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장 가방
문수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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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장가방 그림책을 읽고>

뭉클하고 단단하고 애틋하다.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어디 가서 생색 하나 낼 줄 모르는 우직한 우리네 아버지 모습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
1947년에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은 어린 시절, 목수 일을 배울 기회가 생겨 삼 년 동안 허드렛일만 하다가 삼년만에 겨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청년 시절. 그 기술을 바탕으로 결혼도 하고 멀고 먼 사우디에 가서 일 하시고 돌아와 집도 산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시간. 그리고 병과 함께 연장들을 떠나보내는 노년의 시간.
일하는 세월이 늘어갈수록 하나 하나 하나 채워져 가는 아버지의 연장 가방과 나중엔 그걸로도 모자라 창고까지 필요해진 아버지의 연장들.
연장들을 어떻게 쓰냐는 자식의 물음에 아버지는 친절한 설명을 안하신다. 안 하시는게 아니라 하실 수 없는 거겠지. 아버지 말씀처럼
"야야 그걸 말로 우예하노. 연장을 잘 다룰라믄, 손에 익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친엄마는 일찍 돌아가시고 새엄마 밑에서, 공사판 아저씨들 밑에서, 목수 기술 배우며 말도 몬 하게 겪은 고생의 순간들을 아버지는 대패질하며 나무를 깎아내듯이 깎아내셨을까.

이 책의 화자인 자식은 외할머니 장례식장에 갔다가 가족끼리 외할머니 얘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책을 시작한다.
나는 과연 내 아버지에 대해서 얼마나 아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책 속 아버지보다 여덟살쯤 많으신 내 아버지도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새어머니 밑에서 무척 고생하시다 군대로 도망가셨다. 거기서 말뚝박고 평생 젊은 장교들에게 경례를 붙이는 하사관으로 사시다 직업군인으로 정년퇴직하셨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배트남 전쟁에 나가셔서 전사통지서가 오는 헤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제대 하실땐 50살이 정년이라 지금 나보다 더 젊은 나이에 은퇴하신 아버지는 다시 회사나 요양병원 등에서 경비 일을 하시다가 이제는 엄마와 산에 다니시거나 노인정에 가셔서 화투패를 맞춰보시며 지내시고 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삶을 간단히 써봤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기지도 못하시면서도 술은 좋아하셔서 술을 드시고는 늘 청춘을 돌려달라 하시는 아버지의 주정이 지긋지긋했지만 정작 돌려받고 싶은 청춘이 어떤 것인지는 살갑게 여쭤본 적이 없다.
이 책을 보니 갑자기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보고 싶다. 전화 하고선 밑도 끝도 없이 만연체로 말씀하시는 아버지 말씀에 질려 금새 후회하겠지만. 국제 시장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영화 속 아버지도 자기 인생을 다 바쳐 가족을 건사했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답답한 존재로만 여기는데 책 속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영화 속의 아버지들은 그 서운함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못한 채 사셨겠구나 싶어 더 마음이 짠하다.
문수 작가의 첫책이다.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연장 가방에서 망치와 톱 등 아버지의 연장들을 보며 느낀 감정을 작가의 연장들을 통해 종이 위에 옮겨 보았다는 맨 뒤쪽 글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나는 그림 그리는 연장도 없고 솜씨도 없으니 무엇으로 내 아버지의 삶을 옮겨볼까. 아버지를 닮아 필체가 좀 괜찮으니 아버지께 물려받은 필체로 종이 위에 글을 써야 하려나.
세세한 연장의 쓰임에 대한 묘사와 설명도 정말 훌륭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뭉클함이 더 큰 책이다. 널리 많이 읽히면 좋겠다.
#아버지의_연장가방
#문수
#키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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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유리 지음 / 이야기꽃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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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작가의 신간 예약판매 관련 링크를 보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신청했다. 유리 작가니까, 이야기꽃 출판사니까.
나는 사고 보니 이야기꽃 출판사라고 할만큼 이야기꽃에서 나온 책들에 손이 자주간다. 유리작가의 첫 책 <대추 한 알>을 보고 그림에 반했고, 김장성 대표님과 함께한 <수박이 먹고 싶으면>은 글과 그림에 모두 감동받아 여기저기에 알리는 책이다. 그런데 이번엔 유리 작가 단독책이라니 많이 궁금했다. 제목과 표지 그림을 보면 음악 관련 내용이긴 할텐데 악기 이야기일지, 연주자 이야기일지, 아니면 또 다른 이야기일지.
오늘 책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두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글씨도 많았다. 그런데 그냥 쭉 읽어졌다. 마치 내가 한 단계 한 단계 완성되는 바이올린 같았다.
매끈한 붉은색 바이올린 위에 앙코르 세 글자가 스타카토처럼 써진 표지를 넘기면 각종 연장과 도구로 가득한 벽면이 보인다. 드라이버나 끌개, 톱, 줄톱, 붓 정도만 알아보겠고 다른건 이름도 모르겠다.
그 다음엔 당연히 출판 관련 정보나 작가 소개, 표제지가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안단테~걷는 듯 천천히'라는 말과 함께 폐기물 딱지가 붙어있는 붉은 바이올린 케이스가 다른 폐기물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나온다. 누군가가 다가와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보고는 그걸 자전거 뒷자리에 싣고 가는 장면과 연장이 가득했던 공간에 스텐드 불이 켜지는 장면이 더 이어지고 나서야 속표지처럼 제목이 한 번 더 나온다.
이제 본문이다. 돌체(부드럽게), 그 다음엔 그라치오소(우아하게), 스피리토소(활기차게), 콘브리오(생기있게), 콘아모레(사랑을 담아) 라는 음악 용어가 각 장의 제목처럼 나오고 그 악상에 맞게 버려진 바이올린은 제대로 소리가 나는 바이올린으로 고쳐진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도 복잡하고 정성스러운지 그림책 보는 나도 그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아주 천천히, 정성스럽게 보고 읽게 만든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고쳐진 악기는 누구 손으로 가서 앙코르를 부르는 소리를 냈을까? 그건 직접 책을 보기를 권한다.
이 책을 보니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가 떠올랐다. 하나는 망가진 책을 고치고 하나는 바이올린을 고치는 내용이지만 그 정성스러움과 세세한 공정을 글과 그림으로 엮어낸 장면들이 꼭 둘을 함께 놓고 보면 좋겠다 싶다.
책이 두꺼운 만큼 유리 작가의 맑고 섬세한 그림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았고 마음에 남는 문장들도 여럿 있어 옮겨 적어두고 싶다
"천천히, 차근차근....
정성을 들인 만큼 소리가 날 것이다."
"어디에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것들이 있다."
"천연수지는 나무의 상처에서 나온 나뭇진이 굳은 것이다. 상처에서 나온 것이 나무를 상처나지 않게 지켜준다." 같은 문장들.
아직도 남은 악상 기호가 더 있다.
다 카포(처음으로 돌아가서). 처음처럼 다시 소리를 내게 된 바이올린의 앙코르가 귀에 들리는듯 하다.
뒷면지 쪽으로 넘기다 작가님이 써주신 문장이 가슴을 쿵 때린다.
'끝까지 하려했던 인경화님과 끝까지 해낸 인경화님. 모두를 응원합니다! "
뭔가를 하다가 포기했거나 잠시 멈췄다면 이 책의 악상 기호대로 안단테~돌체~그라치오소~스피리토소~콘 브리오~콘 아모레 해본 후 다 카포로 돌아가면, 앙코르를 불러올만큼은 아니더라도 나혼자 씩 웃을만큼의 결과는 있지 않을까?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이 책을 다시 봐야겠다.
#앙코르 #유리작가 #이야기꽃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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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갑니다 - 2021 문학나눔 선정도서 향긋한 책장 1
최은영 지음, 이장미 그림, KBS환경스페셜(김한석.고은희) 원작 / 시금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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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갑니다>
~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는 저마다의 한 번뿐인 생 이야기
책을 펼치기 전 저녁 노을인지 아침 하늘인지 모를, 붉은 빛에서 노란 빛까지 그라데이션 된 하늘을 한참 쳐다봤다. “아, 곱다” 하며. 한참을 보고 나서야 그 하늘을 쳐다보는 엄마와 아기 고라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엔 그야말로 첩첩이 겹쳐진 산과 산들. 산 하나가 우뚝 잘나게 서 있는게 아니라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앞과 뒤를 이어가는 산의 능선들. 그렇지. 우리나라 산은 그렇지.
그렇게 서로 기대어 겹쳐진 능선을 만드는 우리나라 산처럼 이 책 속의 여러 생들은 각자 자기 생을 살면서, 또한 서로 기대어 겹쳐진 삶의 능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면지만 봐서는 첩첩 산중에 까치밥 매달아둔 감나무 한 그루와 초가집 한 채 뿐인 듯 하지만 이 속엔 고라니도, 멧돼지도, 새도 있음을 보여준다. 어디 그 뿐이랴. 한 장 더 넘기면 무심히 땅을 보고 있는 닭도 나오고, 호기심 잔뜩 어린 표정의 다람쥐도 나온다.
자기 소유의 물건 없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에게 가장 어려운 시절은 아마도 겨울이겠지. 낙엽 이불을 준비하고 도토리를 모으고, 그마저도 없으면 서로를 꼭 껴안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생명들의 모습이 차례차례 나온다. 그리고 찾아온 겨울, 죽은 나뭇가지만 주워 땔감으로 해 가는 할머니의 모습마저 자연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그대로 그 생명 속의 하나일 뿐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늦가을과 겨울에서 출발한 그림책은 모두가 함께 자라는 봄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털 하나 없는 청설모 아기 모습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려주더니, 일주일 짧은 생으로 마감하는 하루살이의 삶으로 봄날을 지난다. 태풍도 있지만 짙은 초록색이 가득한 여름 산을 지나면 다시 가을이다. 단풍은 산 위에서부터 물든다는 것을 새삼 보여주는 그림에 눈길이 갔다. 다시 겨울을 날 채비를 하는 모습으로 넉넉한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안에서 생명들은 또 한 해를 살아내겠지.
이 책을 읽으며 지리산에 사는 여러 동식물을 꾸밈없이 그린 그림이 참 좋았다. 세밀하지 않지만 특징이 잘 살아있는 모습이 정감있어 지리산에 가면 금방 알아볼듯하다.
그리고, 계절마다 나오는 할머니 모습! 멀쩡한 나무가 아니라 죽은 나뭇가지만 모아서 땔감으로 쓰시고, 아기 주먹같이 작은 고사리 순을 따서 먹거리를 삼으시는 모습, 태풍이 지난 여름 산 풀숲에 가만히 소금 한 바가지를 내 놓고 가시고, 내년 봄에 지붕을 새로 이을 억새를 아무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베는 그 마음.
우리가 지금까지 자연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고 함께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대재앙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파트를 짓겠다고 산을 통째로 깎아내고, 좀 더 빠른 길을 낸다고 산 한가운데를 뚫고, 산에 좀 더 편히 오르겠다고 케이블카 설치를 하고, 산을 물 속에 가두며 댐을 짓는 우리 모습은 할머니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리 와버렸나.
오사다 히로시의 <심호홉의 필요>에 ‘멀리’라는 곳은, 갈 수는 있어도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이 그림책 속 세상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렵고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살아갑니다>에서 너무 ‘멀리’ 와버려 <살아갈 수 없습니다>를 향해 나가아고 있으니까. 이 책을 곁에 두고 내 삶 안에서 다시 살아갈 방법을 하나씩 찾아 아주 조금씩이라도 되돌아가기 연습을 해야 할 때라고 이 책은 말없이 알려주는 듯 하다. # #서평단
#살아갑니다
#이장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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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철학연습 - 십대들의 마음과 생각을 키워주는 그림책 읽기 생각하는 청소년 14
권현숙 외 지음 / 맘에드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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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고 있으면 좀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봐도 그림책 읽을 나이는 아니라는 표정이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니까 그냥 수업자료로 보는가 보다 한다.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 읽는다고 하면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되곤 한다.
초등교사인 내가 그림책을 읽어도 이런 반응인데 이 책을 쓰신 선생님들은 무려 모두 중등 선생님들이다. 그런데 이미 그림책과 관련한 책을 여러 권 낸 분들이다. 그림책 학급경영, 그림책 생각놀이, 그림책 토론 등의 책들이 나올 때마다 중고등학교에서 이렇게 그림책을 다채롭게 읽고 수업을 한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중고등학교니까 이렇게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놀이도 토론도 아니고 무려 ‘철학’이다.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지려 하고 나하고 먼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철학이 없는 삶은 방향도 이유도 없는 삶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철학 멘토이신 양평교육청 김현철 교육장님은 ‘철학은 실용학문’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궁금할 때,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성찰하려고 할 때, 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싶을 때 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철학이다. 삶의 기준점이 철학인데도 우린 어렵다고 피하고 남의 옷처럼만 여긴다.
그런데 그 어려워 보이는 철학을 그림책으로 시작해보자는 책이 나왔으니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나 찾기, 행복한 관계,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불확실한 미래 맞이하기 라는 4가지 카테고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고민 지점이자 반드시 이정표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 각각의 카테고리에 알맞은 10권 이상의 그림책과 풍성한 관련 자료들, 그리고 강요하지 않고 따뜻하게 전하는 문장들이 머리와 마음을 채워준다.
나와 관계에 대한 그림책들은 예전에도 많았지만 새로운 신간들이 함께 소개되어 궁금함을 일으킨다. 민주시민과 불확실한 미래 관련 내용을 보면서는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와 지속가능한 미래가 이제는 나 자신과 주변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고 내 삶에 중요한 화두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련된 그림책이 이렇게 많이 나와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지점인지를 새삼 느끼게도 되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론과 엄청난 사건을 예로 들지 않아도, 그림책으로 이렇게 다양하고 깊은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걸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여기에 소개된 그림책들이 마중물이 되어 나를 좀 더 튼튼히 세우고, 좀 더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며, 민주적이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림책은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책은 깊다.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 깊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안내자로 삼아 그림책으로 철학하기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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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위험한 엄마 구출 작전 청소년문학의 봄 2
맬컴 더피 지음, 조수연 옮김 / 봄개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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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제목과 소재 & 읽다가 멈추기가 힘든 책
<은밀하고 위험한 엄마 구출 작전>
맬럼 더피 글, 조수연 옮김, 봄개울 출판사


엄마와 살고 있는 대니는 14살이다. 그런데 엄마는 30살이다. 엄마가 16살 때 낳은 아들.
그리고 대니는 엄마와만 살고 있다. 그럼 아빠는?
대니의 엄마는 젊고 예쁘다. 초콜릿 비스킷을 너무 좋아해서 날씬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14살 아들 엄마이기엔 너무 젊고 예쁘다. 그런 엄마에게 캘럼이라는 이름의 남자 친구가 생겼다. 좋게 보면 듬직하고 돈 많은, 나쁘게 보면 다혈질의 마초적인 그런 남자다. 그 남자를 엄마는 좋아한단다. 그래서 캘럼 집으로 집을 옮겼다.
이사 첫날부터 끔찍했다. 캘럼은 자신이 준비한 샴페인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자러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엄마에게 샴페인을 뿌려대기도 했다. 엄마에게 소리지를 때 목소리가 학교 선생님처럼 변하기도 했다. 이 집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 때는 만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결국 엄마와 대니를 태워서 집까지 왔다. 사랑에 빠졌던 엄마는 이제 울기 시작한다. 스페인으로 여름 휴가를 가서도 엄마의 사소한 장난에 캘럼은 엄마가 거의 죽을 만큼 목을 졸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캘럼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기 시작했다.
대니는 엄마가 죽을까봐 겁이 났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가정폭력’ 네 글자와 함께 영국에서도 일주일에 2명씩 가정폭력으로 죽는다고 한다. 1년이면 104명이다. 더군다나 가정 폭력은 다른 범죄에 비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검색한 자료에 나와 있다. 엄마가 모르고 있는거 같아 컴퓨터를 들고 가 보여주었지만 엄마는 관심이 없다. 자기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만 한다. 대니는 이제 캘럼 아저씨 뿐만 아니라 이 상황에서 벗어날 노력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도 화가 난다. 왜 엄마는 캘럼 아저씨와 헤어지지 않을까?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할지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어보러 다니는 대니. 다들 그럴 땐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대답한다. 문제는 대니에겐 바로 그 ‘아빠’가 없다. 대니는 태어난 직후 한 번도 아빠를 본 적도, 누군가가 얘기를 해준 적도 없다. 그럼 이제 대니는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과연 대니의 엄마는 폭력을 휘두르는 캘럼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엄마가 죽을까봐 매일 가슴 졸이는 삶에서 벗어나 대니가 다시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책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은밀하고 위험한 엄마 구출 작전>.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누군가로부터 아무도 몰래 엄마를 구출해 내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어떤 면에서 은밀해야 하는지가 조금씩 달라졌다. 단순히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캘럼에게 들키지 않는 의미의 은밀함이 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더 흥미롭고 애틋한 은밀함이 있었다. 동시에 14살 대니에게 찾아온 이성 친구 에이미와의 풋사랑도 흥미롭고 예쁘다. 엄마도 지켜주고 싶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친구 에이미도 지켜주고 싶은데 왜 이 여자들은 대니에게 도움 요청을 안 하고 위험하거나 불안한 상황을 참고만 있는게 대니는 서운하고 답답하다. 에이미는 대니와의 사랑을 자꾸 방해하고 기분 나쁜 문자를 보내는 꺽다리 데이브에게서 어떻게 벗어날까?
페이지 터너라는 말이 제대로 실감나는 책이다. 48개 챕터에 291쪽이라는 짧지 않은 분량인데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가정 폭력이라는 결코 밝지 않은 소재임에도 리듬 있는 문체와 흥미롭게 이어지는 사건 전개로 뒷이야기가 계속 궁금해진다. 나도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전철에 서서 계속 읽었다.
살아가며 결정한 모든 일에는 선택에 대한 자유만큼 책임도 따른다. 이 책에는 15살, 16살에 어린 나이에 대니를 낳게된 대니의 부모, 대니를 좀 더 잘 키워보려 남자 친구의 폭력까지도 감수했던 대니 엄마, 한 번도 못본 아빠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고 스코틀랜드까지 혼자 간 대니,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선택들이 나온다. 모두들 그 선택을 할 때는 좀 더 즐겁고 좋은 결과를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늘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 또한 삶이기도 하다.
부모란 무엇이고, 가정은 어떤 곳이어야 하고,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야 하는가도 함께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허울에 둘러싸인 소유욕 속에 다치고 죽어가는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를 생각하며 대니 나이인 14살부터는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마지막 부분에 대니가 받은 편지 내용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편지를 쓴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꼭 펼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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