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고양이 소피 - 동화로 읽는 철학
차이즈친 지음, 마오실리우 그림,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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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른들도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다. 하지만 삶의 많은 문제와 방황이 철학의 부재로 일어나거나 심하게 겪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무조건 등한시 할 수만도 없는 일. 그런데 책 제목에 철학 고양이가 나온다. 거기다 이름도 철학을 연상시키는 소피.
처음엔 전혀 읽을 욕구가 일어나지 않았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부터 서양 철학사를 대충 소개하는 구성이리라 생각해서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책의 절반을 훌쩍 넘어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만든 것일까?
첫 번째로는 서양 철학을 시대순으로 무조건 꿰맞춰 소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9개의 지혜의 등을 켜야 하는 미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게 단순히 서양 철학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알게 되었다고 미션 완료인 것이 아니다. 책 속 주인공이 갈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삶의 질문을 만나면 그에 꼭맞는 철학자들이 상황에 따라 등장하고 자신의 철학을 너무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는게 이 책의 최대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어떤 질문은 고금을 넘나들며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는 것도 보여준다.
인상 깊은 문장 몇 가지를 꼽아 볼까 한다.
“철학 세계의 사람들은 정말 무섭다. 그들의 말과 생각은 마치 날카로운 조각칼처럼 필로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새로운 무늬를 새긴다.”(170쪽)
“자유에 한계가 없다면, 그런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끝없는 방종은 허무하고 고통스러울 뿐이라네.”(201쪽)
“공평에 대한 생각의 씨앗을 남기고 싶었어요. 언젠가 그 씨앗이 자라서 멋진 정의의 꽃을 피우기를 기대하면서.” (281쪽)
인상 깊었던 세 곳을 옮겨 적었지만 더욱 많은 문장들 앞에서 멈추곤 했다. 이 책을 쓴 작가도, 이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한 출판사도 모두 이 책이 아주 많이 팔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누군가는 생각의 씨앗을 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씨앗이 자라 멋진 새로운 철학을 꽃피우려면 말이다.
이 책을 쓰신 작가님과 출판사에게 모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점점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텍스트에 경도되는 이 시대에 이런 책을 쓰고 출판 하다니. 무모하다 싶은 그 용기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철학은 먼 곳에서 보면 무용지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삶은 모두 나름의 철학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내 삶의 운전자가 철학임을 빨리 알아차리고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한 주에 등 1개씩 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초그평 #초그평서평단 #철학고양이소피 #차이즈친 #라피마옮김 #한울림어린이 #철학과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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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공장 노는날 그림책 22
안오일 지음, 신진호 그림 / 노는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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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그냥 관광지로만 알았다. 그러다 제주 전역이 무덤이라는 걸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름과 곶자왈 속 동굴마다, 활주로 아래에, 해안가 주변, 중산간 지역 마을들 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또 한 곳을 만났다. 술의 재료가 될 주정을 만드는 공장이 간직하고 있는 슬픈 사연. 수채화 느낌으로 말갛게 그려진 그림에 마음이 아리다. 마지막 장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주 4.3 사건은 아직 이름이 없다. 한동네 안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여 있어 서로 말조차 꺼내지 못하던 세월이 아주 길었다. 지금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못하고 살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음을 최근에 개봉된 <목소리들>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그 다큐멘터리 마지막 부분에 진혼제를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곳이 바로 이 주정공장 이었음을 책을 보고 알았다.
근대 국가에서 폭력은 국가와 공권력에 독점되었다. 사사로이 폭력을 사용하면 공권력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럼 국가 권력으로 마음대로 저지른 폭력은 누가 어떻게 막나? 4.3은 아직 그 답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나무 도장≫이나 ≪무명천 할머니≫부터 4.3관련 그림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아직 진실과 아픔을 알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기억은 가장 큰 추모이자 저항이다. 기억 공장 덕분에 진실과 아픔의 퍼즐 한 조각을 더 갖게 되었다.
#기억공장 #안오일_글 #신진호_그림 #노는날_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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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비단옷을 입은 책 -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한울림 작은별 그림책
박혜선 지음, 정인성.천복주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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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기록을 정말 잘하는 나라다 ~ ‘푸른 비단옷을 입을 책’을 읽고>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전세계 어느 왕조도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고, 수원 화성도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음에도 복원이 가능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갖고 있는 것이 모두 18건이나 된다. 하지만 그 어떤 기록유산보다도 아름답고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의궤’들은 이 18가지 기록유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 권만 봐도 그 아름다움에 반하고 자세하게 그려진 그림과 기록에 놀랄 의궤는 왜 우리나라 기록유산이 되지 못했을까? 이 책은 그 이유를 잘 알려주고 있다. 병인양요때부터 2011년 의궤가 남의 나라 국적인 채 우리나라에 임대의 형식으로 돌아오기까지 145년 동안의 역사가 들어있는 이 책이 출판되어 정말 고맙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문화재들이 반출되는 경로가 다양한만큼 문화재의 소유권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는 하나로 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약탈이 분명한 경우라면 원래의 자리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근본적 질문과 현실적 문제가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에서 의궤를 발견한 과정, 그 이후 반환을 위한 우리나라의 주장과 자국의 문화재로 유지하기 위한 프랑스의 반박은 어떤 점에서 가장 불일치하는지,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약탈 문화재에 대한 국제적 여론은 어떤지 등등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질문들이 많다.
문제점을 제기한 이 책에 이어 실제 의궤의 내용을 다룬 그림책들이 계속 출간되면 좋겠다. “아무리 가난한 이들의 집이라도 집 안에 책이 있었다”며 이것을 몹시 부러워한 프랑스 장교의 기록처럼 우리나라는 문화 강국이다. 그 결과들이 지금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걸 잘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외교적, 법적 뒷받침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해서 관련된 다양한 책과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강화도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직접 답사를 다녀보면 이 책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초그평 #초그평서평단 #푸른비단옷을입은책 #박혜선글_정인성그림 #한울림어린이 #우리문화_역사_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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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 돌봄 소설집 꿈꾸는돌 41
강석희 외 지음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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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지키는 것이 내가 제대로 사는 것임을 조금씩 배워가는 나날~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돌베개 돌봄 소설집을 읽고》

돌봄 소설집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뭔가를 너무 강요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그렇지만 책장을 열게 한 첫 힘은 작가들의 이름이었다. 이분들이 쓴 글이라면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시각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그 기대가 맞았음을 확인했다.
돌봄이라는 말과 함께 떠오르는 말은 대상이다. 누가 돌봄 대상인가? 각자는 돌봄의 주체이고 우리는 서로가 돌봐야 하는 관계가 있을 뿐이다. 이 책에 나오는 7편의 단편들 중에는 지체 장애와 섭식 장애, 치매 어른과 가족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아이, 음식물 알러지를 가진 아이 등 분명한 상황이 나오는 이야기도 있고, 짐작은 되지만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도 있으며, 조금은 우리를 미래 세계로 데려다 놓는 이야기도 있다. 상황의 구체성이나 현실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다른 색으로 쓰여진 이 이야기들은 서로의 상황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존재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함께 살아가는 태도일 텐데 그걸 자꾸 잊는다. 다르거나 불편하면 피하고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보이더라도 안 보이는 듯 산다. 그래서 자신도 소외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젊은 작가들이 설정한 상황과 문장이 세련되어 읽는 맛이 좋다. 이야기 속에 ‘나라면’을 대입하며 읽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끝나는 지점에서 자꾸 서성이게 된다. 단편의 매력이 그런 것이리라.
얼마 전 전장연 시위에 3~4백 명의 2030들이 응원봉을 들고 함께 누워서 ‘펠리스나비다’ 곡에 맞춰 “시혜도 아니다, 시설도 아니다” 라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을 들고 나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삶을 지키려 함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며, 돌봄은 서로를 지키는 것이 내가 제대로 사는 것임을 우린 조금씩 배워가는 나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다양하고 세밀한 시선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일곱 작가들의 그림책, 동화, 소설들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너의오른발은어디로가니 #돌봄소설집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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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지 한 장의 기적 라임 그림 동화 40
나가사카 마고 지음, 양병헌 옮김 / 라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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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고 싶지만 알아야 할 진실 ~ 도화지 한 장의 기적>
  지은이 이름이 일본 사람인데 책을 펼치면 아프리카 가나가 배경이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아빠가 하는 일을 도와주면 1세디(약 100원)를 번다. 무슨 일인지는 설명이 나오지 않는데 그림을 보면 이미 있는 어떤 물건에서 뭔가를 떼어내거나 지우는 등의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림쟁이 아저씨가 마을에 나타나 1세디로 도화지를 사면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1세디로 늘 사탕을 사먹던 아이들은 그 돈으로 도화지를 사야한다는 말에 망설였지만 두 명은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10세디에 팔린다. 그 중 한 명은 10세디를 다른 곳에 다 써버리지만 한 명은 10세디로 또 도화지를 사서 그림을 그리고 작은 전시회도 한다. 그 그림들은 어떻게 될까? 책 제목이 ‘도화지 한 장의 기적’이니 그 그림들은 뭔가 다른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실제로 가나를 방문한 한 일본 화가의 체험이 들어가 있다. 전자 쓰레기 마을로 유명(?)한 가나의 아그보그볼로시에서 실제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쳐 준 작가는 그림을 통해 그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세상에 알리고, 그 그림들을 판 수익으로 재활용 공장을 세우겠다는 꿈을 품어서 실제로 2022년에 재활용 공장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전시회를 찾아보았는데 유독한 전자쓰레기를 만지면서도 방독 마스크나 장갑도 없이 작업하는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나 거기서 나온 폐기물로 만든 작품, 그리고  책 내용과 같이 아그보그볼로시 아이들이 직접 그린 ‘슈퍼스타스’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다.
  우리가 편하게 문명을 누리고 사는 동안 어딘가에선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게 아닌데 우리가 버린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알았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 한 점을 사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리고 뭘 모르고 사는지,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얘기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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