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이 세상의 절반이 사라진다면, <엔드 오브 맨>

 


 어떻게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시간도 없이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들고 죽어나간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뉴스에만 눈을 고정했던 이 풍경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감염자들과 사망자를 만들어낸 지난 2년 동안의 코로나19 사태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티 스위니 베어드의 첫 장편소설인 <엔드 오브 맨>에서 벌어진 일들이기도 하다. 2019년 초고가 완성되고 나서 20201년에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소설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겪은 내용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면, 소설 속에 등장한 바이러스는 남성들만 공격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위치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응급의 어맨더는 한 젊은 남성이 제대로 치료 받기도 전에 사망하는 일을 목격한다. 최초의 사망자인 프레이저를 비롯해 뷰트섬에 실려 온 환자들이 독감 증상을 보이다가 체온이 43도 이상 올라 결국 사망하게 되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감염자들이 발생하고, 그야말로 전 세계 시민들은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작가는 이 전염병 사태에 휘말린 여러 인물들의 짧은 이야기들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은 인류학자 캐서린, 미국에서 영국으로 온 질병관리본부 소속 병리학자 엘리자베스, 영국정보국 소속인 던까지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하나의 전염병 사태를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겪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의 절반인 아버지, 남편, 아들, 손자, 형제, 친구, 동료, 스승, 제자, 이웃을 잃었다. 우리는 인물들이 느끼는 아픔을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직, 간접적으로 느껴왔다. 죽음의 공포에서 재력이나 나이는 물론 국력 또한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 작품의 설정이 현실 속 팬데믹과 한 가지 다른 점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고 남성들에게만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화된 설정은 이 작품을 단순히 의학이나 재난 스릴러 차원이 아닌 사회학적 관점으로 해석할 여지를 우리에게 준다. 쉽게 말해서,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던 세상에서 남성의 존재가 사라지고 그 부재를 남은 여성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인 것이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하거나 발칙한 전제이자 소재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의 가치는 바로 그런 쉽게 할 수 없는 상상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상력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였던 남자들을 잃은 남은 이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그들의 빈자리로 인해 생겨난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 나가는가에 대한 과정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졌다고 평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동안 남성중심의 세상에서 당연하게 일어났던 일들의 변화였다. 작품 속 누군가는 역병 사태를 겪은 다음에 깨달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그런 사태를 미리 만나보게 해준 이 작품이 있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