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픽처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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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계속 끔찍한 그림들을 그리는 이유, <히든 픽처스>

 


 

또래 친구들과 놀기도 바쁠 어린 아이가 갑자기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는 설정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영화들, 그 중에서도 특히 공포 장르물에서 사용한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제이슨 르쿨락 작가의 이 소설 <히든 픽처스> 역시 기이한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 나가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 운동을 하다 일어난 단 한 번의 사고로 인해 마약 중독자 신세로 전락했던 주인공 맬러리 퀸은 현재는 회복 단계에 있으며 필라델피아의 한 재활 쉼터에 살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재활을 돕는 스폰서인 러셀 아저씨의 소개로 한 가정집의 육아 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그 집에 살고 있는 테드와 캐럴라인 맥스웰 부부 그리고 돌봐줄 아이 테디는 정말 완벽한 가족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릴로 소설들처럼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작은 손님용 별채에 머물게 된 맬러리는 아이 테디가 애냐라는 이름을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림으로 계속 그리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깜짝 놀란 멜라니는 상상 속의 친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테디 부모의 반응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러다가 이웃집에서 홀로 살고 있는 중년 부인 미치가 갑자기 방문해서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별채에서 오래 전 애니 배럿이라는 예술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그 이후로 멜라니는 집 주변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여기에 테디가 계속해서 아이가 그릴 수 없는 수준의 그림들을 계속 그리면서 멜라니는 복잡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단순히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던 멜라니는 이웃 청년인 에이드리언의 도움을 받아 별채에 살다 살해당했다던 애니 배럿이라는 인물의 사연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추적의 과정에서 독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난다.

 

 

 

단순히 이상한 존재를 느끼고 그것을 그림을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로 끝이 났다면 이 작품이 이렇게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호러 부문 1위부터 시작해서 아마존 올해 최고의 미스터리 스릴러와 반스앤드노블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힌 배경에는 호러 장르에서 클리셰로 다루어진 이 설정을 예측하기 어려운 훌륭한 스릴러로 변형시킨 저자의 재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단순히 공포 소설일 것이라고 단정을 짓고 이 작품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호러에서 스릴러로 변한다는 언급 자체가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기에 더 이상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파면 팔수록 흥미로운 이야기가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마약 중독을 극복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곤란한 사건을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멜라니라는 주인공 캐릭터이다. 조금만 엇나가도 추락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녀의 매력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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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끼의 메소포타미아 신화 1 홍끼의 메소포타미아 신화 1
홍끼 지음 / 다산코믹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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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끼 작가님을 처음 접한 책이 바로 노곤하개 시리즈였는데, 저 역시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이라서 재미와 더불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다룬 이번 신간 역시 무척 기대가 되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신화라고 하면 제일 익숙한 것이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인데요. 그래서 지금까지 많이 읽고 접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다룬 이 책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메소포타미아 신화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우리 인류가 기록으로 남긴 신화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중요한 의미에 비해서 국내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신화인 것은 사실이라서 이렇게 미지의 영역을 파헤치고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신화를 배우면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여러 신들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친절하게도 등장인물 소개도를 통해 이 신이 어떤 신이고, 다른 신들과 어떤 관계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제우스처럼 신들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하늘의 신 안을 중심으로 땅의 여신 키, 바다의 여신 남무, 대기와 폭풍의 신 엔릴, 담수와 지혜의 신 엔키 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신화 내용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렇게 대략적으로 신들의 이름과 관계를 미리 알아두면 훨씬 더 책 읽기가 편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웹툰 형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어린이들과 청소년 심지어 어른들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곤하개에 이어서 이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웹툰으로 연재하는 홍끼 작가님이 이렇게 신화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사람들이 신화를 계속해서 읽는 이유는 현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서 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현실에서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신들에게도 여러 고민이 있고 갈등이 있고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 다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어린이,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부분을 자제해야하는가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닌 또 다른 고대 신화를 읽고 싶은 분들과 홍끼 작가님의 팬이라면 이 메소포타미아 신화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제 곧 메소포타미아 신화2가 나온다고 하니까 그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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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 : 벨몬트 아카데미의 연쇄 살인
서맨사 다우닝 지음, 신선해 옮김 / 황금시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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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티처>

 

 

 

과거에 있던 계급 제도가 사라진 현대 사회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와 명예 그리고 거미줄 같은 인맥이 한데 어우러져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크게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엘리트 사회의 중심에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의 부유층 자녀들이 각 지역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들어가 좋은 성적을 얻고 추천서를 받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과 숨 막히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마이 러블리 와이프>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가인 서맨사 다우닝의 <티처>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동부에 위치한 명문 사립고 벨몬트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이상하고 음흉한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다.

 

  

6개월 전 벨몬트 아카데미에서 올해의 교사로 뽑힌 영문학 교사 테디가 미운털을 자신의 학생들 중 한 명인 잭 워드의 아버지와 상담을 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그 짧은 장면 하나만으로도 테디 크러처라는 인물이 얼마나 뒤틀린 내면의 소유자인가를 독자들은 단번에 알 수 있다. 집안의 재력과 실력을 가진 잭을 못마땅하게 여진 테디는 과거의 또 다른 제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이 내릴 수 있는 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행사 중 학부모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잉그리드가 독살을 당하고, 연달아 테디의 동료 교사들 중 한 명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벨몬트 아카데미에서 연달아 일어난 끔찍한 사건의 배후에는 바로 뒤틀린 내면의 소유자인 테디 크러처가 있었다.

 

 

사실 이 소설이 단순히 사이코패스 교사의 연쇄 살인 행각을 그린 작품이라면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가진 차별화된 부분은 독을 품은 식물을 이용해서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을 괴롭히는 테디뿐만이 아니라 악의를 품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악의의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이자 이 소설 속 여러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괴롭힌다. 작품 초반에는 교사 테디의 행각만 쫓아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거미줄 같은 인물 간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과연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지 미치도록 궁금해진다. 소설로도 재밌지만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로 인해 훨씬 더 흥미를 끌 것 같아서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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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 김창완 에세이
김창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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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참 된 인생이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때로는 편안한 멜로디를 들려주는 가수로, 때로는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로, 때로는 옆집 아저씨처럼 세상 이야기를 논하는 라디오 디제이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김창완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우선 이 책 표지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작은 동그라미들이 담겨져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사실 저자는 진행하던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읽고 나면 원고 뒷면에 동그라미를 거의 매일 그렸다고 한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그 동그라미들은 어딘가 조금씩 찌그러져 있어서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모두 동그라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저자가 평생 살면서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과 그리고 이 책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중심에는 바로 이런 찌그러진 동그라미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찌그러져도 동그라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하루는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을 상처를 받기도 했을 것이고, 또 다른 하루는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어떤 일상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않고 또 너무 들뜨지 않는 그럼 차분함이 머릿속에 한가득 떠올려졌다.

 

 

찌그러진 동그라미 이야기처럼 이 에세이 한 권에는 아주 짧지만 그래도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져 있었다. 저자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는 목동에 올 때마다 하늘을 바라 봤고, 오늘 본 하늘과 어제 하늘을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냥 오늘 하늘은 오늘 하늘일 뿐인데 우리는 어제 또는 그제 하늘과 비교하는 것에 익숙하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에는 비교를 하는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야생종자 전문가로 잘 알려진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다고 한 말을 소개하는 글도 굉장히 인상에 남았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잡초라는 이 말에는 처음부터 잡초로 난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에 따라 잡초로 여겨진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 모두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후천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더욱 집중을 하면 인생이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국내외 에세이를 즐겨 읽는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너무 어렵지 않은 문장들 속에서 통찰 있는 삶의 지혜를 때때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어떤 하나의 정답만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제각각의 인생 모두가 가치가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얻었다. 물론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다보면 이런 생각은 어느 순간 잊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오늘도 인생길을 걷는다는 덤덤한 문장이 담겨 있다. 우리는 마치 달리기 선수처럼 누군가와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두 각자의 길을 묵묵히 그리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어디에 잠시 머무르며 쉬어 갈 수도 있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빨리 갈 수도 있다. 너무 자신을 재촉하며 힘들게 하지 말고 조금만 더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큰 나무 밑에 드리워진 선선한 그늘 밑에서 이런 에세이 한 권을 읽어 보는 것도 여름철 휴가의 꿀맛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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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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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의 목소리가 소수의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나 파급력은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2024123일 밤, 현재는 파면된 어떤 이가 권좌에 앉아 카메라를 쳐다보며 서늘하게 내뱉던 계엄이란 단어가 바로 그랬다. 10·26사건을 생전에 겪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말이었지만, 인구 절반 가까이 사람들에게는 그저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너무나도 낯설고 머나먼 단어였다. 하지만 123일 이후로 더 이상 비상계엄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공기처럼 민주주의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시민들은 조금씩 이 시스템의 틈새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 틈새를 우리보다 훨씬 더 일찍 찾아내고 지적한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저자들이다.

 


 이 책의 국내 출간 제목은 지난 5개월 동안 숨 가쁘게 펼쳐졌던 국내 상황을 축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종교인들은 세력을 모아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였고,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 후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법원을 침탈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온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지난 몇 개월 동안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사실 이런 과정들은 몇 년 전 미국에서 대선에 패배한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그것을 유사 미디어와 지지 세력들이 퍼트려서 시위와 폭동으로 이어진 일들과 똑 닮아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미국 내 민주주의 퇴보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들이 현대 민주주의의 맹점으로 지적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의 행보를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일관적으로 거부하는 충직한 민주주의자들과 다르게 이들은 반민주적 행동에 눈을 감는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입으로는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국헌문란을 일으킨 책임자에 감싸거나 오히려 지지하는 행동을 취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그 표본일 것이다. 법률 체계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선택적 집행을 하게 함으로써 법이 정치적 무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국내 상황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대화와 협의로 풀어나가야 할 정치적 갈등 상황에 사법 시스템이 정당하지 못하게 개입한다면 민주주의의 뿌리까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부터 몇 개월 동안,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받아온 여러 분야와 조직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엄중한 상황에서까지 양비론을 꺼내든 일부 언론과 사법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야 하는 책임을 망각하고 오로지 당권을 위해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일부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소수의 기득권 세력들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 행세를 하며 얼마나 다수를 현혹시켰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 의문이 든 시민들은 곧바로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고, 민주주의 회복을 다함께 노래했다. 이런 광장의 민의가 결국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를 통해 올바른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질문을 44일 탄핵 선고문을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게 건넨 인물이 있었다. 그 분은 다큐멘터리와 책 등을 통해 우리 시대 참된 어른이나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는 경남 진주의 김장하 선생님이었다. 퇴임 후 6년 만에 만남에서 김장하 선생은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문 대행은 요란한 소수를 설득하고 다수의 뜻을 세워 나가는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제 대다수 국민들은 관심을 주지 않아도 민주주의 시스템이 저절로 잘 굴러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전과 다르게 소수의 준동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모으고 행동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겪은 아픔을 딛고 회복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지는 평범한 시민들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63일에 전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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