱되지만, 이 생물학적 삶을 넘어 살아나갈수 있다. - P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