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갑니다 - 2021 문학나눔 선정도서 향긋한 책장 1
최은영 지음, 이장미 그림, KBS환경스페셜(김한석.고은희) 원작 / 시금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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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갑니다>
~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는 저마다의 한 번뿐인 생 이야기
책을 펼치기 전 저녁 노을인지 아침 하늘인지 모를, 붉은 빛에서 노란 빛까지 그라데이션 된 하늘을 한참 쳐다봤다. “아, 곱다” 하며. 한참을 보고 나서야 그 하늘을 쳐다보는 엄마와 아기 고라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엔 그야말로 첩첩이 겹쳐진 산과 산들. 산 하나가 우뚝 잘나게 서 있는게 아니라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앞과 뒤를 이어가는 산의 능선들. 그렇지. 우리나라 산은 그렇지.
그렇게 서로 기대어 겹쳐진 능선을 만드는 우리나라 산처럼 이 책 속의 여러 생들은 각자 자기 생을 살면서, 또한 서로 기대어 겹쳐진 삶의 능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면지만 봐서는 첩첩 산중에 까치밥 매달아둔 감나무 한 그루와 초가집 한 채 뿐인 듯 하지만 이 속엔 고라니도, 멧돼지도, 새도 있음을 보여준다. 어디 그 뿐이랴. 한 장 더 넘기면 무심히 땅을 보고 있는 닭도 나오고, 호기심 잔뜩 어린 표정의 다람쥐도 나온다.
자기 소유의 물건 없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에게 가장 어려운 시절은 아마도 겨울이겠지. 낙엽 이불을 준비하고 도토리를 모으고, 그마저도 없으면 서로를 꼭 껴안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생명들의 모습이 차례차례 나온다. 그리고 찾아온 겨울, 죽은 나뭇가지만 주워 땔감으로 해 가는 할머니의 모습마저 자연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그대로 그 생명 속의 하나일 뿐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늦가을과 겨울에서 출발한 그림책은 모두가 함께 자라는 봄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털 하나 없는 청설모 아기 모습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려주더니, 일주일 짧은 생으로 마감하는 하루살이의 삶으로 봄날을 지난다. 태풍도 있지만 짙은 초록색이 가득한 여름 산을 지나면 다시 가을이다. 단풍은 산 위에서부터 물든다는 것을 새삼 보여주는 그림에 눈길이 갔다. 다시 겨울을 날 채비를 하는 모습으로 넉넉한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안에서 생명들은 또 한 해를 살아내겠지.
이 책을 읽으며 지리산에 사는 여러 동식물을 꾸밈없이 그린 그림이 참 좋았다. 세밀하지 않지만 특징이 잘 살아있는 모습이 정감있어 지리산에 가면 금방 알아볼듯하다.
그리고, 계절마다 나오는 할머니 모습! 멀쩡한 나무가 아니라 죽은 나뭇가지만 모아서 땔감으로 쓰시고, 아기 주먹같이 작은 고사리 순을 따서 먹거리를 삼으시는 모습, 태풍이 지난 여름 산 풀숲에 가만히 소금 한 바가지를 내 놓고 가시고, 내년 봄에 지붕을 새로 이을 억새를 아무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베는 그 마음.
우리가 지금까지 자연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고 함께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대재앙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파트를 짓겠다고 산을 통째로 깎아내고, 좀 더 빠른 길을 낸다고 산 한가운데를 뚫고, 산에 좀 더 편히 오르겠다고 케이블카 설치를 하고, 산을 물 속에 가두며 댐을 짓는 우리 모습은 할머니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리 와버렸나.
오사다 히로시의 <심호홉의 필요>에 ‘멀리’라는 곳은, 갈 수는 있어도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이 그림책 속 세상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렵고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살아갑니다>에서 너무 ‘멀리’ 와버려 <살아갈 수 없습니다>를 향해 나가아고 있으니까. 이 책을 곁에 두고 내 삶 안에서 다시 살아갈 방법을 하나씩 찾아 아주 조금씩이라도 되돌아가기 연습을 해야 할 때라고 이 책은 말없이 알려주는 듯 하다. # #서평단
#살아갑니다
#이장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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