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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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디찬 그 칼끝이 당신의 영혼까지 찌른다면, <>



 

 불의에 맞서 악을 응징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을 잡아야하는 스릴러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들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사랑하는 이들이다.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악인들은 주인공의 연인, 가족, 동료들을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납치한다. 노르웨이는 물론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요 네스뵈 작가의 해리 홀레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소울 메이트라는 진부한 표현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의 친구이자 연인 그리고 아내였던 라켈이 어느 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믿기지 않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단계도 뛰어넘긴 채, 해리는 수사에서 제외된 상태에서 사력을 다해 범인을 잡으려고 한다.


 

 술, 음악, 여자 그리고 우울함으로 둘러싼 그의 시간들은 이번 열두 번째 시리즈 작품에서도 여전히 지속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던 라켈이 영원히 떠나버린 것이다. 십오 년 전, 홀멘콜렌의 목조주택 앞에서 처음 만났던 갈색 머리의 그녀는 더 이상 해리를 안아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독자들은 해리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상실이자 고통을 눈앞에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실로 인한 슬픔의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작품 속 해리에게는 사치에 불과했다. 누가 날카롭고 차가운 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는지 하루 빨리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여성이 살해된 호주로 떠나 사건을 파헤치던 <박쥐>부터 시작해서 마치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목마름>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서사 덕분에 이번 작품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재등장한다. 물론 책 앞머리에서 시리즈를 요약 정리해준 덕분에 그동안 읽었던 전작들과 거기에서 해리와 마주쳤던 사람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목마름>에서의 악연이 이번 소설에서도 이어지기도 하고, 과거 짧은 만남을 가졌던 연인이 그의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주변 사람들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해리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간다.

 


 라켈을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큰 축을 담당하고는 있지만 요 네스뵈 작가는 해리와 라켈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노련하게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간다. 과거의 죄책감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종이 한 장의 차이 같은 사랑과 질투,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자격지심 등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어두운 면들은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마음들이다. 그 수많은 곁가지 이야기들이 주변을 맴돌지 않고 제각각의 의미와 질문을 품고 있다고 느꼈다면 노련해질 대로 노련해진 작가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시리즈 애독자라고 할지라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여러 용의자들을 눈앞에 내놓은 작가는 마침내 결말 부분에서 제대로 한 방을 날린다. 당연히 범인이 밝혀졌다는 통쾌함보다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비통함이 더 컸다. 전작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이 소설은 나의 마음속에 쉽게 지울 수 없는 잔상을 남겼다. 더불어 주인공 해리 홀레는 물론이고 독자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충격적인 사건을 등장시킨 이 소설이 이 시리즈의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8월에 출간될 예정인 열세 번째 작품 <블러드문>에서 해리 홀레는 또 어떤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살아남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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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 자
마이클 코리타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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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죽어 마땅한 자>

 


 어떤 원한이나 일로 인해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가 바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냉혹한 액션 스릴러의 대가 마이클 코리타가 쓴 이 소설의 주인공 리아 트렌턴은 바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남편 더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런 은둔자로서의 삶이 끝나게 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남매 헤일리와 닉 앞에 이모라는 명분으로 나타난 리아는 그들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일상은 얼마 가지 않아 누군가의 공격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니나를 리아라는 전혀 다른 인물로 살게 만든 악으로 가득 찬 이들이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외국 몇몇 국가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증인 보호 프로그램은 운영 중이다. 각종 범죄의 피해자나 목격자 등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이 제도는 여러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되어서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리아는 이런 정부 기관의 공권력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 숨어 살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그런 선택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혼자만 조용히 사라진다면 남겨진 가족들의 안전은 유지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저자 마이클 코리타는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리아의 사연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고, 더그의 죽음을 계기로 전개 되는 이야기를 통해 천천히 들려준다.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라워리 그룹 밑에서 조종사로 일하고 있던 리아는 그들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정의와 진실을 위해 진술을 하려던 리아의 움직임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라워리는 전문 킬러들을 고용해서 리아를 추격한다. 평범한 조종사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남매의 어머니였던 리아는 그들의 추격을 피해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사실 거대한 권력을 가진 모종의 집단과 평범한 주인공의 피가 말리는 추격전 자체는 여러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서 이미 수없이 등장한 단골 소재이다. 하지만 기존의 작품들과 이 소설이 가진 결정적인 차이점이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인공 리아가 가지고 있는 명민함이다. 평범한 위치가 그녀가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인물이 가진 두뇌와 인내심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킬러 댁스 블랙웰이라는 제3의 인물이다. 라워리 그룹에서 보낸 킬러들과 함께 또 다른 목적으로 리아를 추격하는 댁스가 가진 묘한 매력에 많은 독자들이 빠져들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작년 영화 개봉에 맞춰서 국내에 출간된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처럼 이 작품 역시 손에 땀이 나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액션 스릴러였다. 이 소설 역시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를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고 하니까 어떤 배우들이 소설 속 인물들을 맡을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 사라지는 선택을 한 주인공의 모성애 역시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 부분이기도 했다. 킬러들의 손아귀에서 어떻게든 자식들을 지켜내려는 리아가 과연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보여줄 것인지 이 책을 직접 읽고 확인하길 바란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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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마을
리사 주얼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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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당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 <엿보는 마을>

 


이비사 섬에서 놀다가 만난 앨피 버터라는 남자와 충동적으로 결혼한 조이 멀런은 오빠 잭의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심장외과로 일하는 오빠의 집이 위치한 멜빌 하이츠는 스물일곱 채의 빅토리아풍 저택들이 나란히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어린이 놀이방의 파티 담당으로 일하게 된 조이의 눈앞에 톰 피츠윌리엄이 나타나면서 잔잔했던 일상에 폭풍이 일어난다. 중년의 톰 피츠윌리엄은 잭과 조이 남매가 사는 동네 공립학교 교장으로 파견되어 살고 있는 이웃 주민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술집에 간 조이는 다시 한 번 톰과 마주치게 되고 둘 사이에서 묘한 기운이 흐르게 된다. 여기에서 문제는 이 마을에서 톰을 주목하는 사람은 조이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마을 주민들의 관계는 결국 어떤 사람의 죽음을 끝으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심리 스릴러에 주력하고 있는 리사 주얼의 이 소설은 한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싹트는 애욕과 소유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신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 조이의 일탈이 주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톰의 아들인 프레디와 마을 이웃 제나 모녀의 이야기 역시 비슷한 비중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립학교에 다니는 프레디는 이웃 사람들의 사진을 몰래 찍는 위험한 행위를 벌이고 있었다. 제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집단 스토킹을 한다고 의심하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몰래 지켜보고 의심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웃들의 이런 고민과 일탈이 결말부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으로 모여지면서 비로소 독자들은 하나의 진실을 알게 된다.

 


왓칭 유라는 원제와 국내 제목인 엿보는0 마을모두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밤에 잠이 들기 전까지 항상 무언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본다는 의미가 곧 그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배신을 당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시기와 질투, 욕망과 악의는 평범한 상황에서는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교묘하게 가려져 있다. 그런 어두운 마음을 가진 인물은 결국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자신이 가진 폭력성을 만천하에 보여주게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타인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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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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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만들어낸 유리 위를 위태로이 걷다, <글래스 호텔>

 



우표 회신 쿠폰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사기를 쳤던 실존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한 폰지 사기는 요즘에도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오랜 사기 수법이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받아 신규 투자자들을 모으는 이런 단순해 보이는 수법에 수많은 사람들이 당했다. 이런 폰지 사기를 친 사람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버나드 메이도프일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사기 행각이 발각되기 전까지 메이도프는 인정받는 금융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룬 부와 명성이 폰지 사기 수법으로 올린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서 C.클라크 상을 수상한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이 메이도프 사건을 바탕으로 돈과 욕망을 좇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소설에서 그려내고 있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재무를 전공하고 있는 폴과 그의 의붓동생 빈센트의 짧은 재회로 시작한 소설은 카이에트 호텔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캐나다 벤쿠버섬 최북단에 위치한 이 호텔은 초대형 판유리로 외벽을 마감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 호텔에서 야간 청소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던 폴은 이상한 낙서로 인해 해고를 당하고,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던 동생 빈센트는 사업가인 조너선 알카이티스를 만나게 된다. 서른 세 살 연상의 부자 조너선의 트로피 와이프가 된 빈센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대저택에 머물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화려한 파티에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런 빈센트의 삶도 조너선의 사무실로 급히 오라는 전화 한 통으로 끝나게 된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조너선 알카이티스는 폰지 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고, 모든 것이 들통이 나자 170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야기는 조너선의 사기 피해자인 리언 프레반트에게로 넘어간다. 모든 것을 잃고 콜로라도주 남쪽 끝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하는 리언에게 어느 날 일자리 제안이 찾아온다. 넵튠컴벌랜드 호라는 이름을 가진 배에서 보조 주방사로 일하던 여성의 실종 사건을 알아봐달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실종된 여성이 바로 조너선의 몰락과 함께 뉴욕에서 홀연히 사라진 빈센트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그날 빈센트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폰지 사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금융사기를 전면에 다룬 스릴러라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 사기에 연관이 된 사람들의 허망한 모습과 심리 묘사를 통해 돈과 욕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래 위에 지은 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제목인 글래스 호텔 역시 위태로운 바닥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걷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안에 있는 것이 밖에서 그대로 보이고, 바깥 풍경이 안에서도 보이는 유리로 만들어진 호텔은 멀리서 보면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보면 밖과 안이 연결되지 않고 유리로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손에 맡긴 사람들에게는 결국 허무함만이 남을 뿐이라는 교훈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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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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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때론 너무 고통스럽다, <내가 죽인 소녀>

 



초여름의 어느 날, 가족 문제 관련 상담을 의뢰 받은 사와자키 탐정은 약속한 그 집에 방문을 했다가 근처에 잠복해 있던 형사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고 만다. 알고 보니 그 집 주인이자 작가인 마카베 오사무의 딸인 사야카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려고 외삼촌댁에 가다 유괴를 당한 상태였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집을 찾아갔던 사와자키는 이 일을 계기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유괴범의 지시로 몸값 6000만 엔의 운반 역할을 맡은 사와자키는 고군분투하지만 낯선 자들의 습격을 받고 쓰러지게 된다. 돈은 돈대로 잃고 유괴된 소녀는 여전히 행방불명이 된 상황에서 사와자키는 소녀의 외삼촌인 가이 교수로부터 또 다른 중대한 의뢰를 받는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출간된 하라 료의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사와자키는 니시신주쿠의 위치한 낡은 탐정 사무소에서 의뢰를 받아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평범한 사람의 정식 의뢰가 아닌 유괴범의 농간으로 사건에 깊숙이 들어오게 된다. 충격적이게도 납치되었던 사야카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사와자키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가이 교수의 의뢰를 받고 네 명의 사람들을 조사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교수의 자녀들이었고, 조카의 유괴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누군가의 조사로 확실하게 밝히고 싶었던 것이 의뢰 목적이었다.


 

말 그대로 발품을 팔며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가 질문하는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유괴 사건과 관련이 있을법한 용의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 용의자들은 적당히 거짓과 진실을 섞은 말로 사와자키를 속이려고 하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경시청 간부들과 메지로 경찰서 형사들의 견제와 무시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사와자키 탐정의 담담한 모습이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다. 이미 소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소녀가 겪은 일의 진상을 밝히고 싶어 했던 사와자키가 끝내 마주하게 된 진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와자키는 회피하거나 묻지 않고 끝까지 그 진실을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며 끝을 맺는다.


 

진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잔혹한 비밀을 품고 있기도 하다. 특히,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 품고 있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관련된 사람들은 큰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사와자키 탐정이 진실을 밝힌 이유는 비단 탐정으로서의 책임감과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슴에 구멍을 뚫을 정도의 그 고통이 지나간 뒤에야 우리는 새로운 삶을 바라보며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한다면 결국 거짓 위에서 위태롭게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하라 료 작가의 이력을 보고 있으면, <밀양><> 등 한국 영화사에 걸출한 작품들을 남긴 이창동 감독님이 저절로 떠오른다. 소설과 영화라는 영역에서 두 분 모두 인정을 받았다는 점 외에 과작(寡作)을 하는 창작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 분의 작품들과 처음 만났을 땐 왜 그렇게 과작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요즘에는 그저 세상에 소개한 작품들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라 료 작가님의 새로운 사와자키 탐정 소설이 언젠가 또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그가 세상에 내놓은 다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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