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칼로는 죽일 수 없어
모리카와 토모키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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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독특해서 눈이 갔던 책 <그 칼로는 죽일 수 없어>. 제목도 특이한데 띠지의 그림이,, 너무 중2병스러워서 약간 망설여졌지만 '이 칼로 죽임을 당한 자는 정확히 4시 32분 6초에 되살아난다!'는 홍보 문구에 넘어가서 읽게 되었다.

 

대학생인 '시치사와'는 친구인 '리나'와 '이나키도'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아마추어 영화감독이다. 그는 다음에 찍을 영화를 고민하던 중 이탈리아 여행 중 야시장에서 구입한 단검에 눈이 가고, 이를 소품으로 고민하다 환상처럼 '가보니'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연쇄살인마라고 밝힌 가보니는 '그 칼로 생명체를 죽이면 자신이 죽은 시간에 되살아난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 시치사와는 실험을 통해 가보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칼로 동물을 죽인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그 리얼한 영상으로 인해 형사인 '코소네'로부터 의심을 사고 그녀는 점차 시치사와를 살인자로 여기고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상당히 독특한 설정의 책인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칼로 생명체를 죽이면 되살아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시간 조건은 '몇 시간 후' 라는 식의 소설을 많이 봤는데 이번에는 특정 시간으로 정해져있다보니 코소네로부터 의심을 사는 시치사와는 영리하게 머리를 쓸 수 있게 된다. 소설 자체는 유명한 일본의 만화인 '데스노트'의 설정과 굉장히 유사한데 시치사와를 '야가미 라이토'와, 코소네를 'L'과, 단검을 '데스노트'와 가보니를 사신 '류크'와 각각 연결시키면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데스노트에서도 라이토를 범인으로 특정하기 어려웠던 것이 실제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만 적으면 사람이 죽는 노트'에 대해 생각하기도 어렵고 이를 손에 넣어서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치사와의 단검 역시 이 칼로 사람을 죽이면 되살아난다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고 실제로 칼을 손에 넣어 증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기 때문에 코소네는 고전하게 된다.(실제 소설을 읽다보면 만화와 세세하게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만이 가진 특이점은 시치사와에게 살인의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영화를 위해 살인 장면을 촬영하고 싶을 뿐 사람이나 동물을 죽일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심지어 특정 시간이 되면 모두 되살아나고 그 때의 기억도 어렴풋함 꿈 정도로만 남기 때문에 실제로 살인을 했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시치사와의 살인행위가 입증되어도 그에게 살인도, 시체유기도, 상해치사도 그 어떤 것도 죄를 묻기 어렵다. 그리고 심지어 코소네는 시치사와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온갖 불법 행위를 자행한다. 결국 어느 쪽도 '선'이라고 보이지 않고 어느 쪽도 응원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설정 자체는 무겁지만 소설은 라이트노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볍게 읽힌다. 미사여구가 적고 전개가 빠른 데다 거의 직선적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술술 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여도 죽지 않는 단검을 가지게 되어 '죄책감'이라는 것을 전혀 갖지 않은 채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되는 시치사와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점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코소네를 보면 맹목적인 동기와 무분별한 능력이 주는 부작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깔끔하게 복선을 회수하는 결말도 그렇고, 소설을 아주 가볍게도, 제법 무겁게도 읽을 수 있게 쓰는 작가의 능력이 기대 이상이었다. 아직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좀 더 볼륨 있는 책으로 다시 만날 날이 기대된다.

 

 

알라딘 별점은 중간이 없어서,, 별점 3.5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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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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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는 흔히 '경찰소설의 대가'라고 불리지만, 기자 출신의 작가 답게 내가 읽은 소설에서는 경찰이 한 축, 기자가 한 축을 담당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번에 읽은 <사라진 이틀>은 중심은 경찰이지만 여러 갈래의 인물들이 각각 화자를 담당하며 하나의 사건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번에도 경찰, 기자가 한 축을 담당함은 물론 검사와 변호사, 판사, 교도관까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삶의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된다.

 

경찰철 교육과 계장인 카지 경감은 자신이 알츠하이머인 아내를 죽였다며 자수를 한다. 사건에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지만 단 한 가지, 아내를 죽이고 자수를 하기까지 카지 경감의 시간에 이틀의 공백이 있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 기간 동안 그가 환락가에 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온화하고 주변으로부터 존경받아온 인물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그를 신문하는 경찰, 그의 사건을 기소하게 되는 검찰, 이 사건을 조사하는 기자, 그를 변호하게 되는 변호사, 사건의 판결을 내릴 판사, 그의 담당 교도관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싸고 그 이틀의 시간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이들의 조사에 따라 생각치 못했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책의 제목도 '사라진 이틀'이고 카지 경감의 행방이 묘연한 이틀은 책 한 권을 관통하는 가장 커다란 의문이다. 이를 통해 '시키' 경감이 카지 경감의 행적을 수사하게 되고, '사세' 검사가 경찰의 사건 은폐 및 조작을 의심하게 된다. 그 외에도 변호사나 기자, 판사, 교도관까지 모두 그의 행동에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왜 카지 경감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수하기까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비어있는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에 역자 후기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아내를 죽임으로써 경찰의 명예를 더럽힌 카지 경감이 어째서 자살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더해지며 그의 이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그렇지만 사실 이 소설의 메인은 '왜 그의 행적에 이틀의 공백이 있는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이틀에 대한 의문은 카지 경감이라는 인물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병으로 인해 아들을 잃고 자신의 아내마저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 이 인물의 인생을 돌아봄으로써 사회적인 모순도 알 수 있고, 이 인물의 행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되돌아보는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이 현재 처한 상황을 함께 생각해보면서 경찰-검찰-기자 등 서로 대립되는 관계 속의 알력 다툼과 그럼에도 가끔은 서로 이해가 일치해 오월동주의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까지 느낄 수 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사라진 이틀'이라는 커다란 궁금증을 매개체로 하여 참으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일례로 '후지바야시' 판사의 아버지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고 이에 대한 간병의 부담은 오로지 후지바야시의 아내인 스미코가 짊어지고 있다. 그런 두사람의 입장을 놓고 서로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사회적인 모순의 단면이 베일 듯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그 카지라는 분, 마음이 무척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카지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런 따뜻함은 이 세상에 없어도 돼.

스미코의 따뜻함을 후지바야시는 선택할 거다.

죽이지 않는 따뜻함을-."

 

 

소설은 한국에서는 <사라진 이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원제는 <半落ち>로 '완전히 자백하지 않고 반만 자백한다'는 뜻의 경찰 용어라고 한다. 어찌 보면 한국의 제목이 소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데는 더 효과적이지만 책의 전반적인 느낌을 생각한다면 원제가 더 소설의 핵심을 꿰뚫고 있지 않나 싶다.(라고는 하지만 저 단어를 한국식 표현으로 완전히 옮기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분량에 비해 굉장히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소설 <사라진 이틀>. 이런 요코야마 히데오의 필력에는 늘 감탄하게 되는 것 같다.(그러나 슬프게도 이 책은 이미 절판,,ㅠ) 사실 카지 경감을 대하는 인물들이 어느 정도 당위성이 확보되지 못한 채, 자신의 입장에서 다소 무리한 혹은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이 정도 분량에서 이 정도까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책이 국내에 많이 출간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책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신작 <노스라이트> 출간 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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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태동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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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30주년 기념작 <라플라스의 마녀>의 프리퀄*인 <마력의 태동>은 시간적으로 <라플라스의 마녀>의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부터 첫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대략 1년여에 걸친 시간을 묘사하고 있는 단편 소설이다.

 

*프리퀄 : 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기본적으로 화자는 스승의 고객들을 이어받아 제법 굵직한 유명인들을 상대로 침을 놓는 침구사 '구도 나유타'이다. 그의 고객들은 다들 어딘가 조금씩 문제를 겪고 있는데 구도 나유타는 이러한 고객들의 고민이나 문제점들을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소녀 '우하라 마도카'와 함께 해결하게 된다.

 

 

슬럼프에 빠진 스키 점프 선수,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와 그것을 잡지 못하는 포수, 뇌사상태에 빠진 중증 장애아동을 아들로 둔 부부, 동성 애인을 잃고 곡을 쓸 수 없게 된 시각장애인 작곡가 등 저마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빠진 이들은 우하라 마도카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특별한 능력으로 '기적'을 만나게 된다.

 

일단 <라플라스의 마녀>의 프리퀄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손에 들었는데 의외로 단편집이라 놀라고, 화자가 전혀 전작과 연관이 없는 인물이라는 데에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또 각각의 단편이 화자인 구도 나유카나 우하라 마도카가 아닌 중심이 되는 인물이 따로 있고, 그에 따라 나유타나 마도카는 사건 및 상황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일 뿐 결국은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완결되는 것도 좋았다. 단편 자체는 보통의 휴먼 드라마에 마도카의 능력이 약간의 양념이 되는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라플라스의 마녀>와 따로 떼어놓고 봐도, 또 한 편 씩 따로 놓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한 편 한 편 제법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다. 그런데 또 은근하게 이것이 <라플라스의 마녀>와 연결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에서 중립을 지키고 각 이야기의 주인공과 마도카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 정도를 했던 나유타가 중심이 되는 에피소드에서는 여태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며 모든 조각이 달칵!하고 맞물리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라플라스의 마녀>와도 확연하게 이어지는 순간이- 짜릿했다. <라플라스의 마녀>가 솔직히 기대 이하라서 이 책은 아예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오히려 <라플라스의 마녀>보다 훨씬 즐겁게 읽었다.

 

<마력의 태동>은 프리퀄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가장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단편이라는 형태를 통해 그냥 한 편의 이야기로 봐도, 한 권의 장편으로 봐도,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봐도, 후속 작품으로 봐도 그 어느쪽이라도 손색이 없는 책이 되었다. 의외로 이 책에서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가진 특징은 표지에서도 잘 알 수 있는데 <라플라스의 마녀> 표지를 보면 배경에 수식이 눈에 확 띄게 드러나는 반면 이 책은 정말 자세히 봐야 배경의 옅은, 그리고 <라플라스의 마녀>와 동일한 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배경에 <라플라스의 마녀>와 같은 소재, 등장인물을 깔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배경이자 일부일 뿐, 이 책만이 가진 매력은 또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표지부터 내용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진짜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고 '만족했다!!'는 감상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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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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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플라스의 마녀>. 이공계 출신 작가답게 이번 책은 그의 이과적인 지식을 아낌없이 보여주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작!" 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비해 은근히 평이 좋지 않았던 책이라서 계속 미루고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 이 책의 프리퀄인 <마력의 태동>이 출간되고 은근히 궁금해져서 손에 들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평이 어느 정도 맞았다는 느낌이다.

 

이야기는 '우하라 마도카'가 어머니와 같이 할머니댁에 갔다 우연히 발생한 토네이도로 어머니를 잃으며 시작된다. 마도카의 아버지는 그 날 한 소년의 뇌수술 일정이 있어 사고를 피하게 된다. 이윽고 8년 후 시점은 바뀌어 전직 경찰인 '다케오 도오루'는 과거 자신이 경호 일을 할 때 알게 되었던 '기리미야 레이'를 다시 만나 마도카를 경호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즈음 황화수소로 인한 두 건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 사건에 대해 알게된 마도카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도주를 감행한다. 한편 이 사건에 무언가 다른 내막이 있다고 여긴 형사 '나카오카 유지'는 사고 검증을 맡은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아오에 교수는 두 건의 사고 현장에서 우연히 마도카의 모습을 보게 되며 그녀에게 의문을 품게 된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답게 몇 줄의 줄거리로는 그 내용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실 그 한계가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다소 부정적인 의미인데 소설에 곁가지가 많고 이야기의 결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느낌이 있어 어느 쪽에 중심을 두고 설명해야 할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뒷표지의 소개글만 봐도 '8년 전의 그날로부터 시작된 두 세계의 대결'이라며 8년 전 토네이도로 인한 사건을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언급하지만 과연 이곳을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 맞는지부터 의문이 생긴다. 소설 속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은 '황화수소 중독'인데 이 사건의 시작점은 절대 저 토네이도 사고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 마도카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는데 비해 그녀에게 무언가 중대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너무 무게중심을 두고 소설을 전개하다보니 메인 사건에 대한 무게감이 오히려 떨어지고 소설의 갈래가 나누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그로 인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 쪽에 무게중심을 온전히 두고 전개가 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쓸데없는 아쉬움도 조금 생겨났다.

 

또 한 가지,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감정 이입을 하기에는 어딘지 다들 애매한 점이 있다. 그것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성격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개개인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데에서 그들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다. 보통은 이야기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하는 형사도 자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려 온전히 행동하지 못하고 극초반에 등장해 무언가 한 건 할 것만 같았던 경호원 다케오도 이렇다 할 활약이 없다. 심지어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도 사건을 저지른 데에 대한 타당성을 온전히 찾기 어렵고 하다못해 트릭까지도 문제가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그래도 어딘가 명쾌한 결말이 있겠거니 하고 꿋꿋하게 읽었는데 결말은 실로 아쉬움만을 남겼다. '라플라스'도 가져오고,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도 가져오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는 좋았는데 방정식 자체가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라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은 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써먹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설 속 트릭에 대한 해답으로는 한없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역자 후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이면서도 태작이 드문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여기에서 '태작'은 '졸작'을 말한다. 어찌 보면 이만큼 히가시노 게이고를 꿰뚫는 말도 없는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진짜 거의 모든 작품이 평균 이상은 한다.(솔직히 이번 작품도 실망하긴 했지만 온전히 재미만을 놓고 보자면 중간 (아주 약간) 이상은 간다) 그렇지만 '태작이 드물다'라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대작이 많다'고 표현하기는 아쉬운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기도 하다. 뭐 모든 작품에서 평균 이상을 하는 작가와 대작과 졸작을 오가는 작가, 평균을 내어보면 전자가 우세할 듯도 한데 (대작과 졸작의 중간이라면 그야말로 평균 수준일 테니까) 독자로써 매력을 느끼는 작가는 어느쪽일까?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아쉬워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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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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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책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을 때, 초반 몇 장을 넘기며 막연하게 어떤 내용일지 상상을 해본다. 띠지와 뒷표지에 책 내용의 정보를 담고 있는 종이책과는 달리 전자책은 정말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책을 볼 수 있게 만든다. 이번에 읽은 <사형에 이르는 병>은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읽기도 했지만 초반 분위기와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도 달라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던 책이다.

 

화자인 마사야는 어릴 때는 신동으로 불릴 만큼 똑똑한 아이였지만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우수한 학생들 사이에서 점점 뒤쳐지다 결국 삼류 지방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의 모습으로 우울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던 마사야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어린 시절 즐겨 찾던 동네 빵집 주인이자 희대의 연쇄살인마인 하이무라 야마토가 보낸 편지를 받은 마사야는 고민하게 되지만 결국 그를 찾게 되고, 그로부터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지만 마지막 아홉 번째 살인만은 누명이니 이를 벗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마사야는 학업을 제쳐두고 그의 과거 지인들, 이웃들, 심지어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까지 찾아다니며 조사를 하게 된다.

 

마사야가 하이무라를 찾아간 이유는 참 단순한데 아직 신동이던 자신의 모습만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의 그는 자기 주관이 모호하고 주변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이무라의 의뢰를 받아들여 조사를 진행하면서 점차 자신감 있고 대외적인 성격으로 변화하게 되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잠시 잊고 있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무라는 위에서는 아홉 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건 여덟 건이지만- 하지만 실제로 그의 손에 희생된 피해자는 스무 명이 넘는다. 검찰에서 어차피 아홉 건만으로도 사형 판결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 확실한 사실만으로 기소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그가 피해자를 선정하고 범행을 저지르는데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와 성범죄는 너무너무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잔인한 묘사가 많지는 않지만 일단 묘사했다하면 너무 끔찍하고 그 대상이 너무 힘 없는 어린 아이라서 끊임없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마사야는 왜 하이무라가 굳이 어린 시절 손님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러한 조사를 하게 하는지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긴 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조사를 거듭하면서 자신과 하이무라 사이의 어떤 관계에 대해 알게 되며 더 이상 제삼자의 입장에서 덤덤하게 조사할 수 없게 된다. 이 시점에서 독서를 한 번 멈췄는데 정말이지 하이무라의 끝없는 악의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이코패스라지만 설마,, 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적자면 그의 악의는 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하이무라라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작가가 그리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명한 사이코패스의 모습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 사이코패스의 특징도 그의 범행에 대한 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조사하다보면 그에 대한 평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웃들은 한결같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그의 위험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온화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지만 그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 실제로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증언들이었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마사야라는 화자를 내세워 하이무라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지나 어떻게 처음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연쇄살인으로까지 이어졌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에게 매혹당하고 심지어 그와 동화되어 갔는지까지. 연쇄살인범에 대한 섬뜩한 심리묘사가 백미이긴 하지만 -정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국내에 출간된 '구시키 리우' 작가의 첫 작품인데 꽤 충격적이었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쉽게 손에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소설 속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잔인하고 뒷맛이 씁쓸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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