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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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선 작가의 책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을 때, 초반 몇 장을 넘기며 막연하게 어떤 내용일지 상상을 해본다. 띠지와 뒷표지에 책 내용의 정보를 담고 있는 종이책과는 달리 전자책은 정말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책을 볼 수 있게 만든다. 이번에 읽은 <사형에 이르는 병>은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읽기도 했지만 초반 분위기와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도 달라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던 책이다.

 

화자인 마사야는 어릴 때는 신동으로 불릴 만큼 똑똑한 아이였지만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우수한 학생들 사이에서 점점 뒤쳐지다 결국 삼류 지방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의 모습으로 우울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던 마사야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어린 시절 즐겨 찾던 동네 빵집 주인이자 희대의 연쇄살인마인 하이무라 야마토가 보낸 편지를 받은 마사야는 고민하게 되지만 결국 그를 찾게 되고, 그로부터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지만 마지막 아홉 번째 살인만은 누명이니 이를 벗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마사야는 학업을 제쳐두고 그의 과거 지인들, 이웃들, 심지어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까지 찾아다니며 조사를 하게 된다.

 

마사야가 하이무라를 찾아간 이유는 참 단순한데 아직 신동이던 자신의 모습만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의 그는 자기 주관이 모호하고 주변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이무라의 의뢰를 받아들여 조사를 진행하면서 점차 자신감 있고 대외적인 성격으로 변화하게 되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잠시 잊고 있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무라는 위에서는 아홉 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건 여덟 건이지만- 하지만 실제로 그의 손에 희생된 피해자는 스무 명이 넘는다. 검찰에서 어차피 아홉 건만으로도 사형 판결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 확실한 사실만으로 기소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그가 피해자를 선정하고 범행을 저지르는데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와 성범죄는 너무너무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잔인한 묘사가 많지는 않지만 일단 묘사했다하면 너무 끔찍하고 그 대상이 너무 힘 없는 어린 아이라서 끊임없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마사야는 왜 하이무라가 굳이 어린 시절 손님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러한 조사를 하게 하는지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긴 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조사를 거듭하면서 자신과 하이무라 사이의 어떤 관계에 대해 알게 되며 더 이상 제삼자의 입장에서 덤덤하게 조사할 수 없게 된다. 이 시점에서 독서를 한 번 멈췄는데 정말이지 하이무라의 끝없는 악의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이코패스라지만 설마,, 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적자면 그의 악의는 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하이무라라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작가가 그리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명한 사이코패스의 모습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 사이코패스의 특징도 그의 범행에 대한 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조사하다보면 그에 대한 평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웃들은 한결같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그의 위험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온화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지만 그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 실제로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증언들이었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마사야라는 화자를 내세워 하이무라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지나 어떻게 처음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연쇄살인으로까지 이어졌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에게 매혹당하고 심지어 그와 동화되어 갔는지까지. 연쇄살인범에 대한 섬뜩한 심리묘사가 백미이긴 하지만 -정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국내에 출간된 '구시키 리우' 작가의 첫 작품인데 꽤 충격적이었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쉽게 손에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소설 속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잔인하고 뒷맛이 씁쓸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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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2 -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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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나름 기분 좋고 통쾌하게 읽었던 한자와 나오키의 후속작 "한자와 나오키2 :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 1권에 대한 약간의 네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출판사의 책소개 -심지어 1권의 소개에서도- 이 정도의 내용은 만날 수 있으니 적어보자면, 1권에서 통쾌하게 복수에 성공하고 도쿄 본부 영업 2부의 차장이 된 한자와가 다시 한 번 큰 벽을 맞닥뜨리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한자와는 갑작스럽게 은행으로부터 2백억의 융자를 받았음에도 적자를 내서 부실 채권으로 분류될 위기에 처한 '이세시마 호텔'에 대한 조치를 담당하게 된다. 금융청에서는 은행에 대한 감사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세시마 호텔을 부실 채권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자 위기를 느낀 은행에서 지난 융자 사건에서 활약한 한자와에게 이 어려운 임무를 맡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에는 자신의 책임이 일부나마 있었던 일이었던데 반해 이번에는 오로지 다른 쪽에서 터진 문제를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인데 한자와에게 지어진 책임의 무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은행 내의 파벌 싸움에의 여파까지 더해져 한층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된 한자와. 과연 이번에도 통쾌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이번 한자와 나오키 2권은 좋게 말하면 지난 1권의 성공 요인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 확실히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어느 정도의 흥행이 보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나쁘게 말하면 1권의 성공에 안주해 이를 답습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다. 시리즈물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한자와 나오키는 한층 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도 스토리를 일직선으로 늘어놓는다면 거의 평행선 수준으로 비슷하지 않을까? 한 가지, 은행의 합병에 따른 파벌 싸움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일본 소설에서 배경이 회사든 은행이든 경찰서든 신문사든 이런 파벌 싸움은 너무 많이 접했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대학생 때 취업캠프에서 모의 면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대기업 인사 담당 직원 등 실제 실무를 담당하는 분들과 다른 친구들 앞에서 세 명씩 면접을 했었다. 그 때 내 옆 자리 친구가 받은 질문이 "만약 상사가 업무적으로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부당한 요구를 하고 당신이 그것을 거절하지 못해 일조했는데 이 사실이 들통나 감사팀으로부터 이 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친구는 "상사의 요구였다고는 해도 자신이 결재문서를 올린게 맞다면 모두 제 책임이라고 하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것이 그 담당 직원으로부터 굉장히 모범적인 -어찌보면 당연한?- 답변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 때는 내가 아직 어리고 세상을 잘 몰라 이러한 답변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나 싶었는데 지금 다시 떠올려도 아니, 그건 좀 부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이가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왜 그 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생각해보니, 한자와 나오키는 지난 번 저 상황을 그대로 겪었고 실제로 자신이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이 자신의 책임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일들이 실제 회사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나도 회사에 다니며 비슷한 일을 겪는 다른 직원을 본 적이 있고, 스스로 겪은 적도 있다- 정말 억울하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울분을 삼키는 것이 요즘 직장인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할 말은 하며 상사의 입을 막고 감사팀과 싸우는 한자와 나오키를 보면 대리 만족이랄까, 통쾌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

 

이번 2권은 '이세시마 호텔' 재건의 임무 외에 1권에서 안타깝게 '파견'을 나간 '곤도'의 이야기가 한 축이 되는데, 곤도가 파견을 나간 '다미야 전기'가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권에서 단순히 파견된, 그래서 이제 은행원으로서는 거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곤도가 이번에 힘겹게 그리고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게 다미야 전기에서 자신의 은행원으로서의 프라이드를 되새기는 모습에 한자와 나오키가 통쾌하게 복수하는 모습 이상으로 희열을 느끼게 된다. 2권의 부제인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는 이번만큼은 곤도에게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리뷰를 쓰기는 다소 부정적으로 썼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가 없는가 생각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1권에 비해 속도감도 있고 여전히 판타지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한 한자와 나오키의 모습이 주는 카타르시스 역시 부족하지 않다. 어찌되었건 팍팍한 삶, 팍팍한 회사 생활 속에서 어깨 펴기 힘들고 바른 목소리 내기 힘든 직장인들은 이렇게라도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데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강력하게 한 방 날리며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한자와에게 다시 한 번 시련이 닥칠 것을 암시하는 결말은 다음 권 역시 기대하게 만든다. 과연 3권은 2권처럼 즐거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주게 될지 아니면 일격필살!의 만족감을 주게 될지 결국 또 궁금해하며 책을 손에 잡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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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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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책을 아주 많이 읽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가가 주는 '특징'이라고 할 만한 점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작가의 읽다보면 '음, 미쓰다 신조의 책이군' 하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호러 작가라는 점도 있고, 적어도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이 작가가 공통적으로 자아내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미쓰다 신조의 책이라고 알고 읽지 않았으면 그의 책이라는 것을 몰랐을 지도 모를 책을 만났다. 바로 "검은 얼굴의 여우"이다.

 

전후의 불안정한 상황, 건국대학의 졸업생인 '모토로이 하야타'는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우연과 더불어 '아이자토 미노루'와의 만남으로 일본 내에서도 아주 힘든 일에 속하는 탄광에서 일하게 된다. 힘들고 익숙하지도 않고, 소위 '먹물 좀 먹은' 자신을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선에도 나름대로 적응해서 일하던 그였지만 갑작스런 갱도의 낙반 사고와 이어지는 죽음으로 마을의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마을을 휘감은 어두운 기운과 탄광촌에 전해지는 '검은 얼굴의 여우'의 존재. 과연 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참 신기한 소설이다. 미쓰다 신조 답게 호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는 하는데 자못 그 느낌이 다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한 공포가 없지는 않지만 그 존재가 크게 도드라지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미쓰다 신조가 써내려가는 그 당시 상황의 암담함이 주는 공포이다. 심지어 그것이 일제 강점기 하에 일본이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하고 그들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사실 '다뤘는지'라고 쓰는 편이 더 맞을 듯 할 정도이지만,,)에 대한 부분이라서 더욱 길이 와닿는 면이 있다. 미쓰다 신조는 이러한 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모토로이 하야타'라는 다소 이질적인 지식인의 눈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이 비극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소설 전반의 분위기는 호러의 느낌을 띠고 있지만 미쓰다 신조의 책 답지 않게(?) 이 책은 사회파 미스터리에 훨씬 더 가까운 책이다. 그것이 현대의 어두운 면이 아닌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담고 있고 이를 일본인 작가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솔직히 감탄스러웠다. 그 당시의 상황이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잔인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불합리했다는 것을 우리 역시 잘 알고 있지만 이를 일본인 작가의 글로 만났다는 점에서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 이 말 역시 한국과 일본에 모두 해당하는 말이겠지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상당히 사회파적인 면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다고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가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했느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다. 소설 속에서는 연쇄적인 죽음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사고인지, 자살인지, 살인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도 보이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하다. 또한 탐정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토로이 하야타가 익숙하지 않은 탄광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고 주변의 도움 없이는 어느 것 하나 풀어나갈 수가 없다. 이러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동기와 더불어 그 죽음들이 가지는 의미가 그 당시의 시대 상황과 이어지게 된다. 사실상 강렬한 동기를 생각하면 범인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지만 어떻게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그 장소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트릭도 꽤 인상적이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감탄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미쓰다 신조는 참 지능적이고 치밀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러적인 분위기의 조성과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메시지에 이어 소설적인 재미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있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 여운이 떠나지 않는다. 아마 같은 시대 상황을 놓고 한국인 작가가 썼다면 이런 소설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은 일본인 작가가 자신이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일본인의 시점'에서 책을 썼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아주 묵직하게 울림을 주는 좋은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이 시리즈라는 점에서 한 번 더 놀라움과 함께 반가움을 가지게 된다. 또 다른 상황에 놓인 모토로이 하야타를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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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일 37세의 사건부 1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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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올 때마다 살테니 다음 권도 얼른 내주세요ㅠ 범인들의 사건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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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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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자와나오키 3권]이 나왔는데 나는 이제야 겨우 1권을 읽었다. 2권이 나왔을 때만해도 그렇게 초조하지 않았는데 '인플루엔셜'이라는 출판사, 책을 정말 순식간에 내는 것 같다.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듯,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본 친구가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정작 나는 드라마를 전혀 모름) 다 읽고난 후 확실히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캐치프레이즈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의 카타르시스도 보장한다. 볼륨은 400페이지 정도로 적지 않지만, 가독성이 좋아 이틀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일본 경제가 호황이고, 은행이라고 하면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시절,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에 취업을 한다. 여러 동기들과 꿈을 나누던 희망 넘치던 시절은 오래지 않고, 은행은 그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색이 바래게 된다. 그래도 자신의 입지를 다지며 융자과장의 자리까지 오른 한자와는 지점장의 막무가내식 강압으로 융자를 해준 기업이 도산을 하게 되면서 궁지에 몰린다. 모든 책임은 당사자인 지점장이 아닌 융자과장인 한자와에게 집중되고 은행원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파견' 이야기까지 오르내리게 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간 지점장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한자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출금 회수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은행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서 읽으며 내내 '혹시 작가가 은행에서 일하기라도 했나!? 왜 이렇게 생생하지??' 했는데 역시나 작가 소개를 보니 대학 졸업 후 대형 은행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작가가 묘사하는 은행은 정말로 현실적인데 작가는 이러한 은행에 '촌철살인'급의 표현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운용상품에 대해 본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혹은 의도적으로 부실고지를 해서 판매를 한 후 모든 책임은 고객 -혹은 기업- 에게 돌려버리는 은행원의 모습이라든지, 거품경제 때 은행이 어떤 '짓'들로 세간의 신뢰를 잃고 단순히 '기업'으로 전락했는지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비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어차피 은행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일종이라는 것은 의외로 간과하기 쉬운 이야기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일들도 이제는 신문과 뉴스에서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어느 노인의 자산 대부분이 노인은 전혀 모르는 운용상품들에 가입되어 있고 수많은 손실이 났지만 결국 그 손실은 그대로 노인의 책임이 되었던 사건도 있다)

 

어쨌든 소설 속에서 한자와는 지점장의 강압에 못이겨 융자 결재를 한 건의 기업이 도산을 하며 위기를 맞이한다. 그렇지만 이 기업의 도산에 미심쩍은 점을 발견하고, 역시 이 기업의 도산에 의해 연쇄도산하게 된 다른 기업의 사장과 힘을 합해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지점장은 모든 책임을 한자와에게 떠넘긴 채 그를 전근보내기 위해 주변의 인맥을 총동원해 그를 깎아내리고, 감사를 통해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남기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 복수 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보이는데 사실 이 소설에는 다른 소설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일단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서로 주인공이 지금의 자리까지 힘겹게 올라가고, 그 때 위기가 발생하지만 결국 극복한다는 식이 되면서 이 '발단-전개-위기-절정'이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이 묘사되다 결말에서 겨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보통의 소설이다. 그런데 [한자와 나오키]는 시작이 그냥 '위기'이다. 발단도 전개도 없이 일단 위기로 시작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최악의 상황은 시작점이고 한자와는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기 때문에 상황은 -실제 그가 느끼는 압박감과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든 간에- 계속 조금이라도 나아진다. 그래서 분명 고구마 상황으로 시작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답답함 보다는 크고 작은 통쾌함을 느끼는 일이 훨씬 많다. 권투로 치면 처음에 크게 한 방 맞았지만, 이후로는 전혀 타격 없이 잽이든 레프트 훅이든 라이트 훅이든 마음껏 날리다 어퍼컷까지! 처음 한 방 이후로는 내내 원사이드하게 치기만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답답하지 않고 통쾌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원사이드하게 당하다 회심의 일격으로 승리를 따내는 격렬한 카타르시스가 부족한 느낌도 있다.

 

 

[한자와나오키]는 굉장히 현실적인 반면 마치 '판타지 소설'같은 면이 있다. 한자와는 분명 위기에 빠져 있지만 마치 슈퍼 히어로처럼 위기를 극복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보통 현실에서라면 거의 정신적으로 피폐한 수준에 이르게 될 '감사'와 같은 절차도 오히려 감사를 하는 상대방에게 호통을 칠 수 있는 -현실이라면 징계에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수준-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또 이러한 한자와 호통에 대해 분명 그 시점에서 (굳이 표현하자면) 권력 우위에 있을 감사자가 오히려 말문이 막히고 오금이 저려한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습이 실제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마음 속의 울분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을 하면 내 잘못이 아니라도 내 책임이 되고, 내 실수가 아니어도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된다. 그 때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채 오로지 고개를 숙이고 사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직장인의 '한'을 한자와가 통쾌하게 대신 풀어주고 있다는 데에서 이 책의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한 만큼 갚을 수 없는 직장인들이 있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책 [한자와 나오키]. 대리만족도 이런 대리만족이 없다. 과연 1권에서 이처럼 통쾌한 복수를 했던 한자와가 2, 3권에는 또 어떤 위기를 만나 다시 한 번 어퍼컷을 날릴지 궁금해진다. 한자와가 날린 펀치처럼 확실한 한 방을 가진 통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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