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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가 많아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고민을 해야겠지만 가장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작가를 꼽으라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찬호께이'를 말할 수 있다. 국내에 출간된 모든 책을 읽었고,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고, 그만큼 믿고 읽는 작가인 찬호께이의 단편집 [디오게네스 변주곡]이 출간되어서 빠르게 읽게 되었다. 이번 단편집은 찬호께이가 첫 작품을 쓴 이래 10년 동안 쓴 단편 열네 편과 습작 세 편을 모아 출간한 책으로, 그만큼 내용도 다양하고 분량도 다양하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열일곱 편이나 실린 단편집 리뷰에 모든 단편의 리뷰를 적을 수는 없고 특별히 인상 깊었던 단편 몇 편의 이야기와 더불어 전체적인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은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하루를 보내던 '란유웨이'가 '심람소옥(짙은 파랑색 작은 집)'이라는 블로그의 글을 읽고 여태껏 느끼지 못한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란유웨이는 블로그의 내용을 토대로 블로그 주인인 '샤오란'을 스토킹 하게 된다. 그리고 한편에서 '다크웹'이라는 비밀 사이트를 통해 그녀를 둘러싼 '살인계획'이 벌어진다. 자신은 모르지만 스토킹과 살인의 대상이 된 샤오란의 운명은?
2008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최근에 쓰여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현대 SNS의 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옆집 사람과도 그다지 소통하지 않는 시대이면서 SNS에는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 모순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의 소통 단절이 오히려 SNS에 더욱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혹은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고) 스토리 전개는 예상이 가능했지만 예상대로 흘러가더라도 예상을 뒤엎는 것이 찬호께이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매력이 충분히 발휘된 단편이었다.
<시간이 곧 금>은 시간을 사고 팔 수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마리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선물하기 위해 돈이 필요해서 자신의 42일을 팔게 된다. 이 때 시간을 팔아도 자신에게 지난 42일간의 기억은 남게 되고 42일 동안 일상적으로 자신이 했을 법한 일들을 이미 되어 있는 상태로 자신은 단순히 42일 후로 가게 된다. 단지 다른 것은 기억은 있지만 판매한 시간이 자신에게 현실감이 없을 뿐이다. 시간을 팔아도 내게 손해는 없을 것 같은데,, 과연 자신의 시간을 판 마리원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보통 시간을 판다면 그 시간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게 마련인데 그 기간 동안 기억도 남아 있고 자신이 했을 법한 일들을 했다는 데서 차별점이 느껴진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기 싫으니 시험 기간을 판매한다면 이미 공부도 했고 시험도 봤고 시간을 팔아 돈도 벌었으니 일석이조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과연 모든 것이 좋기만 할까?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분명 그 때 그 상황에 내가 처한다면 일상적이지 않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운명이 전혀 다르게 바뀔 수도 있다. 힘들 때마다 시간을 판다면 힘들지 않게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짧은 단편인데도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결말까지 정말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작가 후기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정말 완벽한 이야기가 된다. 보통 작가 후기를 읽지 않더라도 이 작품은 꼭 작가 후기까지 읽기를 권한다.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은 현대 추리소설가들은 생생한 소설을 쓰기 위해 몰래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토대로 등단한다는 편집자의 말에 살인을 저지르는 추리소설가 지망생의 이야기이다. 무려 밀실살인을 다루고 있는데 출판사 포스트를 통해 사전 연재되기도 했던 작품이라 결말이 너무너무 궁금했던 단편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찬호께이가 이런 단편을!?' 했을 정도였는데 살인 사건을 다룬 단편에 이런 감상을 써도 되나 싶긴 하지만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을 읽는데 너무 유쾌했다. 2000년대 초반쯤에 이런 스타일의 단편에 정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의 기억이 나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외에도 '아니 어떻게 이런 결말이!?!?' 하고 제일 놀랐던 <가라 행성 제9호 사건>이라든지,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 류의 작품을 보는 듯 했던 '숨어 있는 X'라든지 아직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 더 있는데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아쉽지만 각설하고. 이 책은 작가가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쓴 여러 단편이 모여있기도 하고 미스터리, SF, 환상, 호러 등 정말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읽는 맛이 있는 책이다. 분량이 많으면 많은 대로 이야기 전개가 흥미롭고, 습작의 경우 단 세 페이지로 이야기가 끝나기도 하는데 그 안에 그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짜임새가 있다. 한 편 한 편 읽다보니 남은 단편의 수가 줄어가는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로 찬호께이 만의 매력을 꼭꼭 눌러 담은 진짜 내 취향의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장편보다는 단편의 매력을 살리는게 더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정말이지 찬호께이는 장편이든 단편이든 실망시키는 일이 없는 작가라는 것이 이번에 또 한 번 검증되었다. 유일한 불만이라면 책이 많이 안 나온다는거,,ㅠㅠ 그렇지만 기다림만큼, 아니 그 이상의 만족을 주는 작가, 얼마만큼을 기대해도 늘 기대 이상인 작가, 이번 [디오게네스 변주곡] 역시 믿고 읽는 찬호께이의 완벽한 한 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