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장의사처럼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죽음을 다룬다. 상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슬픈 표정으로 연민의 감정을표현하고, 혼자 있을 때는 노련한 장인이 된다. 나는 죽음과 어느 정도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죽음을 다루는 비결이라고 옛날부터 생각했다.
그것이 법칙이다. 죽음의 숨결이 얼굴에 닿을 만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게 하면 안 된다. - P12

20년 전 누나가 죽은 뒤 왠지 나를 대하는 두 분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것 같았다. 살아남았으니까. 또한 그때 이후로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계속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금에 쌓이는 이자처럼 작은 실망들이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였다. 이자가 많이 쌓이면 우리는 그 이자를믿고 편안히 은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남이었다. 나32 - P32

어쨌든 나는 그 미끼를 물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내 삶의 모든 것이 변했다. 누구의 삶이든 세월이 흐른 뒤 회고를 해보면 삶의 지도를 분명히그릴 수 있듯이, 내 삶은 그 한 문장과 함께, 내가 글렌에게 형 이야기를쓰겠다고 말한 그 순간에 변해버렸다. 그때 나는 죽음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다. 악마에 대해서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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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자동차와같았다. 자신이 운전대를 잡을 수도 있고, 앞자리나 뒷자리에 타고 갈수도 있고, 길가에 버려진 채 차가 지나가는 걸 우두커니 보게 될 수도있다. 매케일렙은 조금 전까지 자동차의 운전대를 쥐고 있었지만, 지금은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여야 하는 신세였다. 속이 상했다. - P312

"예전에 자네가 한 말이 기억나." 보슈가 말했다. "하느님이 세세한것들에 깃드신다면 악마도 마찬가지라고 했지. 자네가 쫓는 범인이 대개는 바로 눈앞에 있다는 뜻이었어. 세세한 부분 속에 처음부터 숨어있었다는 뜻. 난 그 말을 잊어버린 적이 없어. 지금도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되거든."

그러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부엌 창문을 통해 캐흉거 고개를 바라보았다. 할리우드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사방에서 별들이 빛나는 하늘의 풍경과 똑같았다. 보슈는 거기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나쁜 일들에대해 생각했다. 그곳은 옳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은 도시였다. 발밑에서 땅이 입을 벌려 사람을 암흑 속으로 빨아들일 수 있는 곳이었다.
빛이 사라진 도시. 그의 도시. 그런데도 언제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의 도시. 두 번째 기회가 있는 도시.
보슈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눈을 감은 뒤 물줄기에 에손을 집어넣었다가 얼굴에 갖다 댔다. 물은 차갑고 상쾌했다. 두 번째기회를 위해 세례를 받을 거라면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P503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을 짓는 데 영감을 준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특별히 감사한다. 챈들러는 1950년대에 자신이 초창기 범죄 소설에서 배경으로 삼았던 시대와 장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거리가 어두운 것은 밤보다 더한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럴 때가 있다. -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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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분이라도 괜찮아. 근처에 어디 식사할 데가 있나?"
"여기 카페테리아는 생각도 하지 마. 엉망이니까. 빅토리 거리에 큐피드 식당이 있어."
"경찰들은 항상 제일 잘하는 식당에 다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거지." - P96

모든 준비가 끝났다. 보슈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서류철 위에서 팔짱을 끼었다. 법정은 고요했다.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는 법원 출입 기자 한 명과 서기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보슈는 이런 순간을 좋아했다. 폭풍 전야의 고요.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보슈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또다시 악마와 춤을 출 준비가. 보슈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마다 항상 이런 순간과 맞닥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순간을 음미하고 기억에 새겨야 마땅했지만, 그는 항상 창자가 꼬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69

이제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세계를 탐험하고 파악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그 세계의 길을 찾아내야했다. 그는 혼자 있는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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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일렙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그때 현장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슈가 그때 느낀 것, 원자들이 서로 충돌해서 융합하듯이 모든 것이 갑작스레 하나로 융합되는 그 느낌을 그도 알기 때문이었다. 그냥 진실을 깨닫는 순간, 무서우면서도 짜릿한 순간.
모든 강력반 형사들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사실은 목숨을 걸고추구하는 순간.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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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 시절에 그는 자신이 뒤쫓는 사람들에게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들이 저지른 짓을 직접 봤기 때문에 그 끔찍한 환상을 현실로 옮긴 놈들이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싶었다. 피로 진 빚은 반드시피로 갚아야 했다. 그래서 FBI 연쇄살인 전담반 요원들은 자기들이 하는일을 ‘피의 작업‘이라고 불렀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빠져나가는 놈이 생길 때마다 그는 상처를 입었다. 매번.
그런데 지금은 글로리아 토레스 사건이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악이 그 여자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에 그는 목숨을 건졌다. 그래시엘라는 그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글로리아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었다. 범인과 현금등록기 사이에 서 있었다는 것이 죄라면 죄였다. 그렇게 단순하고, 터무니없고, 지독한 이유로 목숨을 잃다니. 그래서인지 매케일렙은 왠지 빚을 진 기분이었다. 글로리아와 그녀의 아들에게, 그래시엘라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어 팔로잉 시는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파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배뒤를 바짝 쫓아오는 파도예요. 하지만 눈에는 안 보이죠. 그 파도가 뒤에서 배를 때리면 배가 가라앉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뒤를 쫓아오는 파도들이 있을 때는 파도보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파도를 앞서는 거죠.
아버지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배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겁니다. 항상등 뒤를 조심하라고요. 어렸을 때 나한테도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뭍으로 건너갈 때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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