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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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주목한 우리의 이야기, <파친코>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민진 작가의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시절 부산에서 나고 자란 선자와 그녀의 후손들의 이야기이다. 구순열을 가지고 태어난 절름발이 훈이와 열다섯의 여리고 순한 양진과 결혼을 해서 선자를 낳았다. 가진 것은 없어도 나름대로 행복했던 이 가족에서 가장 훈이가 결핵으로 떠나게 되고, 결국 두 모녀가 혹독한 시절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모녀는 생계를 위해 하숙을 치고, 선자는 어머니를 도와 하숙집 장보기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끌벅적한 시장 한가운데에서 우아한 새 한 마리 같은 한 남자 고한수를 만나게 된다. 고한수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그가 자식들까지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선자는 이별을 고한다. 혼인도 못한 채 임신을 한 딸을 두고 양진은 전전긍긍하고, 하숙집에 머물던 목사 백이삭이 그 사연을 듣고 선자에게 청혼을 한다. 이삭의 형 부부가 살고 있는 오사카로 가게 된 선자의 삶은 그렇게 세계로 이어지게 된다.



 

 전 세계 수많은 국가들에서 번역 출간되고,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들 중 한 곳인 애플TV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은 매우 상당했다. 한국인으로서 학교에서 역사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고, 졸업한 뒤에는 다양한 영상과 기사들로 배울 수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주인공 선자의 인생을 통해 다시 한 번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개인들의 삶은 파편처럼 흩어지기도 하고 힘겹게 다시 모이기도 한다. 자이니치, 동포, 교포, 이민자 등 다양한 용어들로 표현되는 이들의 삶에서 인생의 고통과 동시에 강인한 생명력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김선자, 백이삭, 최경희, 모자수 그리고 고한수까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역사를 통해 뒤흔들리는 개인적 경험을 하고 있다. 공감과 이해의 진폭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이들 모두 힘겨운 삶의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소설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던 배경에는 분명히 이민자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간다는 것은 그저 무섭고 불안하다는 단순한 차원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온갖 차별과 냉대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해야 했던 그들의 애환에 독자들은 공감하고 또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이 소설에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마치 전시하듯이 이민진 작가는 그려내지는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고 가족들을 돌보며 내면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선자는 뿌리 깊은 나무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책의 첫 문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비록 역사가 저버린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에 꺾이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갔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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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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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서 연달아 사라진 그녀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라진 여자들>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어느 날 밤, 파트너 비아와 함께 살고 있는 케이트의 집으로 누군가가 찾아와 문을 두들긴다. 알고 보니 옆집에 살고 있는 조시라는 남성이었고 아내 메러디스와 딸 딜라일라가 사라져서 행방을 묻기 위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케이트와 비아도 그들의 행방을 모른다고 답했고,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조용했던 한 마을을 흔들어 놓는다.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심리 스릴러 작품들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메리 쿠비카의 새로운 소설 <사라진 여자들>은 그렇게 두 모녀의 실종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메러디스와 딜라일라의 실종을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열흘 전 조깅을 하러 외출했다가 실종된 셸비 티보라는 또 다른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얼마 되지 않은 간격으로 총 세 명이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마을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종 사건에 대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사라졌던 세 명 중 한 명의 시신이 이 지역 강에서 발견된다. 바로 두 모녀가 사라지기 직전에 외출을 했다가 사라진 셸비였고, 그녀의 남편이 용의선상에 바로 오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두 모녀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고, 무려 11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러 자신이 사라졌던 딜라일라라고 말하는 소녀가 마을에 나타난다. 긴 시간동안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았던 조시와 레오는 딜라일라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특히 누나 딜라일라가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동생 레오는 그녀가 정말 자신의 가족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 스릴러는 한 마을에서 살다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 세 명의 여성들 그리고 그 여성들과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나가고 있다.

 


 

메리 쿠비카는 전작인 <디 아더 미세스>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몇몇 인물들의 시점으로 교차 전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웃들이 사라진 충격적인 경험을 잊지 못하는 케이트와 출산 도우미와 요가 강사로 바쁘게 일하는 메러디스 그리고 그녀의 아들 레오의 이야기들이다. 이 세 명이 전하는 이야기들 속에 감춰진 또는 암시된 실마리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연결되면서 결국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만다. 언제나 그렇듯이 범인의 정체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너무 자세한 정보를 알아보는 대신에 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전작인 <디 아더 미세스>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고, 이 소설은 출간도 전에 TV 드라마로 제작 확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 현지 미디어가 주목하고 있는 스릴러 작가들 중 한 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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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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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몰랐던 그녀의 상처와 비밀을 따라가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변호사 판옌중은 전처와의 고통스러운 이혼 과정을 극복하고 학원 강사 우신핑과 재혼하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 우신핑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그 평온함이 깨지게 된다. 아내의 실종을 추적하던 그는 죽었다던 아내의 어머니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판옌중은 아내의 과거 속 인물들을 한명씩 만나게 되고 점점 더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대만 명문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작가의 길로 들어선 우샤오러의 국내 첫 출간작인 이 소설은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따라가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과 성범죄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몇 년 전, 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헐리웃을 시작으로 업계 전체에 미투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스크린을 수놓았던 원로 배우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업계에 입성한 신인 배우들까지 한 목소리로 자신들이 과거에 당했던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했다. 이런 사회적 운동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유독 다른 범죄들과 다르게 수사 기관의 허술한 사건 처리,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대중의 이중 잣대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2차 가해로 작용되어 성범죄 피해자들은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러 여성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성적으로 받은 고통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전시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한 피해를 입은 그들이 또 다시 어떻게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게 되는지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성범죄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고통은 범죄 그 자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피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불합리한 대응은 물론이고 피해자를 먼저 비난하고 조롱하는 외부의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 작가의 나라인 대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매일 누군가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책 뒤편에 적혀 있는 정세랑 소설가의 추천평 내용처럼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 무색할 정도로 여러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언행과 심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마치 몇 줄의 기록만으로 사건 전체를 관통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언제나 사건의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소설은 그런 더 많은 이야기를 아내를 찾는 남편의 이야기라는 큰 줄기를 통해 잘 그려내고 있다. 단순히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로만 평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민낯과 인간의 복잡한 이면을 다층적 구조로 완성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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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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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야말로 평범함을 거부하는 무라타 유니버스, <지구별 인간>



 

 도시 한 블록마다 보이는 편의점이란 공간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물었던 무라타 사야카의 유니버스는 이 작품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게이코처럼 이 소설의 나쓰키 역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물이다. 언니 기세는 나쓰키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런 기세를 엄마는 늘 감싸고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아버지는 그저 무관심하게 지켜볼 뿐이다. 주인공 나쓰키가 행복을 느끼는 몇 안 되는 시기가 바로 매년 여름 백중절에 할머니 집에 놀러 갈 때이다. 여러 친척들이 모이는 그 곳에는 그녀의 연인 유우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마법소녀라고 생각하는 나쓰키와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유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연인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둘 사이가 친척들에게 발간되면서 이런 관계도 파국을 맺게 된다.




 이 사회에서 정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이런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은 게이코나 나쓰키처럼 불량품 소리를 듣게 된다. 무라타 사야카는 나쓰키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되고 나서 당하는 일들을 통해 이 사회와 집단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개인을 억압하고 공격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학원 선생인 이가사키가 나쓰키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소설 속 내용이다. 학대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머릿속에 들어서지 않은 나쓰키는 그대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부모라는 존재마저 몸과 마음이 망가진 나쓰키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를 제대로 도와줄 사람은 주변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스스로 문제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부조리한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듯이, 성인이 되어 파견사원으로 일을 하고 나서도 비주류로서 부유하고 있는 상태는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상처로 자신이 고장 났다고 판단한 나쓰키는 모든 압박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탈출닷컴이라는 사이트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대 도모오미를 만난다. 패밀리 레스토랑 직원인 지금의 남편은 나쓰키처럼 주류에 편입되지 않은 남자였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이 둘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철저하게 위장막이자 보호막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부부의 사이 그리고 미래가 완전히 변하게 된 지점은 어린 시절 그 사건 이후 아키시나의 집으로 여행을 떠난 직후였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사촌 유우와 상봉한 나쓰키는 여전히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결국 둘 사이를 알게 된 남편까지 합세해서 이 세 사람은 그동안의 지구인으로서 영위했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그들만의 길을 걷기로 한다.




 무라타 사야카의 작품들에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으로 주류 사회에 편입할 수 없게 된 존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소설 속 나쓰키와 유우 그리고 도모오미가 마법공주와 외계인이라는 제2의 정체성을 획득하려고 했던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편입이 아닌 생존을 위한 탈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표현한 이유는 나쓰키의 언니 기세처럼 끊임없이 의심하고 강요하는 외부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사라지지 않는 이상 세 사람은 계속해서 도망을 치거나 숨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 <편의점 인간>보다 훨씬 더 희망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은 바로 주인공 나쓰키 곁에 무려 두 사람이나 함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전 소설 <편의점 인간>에서 주인공 게이코와 함께 살았던 시라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존재로 보였지만 결국 착취가 목적인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 이후 2년 만에 나온 이 소설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세 사람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희망찬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주류 사회에 억지로 맞추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홀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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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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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우리 뿐이야, <미궁>

 


 

 거미줄 같은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뿐만이 아니라 악이라는 관점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굳이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가져오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뉴스 사회면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저지르는 일들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내기도 하지만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존재가 또 인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악과 집단의 광기에 집중했던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대표작인 이 소설 역시 인간이 가진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신견(新見)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우연으로 만난 한 여자의 집에서 일어난다. 사무실 빌딩을 나서던 그에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탐정이 찾아와 명함을 내민다. 그 만남으로 인해 신견은 같이 밤을 보낸 그 여성이 22년 전 일어났던 히오키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히오키 사건은 1988년 도쿄 네리마구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인 사건이다. 모든 문이 잠겨 진 밀실 상태에서 집주인 부부는 예리한 흉기에 찔려 사망했고, 장남은 독극물을 먹고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신견이 만난 그 여성인 사나에는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던 그 사건에 주인공 신견이 휘말리게 되면서 점점 더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작품 속 주인공이 미스터리한 과거가 있는 누군가를 만나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사실 매우 흔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런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바로 주인공의 심리 상태이다. 소설 맨 처음에도 언급되지만 사실 신견은 머릿속에 R이라는 존재를 느껴 정신과 치료를 받은 과거가 있다. 지극히 보편적인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사나에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분열의 내면을 가지고 있던 혹은 지금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주인공은 사나에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에 뚜벅뚜벅 걸어가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다.



 

 밀실 살인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 소설을 단지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 분석하고 따라간다면 많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다. 책 결말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애초에 작가가 그려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훨씬 더 심오하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몰살당한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나에와 사회에 영입되기 위해 평범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신견의 관계는 단순한 남녀관계 이상으로 보여 진다. 서로를 구원하는 사이도 아니고 파멸시키는 관계도 아닌 마치 미궁이라는 공간에 함께 들어간 인물들인 것이다. 이들의 복잡하고 어두운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놓지 못하고 어딘가 있을 지도 모를 목적지로 둘만이 달려갈 수 있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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