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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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만들어낸 유리 위를 위태로이 걷다, <글래스 호텔>

 



우표 회신 쿠폰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사기를 쳤던 실존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한 폰지 사기는 요즘에도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오랜 사기 수법이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받아 신규 투자자들을 모으는 이런 단순해 보이는 수법에 수많은 사람들이 당했다. 이런 폰지 사기를 친 사람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버나드 메이도프일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사기 행각이 발각되기 전까지 메이도프는 인정받는 금융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룬 부와 명성이 폰지 사기 수법으로 올린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서 C.클라크 상을 수상한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이 메이도프 사건을 바탕으로 돈과 욕망을 좇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소설에서 그려내고 있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재무를 전공하고 있는 폴과 그의 의붓동생 빈센트의 짧은 재회로 시작한 소설은 카이에트 호텔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캐나다 벤쿠버섬 최북단에 위치한 이 호텔은 초대형 판유리로 외벽을 마감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 호텔에서 야간 청소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던 폴은 이상한 낙서로 인해 해고를 당하고,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던 동생 빈센트는 사업가인 조너선 알카이티스를 만나게 된다. 서른 세 살 연상의 부자 조너선의 트로피 와이프가 된 빈센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대저택에 머물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화려한 파티에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런 빈센트의 삶도 조너선의 사무실로 급히 오라는 전화 한 통으로 끝나게 된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조너선 알카이티스는 폰지 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고, 모든 것이 들통이 나자 170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야기는 조너선의 사기 피해자인 리언 프레반트에게로 넘어간다. 모든 것을 잃고 콜로라도주 남쪽 끝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하는 리언에게 어느 날 일자리 제안이 찾아온다. 넵튠컴벌랜드 호라는 이름을 가진 배에서 보조 주방사로 일하던 여성의 실종 사건을 알아봐달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실종된 여성이 바로 조너선의 몰락과 함께 뉴욕에서 홀연히 사라진 빈센트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그날 빈센트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폰지 사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금융사기를 전면에 다룬 스릴러라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 사기에 연관이 된 사람들의 허망한 모습과 심리 묘사를 통해 돈과 욕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래 위에 지은 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제목인 글래스 호텔 역시 위태로운 바닥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걷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안에 있는 것이 밖에서 그대로 보이고, 바깥 풍경이 안에서도 보이는 유리로 만들어진 호텔은 멀리서 보면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보면 밖과 안이 연결되지 않고 유리로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손에 맡긴 사람들에게는 결국 허무함만이 남을 뿐이라는 교훈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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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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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때론 너무 고통스럽다, <내가 죽인 소녀>

 



초여름의 어느 날, 가족 문제 관련 상담을 의뢰 받은 사와자키 탐정은 약속한 그 집에 방문을 했다가 근처에 잠복해 있던 형사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고 만다. 알고 보니 그 집 주인이자 작가인 마카베 오사무의 딸인 사야카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려고 외삼촌댁에 가다 유괴를 당한 상태였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집을 찾아갔던 사와자키는 이 일을 계기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유괴범의 지시로 몸값 6000만 엔의 운반 역할을 맡은 사와자키는 고군분투하지만 낯선 자들의 습격을 받고 쓰러지게 된다. 돈은 돈대로 잃고 유괴된 소녀는 여전히 행방불명이 된 상황에서 사와자키는 소녀의 외삼촌인 가이 교수로부터 또 다른 중대한 의뢰를 받는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출간된 하라 료의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사와자키는 니시신주쿠의 위치한 낡은 탐정 사무소에서 의뢰를 받아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평범한 사람의 정식 의뢰가 아닌 유괴범의 농간으로 사건에 깊숙이 들어오게 된다. 충격적이게도 납치되었던 사야카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사와자키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가이 교수의 의뢰를 받고 네 명의 사람들을 조사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교수의 자녀들이었고, 조카의 유괴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누군가의 조사로 확실하게 밝히고 싶었던 것이 의뢰 목적이었다.


 

말 그대로 발품을 팔며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가 질문하는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유괴 사건과 관련이 있을법한 용의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 용의자들은 적당히 거짓과 진실을 섞은 말로 사와자키를 속이려고 하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경시청 간부들과 메지로 경찰서 형사들의 견제와 무시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사와자키 탐정의 담담한 모습이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다. 이미 소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소녀가 겪은 일의 진상을 밝히고 싶어 했던 사와자키가 끝내 마주하게 된 진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와자키는 회피하거나 묻지 않고 끝까지 그 진실을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며 끝을 맺는다.


 

진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잔혹한 비밀을 품고 있기도 하다. 특히,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 품고 있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관련된 사람들은 큰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사와자키 탐정이 진실을 밝힌 이유는 비단 탐정으로서의 책임감과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슴에 구멍을 뚫을 정도의 그 고통이 지나간 뒤에야 우리는 새로운 삶을 바라보며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한다면 결국 거짓 위에서 위태롭게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하라 료 작가의 이력을 보고 있으면, <밀양><> 등 한국 영화사에 걸출한 작품들을 남긴 이창동 감독님이 저절로 떠오른다. 소설과 영화라는 영역에서 두 분 모두 인정을 받았다는 점 외에 과작(寡作)을 하는 창작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 분의 작품들과 처음 만났을 땐 왜 그렇게 과작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요즘에는 그저 세상에 소개한 작품들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라 료 작가님의 새로운 사와자키 탐정 소설이 언젠가 또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그가 세상에 내놓은 다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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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빛나는 강
리즈 무어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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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빛나는 강

 

 

작년 글로벌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서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마약 거리를 촬영한 영상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해외 토픽을 다루는 국내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이 켄싱턴 에비뉴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보였다. 좀비 거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이 거리에는 대낮부터 마약에 취한 이들이 득실거렸다. 너무나도 쉽고 싸게 거래되는 마약들로 인해 누군가의 부모나 형제자매, 자식들이 일상과 단절되어 이곳에서 중독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작품 <보이지 않는 세계>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리즈 무어의 스릴러 소설 [길고 빛나는 강]은 바로 그 영상에 나온 거리, 켄싱턴 에비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약 중독자들과 매춘부 그리고 조직 폭력배들이 득실거리는 이 거리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하나 둘씩 사라진다. 켄싱턴 에비뉴의 순찰을 맡고 있는 경찰관 미키 피츠패트릭은 단골 가게에서 여동생 케이시의 소식이 한 달 정도 끊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부모 없이 자신과 동생을 키워준 외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친척들에게 수소문하지만 케이시 소식을 들은 이들이 없다고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미키가 사라진 여동생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과 함께 살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교차하며 전개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처음에는 도통 어떻게 된 관계인지 몰랐던 자매의 사연이 하나 둘씩 풀어지게 된다.


 

너무나도 복잡한 얽혀 있는 거대한 문제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전달자들이 선택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하나의 개인 또는 가족이 겪는 고난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를 일찍 잃고 조모에 의해 양육된 미키와 케이시의 어릴 적 친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부재했다. 케이시는 일찍부터 마약에 손을 댔고, 미키는 그나마 경찰관이 되었지만 자신에게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거리를 순찰하는 감시자와 그 거리에서 몸을 파는 입장에서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이 자매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 미국이 처한 현실까지 건드리고 있다. 이 소설이 미국 평단과 독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관심과 찬사를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작가 리즈 무어는 이런 미국이 처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극적인 묘사나 과장 또는 반전을 이용하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하나뿐인 동생의 생사를 알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언니의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생은 물론 주인공 미키의 슬픈 비밀까지 드러난다. 미국만큼은 아니겠지만 국내에서도 마약 유통이나 복용과 관련된 각종 사건 사고 소식이 요즘 들어 너무 자주 들려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약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은 물론이고 가지고 있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토록 인간적이면서도 범죄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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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력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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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소설가 코넌 도일이 창조해낸 명탐정 캐릭터인 셜록 홈즈의 곁에는 조수 존 왓슨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사건에 휘말리며 범인을 잡는 과정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고, 탐정과 조수라는 조합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만약 왓슨이라는 캐릭터가 이 시리즈에 부재했다면 셜록 홈즈가 가진 개성과 카리스마가 오히려 덜 빛났을 것이다. 본격 미스터리 작가인 오야마 세이이치로가 2020년에 발표한 [왓슨력]은 홈즈의 추리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는데 일조한 왓슨 캐릭터가 가진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편집이다.

 


수사1과에 소속된 와토 소지 형사는 어릴 적부터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능력은 바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조수 왓슨처럼 주변 사람들의 추리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경찰 시험에 붙은 와토 형사는 파출소 근무를 거쳐 한 사건을 계기로 꿈에 그리던 경시청 수사1과에 들어가게 된다. 당연히 그가 소속된 이후부터 수사1과 제2강력범죄수사팀 3계의 검거율은 무려 100퍼센트로 치솟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능력으로 인해 그런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와토 형사 본인만 알고 있다.

 


너무나도 귀여운 노란색 표지의 이 단편집은 와토 형사의 왓슨력으로 여차저차 해결된 7가지 사건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론도장이라는 이름의 산장 주인과 여동생이 총으로 살해된 사건부터 시작해서 빌딩 지하에 있는 갤러리, 별장, 비행기, 버스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왓슨력이란 능력을 가진 주인공답게 그 스스로가 아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각자의 추리력으로 의견을 내놓고 결국 최후의 범인이 밝혀지는 전개 방식이다. 이 단편집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구성은 바로 7가지의 사건들을 하나로 묶은 별개의 사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7가지 사건을 다룬 모든 이야기를 다 읽어야지 비로소 사건 속의 사건 이야기가 해결되는 이런 방식이 재밌었다.

 


존 왓슨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능력을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소재로 삼은 작가의 영리함에 일단 미소가 지어졌고,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범죄 동기와 수법은 의외로 개연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똑똑해진다는 차원을 넘어 그 인물들이 펼치는 추리가 나름 논리정연하다. 한 사람이 추리를 시작해서 누군가를 지목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근거로 용의자를 내놓는 식이다. 무언가 평범하면서도 어설프고, 어설프면서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와토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나와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번 한 권으로 끝내기에는 와토 형사의 왓슨력이 은근히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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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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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세상의 절반이 사라진다면, <엔드 오브 맨>

 


 어떻게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시간도 없이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들고 죽어나간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뉴스에만 눈을 고정했던 이 풍경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감염자들과 사망자를 만들어낸 지난 2년 동안의 코로나19 사태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티 스위니 베어드의 첫 장편소설인 <엔드 오브 맨>에서 벌어진 일들이기도 하다. 2019년 초고가 완성되고 나서 20201년에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소설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겪은 내용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면, 소설 속에 등장한 바이러스는 남성들만 공격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위치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응급의 어맨더는 한 젊은 남성이 제대로 치료 받기도 전에 사망하는 일을 목격한다. 최초의 사망자인 프레이저를 비롯해 뷰트섬에 실려 온 환자들이 독감 증상을 보이다가 체온이 43도 이상 올라 결국 사망하게 되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감염자들이 발생하고, 그야말로 전 세계 시민들은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작가는 이 전염병 사태에 휘말린 여러 인물들의 짧은 이야기들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은 인류학자 캐서린, 미국에서 영국으로 온 질병관리본부 소속 병리학자 엘리자베스, 영국정보국 소속인 던까지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하나의 전염병 사태를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겪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의 절반인 아버지, 남편, 아들, 손자, 형제, 친구, 동료, 스승, 제자, 이웃을 잃었다. 우리는 인물들이 느끼는 아픔을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직, 간접적으로 느껴왔다. 죽음의 공포에서 재력이나 나이는 물론 국력 또한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 작품의 설정이 현실 속 팬데믹과 한 가지 다른 점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고 남성들에게만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화된 설정은 이 작품을 단순히 의학이나 재난 스릴러 차원이 아닌 사회학적 관점으로 해석할 여지를 우리에게 준다. 쉽게 말해서,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던 세상에서 남성의 존재가 사라지고 그 부재를 남은 여성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인 것이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하거나 발칙한 전제이자 소재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의 가치는 바로 그런 쉽게 할 수 없는 상상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상력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였던 남자들을 잃은 남은 이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그들의 빈자리로 인해 생겨난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 나가는가에 대한 과정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졌다고 평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동안 남성중심의 세상에서 당연하게 일어났던 일들의 변화였다. 작품 속 누군가는 역병 사태를 겪은 다음에 깨달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그런 사태를 미리 만나보게 해준 이 작품이 있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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