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장가방 그림책을 읽고> 뭉클하고 단단하고 애틋하다.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어디 가서 생색 하나 낼 줄 모르는 우직한 우리네 아버지 모습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 1947년에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은 어린 시절, 목수 일을 배울 기회가 생겨 삼 년 동안 허드렛일만 하다가 삼년만에 겨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청년 시절. 그 기술을 바탕으로 결혼도 하고 멀고 먼 사우디에 가서 일 하시고 돌아와 집도 산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시간. 그리고 병과 함께 연장들을 떠나보내는 노년의 시간. 일하는 세월이 늘어갈수록 하나 하나 하나 채워져 가는 아버지의 연장 가방과 나중엔 그걸로도 모자라 창고까지 필요해진 아버지의 연장들.연장들을 어떻게 쓰냐는 자식의 물음에 아버지는 친절한 설명을 안하신다. 안 하시는게 아니라 하실 수 없는 거겠지. 아버지 말씀처럼"야야 그걸 말로 우예하노. 연장을 잘 다룰라믄, 손에 익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친엄마는 일찍 돌아가시고 새엄마 밑에서, 공사판 아저씨들 밑에서, 목수 기술 배우며 말도 몬 하게 겪은 고생의 순간들을 아버지는 대패질하며 나무를 깎아내듯이 깎아내셨을까. 이 책의 화자인 자식은 외할머니 장례식장에 갔다가 가족끼리 외할머니 얘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책을 시작한다. 나는 과연 내 아버지에 대해서 얼마나 아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책 속 아버지보다 여덟살쯤 많으신 내 아버지도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새어머니 밑에서 무척 고생하시다 군대로 도망가셨다. 거기서 말뚝박고 평생 젊은 장교들에게 경례를 붙이는 하사관으로 사시다 직업군인으로 정년퇴직하셨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배트남 전쟁에 나가셔서 전사통지서가 오는 헤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제대 하실땐 50살이 정년이라 지금 나보다 더 젊은 나이에 은퇴하신 아버지는 다시 회사나 요양병원 등에서 경비 일을 하시다가 이제는 엄마와 산에 다니시거나 노인정에 가셔서 화투패를 맞춰보시며 지내시고 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삶을 간단히 써봤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기지도 못하시면서도 술은 좋아하셔서 술을 드시고는 늘 청춘을 돌려달라 하시는 아버지의 주정이 지긋지긋했지만 정작 돌려받고 싶은 청춘이 어떤 것인지는 살갑게 여쭤본 적이 없다. 이 책을 보니 갑자기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보고 싶다. 전화 하고선 밑도 끝도 없이 만연체로 말씀하시는 아버지 말씀에 질려 금새 후회하겠지만. 국제 시장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영화 속 아버지도 자기 인생을 다 바쳐 가족을 건사했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에 대해알려고 하지 않고 답답한 존재로만 여기는데 책 속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영화 속의 아버지들은 그 서운함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못한 채 사셨겠구나 싶어 더 마음이 짠하다. 문수 작가의 첫책이다.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연장 가방에서 망치와 톱 등 아버지의 연장들을 보며 느낀 감정을 작가의 연장들을 통해 종이 위에 옮겨 보았다는 맨 뒤쪽 글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나는 그림 그리는 연장도 없고 솜씨도 없으니 무엇으로 내 아버지의 삶을 옮겨볼까. 아버지를 닮아 필체가 좀 괜찮으니 아버지께 물려받은 필체로 종이 위에 글을 써야 하려나. 세세한 연장의 쓰임에 대한 묘사와 설명도 정말 훌륭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뭉클함이 더 큰 책이다. 널리 많이 읽히면 좋겠다.#아버지의_연장가방#문수#키위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