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만들어낸 비극, <몽환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인어나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라 다니는 용에 대한 인간들의 상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그동안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서 불가능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파란 장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04년 일본의 한 기업이 유전자 변형 기술을 통해 파란 장미를 개발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존재하지 않았던 파란 장미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것들에 대한 열망이 이정도인데, 존재했다 지금은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더욱 끈질길 것이다. 일본 미스터리의 제왕이라고 일컬어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무려 1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완성한 [몽환화]속 노란 나팔꽃이 바로 그런 대상이다.

 

 수영에 재능이 있는 아키야마 리노는 사촌인 나오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갓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할아버지 슈지를 만나고 다양한 꽃들을 자라나고 있는 집으로 초대를 받는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계신 집을 방문하던 어느 날, 리노는 할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무언가 수상한 점을 발견한 리노와 수사를 맡은 형사 그리고 그 사건에 개입한 형제의 이야기가 교차 전개 되면서 사건의 진상에 점점 더 다가가게 된다. 특히 경찰 가모 요스케의 동생이자 물리에너지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소타는 슈지 살인사건 수사에 동참하게 되면서 자신의 잊지 못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어울리기가 힘들어그런데 꽃은 거짓말을 안 하지마음을 담아 기르면 꼭 거기에 응해주거든.”

                                                                            - p.41

 


 리노의 할아버지인 슈지 사건의 중심에는 에도시대에는 기록되었다가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노란 나팔꽃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와 빌딩숲으로 이루어진 오늘날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주택가나 학교 담장에 조용히 펴 있던 꽃이 바로 나팔꽃이었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파란 장미와 다르게 푸른 나팔꽃 그리고 붉고 하얀 나팔꽃은 흔했다. 이 작품에서는 노란 나팔꽃이 다시 나타났다는 여러 가지 근거들이 등장하고 이 꽃이 돌아온 배경이 후반부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전혀 상관이 없었던 사건들과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진실도 밝혀진다.

 

 이 책에서 잠깐 언급된 것처럼 실제로 에도시대 때 분카 대화재가 일어나고 나서 나팔꽃을 기르고 개량하는 유행이 일었다고 한다. 월간지 [역사가도]의 연재 소설 집필 제안을 받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시대적 배경과 현대의 미스터리 설정을 연결해서 이 소설로 완성을 한 것이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그 고통이 현재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후반부에서 원자력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도 이 메시지와 연장선상에 있는 부분일 것이다. 어두운 과거로부터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지혜롭게 헤쳐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과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소설 [몽환화]였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아름다운 호수 캉티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5성급 호텔에서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호텔 경영자인 바이웨이둬가 산책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문제는 사건 전 날 밤부터 당일 아침까지 감시카메라에 찍한 사람은 피해자 한 명뿐이고, 호수에도 배 한 척 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밀실 아닌 밀실 살인사건이 되어버린 이번 사건을 두고 고민하던 경찰들 앞에 푸얼타이 교수가 등장한다. 친구 웨이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에 온 그는 조류학 교수이지만 범죄 연구를 취미로 하고 있다. 다소 거만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그는 빠르게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 그리고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법률가와 작가라는 직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대만 작가 리보칭의 이 소설은 제목과 같은 이름의 호텔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미스터리 군상극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책 표지에서부터 웨스 앤더슨 감독의 2014년 작품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 영화 속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처럼 이 소설에도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왕쥔잉 검사와 차이궈안 형사, 푸얼타이 교수의 그의 절친이자 조수 역할의 웨이즈, 재벌가 출신의 피해자 부인 란니, 퇴직 경찰 뤄밍싱과 그의 전부인인 거레이 변호사까지 그야말로 성별, 직업, 연령, 성격이 천차만별인 수많은 인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이런 새로운 사람들의 등장은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장벽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독자들이 미스터리 군상극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재미일 것이다.


 

 독특한 캐릭터들의 활약만큼이나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사건의 진상에 다다르는 과정 그 자체일 것이다. 추리를 하는 주체들이 변할 때마다 사건의 본질이나 색깔이 달라지면서 하나의 사건을 두고 독립된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준다. 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의외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이번 군상극을 통해서 위트 넘치게 보여준 것이다. 또한 저자는 디테일한 부연 설명과 묘사를 곳곳에 배치해두는 방식으로 복잡한 구성 속에서 혹여 개연성이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 또한 불식시켰다. 아직 대만 미스터리의 진가를 맛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입문서로 아주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OTT 플랫폼에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시리즈를 보고 싶다. 그만큼 영상화를 해도 충분히 대중들에게 통할 매력을 품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 무죄
다이몬 다케아키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완전 무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잡아서 재판장에 세우고 제대로 된 형벌을 받게 하는 것이 오늘날 사법 정의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 이유들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범죄자로 몰려 감옥을 가기도 한다. 미국의 한 법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에 무죄로 확인된 사례가 20여 년간 2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후에 국가에 소송을 걷어 엄청난 보상금을 받는 사례가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촌 오거리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한 남성이 재심을 거쳐 무려 16년 만에 무죄로 판명되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나라에서 피해보상을 해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게 흘러간 세월이 완전히 보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사법 미스터리를 펴낸 일본의 추리소설가 다이몬 다케아키의 이번 신간 [완전 무죄] 속 주인공 히라야마 사토시 역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심을 요청하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인 페어튼 법률사무소의 변호사 마쓰오카 지사는 상사의 지시로 히라야마를 만나고 재심을 준비하게 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히라야마가 저질렀다고 하는 세 건의 유괴사건들 중 한 사건의 피해자가 바로 지사였던 것이다. 무섭고 불편한 재회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사는 변호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당시 사건 조사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지를 동료와 함께 조사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허점을 찾아낸 지사는 재심 요청을 통과시키고 히라야마 사토시는 21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당시 문제를 일으킨 형사 아리모리 역시 자신이 망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소설 속 이야기는 더욱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사법 문제와 관련된 작품을 전문적으로 썼던 작가답게 이 소설 역시 사법 시스템의 맹점을 여러 각도를 통해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하루 빨리 잡혀서 제대로 된 벌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제대로 된 조사와 재판보다 앞서서 또 다른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실제 사건들을 보면 히라야마 사토시와 같은 운명이 결코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서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절을 쇠창살 뒤에서 보냈다는 슬픔이 가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종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빨리 그리고 잘 잡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똑같이 중요하다. 전 세계에는 수많은 교도소가 있고 그 곳에 또 얼마나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갇혀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오락성도 물론 있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회 메시지 역시 품고 있었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안했던 그 시절, 내 곁에 있어준 그들과의 추억을 위하여, <하버드 스퀘어>


 

 과거 속 누군가와 지독한 교류를 했던 특정한 공간은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소환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를 하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 하버드 스퀘어는 1977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그때의 자신과 재회시켜 주는 공간이다. 대학원을 다니는 주인공은 이미 종합시험에 한번 떨어져서 마지막 남은 기회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지내고 있다. 하버드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귀족적인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카페 알제는 유일하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977년 여름을 함께 보냈던 칼라지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프랑스어로 온갖 것들에 대한 불만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에게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다.

 


아마도 그는 나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다내가 미국에서 잃어버린 원시적인 모습의 나나의 그림자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다락방에 숨어사는 미친 형제나의 하이드 씨나의 아주 아주 거친 초고가면을 벗고 속박의 쇠사슬에서도 벗어난완성되지 않은 나.”

                                                                                                      -p.76

 


 살면서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일 것이다. 자신에게 곁을 주지 않는 미국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칼리지와 친구가 된다. 튀니지 출신의 그는 첫 번째 아내와 헤어지고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 사업가와 동거를 했다가 남편에게 들켜 하버드 스퀘어로 흘러 들어오게 된 사연이 있다. 둘은 프랑스어로 속 시원하게 수다를 떨면서 마음속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나눈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두 사람 사이를 강력하게 연결해준 고리는 바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였다. 베르베르인이자 아랍인인 칼리지와 이집트인이자 유대인인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자신들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듯이 이들의 우정 역시 외부와 내부의 요인들이 뒤섞여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지만 결정적으로 주인공은 하버드라는 엘리트 집단에 한 발을 걸쳐 놓고 있었다. 이민국을 통해 언제든지 추방될 수 있는 칼리지는 그에게 있어서 분신인 동시에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주인공이 후반부에 교제하는 부잣집 여자친구 앨리슨에게도 이런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완벽하게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앨리슨 역시 주인공인 정확한 선을 긋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런 복잡한 내면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되는 순간이 바로 칼리지와의 이별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없는 슬픔 사이를 오가는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격통을 느꼈다는 것이다내가 이런 짓을 한 것이다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그동안은 이렇게까지 비열하고 천박한 인간으로 전락한 적은 없었는데.”

                                                                                                           -p.373


 


 칼리지는 이민국에 함께 가서 면담 통역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주인공은 거절한다. 물론 영주권 종결을 위한 형식적인 면담이었기에 주인공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 어쨌든 그로 인해 칼리지는 미국을 떠났고 주인공은 하버드 스퀘어에 홀로 남아 공부를 하고 재시험에 합격을 한다. 세월이 흐른 후 아들과 함께 거니는 그곳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하버드 스퀘어가 가지는 의미는 곧 그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과의 추억이다. 아마도 1977년 여름날의 추억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칼리지일 것이다. 비록 그와의 마지막 이별은 동화처럼 아름답진 않았지만 그 모든 감정들이 오롯이 지난 날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

 


 아련한 사랑의 잔상을 섬세하게 다룬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익숙한 안드레 애치먼의 이 작품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추억의 씁쓸함을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하버드에서 학위 공부를 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은 이 소설을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불안정한 시절을 살아가는 청춘에게 있어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는 매우 소중하지만 언제나 모든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부끄럽고 씁쓸한 추억마저 오롯이 내가 안고 가야 하는 인생의 선물인 것이다. 그렇게 기억을 움켜쥐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검은 황무지 가장의 무게, 죄의 대가

 

 

쇠락한 지역에서 정비소를 운영하며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지만 곧 날라 올 수많은 고지서가 걱정되는 한 남자가 있다. 보러가드 버그몽타주라는 쉽게 잊지 못할 이름을 가진 이 가장의 두 발은 절벽 끝에 가까스로 걸쳐 있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기력이 다한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내쫓길 위기에 몰리고,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에게는 대학 등록금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불법적인 일을 같이 했던 로니와 레지라는 형제가 찾아와서 다이아몬드 강탈을 제안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빠르게 도주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할 최고의 드라이버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다 평범한 삶으로 복귀한 그에게 그 제안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앤서니, 배리, 매커비티, ITW(국제스릴러작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등 한 번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S.A.코스비 작가의 이 소설 속 주인공 보러가드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한 집안의 가장이자 노동자이지만 아버지로부터 타고난 운전 실력을 물려받은 재능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재능과 실력은 레이싱 코스가 아닌 범죄 현장에서 발현되었고 작가는 주인공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대가에 대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다루고 있다. 수많은 유명 스릴러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극찬을 한 첫 번째 배경에는 범죄 자체보다 그 범죄에 휘말린 주인공의 심리와 그로 인해 파생된 이야기를 흔들림 없이 끝까지 마무리한 완성도가 있다.

 

카레이싱과 체이싱을 다룬 영화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헐리웃에서 사랑한 대표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짜릿한 속도감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자극보다는 주인공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상황과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을 다루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독자들은 주인공 보러가드를 그저 범죄 행위에 가담한 악인으로 관망하기보다는 유혹에 빠지게 된 나약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러가드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라는 유령이 존재한다.

 

원한, 치정과 함께 범죄의 주요 동기로 꼽히는 돈. 이 돈은 많은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이루게 만들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파괴시키기도 한다. 만약에 보러가드가 어머니, 아내, 자녀들이 없는 혈혈단신이었다면 로니와 레지 형제의 유혹에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에 대한 대가는 그만이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 역시 지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은 소설 속 존재들뿐만이 아니라 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유혹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피하기 어렵다는 것.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