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보면 알지 - 호랑수박의 전설
이지은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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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호랑이가 수박으로 변하면 어떤 기막힌 일이 벌어질까, <먹어보면 알지>

 


아직 유튜브 영상보다 그림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조카들이 기특해서 주변에서 자녀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추천하는 작품들 위주로 선물을 해주고 있어요. 몇 개월 전에 꽤 반응이 좋았던 이지은 작가님의 팥빙수의 전설이 생각나서 이번 새로운 그림책 역시 구매해서 조카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조카들에게 책을 주기 전에 매번 습관적으로 먼저 읽어보는데 이번 그림책 역시 공포와 유머가 적절하게 섞여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어요.

 




 


역시 여름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서운 이야기인데, 공포영화를 보러 굳이 극장에 가는 어른들만큼이나 어린이들 역시 무서운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점 다들 알고 계시나요? 우리 인간의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떠올라서 듣기 싫어하는 마음과 그래도 너무 궁금해서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마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우리 조카들 역시 본가에 놀러오면 옛날이야기나 우화를 들려 달라고 조르는데 그 중에서도 무서운 이야기가 굉장히 반응이 좋은 편이에요.


 

 

이번 그림책에도 여전히 팥 할머니와 눈 호랑이가 등장해서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여지없이 황당하지만 재미있고 또 그래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변신 이야기라서 추천하고 싶어요. 푹푹 찌는 더운 날 깊은 숲속에는 수박 한 입만을 생각하며 줄지어 걷는 동물들이 있었고, 눈 호랑이의 눈앞에 운 좋게도 잘 익은 큰 수박 한 덩이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 수박을 먹자마자 눈 호랑이가 그 수박으로 변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려 보니까 잘 익은 수박일수록 검은 줄무늬가 매우 짙어 보이는데, 그게 또 호랑이의 무늬랑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수박이 된 눈 호랑이가 어떻게 될지 그 결말이 궁금해서 이 책에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또한 수박으로 변한 호랑이의 외침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시원한 수박 한 입에만 몰두하는 숲 속 동물들의 광기어린 눈들 역시 흥미로웠어요.





 

 

두 조카 녀석의 반응을 먼저 눈 호랑이가 수박으로 변한 것에 대한 의아하면서도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수박이 된 눈 호랑이의 맛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면서도 진짜 수박을 잘라주니까 그건 또 맛있게 잘 먹었어요. 눈 호랑이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직 이 책을 안 읽은 이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둘게요. 이지은 작가남의 상상력과 개성 넘치는 이야기와 그림이 정말 기대가 되어서 다음 책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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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농성
구시키 리우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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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어떤 아이들, <소년 농성>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앙상한 몸으로 집에서 탈출한 한 여자아이가 발견되면서 전국 초등학교에서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가 이루어진다. 놀랍게도 정부의 이 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아이들의 죽음이 드러나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가장 안전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방치된 아이들이 당장 오늘 뉴스 사회면 기사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정부나 학교의 시선과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 숨죽이며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형에 이르는 병으로 국내 장르 소설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구시키 리우 작가의 최신 출간 작품인 소년 농성의 배경이 되는 도로코베 온천 거리에도 그런 방치된 아이들이 가득 모여 살고 있다.

 

 

현에서도 손꼽히는 이 온천 거리에는 다양한 숙박업소가 즐비한데, 늘 일손이 부족해서 신원 보증 없이도 인력을 보충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말할 수 없는 사연으로 흘러 들어온 여자들 그리고 그녀들이 데려온 자식들까지 모인 특이한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천부지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한 남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 동네 불량소년으로 유명한 마세 도마와 조수 격인 와타나베 게이타로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이런 경찰의 태도에 분노한 동갑내기 두 소년은 동네 식당인 야기라 식당으로 쳐들어간다. 경찰로부터 빼앗은 권총을 가지고 식당에 있는 네 명의 아이들 그리고 주인인 야기라 쓰카사를 인질 삼아 말 그대로 농성을 시작한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소년들이 경찰의 권총을 강탈해 인질극을 벌인다는 자극적인 설정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결국 마음의 잔상으로 남게 되는 것은 도로코베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은 늦은 시간의 서울의 밤거리를 친구들과 터벅터벅 걷고 있을 수도 있고, 뉴욕 뒷골목에서도 위험한 약에 손을 댈 수도 있다. 이런 위험한 사각지대 속 아이들은 그 자체로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그저 부모가 문제이고, 부모가 잘못 키워서라는 손쉬운 비난과 지적은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비난과 지적은 문제의 근본 자체에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고 해결도 못하기 때문이다.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 저자는 범죄라는 금단에 손을 대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를 포착하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병폐에 메스를 가져다 대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에는 그토록 무관심하면서 낮은 출산율로 인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는 세상의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모순 그 자체 아닐까. 부모로부터 방치된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매일 돼지고기 된장국을 끓이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야기라 쓰카사와 같은 어른들이 이 세상에 조금 더 많아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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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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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없는 기자 지망생에서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까지,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123일 난데없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나라 국민들뿐만이 아니라 세계인들의 눈과 귀가 국내 정치에 몰리게 되었다. 평소에 뉴스를 보지 않았던 주변 지인들조차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잠에 들기 전에 TV와 휴대폰을 통해 뉴스를 확인하는 몇 개월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각 방송국와 신문사가 치열한 보도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끌었던 뉴스 프로그램이 바로 JTBC의 뉴스룸이었다. 종편채널 JTBC를 대표하는 보도 프로그램으로 언론인 손석희가 초반에 메인 앵커를 맡아 기틀을 다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줄곧 메인 앵커를 남성 언론인들이 맡아오다가 처음으로 이 책의 저자 한민용 기자가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잊지 못할 한 시기로 기억될 지난 몇 개월 동안 뉴스룸에 가운데에서 뉴스를 전달한 그녀의 치열했던 삶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유리 빨래골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복잡한 집안 사정 때문에 하루 빨리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취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고, 중국 유학을 떠나 최고 명문 북경대 합격증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쁨에 앞서 학비를 벌어야 한다는 현실에 저자는 동대문 옷가게와 마트 알바 등을 하며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사실 뉴스룸 앵커로만 접했던 독자들로서는 저자가 언론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쳤는가를 알 수가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고백하는 처절한 실패담은 지름길이 아닌 직접 부딪치고 좌절하며 얻은 교훈들이 어떻게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1순위 일류 언론사로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어도 다른 언론사들을 거치며 경험을 쌓은 것과 그렇다고 거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목표에 재도전을 하는 오기가 오늘날 저자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지난 시간들을 담담히 써내려간 이 책에서 몇 가지 이야기와 장면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바로 자동차 도색 일을 하는 동생에 대한 걱정과 안부 인사 그리고 사회부 기자가 죽음을 좇는 직업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사연들이었다. 매일 뉴스를 전하다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들 중 하나가 바로 노동자들의 죽음이다. 최근에도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황당하게 죽어나가는 뉴스들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 그런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저자가 실제로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생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봤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또한 사회부 기자로 현장에서 발로 뛰며 취재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마주쳤을 누군가의 죽음 역시 저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고민과 고통 그리고 사라짐이 헛되지 않게 뉴스룸을 비롯한 이 세상 모든 보도 프로그램이 그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다수 대중들이 뉴스를 진행하는 여성 앵커를 주목하는 배경에는 연예인과 같은 화려한 외모와 더불어 고학력, 고스펙에서 나오는 지적인 요소가 겹쳐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과거 많은 여성 앵커들이 언론인으로서의 능력 외에 요소들이 부각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토로했었다. 한민용 앵커는 그런 부차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세간의 평가들을 지적하기 보다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직업군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지혜로운 방식을 선택했다. 이제 이 책이 재능 없는 기자 지망생이었던 과거의 저자처럼 현재 헤매고 있는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박 겉핥기식의 진부한 조언이 아니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서 스스로 증명해낸 저자의 시간들이 지표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까 대한민국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라는 타이틀이 현재의 저자를 과장하고, 지나온 날들을 축소했다는 책 첫 머리 저자의 말이 옳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몇 개의 화려한 타이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많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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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농성
구시키 리우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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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이르는 병을 읽고 나서 무언가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악의를 세밀하게 포착하는 작가가 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파격적인 설정과 소재로 시작하는 이번 신간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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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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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기꺼이 빛과 흙이 되어줄게, <나의 작은 무법자>


 


 발아부터 열매를 맺기까지 최적의 온도, 적절한 일조량 그리고 뿌리가 듬뿍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수분이 있는 곳에서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목이 잘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평균보다 춥거나 너무 더운 곳 심지어 아스팔트 틈 사이에서 가까스로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을 내민 잡초들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한다. 크리스 휘타커 작가의 나의 작은 무법자의 소녀 더치스가 바로 존재이다. 아버지가 부재한 허름한 집에서 불안정한 상태인 엄마 스타 래들리와 남동생 로빈과 살고 있는 더치스는 하루하루가 버겁다. 이제 막 열세 살이 된 소녀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대신에 무법자의 허세와 같은 위장막을 자신에게 씌운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더치스 가족의 여정은 스타의 허망한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리고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그 끝에서부터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그 힘에 미래가 궤도에서 벗어나 결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초반부 스타의 대사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삶을 관통한다. 30년 전 여자친구의 동생을 차로 치여 죽인 죄를 지은 빈센트, 빈센트를 비롯해 어린 시절 절친들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떠나보낸 워크, 비탄의 족쇄를 차고서도 계속 전진하려고 했던 스타, 그리고 남은 한 명의 딸마저 허망하게 잃어버린 헬까지 하나의 사건이 몰고 온 거센 파동이 인간의 내면과 일상의 풍경을 어떻게 무너트리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애증과 연민의 감정은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의 관계는 현대사회의 단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더치스가 숨 쉴 틈 없이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삶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이런 더치스에게 너무나도 냉정하고 무거웠던 주변 세상의 온도가 조금씩 바뀌게 된 계기는 주변 사람들이 이 소녀에게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실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 헬은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손주들을 품는다. 자연에 대한 감사함과 무언가 일을 하면서 얻는 책임감을 배운 더치스는 더 이상 헬의 포옹을 거부하지 않게 된다. 경멸과 조롱이 첫 번째 태도가 되었던 고향의 또래들과 다르게 친절한 관심으로 다가온 소년 토머스 노블 그리고 어른의 성숙함과 재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돌리 여사까지 새로운 친구들은 소녀의 감정을 가득 채웠던 분노를 가라앉힌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을 통해 빈센트 킹이 래들리 가족에게 침투한 암이 아니라 더치스를 키워낸 토양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앞으로 더치스가 엄마 스타와 이모 시시가 살아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자립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근사한 목표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 가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한다. 국가와 지원과 부모의 사랑은 물론이고 수많은 기운들이 모여 한 아이를 작은 씨앗에서부터 웬만한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나무로 자라게 만든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 밤 늦게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따뜻한 저녁밥을 차려주신 절친의 어머니, 글씨를 참 바르게 쓴다는 말을 무심하게 건네시던 중학교 선생님 그리고 책장의 책들을 기한 없이 빌려주었던 성당 모임에서 알게 된 형까지 여러 존재들이 삶의 여정에서 있어왔다. 그저 타고난 천성이 그랬던 까닭이었을 수도 있고 내면의 그림자를 눈치 친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더치스에게 빈센트와 헬이 잠시라도 곁에 머물다 가서 다행이었고, 빈센트에게도 교도서장 커디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점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릴러와 추리 소설을 읽었던 감정들은 대부분 권선징악과 정의구현을 통해 얻은 통쾌함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치 실제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인물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의 의지는 초라해보여도 생각보다 끈질기다. 단순히 범죄 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넣어두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전 세대를 관통하는 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여공작이자 무법자였던 한 소녀의 치열한 성장 소설이자 죄와 용서를 둘러싼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고 결론짓고 싶다. 끝으로 만약 살아가면서 더치스와 같은 아이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자문해보았다. 불량스러운 말투와 걸음걸이를 지적하는 대신에 그 아이가 소리 없이 내지르는 비명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뻔히 보이는 문제를 지적하는 대신에 그 이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삶의 고뇌까지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자 후자의 길을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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