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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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의 목소리가 소수의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나 파급력은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2024123일 밤, 현재는 파면된 어떤 이가 권좌에 앉아 카메라를 쳐다보며 서늘하게 내뱉던 계엄이란 단어가 바로 그랬다. 10·26사건을 생전에 겪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말이었지만, 인구 절반 가까이 사람들에게는 그저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너무나도 낯설고 머나먼 단어였다. 하지만 123일 이후로 더 이상 비상계엄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공기처럼 민주주의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시민들은 조금씩 이 시스템의 틈새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 틈새를 우리보다 훨씬 더 일찍 찾아내고 지적한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저자들이다.

 


 이 책의 국내 출간 제목은 지난 5개월 동안 숨 가쁘게 펼쳐졌던 국내 상황을 축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종교인들은 세력을 모아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였고,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 후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법원을 침탈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온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지난 몇 개월 동안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사실 이런 과정들은 몇 년 전 미국에서 대선에 패배한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그것을 유사 미디어와 지지 세력들이 퍼트려서 시위와 폭동으로 이어진 일들과 똑 닮아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미국 내 민주주의 퇴보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들이 현대 민주주의의 맹점으로 지적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의 행보를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일관적으로 거부하는 충직한 민주주의자들과 다르게 이들은 반민주적 행동에 눈을 감는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입으로는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국헌문란을 일으킨 책임자에 감싸거나 오히려 지지하는 행동을 취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그 표본일 것이다. 법률 체계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선택적 집행을 하게 함으로써 법이 정치적 무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국내 상황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대화와 협의로 풀어나가야 할 정치적 갈등 상황에 사법 시스템이 정당하지 못하게 개입한다면 민주주의의 뿌리까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부터 몇 개월 동안,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받아온 여러 분야와 조직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엄중한 상황에서까지 양비론을 꺼내든 일부 언론과 사법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야 하는 책임을 망각하고 오로지 당권을 위해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일부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소수의 기득권 세력들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 행세를 하며 얼마나 다수를 현혹시켰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 의문이 든 시민들은 곧바로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고, 민주주의 회복을 다함께 노래했다. 이런 광장의 민의가 결국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를 통해 올바른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질문을 44일 탄핵 선고문을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게 건넨 인물이 있었다. 그 분은 다큐멘터리와 책 등을 통해 우리 시대 참된 어른이나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는 경남 진주의 김장하 선생님이었다. 퇴임 후 6년 만에 만남에서 김장하 선생은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문 대행은 요란한 소수를 설득하고 다수의 뜻을 세워 나가는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제 대다수 국민들은 관심을 주지 않아도 민주주의 시스템이 저절로 잘 굴러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전과 다르게 소수의 준동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모으고 행동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겪은 아픔을 딛고 회복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지는 평범한 시민들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63일에 전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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