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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그동안 몰랐던 그녀의 상처와 비밀을 따라가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변호사 판옌중은 전처와의 고통스러운 이혼 과정을 극복하고 학원 강사 우신핑과 재혼하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 우신핑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그 평온함이 깨지게 된다. 아내의 실종을 추적하던 그는 죽었다던 아내의 어머니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판옌중은 아내의 과거 속 인물들을 한명씩 만나게 되고 점점 더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대만 명문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작가의 길로 들어선 우샤오러의 국내 첫 출간작인 이 소설은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따라가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과 성범죄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몇 년 전, 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헐리웃을 시작으로 업계 전체에 미투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스크린을 수놓았던 원로 배우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업계에 입성한 신인 배우들까지 한 목소리로 자신들이 과거에 당했던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했다. 이런 사회적 운동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유독 다른 범죄들과 다르게 수사 기관의 허술한 사건 처리,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대중의 이중 잣대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2차 가해로 작용되어 성범죄 피해자들은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러 여성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성적으로 받은 고통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전시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한 피해를 입은 그들이 또 다시 어떻게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게 되는지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성범죄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고통은 범죄 그 자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피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불합리한 대응은 물론이고 피해자를 먼저 비난하고 조롱하는 외부의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 작가의 나라인 대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매일 누군가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책 뒤편에 적혀 있는 정세랑 소설가의 추천평 내용처럼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 무색할 정도로 여러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언행과 심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마치 몇 줄의 기록만으로 사건 전체를 관통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언제나 사건의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소설은 그런 더 많은 이야기를 아내를 찾는 남편의 이야기라는 큰 줄기를 통해 잘 그려내고 있다. 단순히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로만 평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민낯과 인간의 복잡한 이면을 다층적 구조로 완성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