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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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우리 뿐이야, <미궁>

 


 

 거미줄 같은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뿐만이 아니라 악이라는 관점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굳이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가져오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뉴스 사회면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저지르는 일들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내기도 하지만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존재가 또 인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악과 집단의 광기에 집중했던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대표작인 이 소설 역시 인간이 가진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신견(新見)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우연으로 만난 한 여자의 집에서 일어난다. 사무실 빌딩을 나서던 그에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탐정이 찾아와 명함을 내민다. 그 만남으로 인해 신견은 같이 밤을 보낸 그 여성이 22년 전 일어났던 히오키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히오키 사건은 1988년 도쿄 네리마구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인 사건이다. 모든 문이 잠겨 진 밀실 상태에서 집주인 부부는 예리한 흉기에 찔려 사망했고, 장남은 독극물을 먹고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신견이 만난 그 여성인 사나에는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던 그 사건에 주인공 신견이 휘말리게 되면서 점점 더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작품 속 주인공이 미스터리한 과거가 있는 누군가를 만나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사실 매우 흔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런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바로 주인공의 심리 상태이다. 소설 맨 처음에도 언급되지만 사실 신견은 머릿속에 R이라는 존재를 느껴 정신과 치료를 받은 과거가 있다. 지극히 보편적인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사나에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분열의 내면을 가지고 있던 혹은 지금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주인공은 사나에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에 뚜벅뚜벅 걸어가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다.



 

 밀실 살인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 소설을 단지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 분석하고 따라간다면 많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다. 책 결말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애초에 작가가 그려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훨씬 더 심오하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몰살당한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나에와 사회에 영입되기 위해 평범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신견의 관계는 단순한 남녀관계 이상으로 보여 진다. 서로를 구원하는 사이도 아니고 파멸시키는 관계도 아닌 마치 미궁이라는 공간에 함께 들어간 인물들인 것이다. 이들의 복잡하고 어두운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놓지 못하고 어딘가 있을 지도 모를 목적지로 둘만이 달려갈 수 있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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